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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Koreans series-제3탄] 왜 한국인은 남을 칭찬하는데 인색한가?

이종철 철학박사 l 기사입력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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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이종철 철학박사.    ©브레이크뉴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고래가 춤을 춘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겠지만, 칭찬은 그만큼 불가능한 일도 해낼 수 있을만한 힘을 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남을 칭찬하는 법이 거의 없다. 오히려 남을 깍아 내리는 행동을 더 많이 한다. ‘헬 조선’으로 불리는 한국 사회의 많은 부분이 이런 분위기에 기인할 것이다. 도대체 한국인들은 왜 그럴까?

 

칭찬하면 좋은 점이 많다. 일단 상대에 대한 긴장을 풀어줄 수 있다. 서로 간에 경쟁을 하다 보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스트레스도 심해진다. 이럴 때 상대의 아주 자그마한 점이라도 칭찬해주면 당장 효과가 있다. 칭찬을 받고 싫어하거나 웃는 낯에 침을 뱉는 사람은 거의 없다. 칭찬으로 누그러지면 죽고 사는 식의 경쟁 분위기도 선의의 경쟁으로 바뀔 수 있다. 상대를 꼭 죽여야만 이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칭찬은 좋은 인간관계의 강력한 도구이다.

 

SnS에 글을 쓰다 보면 아주 심한 악풀이 달리는 경우가 많다. 예민한 사람들은 이런 악풀 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도 받고, 심지어 대중의 칭찬을 먹고 사는 연예인들 중에는 목숨을 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굳이 상대의 복장을 긁어 놓을 필요가 없는데, 오히려 이런 행위를 즐겁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 중에는 전문적으로 게시판을 찾아다니면서 악성 댓글로 글쓴이의 감정에 비수를 날리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오죽하면 선풀 달기 운동을 하거나 실명제로 전환해서 함부로 악풀을 달지 못하도록 하겠는가? 억지로 선풀을 할 필요는 없지만, 재미로 하는 악풀은 상대를 죽이는 행위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대부분은 상대 정당의 행위나 상대 의원들의 말에 대한 비난 일색이다. 정당한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가 있고, 이런 비판을 통해 개선과 성장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건설적 비판이 아니라 오로지 비난을 위한 비난을 일삼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해도 서로 간에 경청하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는 국민들도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일들이정치권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국 정치의 발전이 쉽지 않다. 말이 씨가 된다고 오로지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산다는 비장한 감정이 앞서다 보니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권의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리기 일쑤다. 이런 형태의 단순 뒤집기는 그야말로 추상적인 부정에 그칠 뿐 더 이상의 발전이 있을 수 없다. 변증법에서 '지양'(aufheben)이란 말은 부정하고 비판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좋은 것을 보존해서 끌어 올리는 긍정적 의미도 담고 있다. 단순 부정으로서는 이런 형태의 지양이 불가능하다. 비난 일변 도로 이어지는 정치인들의 언어는 이제 거의 모든 부문에서 일상화돼서 굳어진 한국 사회의 진영논리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진영논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미래의 한국에 대한 전망은 참으로 우울해질 것이다.

 

무조건 비난이라 하면 언론도 빠지지 않는다. 언론의 칼럼은 일반 국민들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러므로 이런 칼럼을 쓰는 인사들은 개인적이거나 정파적인 입장을 넘어서 보다 객관적이고 전체를 고려해야만 한다. 오늘날 언론은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공식적 권력 외에 언론 권력이라 할만큼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언론이 정파적 입장을 고수한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한국의 언론들은 특정 정당 기관지나 선전지라 오해받을 정도로 편파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지수가 땅에 떨어져 있고, 언론인들의 자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적지 않다. 여기에는 미디어 환경이 달라진 면도 크다. 특히나 오늘날에는 SnS의 발달로 검증되지 않은 편파성 글들이 언론의 이름을 걸치고 도처에 넘치고 있다.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데는 이러한 다양성이 필요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물어야 할 것이다.

 

남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기로는 한국의 학자들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이다. 그들은 어떤 경우이든 남을 인정하지 않는다. 학자가 논문을 쓸 때면 다른 논문들이나 책들을 읽어야 하지만 한국의 학자들은 설령 읽었어도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게다가 인용은 거의 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국내 학자의 글을 인용할 경우 가산점을 주는 학술진흥재단의 권장 기준이 있을 정도다. 동료학자들의 글에 대해서는 한없이 박하면서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외국의 문헌들은 수도 없이, 거의 절대적 신뢰를 갖고 인용한다. 어떤 경우는 번역서를 읽고서도 인용은 원전 페이지를 인용하기까지 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그것은 상당 부분 스스로 판단하는 주체성이 없기 때문인데, 이런 태도가 조선의 중화 사대주의 이래로 일제의 식민지를 거쳐 해방 후 친미 사대주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학문 사회도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비판해가면서 동반 성장할 수 있지만 이렇게 준거점을 외국에 두다 보면 학문의 자생적 논쟁이나 발전이 있기 힘들다. 오늘날 한국에 수많은 논문들이 쏟아져도 세계적인 담론이나 이론 혹은 철학이 없다는 것은 그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인들은 다른 어떤 나라의 국민들보다 ‘자존심’이 강하다. 하지만 이런 자존심은 배타적 감정에 기초할 수 있고, 칭찬에 인색한 태도는 이런 감정에 기초해 있을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존심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자존감’이 더 중요하다. 자신을 존중하는 자존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타인에 대한 인정도 후하고 타인을 칭찬 잘한다. 상대가 아무리 나와 적대를 이룬다 해도 상대를 인정할 때 나 자신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런 인정에는 칭찬이 절대적이다. 무조건 단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긍정적인 면도 확인하고 칭찬할 수 있는 대인의 풍모와 자세가 이 시대에 필요할 것이다.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Why Koreans series-Part 3]Why are Koreans stingy when it comes to praising others?

