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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流浪)의 역사 – 침묵하는 조국의 어머니

이일영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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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조국의 어머니 상’과 방패 교체 후 모습 / 출처:uk.yahoo   © 이일영 칼럼니스트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는 ‘조국의 어머니’라는 거대한 동상이 모스크바 쪽을 향하여 서 있다. 전체 높이 102m에 동상 높이만 62m로 오른손에는 긴 검을 들고 왼손엔 구소련의 상징인 망치와 낫 문양의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8월 초 구소련을 상징하는 동상의 방패를 우크라이나 국가 문장인 삼지창 문양의 방패로 교체하였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 중 이루어진 정체성 확립을 위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조국의 어머니상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말없이 서 있다. 특히 교체된 문양 삼지창은 우크라이나 국가 문양으로 블라디미르 1세의 아들 야로슬라프 1세(978~1054)가 사용한 문양이었던 사실은 역사에 대한 깊은 헤아림을 갖게 한다. 

 

조국의 어머니상은 1981년 2차 세계 대전 승전을 기리기 위해 설치된 기념물이다. 1886년 미국 뉴욕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에 대응하여 추진되었다. 

 

1917년 시작된 러시아 내전 이후 레닌주의를 역사에 남긴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이 1918년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가 원수가 되어 1920년 세우려던 동상이었지만, 세상을 떠나면서 무산되었다. 

 

뒤를 이은 스탈린(1879~1953)이 1950년 동상 건립을 도모하였지만,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보류되어 몇 년 후 세상을 떠나 역시 무산되었다. 

 

이후 1970년 동상 건립이 새롭게 추진되어 구소련 조각가 예브게니 부체티치(1908~1974)가 제작에 착수하였으나 지병으로 1974년 세상을 떠났다. 우크라이나 조각가 바실 보로다이(1917~2010)가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1981년 제작을 완성하여 설치하였다. 

 

조국의 어머니상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은 무엇일까?

 

전설의 바이킹 후예 류리크(830~879)가 노브고리드에 류리크 왕조를 세운 후 오늘날 우크라이나 키예프(키이우) 공국으로 확장하였다. 이후 882년 키예프 2대 대공에 오른 인물이 올렉 베시이(?~912)였다. 러시아의 가장 오랜 원초 연대기에는 올렉을 미래를 예견하는 현명한 예언자로 기록하고 있다. 

 

그가 키예프 대공에 오른 후 이곳이 루스족 도시의 어머니가 되게 하십시오(Да будет это мать городам русским) 라고 말한 기록이 키예프 공국의 역사서로 평가받는 원초연대기에 기록된 것이다. 이후 다양한 이야기로 역사와 동행하였다.   

 

키예프(키이우) 공국의 역사는 부정할 수 없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주요한 역사를 열었던 블라디미르 1세를 헤아리면 인간의 사고와 행동 양식을 집합표상으로 정리하여 현대 종교사회학의 지평을 열었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크게 느껴진다. 

 

그는 신성이란 종교가 존재하는 사회의 소중함으로 정의하였다. 나아가 종교란 인간이 가져야 할 도덕의 힘으로 사회를 이끌어 가는 공동체의 근원이라고 하였다.  

 

블라디미르 1세는 키예프(키이우) 대공에 오른 후 키예프(키이우) 언덕에 천여 개에 이르는 우상 숭배물을 만들어 숭배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인간의 희생까지 바칠 생각을 가졌던 극한의 우상 숭배 속에 기록마저도 혼란스러울 만큼 수많은 부인을 두었던 인물이었다.  

 

당시 키예프(키이우)가 교역의 주요한 도시로 부상하면서 여러 나라의 상인들은 물론 선교사들과 접촉하였다. 이슬람교에서부터 유대교. 로마 가톨릭, 정교회에 이르는 선교사들을 만나 개종을 설득하는 저마다의 설교를 경청하였다. 이후 주요 나라에 사절을 파견하여 모든 종교를 면밀하게 검토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여러 기록을 종합하면 그는 이슬람교의 포도주와 돼지고기를 금기하는 하람에 대하여 루스인의 관습과 너무나 상충하는 점을 들어 일찍 관심에서 제외하는 등 깊은 헤아림으로 모든 종교를 상세하게 살폈다. 이후 동로마 제국에 파견한 사절단을 통하여 보고받은 비잔틴 교회에 대한 많은 내용에 깊은 관심을 가졌지만, 쉽게 개종하지 않았다. 

