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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터키 쿠데타 기도는 어떤 자들의 기획인가?<상>

정길선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2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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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길선 박사     ©브레이크뉴스

2016년 터키 쿠데타 기도에 대해서는 上편 - <쿠데타의 명분과 실패의 이유>, 下편 - <어떤 자들의 기획인가?> 두 개로 나누어 연재합니다. 

 

전날인 15일에는 필자가 겪은 2016년 7월 15일 터키 쿠데타 미수 사건의 전말과 당일 현지에서 통신한 속보와 각종 자료들을 기초하여 쿠데타 미수 사건을 재구성했다. 이번 칼럼에는 2016년 터키 쿠데타의 원인과 누가 한 짓인지에 대해 서술해보고자 한다. 당시 쿠데타를 기획했던 자들이 주장하는 주요 명분으로는 현 정부의 아이에스에 대한 대(對) 테러 정책에 대한 반감, 그리고 과도한 쿠르드족에 대한 진압 작전으로 인해 병사의 인력 손실에 대한 불만이었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내걸고 이번 쿠데타를 주도해왔다. 그러나 이는 국민들은 물론 군부 전체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국제 사회마저 현 정부의 편을 들어 쿠데타를 비난했다. 당시 터키 국민들은 과거부터 이어온 여러 차례의 군부 쿠데타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었고 에르도안이 총리가 되었을 당시, 대통령의 군권 장악을 의회에서 통과시켜 대통령이 군권을 장악했고 에르도안이 대통령이 된 이후부터 군부의 정치권에 대한 목소리가 약화되고 있던 것에 대한 불만으로도 보았다. 

 

게다가 쿠데타 주도 세력들은 대령급 소장파 장교들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전체 군부가 이들의 계획을 모르고 있었기에 전체적인 동의를 받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당시 이같은 쿠데타를 주도한 인물을 두고 공통적으로 무하렘 코제(Muharem Koze) 대령을 지목했다. 

 

다수의 영관급 장교들도 쿠데타에 가담했지만 앞서 언급한 "현 정부의 아이에스에 대한 대(對) 테러 정책에 대한 반감, 그리고 과도한 쿠르드족에 대한 진압 작전으로 인해 병사의 인력 손실에 대한 불만"은 그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실질적인 이유는 "에르도안의 독재의 문제, 정치와 종교를 분리해야 하는 이른바 '세속주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정치적인 사안이지 일개 몇몇 군부의 인사들이 쿠데타의 이유로 나서야 하는 명분에 적합치 않다. 

 

에르도안의 독재 문제의 경우, 에르도안이 국민들을 폭압적으로 탄압한 것도 아니고 대다수의 터키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한 것도 아니다. 보통 그러한 억압이 생겼을 경우,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세상을 바로잡자는 명분을 세울 수 있는데 에르도안의 체제 하에서 이러힌 억압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것이 터키 국민들이 당시 쿠데타를 지지하지 않은 이유다. 군대는 대통령 직속 하의 조직이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만 움직여야 한다는 에르도안의 주장을 2000년대 초에 상당수 국민들이 지지했었다. 

 

이전에 잦은 군부 쿠데타로 인해 터키가 혼란에 빠졌던 것을 감안하면 당시의 주장과 조치는 터키 국내의 안정을 불러왔다. 그리고 실제로 에르도안의 집권 후, 2016년 군부 쿠테다 미수를 제외하고는 쿠데타가 없었고 터키 국내의 사회는 비교적 안정된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에르도안 세속주의를 지키지 않는 것 또한 군부가 관여할 것이 아니다. 물론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낼 수 있지만 군사적인 행동으로까지의 연결은 분명히 선을 넘는 것이다. 대통령이 세속주의를 지켰던, 그렇지 않았던, 에르도안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은 국민들이다. 국민들이 만약, 에르도안이 세속주의를 어기고 종교 권위주의로 간다고 한다면 국민들부터 그에 대한 반감으로 시위들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국민들보다 먼저 군이 나선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이해를 구할 수 없는 명분이다. 그 또한 터키 국민들이 당시 쿠데타를 지지하지 않은 이유이다. 국민들은 에르도안의 세속주의를 따르지 않는 정치보다 "군부독재"를 더 두려워 했던 것이다. 더불어 쿠데타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반군이 에르도안 대통령의 신변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에 있었다. 나는 앞서 게재한 칼럼에 "당시 에르도안 대통령이 휴가를 위해 대통령궁을 비운 사실은 몇몇 측근만 알고 있을 뿐, 대다수는 몰랐다."고 적시한 바 있다. 