-Lee Jong-cheol, Ph.D. in philosophy

 

There is a saying that 'Praise makes whales dance.' The story of a whale dancing may be new to me, but praise may mean that it gives you strength to do something that is impossible. Nevertheless, Koreans rarely praise others. Rather, they act more like cutting others down. Much of Korean society, called "Hell Joseon," may be due to this atmosphere. What on earth is wrong with Koreans?

 

There are many good things to praise. First of all, you can relax your opponent. When you compete with each other, your nerves become sharp and your stress becomes severe. In this case, if you praise the other person for even the smallest things, it will work right away. Few people are praised and disliked or spit on smiling faces. If it is tempered by praise, the atmosphere of competition that lives and dies can turn into a competition in good faith. You don't necessarily win if you kill your opponent. Rather, much better results can be achieved through competition in good faith. In that sense, praise is a powerful tool for good relationships.

 

When writing on SnS, there are many cases where the evil spirit runs very badly. Sensitive people are under considerable stress because of this evil grass, and many celebrities who live on public praise often take their lives. There is no need to scratch the other person's clothes, but there are surprisingly many people who enjoy this behavior. Among them, there are often people who professionally search for bulletin boards and send a dagger to the writer's emotions with malicious comments. Why don't you do a campaign to hang the glue or switch to the real-name system so that you can't hang the glue? You don't have to force yourself to do the evil grass, but keep in mind that the evil grass for fun is an act of killing the other person.

 

Most of the language used by politicians is one-sided criticism of the other party's actions or the words of the other lawmakers. You can make any number of legitimate criticisms, and through these criticisms, improvement and growth can be achieved. However, no matter what they say, they do not listen to each other because they make accusations solely for criticism, not constructive criticism. People who see such a scene often raise their eyebrows. The development of Korean politics is not easy because these things take place on a daily basis in politics. As the pathetic feeling that I can live only by killing the other person just because words become seeds is ahead, when the regime changes, everything in the previous regime is often overturned. This form of simple overturning is simply an abstract denial and there can be no further development. In dialectic, the word "aufheben" means denying and criticizing, but it also has a positive meaning of preserving and raising good things. This type of avoidance is impossible with simple denial. It should be noted that politicians' language, which leads to criticism, is now becoming more commonplace in almost every sector, solidifying the camp logic of Korean society. However, if the camp fails to overcome its logic, the prospects for Korea in the future will be truly gloomy.

 

When it comes to criticism unconditionally, the media does not miss it. The media's columns have a great impact on the general public. Therefore, those who write these columns must go beyond personal or factional positions and consider the whole more objective and objective. Today, the media is powerful enough to be called media power in addition to the official power of legislative, judicial, and administrative power. What would happen if such a media held onto a factional position? In fact, Korean media often show such biased images that they are misunderstood as a specific political party's journal or propaganda paper. Due to this situation, the public's confidence index in the media has fallen to the ground, and there are many demands for improving the quality of journalists. There is also a big change in the media environment. In particular, today, biased articles that have not been verified due to the development of SnS are overflowing everywhere in the name of the media. This diversity is necessary to revitalize democracy, but it will also have to be held accountable accordingly.

 

Korean scholars are second to none when it comes to complimenting others. They don't acknowledge others in any case. When scholars write papers, they have to read other papers or books, but Korean scholars do not express themselves at all even if they read them, and they rarely quote them. There is even a recommended standard by the Academic Promotion Foundation that gives additional points when quoting articles from domestic scholars. The writings of fellow scholars are cited with countless and almost absolute trust in foreign literature that are infinitely crude and have not been properly digested. In some cases, even after reading the translation, citations are even quoted on the original page. Why is this happening when you don't have to? In large part, it is because there is no subjectivity to self-judgment, and this attitude has still been maintained from the Chinese historicalism of Joseon to the post-liberation pro-American historicalism through the Japanese colonialism. Academic society can also grow together by acknowledging and criticizing each other, but if you put the reference point in a foreign country like this, it is difficult for there to be a self-sustaining debate or development of academics. Even if numerous papers are poured into Korea today, isn't the fact that there is no global discourse, theory, or philosophy disproving it?

 

Koreans are more 'proud' than the people of any other country. However, this self-esteem may be based on exclusive feelings, and a stingy attitude toward praise may be based on these feelings. What is more important in relationships with others is not just one's own self-esteem, but 'self-esteem' is more important. People with strong self-esteem who respect themselves are more generous and praise others. No matter how hostile the opponent is with me, I can be recognized myself when I acknowledge the opponent. Praise is absolute in this recognition. In this era, it will be necessary not only to see the shortcomings but also to identify and praise the positive aspects of the other p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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