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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여전사 계산공주 노래로 탄생하다

이일영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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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 가수 김태연 사진 제공: 톱스타엔터테인먼트  © 이일영 칼럼니스트

 

원로 작곡가 김동찬 선생님을 방문하였다. 지난 7월 15일 신동 가수 김태연이 발표한 우리나라 제2의 섬 거제도를 소재로 한 댄스 버전과 트로트 버전으로 세대의 취향까지 고려한 가요 “힐링하세요”를 들었다. 이어 들려주시는 곡이 있었다. 함께 발표된 ‘계산 공주’였다. 

 

"백마강 물은 계산 공주의 한 맺힌 눈물이구나"로 시작하는 가사에 대하사극과 같은 웅장한 노래를 들으면서 백제 본고장 부여 태생인 선생님의 깊은 의식이 들려왔다.

 

계산공주(桂山公主)는 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의 공주이다. 우리 역사에는 고구려의 왕자 호동과 결혼한 낙랑공주와 고구려 제25대 평원왕의 딸로 바보 온달과 결혼한 평강공주에서부터 한국 최초의 4구체 향가인 서동요의 주인공인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공주인 선화공주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하지만, 백제의 마지막 왕녀 계산공주 이야기는 단편적인 기록만 남긴 채 패망의 역사와 함께 사라졌다. 

 

역사의 기록을 헤아리면 고려 시대에 편찬한 삼국유사 기이 권 1 태종춘추공(太宗春秋公) 편에 기록된 (신검을 뽑아 그 새를 겨누니-乃拔神劍擬其鳥) / (새는 베이고 찢어져 자리 앞에 떨어졌다-割裂而墜於座前) 는 하늘을 날다 떨어진 새 한 마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신라 장군 김유신과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나당연합군 선봉장으로 백제를 침공하면서 깃발 끝에 울어대는 새의 징조를 빌미 삼아 침공을 주저하는 소정방에게 김유신 장군이 신검으로 새를 떨어트려 백제 침공이 이루어졌다는 기록이다.  

 

1481년 조선 성종 시대에 발간된 지리서 동국여지승람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이후 1669년 현종 시대에 경주 부윤 민주면이 지역 양반을 이르는 향회(鄕會) 인사들과 작가 미상의 동경지(東京誌)를 보완하여 동경잡기(東京雜記)로 간행한 서적에 주요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1711년 숙종 대에 경주 부윤 남지훈이 여러 내용을 보완하였으며 1845년 문신 성원묵이 한층 증보된 동경잡기 중간본을 출판하였다. 

 

동경잡기에 기록된 계산공주 설화는 오늘날 경주시 건천읍에 흔적이 남아있는 작성(鵲城) 토성의 역사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작원(鵲院)은 부의 서쪽 30리 떨어진 곳에 있다. 전설에 김유신이 백제를 칠 때 이곳에서 진을 치자 백제 왕이 장군의 신묘한 계책을 걱정하였다. 그때 백제 왕 딸이 말하기를, “그가 귀신같은 장수라고 하지만 우리도 용감한 군사와 신묘한 무기가 있으니 걱정할 것이 못 된다고 하면서 제가 가서 한 번 엿보겠습니다.” 하고 까치로 둔갑하여 신라군 진중에 날아들어 깃대 위에서 울어댔다. 이에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기니, 장군이 검으로 까치를 가리키자, 까치가 땅에 떨어져 사람으로 변하였는데 백제 왕의 딸이었다. 그리하여 원(院)을 세우고 ‘작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중요하게 살펴 갈 내용이 있다. 목판본 동경잡기를 1910년 조선고서간행회에서 최초의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조선의 역사적 서적을 염가로 공급한다는 명분을 앞세운 대한제국의 식민지화 정책에서 설립된 기관이었다. 

 

이를 주도한 인물이 샤쿠오 슌조(1875~ ?)였다. 1897년 도쿄 도요대학을 졸업한 그는 1900년 조선에 왔다. 부산과 개성 대구에서 일본어 교사로 근무하다가 경성부청의 전신인 경성민단(京城民團) 즉 오늘날 서울시 제1과장이 되어 주요 학교를 설립한 주역이었다. 1908년 월간잡지 조선과 만주(朝鮮及滿洲)를 창간하였으며 이어 설립한 조선고서간행회를 통하여 80여 종의 책을 출판하였다. 