 

말 그대로 에르도안이 대통령궁을 비우고 있었던 사실은 몇몇 측근만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 때문에 케말주의자와 귈렌주의 이슬람 세력을 정치적으로 타도하기 위한 정적 제거로 에르도안의 조작극이라는 음모론까지 생겼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터키 내에서 크게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 

 

반군은 수도인 앙카라와 최대도시인 이스탄불의 장악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당시 인구 8,000만의 터키의 민심은 이스탄불과 앙카라가 가장 컸지만 그렇다고 다른 지역의 동의를 얻을 것이라는 생각은 반군이 간과한 부분이기도 했다. 특히 이즈미르 인근 마르마리스(Marmaris)에서 휴가 중이던 에르도안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던데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 직후 바로 비행기에 올라타서 이스탄불로 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반란군의 공격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휴양지를 떠난 직후에야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통령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한 반군들의 실수였다. 사실 반군들이 가지고 있던 F-16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탑승한 비행기를 찾아내어 2대의 호위기만 있는 상태에서 격추하여 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반군의 조종사들과 주동자인 무하렘 코제(Muharem Koze) 대령조차도 이를 주저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탄 비행기를 그냥 보내준 것은 그에 대한 생포가 목적이었지 살해가 목적은 아니었던 것이다. 국가의 원수를 살해하면 정국이 혼돈으로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생포와 달리 암살은 잠재적인 지지자들까지 반기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그들 또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국민들은 물론, 터키군 내부에서도 군 수뇌부들은 일부 소수 부대를 이끌고 일으킨 쿠데타에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이에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쿠데타에 맞서 반 쿠데타 시위를 벌였고, 터키 야당들도 이 쿠데타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쿠데타를 반대한 터키 군인들은 기존의 명령 체계를 통해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데타 진압을 명령하자 쿠데타에 가담한 군인들을 상대로 반격을 가했으며 시민들의 소규모 단위로 민병대들을 조직하여 개인들이 소지하고 있는 총들을 들고 반군에 저항했다. 

 

그러했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많았던 이유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Face Time을 통해 몇몇 언론과 차례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시민들에게 불법으로 일으킨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며 반군에 맞서 싸울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정상적인 지휘 계통으로 군에게 쿠데타 진압을 명령했다. 민과 군의 합동 전략은 소규모 약 3,000명에 불과한 반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게다가 통신기술과 미디어의 발달도 쿠데타 실패에 큰 역할을 했다. 만약 통신기술과 SNS, 등의 미디어들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면 에르도안 대통령과 터키 정부군이 반란군을 진압하기에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방송국이 장악당했고 인터넷이 끊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SNS를 비롯한 통신기술의 발달, 그리고 다른 나라 서버를 우회하여 접속할 수 있는 시스템은 쿠데타의 상황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고 그로 인해 방송국 몇 곳을 장악하는 것만으로는 시민들의 귀를 막고 수뇌부에 혼선을 주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반군 규모 또한 장군 및 제독 34명, 군인 및 군사학교 사관생도들을 모두 합쳐 대략 3,000여 명 정도로 쿠데타에 동원한 병력이 한반도의 9배나 되는 큰 면적의 영토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는 것은 오히려 실패의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따라서 사관생도와 장군, 제독, 장교들을 제외하고 일개 병사들의 총 병력은 1,000명 미만으로 추정되는데, 이 병력으로 앙카라와 이스탄불의 주요 거점을 모두 확보하려다보니 상당한 무리가 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정부군과 경찰들은 반군보다 숫자에서 우세에 있었고 게다가 시민들이 조직한 민병대들에 대한 대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결국 교전을 벌이다가 시민들에게 밀려 항복하는 사태까지도 벌어졌는 특히 이스탄불의 탁심 광장에서 민병대와 대처하던 반군은 탁심에서 처포위되자마자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게다가 반군은 징집병들이 다수였기 때문에 쿠데타 지도부와는 달리 쿠데타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동기가 부족했으며 특히 민병대와의 전투에서 사기 저하와 전투력 감소로 이어져 경찰과 시민들이 진압을 시도하자 그대로 무너졌다.