 

당시 동로마 제국을 방문한 사절단의 보고 중에 블라디미르 1세 대공을 흔드는 내용이 있었다. 황제의 미혼인 여동생 안나(963~1011)의 뛰어난 미모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이때였다. 986년 불가리아 칸국이 동로마 제국을 공격하면서 동로마 제국 바실리우스 2세 황제가 위기를 맞았다. 키예프(키이우) 공국 블라디미르 1세 대공에게 긴급한 지원을 요청하였다. 당시 블라디미르 1세 대공은 황제에게 의외의 요구를 하였다. 황제의 여동생 안나와의 결혼을 요구한 것이다. 

 

절박한 황제는 앞뒤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복잡한 조건이 아닌 여동생과의 결혼을 약속하고 대공의 지원병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그러나 약속한 황녀 안나의 결혼 문제가 본인의 강력한 반대로 차일피일 미루게 되면서 화가 난 블라디미르 1세는 988년 크림반도에 있던 동로마 제국 식민지 영토였던 크림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주요한 항구 케르소네소스를 침공하였다. 이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쳐들어갈 거라는 위협까지 서슴지 않았다.

 

키예프(키이우) 공국의 수장 블라디미르 1세(958~1015)가 동로마 제국의 황제 바실리우스 2세(958~1025)의 여동생 안나(963~1011)와의 결혼에 집착한 역사의 행간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우여곡절 끝에 989년 블라디미르 1세와 결혼한 그녀는 동로마제국 황녀의 신분이 고려되어 당시 여왕으로도 호칭하였다. 

 

그녀의 기록은 놀라울 만큼 단편적이다. 그녀가 낳은 두 아들 보리스(?~1015)와 글렙(990~1015) 형제는 블라디미르 1세가 세상을 떠난 후 이복형 스뱌토폴크 1세(980~1019)에 의하여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직계 혈연 모두가 세상에 없는 점을 고려하여도 동로마 제국 황녀로 당대의 세력 키예프(키이우) 공국 여왕과 후손이었던 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 판화 작품에 전해진 우크라이나 십일조 교회 / 출처:uk.yahoo   © 이일영 칼럼니스트


특히 당시 주요한 기록이 수도원 수도사에 의하여 전해진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996년에 세워진 키예프(키이우) 공국 최초 교회는 블라디미르 1세가 교회 건축과 유지 비용을 대비하여 수입과 재산의 십일조를 따로 떼어놓은 준비 속에 세워진 교회였다. 교회가 세워진 장소는 978년 7월 12일 바랑인 테오도르와 그의 아들 요한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최초로 순교한 장소였다.   

 

교회가 완공되면서 블라디미르 1세는 950년 세례명 헬레나(Helena)로 키예프(키이우) 공국 최초로 세례를 받았던 할머니 올가(890~969)의 유해를 안치하였다. 정교회를 국교로 선포한 주역 블라디미르 1세와 동로마 제국 황녀 안나 대공비도 함께 묻힌 곳이다.  

 

우크라이나는 그동안 매년 7월 28일이 건국 기념일이었다. 이는 블라디미르 1세가 세례를 받았던 기간을 기점으로 지정한 것이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블라디미르 1세가 세상을 떠난 7월 15일을 건국 기념일로 수정하여 의회 통과를 거쳐 블라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서명하였다. 내년부터는 우크라이나 국경일이 7월 15일이다. artwww@naver.com

 

필자: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In Kyiv, the capital of Ukraine, a huge statue of the "mother of the motherland" stands toward Moscow. He stood with a long sword in his right hand and a shield in the shape of a hammer and sickle, symbols of the former Soviet Union. 

 

However, in early August, the Ukrainian government replaced the shield of the statue symbolizing the former Soviet Union with a shield with a trident pattern, the Ukrainian national sentence. This was a work to establish an identity that took place during the ongoing war in Ukraine. 

 

However, the mother of the motherland stands silently with a lot of stories. In particular, the replaced trident was a Ukrainian national symbol and used by Yaroslav I (978-1054), the son of Vladimir I, gives a deep understanding of history. 

 

The Mother of the Fatherland statue was installed in 1981 to commemorate the victory of World War II. It was promoted in response to the Statue of Liberty, which was established in 1886 in New York, the United States. 

 

Vladimir Lenin (1870-1924), a revolutionary who made history with Leninism after the Russian Civil War that began in 1917, became the head of the Russian Soviet Socialist Federal Republic in 1918, but it was destroyed when he passed away. 

 

Stalin (1879-1953), who succeeded him, sought to build a statue in 1950, but it was put on hold when the Korean War broke out and died a few years later. 

 

Later, in 1970, the construction of the statue was newly promoted, and former Soviet sculptor Yevgeny Vuchetić (1908-1974) started production, but died in 1974 due to chronic disease. Ukrainian sculptor Vasyl Borodai (1917-2010) took over the project and completed and installed it in 1981. 

 

What is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motherland's image?