 

샤쿠오 슌조는 1912년 잡지 “조선과 만주” 7월호에 (조선인들은 일본제국 식민이지만, 일본인은 아니라면서 향후 100년간에 걸쳐 문화와 관습 그리고 말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일본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조선인으로 남아 있게 된다)면서 내선일체론을 이끌어간 인물이었다.

 

이에 대응한 인물이 육당 최남선 선생이다. 민족의 고문헌 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워 한국 고전 간행단체 조선광문회를 설립하여 1913년 동경잡기 활자본을 다시 펴냈다. 나아가 독립운동가 최준이 이를 바탕으로 최남선, 정인보의 자문을 통하여 1933년 총 14책의 동경통지(東京通志)로 이름을 바꾸어 발행하였다. 

 

이는 실증적인 고증학으로 팔도지도와 동국여지도를 완성하여 민족의 지리학을 개척한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1712~1781)과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정약용(1762~1836)에 이어 바른 역사를 일깨운 신채호(1880~1936)로 이어진 삼한과 삼국의 정통한 역사를 담아내려 한 것이다.

 

전설의 계산공주 설화를 정리하면 고려 시대 삼국유사에 김유신 장군이 신검으로 새를 떨어트려 백제 침공이 이루어졌다는 극히 짧은 기록에서 출발하였다. 이어 작자 미상 동경지(東京志)와 조선조에서부터 근,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차례 증보되어 발행된 동경잡기(東京雜記)에 김유신 장군이 검으로 떨어트린 까치가 사람으로 변하였으며 백제 왕의 딸이었다. 라고 발전하였다. 

 

전설의 공주에서 계산공주(桂山公主)라는 실명이 등장한 기록은 일본인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준(1891~1968)에 의해서였다. 그는 1919년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조선에 건너와 1941년까지 조선의 민간신앙 등을 조사 정리한 4부작 보고서 “민간신앙”의 1932년에 발표한 제3부 조선의 무격(朝鮮の巫覡)에서였다.

 

기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백제 말 의자왕 왕녀 중 계산(桂⼭)이라는 미인이 있었다. 그녀는 남해의 여도사로부터 신술을 습득하여 철로 만든 활과 칼로 이를 들면 무한하게 용감해지는 신술이 깃든 자용병기(⾃勇兵器)를 발명하였다. 신라가 당의 소정방과 백제를 공격할 때 그녀는 한 마리 까치가 되어 신라 진중을 정찰하였다. 이때 신라 명장 김유신이 신검을 겨누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김유신의 선처로 풀려나 귀국하여 아버지인 왕에게 신라와 화친을 권유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자용병기를 부수고 부소산에 숨어버렸다)

 

무라야마 지준은 1891년 니가타현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묘코지(妙廣寺) 주지 무라야마 지젠의 양자가 되었다.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그는 1919년 졸업논문 “일본 국민성의 발달(日本国民性の発達)”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논문이 주목을 받아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한국에 건너와 조선 사회와 조선인의 사상 조사를 시작하였다. 1927년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朝鮮人の思想と性格)”이 탄생한 배경이다.

 

당시 그는 각 지역의 경찰서 자료와 협조를 통하여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이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문헌과 현지 조사를 통하여 전국적인 무속 조사를 실시하였다. 1929년 민간신앙 제1부 “조선의 귀신(朝鮮の鬼神)”, 1931년 제2부 “조선의 풍수(朝鮮の風水)”, 1932년 제3부 “조선의 무견(朝鮮の巫覡)”, 1933년 제4부 “조선의 점복과 예언(朝鮮の占卜と豫言)”에 이르는 방대한 발표가 이루어진 배경이다. 

 

무라야마 지준이 조선의 무견(朝鮮の巫覡)에서 전설의 백제 공주 이름을 최초로 계산 공주로 기록하였다. 여러 정황으로 보면 전승된 기록이거나 내용을 채록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원의 출처를 고증할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다. 그의 행적으로 보아 굳이 전설적인 여전사의 용맹함과 신묘함을 포장할 이유가 없기에 그 실체의 규명과 확인이 더욱더 절실하다.  