 

터키 쿠데타가 5시간 전, 이미 터키의 정보당국인 MIT에 의해 이미 파악되었다는 정보가 나왔다. 터키군 참모본부가 쿠데타 5시간 전 이미 MIT으로부터 쿠데타 모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정보를 파악했으며 이에 참모본부는 터키군에게 장비 이동에 대한 금지 명령과 기지 폐쇄 명령을 내렸다. 이에 쿠데타 세력은 예정을 앞당겨 급하게 행동에 나섰기 때문에 그 어떤 명분도 공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쿠데타에 가담한 장성급이 100명이 넘는 데도 쿠데타 당일 병력이 크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인데 한 가지 의문점은 이 같은 내용이 에르도안에게 즉각 전달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에르도안의 대책을 강구하여 지시사항을 했었는지도 의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시는 쿠데타 이후에 이루어졌었고 이러한 내용들이 MIT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빠른 보고가 이루어져 에르도안의 지시가 있었다면 쿠데타가 일어나기도 전에 범인들은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쿠데타가 일어난지 1시간 후에 대통령에게 알려져 제압을 명령했다는 것은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는데 이러한 대처 방법 등등, "쿠데타 에르도안 조작극"이라는 음모론이 나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lukybaby7@gmail.com

 

*필자/ 정길선. 

노바토포스 회원, 역사학자, 고고인류학자, 칼럼니스트,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유라시아 고고인류학연구소 연구교수.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Whose plan was the 2016 Turkish coup attempt? <Top>

 

-Jeong Gil-seon, columnist

 

The 2016 Turkish coup attempt is divided into two parts: the upper part - <Justice for the coup and the reasons for its failure>, and the lower part - <Whose plan is it?>.

 

The previous day, on the 15th, I reconstructed the attempted coup based on the full story of the attempted coup in Turkey on July 15, 2016, which the author experienced, as well as breaking news and various materials communicated locally that day. In this column, I would like to describe the causes of the 2016 Turkish coup and who did it. The main justifications claimed by those who planned the coup at the time were antipathy toward the current government's counter-terrorism policy toward ISIS and dissatisfaction with the loss of soldier manpower due to excessive suppression operations against the Kurds.

 

They led this coup in the name of democracy. However, this did not receive support from the public as well as the military as a whole, and eve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sided with the current government and condemned the coup. At the time, the Turkish people were antipathetic to the multiple military coups that had taken place in the past, and when Erdogan became prime minister, the president took over military power by passing a law in parliament, and since Erdogan became president, the military has been in control. I saw it as just dissatisfaction with the weakening of people's voices in politics.

 

In addition, the coup leaders were known to be colonel-level officers, and since the entire military was unaware of their plans, it was impossible to obtain overall consent from the beginning. At the time, the person who led this coup was commonly pointed to Colonel Muharem Koze.

 

A number of general-level officers also participated in the coup, but the aforementioned "antagonism toward the current government's counter-terrorism policy toward ISIS and dissatisfaction with the loss of soldier manpower due to excessive suppression operations against Kurds" were merely This is only a superficial reason, but the real reason is "the problem of Erdogan's dictatorship, and the so-called 'secularism' that requires separation of politics and religion is not being maintained." However, this is a political issue and is not suitable for the cause of a coup d'etat by a few members of the military.

 

In the case of Erdogan's dictatorship, it is not that Erdogan tyrannically oppressed the people or suppressed the freedom of the majority of Turkish citizens. Normally, when such oppression occurs, the military can stage a coup and make the case to correct the world, but under Erdogan's system, such oppression was almost non-existent. This is why the Turkish people did not support the coup at the time. In the early 2000s, a significant number of citizens supported Erdogan's claim that the military is an organization directly under the president and should act only for the people and the country.

 

Considering that Turkey had previously fallen into chaos due to frequent military coups, the claims and actions at the time brought about domestic stability in Turkey. And in fact, after Erdogan came to power, there were no coups except for the military coup attempt in 2016, and domestic society in Turkey was returning to a relatively stable state.

 

And failing to uphold Erdogan’s secularism is also not something the military should be involved in. Of course, you can voice criticism against him, but linking it to military action is clearly crossing the line. It was the people who elected Erdogan as president, whether the president maintained secularism or not. If the people had said that Erdogan was breaking secularism and moving towards religious authoritarianism, protests would have been held due to the people's antipathy towards him.

 

However, the fact that the military is taking action before the people is a justification that no one can understand. That is also why the Turkish people did not support the coup at the time. The people were more afraid of “military dictatorship” than politics that did not follow Erdogan’s secularism. In addition, the biggest reason why the coup failed was because the rebels were unable to secure President Erdogan's safety. In an earlier column, I wrote, “Only a few close associates knew that President Erdogan was away from the presidential palace for a vacation, but most people did not.”

 

Only a few close associates knew that Erdogan was literally emptying the presidential palace. Therefore, a conspiracy theory arose that it was a manipulation by Erdogan to eliminate political opponents to politically overthrow the Kemalist and Gulenist Islamic forces. However, this argument does not have much weight in Türkiye.