 

The legendary Viking Descendants of Ryurik (830–879) founded the Ryurik dynasty in Novgorid and then expanded into the Principality of Kyiv (Kyiv), Ukraine, today. Oleg Bessie (?~912) was the person who rose to the second Grand Duke of Kyiv in 882. Russia's longest chronicle of the original records Oleg as a wise prophet who foresees the future. 

 

After he ascended to the Grand Duke of Kyiv, he said, "Let this be the mother of the Ruth city  was recorded in the original chronicle of the Principality of Kyiv. Since then, he has accompanied history with various stories.   

 

The history of the Principality of Kyiv (Kyiv) is undeniably the history of Russia and Ukraine. In this context, looking at Vladimir I, who opened the most important history, I greatly feel the sociologist Emile Durkheim, who opened the horizon of modern religious sociology by organizing human thinking and behavior in a collective table. 

 

He defined divinity as the importance of a society where religion exists. Furthermore, religion is said to be the source of a community that leads society with the power of morality that humans should have.  

 

After he ascended the Grand Duke of Kyiv (Kyiv), Vladimir I created more than a thousand idol worship objects on the hills of Kyiv (Kyiv) and became a central city of worship. He was a person who had so many denials that even the record was confusing amid the extreme idol worship that he had the intention of sacrificing human beings.  

 

At that time, as Kyiv (Kiiv) emerged as a major city of trade, it contacted merchants from various countries as well as missionaries. Judaism from Islam. He met with missionaries from Roman Catholic and Orthodox churches and listened to their own sermons to persuade them to convert. Since then, he has sent envoys to major countries to closely examine all religions. 

 

Putting together several records, he examined all religions in great detail, including early exclusion from interest in Haram, which forbids Islamic wine and pork, because it was so contradictory to the practice of the Rus. I was deeply interested in the many contents of the Byzantine Church reported through the delegation sent to the Eastern Roman Empire, but I did not convert easily. 

 

At that time, among the reports of the delegation visiting the Eastern Roman Empire, there was a wave of Prince Vladimir I. There was a story about the outstanding beauty of the emperor's unmarried sister Anna (963-1011).   

 

This was the time. In 986, when the Bulgarian Khanate attacked the Eastern Roman Empire, Emperor Vasilius II of the Eastern Roman Empire faced a crisis. The Principality of Kyiv (Kyiv) asked for urgent support from Grand Duke Vladimir I. At that time, Grand Duke Vladimir I made an unexpected request to the emperor. He demanded marriage to the emperor's younger sister, Anna. 

 

The desperate emperor was not in a position to distinguish between the front and the back. Instead of complicated conditions, he promised to marry his sister and escaped the crisis with the support of the Grand Duke.   

 

But in 988, Vladimir I invaded Khersonesos, a major port in the southwest of Crimea, a colony of Eastern Roman empires in Crimea, after the promised marriage of Anna was postponed due to his strong opposition. He then did not hesitate to threaten to invade Constantinople if he did not keep his promise.

 

There are many stories between the lines of history in which Vladimir I (958-1015), the head of the Principality of Kyiv (Kyiv), was obsessed with marriage to Anna (963-1011), the sister of Vasilius II (958-1025), the emperor of the Eastern Roman Empire. After many twists and turns, she married Vladimir I in 989, and considered her status as the emperor of the Eastern Roman Empire, so she was also called the queen at the time.

 

Her record is surprisingly fragmentary. Her two sons, Boris (?-1015) and Gleb (990-1015), were brutally murdered by their half-brother Svyatopol I (980-1019) after the death of Vladimir I. Even considering that all of the direct blood ties are not in the world, it is difficult to understand in that he was a descendant of the queen of the Principality of Kyiv (Kiiv), the power of the East Roman Empire. 

 

This is especially true in that major records at the time were handed down by monks of the monastery. The first church in the Principality of Kyiv, established in 996, was built by Vladimir I in preparation for the cost of building and maintaining the church. The place where the church was built was the first place where Theodore, a barren, and his son John were martyred for being a Christian on July 12, 978.   

 

With the completion of the church, Vladimir I laid down the remains of his grandmother Olga (890-969), who was the first to be baptized in the Principality of Kyiv under his baptismal name Helena in 950. Vladimir I, who declared the Orthodox Church as a state religion, and Queen Anna of the Eastern Roman Empire were also buried.  

 

Ukraine's founding anniversary has been July 28 every year. This was designated based on the period when Vladimir I was baptized. However, from next year, July 15, when Vladimir I died, was revised to the founding anniversary, and it was signed by President Vladimir Zelensky after passing the National Assembly. From next year, Ukraine's national holiday will be July 15. artwww@naver.com

 

Author: Lee Il Young

the director of the Korean Art Center. a colum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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