 

1940년이었다. 일본의 역사학자이며 신화 연구 학자인 미시나 아키히데(1902~1971)가 문제의 "조선사개설"을 발표하면서 무라야마 지준이 조선의 무견에서 언급한 전설의 백제 계산 공주를 다시 언급하였다. 그는 1931년 “탈해 전설-동해 용신의 신앙” 논문과 1933년 “고대 조선에 있어서 왕의 출현 신화와 의례에 관하여”란 논문을 발표한 인물로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신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인물이다. 

 

주지할 사실은 그가 일제 강점기 식민사학의 근원인 ‘반도사관’을 최초로 유포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역사가 반도적 특성이 있기에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 세력으로 정치 문화적으로 지배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지정학적 사대주의 영향이 민족성으로 발전하였다는 무식의 절정을 키워 “삼국유사 고증”과 같은 저술을 발표하며 일본의 대표적인 한국 신화 전문가가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계산공주의 언급은 더욱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 신동 가수 김태연이 발표한 디지털 앨범 힐링하세요와 계산공주  © 이일영 칼럼니스트

 

천년 왕국 신라의 수도는 기원전 57년부터 935년까지 991여년간 오늘날 경주로 존재한 세계사에서도 흔치 않은 역사이다. 그 명칭은 서라벌(徐羅伐)과 금성(金城)이었다. 이는 당시의 언어로 냇물을 이르는 “새라”와 벌판을 이르는 “불”(벌)로 이두자로 신라(新羅)이다. 

 

이후 고려 시대에 이르러 경주를 동경(東京)이라 하였다. 향찰로 표기된 신라 시대 팔구체 향가 처용가 첫 구절 “동경 밝은 달에 밤들도록 노니다가-東京明期月良 夜入伊遊行如可” 에서처럼 동경(東京)은 신라 시대에도 사용하였던 명칭이다. 

 

935년 고려에 합병된 후 명칭은 경주(慶州)였다. 이후 987년 개경(개성), 서경(평양), 동경(경주)의 삼경(三京)으로 시작되어 1012년 경주(慶州)로 잠시 바뀌었다가 1030년부터 다시 동경(東京)으로 복원되었다. 이후 1204년 다시 잠시 경주(慶州)를 사용하다가 1219년 다시 동경(東京)으로 환원되어 고려말 1308년 계림부(鷄林府)로 바뀌었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된 후 1394년 경주부(府)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덧붙이면 이웃 나라 일본의 수도 도쿄(東京)의 명칭이 유래한 역사는 근대였다. 1603년부터 1868년까지 865년간 통치한 에도 막부 시대가 막을 내리고 1868년 제122대 메이지 천황(1852~1912) 시대가 열렸다. 이때 교토(京都)에 있던 천황이 옮겨오게 되면서 교토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에도(江戸)를 도쿄(東京)로 바꾼 것으로 우리의 역사적인 지명 동경과 무관하다. 

 

​전설과 설화가 녹아내린 신화를 품은 역사는 객관적인 과거의 사실과 이와 같은 사실을 기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존재한다. 이에 신화는 역사와 같은 사실성의 구속을 벗어나 전개되는 이야기지만. 역사에 바탕을 두어 신성한 이야기로 동행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설의 계산공주에 대한 실증적 자료가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채록으로 밝혀진 것은 비켜 간 역사의 부끄러움이다. 이에 근원적 자료를 찾아 규명하고 연구해야 함은 우리의 몫이다. 

 

김태연 - 계산공주 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Y8V2kyTsEDY

 

원로 작곡가 김동찬 선생의 깊은 의식에서 탄생하여 서울로 전학하여 6학년에 재학 중인 신동 김태연 양이 부르는 애틋한 감성이 흐르는 역사의 노래를 들으면 전설의 여전사 계산공주가 가슴을 걸어온다. artwww@naver.com

 

필자: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We visited senior composer Kim Dong-chan. On July 15th, prodigy singer Taeyeon Kim released “Heal Yourself,” a song that takes into account the tastes of each generation in a dance version and a trot version based on Geoje Island, Korea’s second largest island. Next, there was a song played. It was ‘Princess Calculation’ that was released together.