 

The rebels focused only on seizing the capital, Ankara, and the largest city, Istanbul. However, although public sentiment in Turkey, which had a population of 80 million at the time, was greatest in Istanbul and Ankara, the idea that it would gain consent from other regions was something the rebels overlooked. In particular, they failed to secure new soldiers for President Erdogan, who was on vacation in Marmaris near Izmir, and President Erdogan was able to board a plane and head to Istanbul immediately after the coup.

 

And because the rebels' attack on President Erdogan took place only immediately after President Erdogan left the resort, it was a mistake by the rebels who did not understand the president's movements. In fact, the F-16 owned by the rebels was able to find the plane on which President Erdogan was boarding and shot it down with only two escorts present, killing him. But even the rebel pilots and leader Colonel Muharem Koze hesitated.

 

The purpose of letting President Erdogan's plane go was to capture him alive, not to kill him. It was natural that killing a head of state would turn the political situation into chaos, and they were well aware that, unlike capture, assassination was likely to attract potential supporters.

 

In addition, not only the public but also military leaders within the Turkish military did not sympathize with the coup d'état led by a small number of troops. In response, citizens took to the streets and staged anti-coup protests, and the Turkish opposition parties also declared that they would not support the coup, considering it illegal. Then, Turkish soldiers who opposed the coup launched a counterattack against the soldiers who participated in the coup when President Erdogan ordered the suppression of the coup through the existing command system, and organized militias into small units of citizens to use guns owned by individuals. and resisted the rebels.

 

That's why there were so many victims. President Erdogan conducted interviews with several media outlets one after another via Face Time. He urged citizens to take responsibility for their illegal actions and urged them to fight against the rebels, while also ordering the military to suppress the coup through the normal chain of command. The joint strategy of the civilian and military dealt a heavy blow to the small rebel group, which numbered only about 3,000 people. Moreover, the development of communication technology and media also played a big role in the failed coup. If communication technology and media such as SNS had not been developed, it would not have been easy for President Erdogan and the Turkish government forces to suppress the rebels. Because the broadcasting station was taken over and the internet was cut off.

 

However, with the development of communication technology, including SNS, and systems that allow access to bypass other countries' servers, the situation of the coup was broadcast in real time, and as a result, taking control of a few broadcasting stations was enough to block the ears of citizens and cause confusion among the leadership. It was impossible. In addition, the size of the rebels was quite small, with 34 generals and admirals, soldiers, and military school cadets totaling approximately 3,000, which means that the number of troops mobilized for the coup was quite small despite the territory being nine times the size of the Korean Peninsula, which suggests the possibility of failure. This was very high.

 

Therefore, excluding cadets, generals, admirals, and officers, the total number of soldiers is estimated to be less than 1,000, and trying to secure all major bases in Ankara and Istanbul with this force would have inevitably resulted in a significant number of troops. As a result, government troops and police had a numerical advantage over the rebels, and they were also unable to properly respond to militias organized by citizens. In the end, the rebels who were fighting with the militia at Taksim Square in Istanbul threw down their weapons and surrendered as soon as they were surrounded in Taksim.

 

In addition, because the rebels were mostly conscripts, unlike the coup leadership, they lacked the motivation to actively participate in the coup. In particular, the battle with the militia led to low morale and reduced combat power, and they collapsed when the police and citizens attempted to suppress them.

 

Information emerged that the Turkish coup had already been identified by MIT, Turkey's intelligence agency, 5 hours ago. The Turkish Army's Chief of Staff had already obtained information from MIT that a coup plot was in progress 5 hours before the coup, and accordingly, the Chief of Staff issued an order to the Turkish Army to prohibit the movement of equipment and to close the base. Accordingly, the coup forces took action in a hurry ahead of schedule, so it appears that they did not have time to sympathize with any cause.

 

Therefore, this is the reason why the military force on the day of the coup was not large even though there were more than 100 generals who participated in the coup. One question is that this information was not immediately conveyed to Erdogan and Erdogan took countermeasures to follow the instructions. It is questionable whether it was even done. President Erdogan's instructions were made after the coup, and these details were quickly reported to President Erdogan at MIT. If Erdogan's instructions had been followed, the criminals would have been arrested and brought to trial even before the coup took place.

 

However, it is a mystery that the president was informed of the coup and ordered its suppression an hour after it occurred, and this response method, etc., is also the reason for the conspiracy theory that the "coup was an Erdogan fabrication." lukybaby7@gmail.com

 

*Writer/ Jeong Gil-seon.

 

Novatopos member, historian, archaeological anthropologist, columnist, research professor at the Institute of Eurasian Archeology and Anthropology of the Russian Academy of Sci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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