 

While listening to the magnificent song, which is like a saga, with lyrics that begin with “The water of the Baekma River is the tears of Princess Gyesan,” I could hear the deep consciousness of the teacher, who was born in Buyeo, the home of Baekje.

 

Princess Gyesan (桂山公主) is the princess of King Uija, the last king of Baekje. Our history includes Princess Nakrang, who married Goguryeo's Prince Hodong, and Princess Pyeonggang, the daughter of Goguryeo's 25th King Pyeongwon, who married Bao Ondal. Although the story is clear, the story of Princess Gyesan, the last princess of Baekje, disappeared along with the history of defeat, leaving behind only fragmentary records.

 

If you look at historical records, it is recorded in Volume 1 of Samgukyusa, compiled during the Goryeo Dynasty, in the Taejong Chunchugong (太宗春秋公) section (He drew out his divine sword and aimed it at the bird - 乃拔神劍擬其鳥) / (The bird was cut and torn. Fell in Front (割裂而墜於座前) begins with a bird that fell while flying in the sky.

 

It is a record that when General Kim Yu-shin of Silla and General Su Jeong-bang of Tang invaded Baekje as the vanguard of the Silla-Tang allied forces, they used the omen of a bird chirping at the tip of the flag as an excuse to invade Baekje by dropping a bird with a new sword on Su Jeong-bang, who hesitated to invade.

 

Similar information was recorded in Donggukyeoji Seungnam, a geography book published in 1481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gjong of the Joseon Dynasty. Later, in 1669, during the reign of King Hyeonjong, the major contents were recorded in a book published as Donggyeong Japgi (東京雜記) by Minju-ju, Buyun of Gyeongju, supplementing the Donggyeongji (東京誌) of an unknown author with members of the local noble family. It has been done. Based on this, in 1711, during the reign of King Sukjong, Nam Ji-hun, Buyun of Gyeongju, supplemented various contents, and in 1845, civil servant Seong Won-muk published a further expanded intermediate version of Donggyeong Japgi.

 

The story of Princess Gyesan recorded in Donggyeongjapgi is recorded as follows based on the history of the Joseon Fortress, traces of which remain in Geoncheon-eup, Gyeongju-si today.

 

(Jakwon (鵲院) is located 30 ri west of Bu. According to legend, when Kim Yu-sin camped here when he was attacking Baekje, the king of Baekje became worried about the general’s mysterious plan. At that time, the daughter of the king of Baekje said, “He “He is said to be a ghost-like general, but we have brave soldiers and mysterious weapons, so he said there was nothing to worry about, so he disguised himself as a magpie and flew into the Silla army camp, crying on the flagpole.” When he pointed at a magpie with this sword, the magpie fell to the ground and turned into a human. She was the daughter of the king of Baekje, and they built a garden and named it 'Jakwon'.

 

There is something important to consider. The woodblock version Donggyeong Japgi was published as the first printed book by the Joseon Antique Books Publishing Association in 1910. It was an institution established as part of the Korean Empire's colonization policy with the justification of supplying Joseon's historical books at low prices.

 

The person who led this was Shakuo Shunzo (1875~ ?). He graduated from Toyo University in Tokyo in 1897 and came to Joseon in 1900. He worked as a Japanese teacher in Busan, Kaesong, and Daegu before becoming the first director of Gyeongseong Mindan (京城民團), the predecessor of the Gyeongseong Bucheong, or today's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where he was a leading figure in establishing major schools. In 1908, he founded the monthly magazine Joseon and Manchuria (朝鮮及滿洲) and subsequently published over 80 books through the Joseon Antique Books Publishing Association he established.

 

Shunzo Shakuo wrote in the July issue of the magazine “Chosun and Manchuria” in 1912 (Koreans are a colony of the Japanese Empire, but they are not Japanese, and they will remain Koreans until complete Japaneseization, including culture, customs, and speech, over the next 100 years). He was the person who led the theory of unity between Korea and Japan.

 

The person who responded to this is Yukdang Choi Nam-seon. Aware of the importance of preserving the nation's ancient literature, he established the Joseon Gwangmunhoe, a Korean classics publication organization, and republished the printed version of Tokyo in 1913. Furthermore, based on this, independence activist Choi Jun, with the advice of Choi Nam-seon and Jeong In-bo, renamed and published a total of 14 volumes as Tokyo Tongji (東京通志) in 1933.

 

This follows Shin Gyeong-jun (1712-1781), a Silhak scholar in the late Joseon Dynasty who pioneered national geography by completing the Paldo Map and Donggukyeojido through empirical archaeological research, and Jeong Yak-yong (1762-1836), who compiled Silhak thought, and Shin Chae-ho (1880-1880), who awakened correct history. 1936), it was intended to capture the authentic history of the Samhans and the Three Kingdoms.

 

To sum up the legendary tale of Princess Gyesan, it started from an extremely short record in the Samguk Yusa of the Goryeo Dynasty that General Kim Yu-sin dropped a bird with a new sword and invaded Baekje. Subsequently, in the Tokyo Ji (東京志), whose author is unknown, and the Donggyeong Japgi (東京雜記), which were enlarged and published several times from the Joseon Dynasty to modern times, the magpie that General Kim Yu-shin dropped with his sword turned into a human and was the daughter of the king of Baekje. It developed like this.

 

The first record of the appearance of the real name Princess Gyesan (桂山公主) in the legendary princess was made by Japanese folklorist Jijun Murayama (1891-1968). He came to Joseon in 1919 at the request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nd researched and summarized the folk religions of Joseon until 1941 in the third part of the four-part report “Folk Religion” published in 1932. .

 

The records are summarized as follows. (There was a beautiful woman named Gyesan (桂⼭) among the princesses of King Uija of the late Baekje period. She acquired magical arts from a female monk in Namhae and invented a bow and sword made of iron, a personal weapon imbued with magical arts that made one infinitely braver when held. When Silla attacked Tang's Sojeongbang and Baekje, she became a magpie and scouted the Silla camp. At this time, Silla's famous general Kim Yu-sin aimed his sword and fell to the ground. She was released and returned to Korea. He recommended peace with Silla, but he did not accept it, so he destroyed his personal weapons and hid in Busosan.)

 

Jijun Murayama was born in Niigata Prefecture in 1891, lost her mother when she was young, and became the adopted son of Jizen Murayama, the head priest of Myokoji Temple. He majored in sociology at the Department of Philosophy, Faculty of Letters, Tokyo Imperial University, and published his graduation thesis “The Development of Japanese National Character (日本国民性の発達)” in 1919. This thesis attracted attention, so he came to Korea at the request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nd began researching Joseon society and the ideology of the Korean people. This is the background for the birth of “The Thought and Personality of the Korean People” in 1927.

 

At the time, he prepared a report through data and cooperation from police stations in each region. Afterwards, he actively utilized it and conducted a nationwide shamanic survey through literature and field research. 1929, Part 1 of Folk Beliefs, “Joseon’s Ghosts”, 1931, Part 2, “Joseon’s Feng Shui,” 1932, Part 3, “Joseon’s Warlords” , This is the background for the extensive presentation leading to Part 4, “Joseon’s Fortunes and Prophecies” in 1933.

 

Jijun Murayama first recorded the name of the legendary Baekje princess as Princess Gyesan in Joseon's Musyeon (朝鮮の巫覡). In many circumstances, it is a record that was passed down or a recording of the contents. However, there is no confirmed data to verify the origin of this source. Considering her actions, there is no reason to disguise the bravery and wonder of the legendary female warrior, so the identification and confirmation of her true identity is all the more urgent.

 

It was 1940. Japanese historian and mythology scholar Akihide Mishina (1902-1971) published the "Introduction to Joseon History" in question and again mentioned the legendary Baekje princess Gyesan mentioned by Murayama Jijun in Joseon's Military Academy. He is the person who published the thesis “The Legend of Talhae - Belief of the Dragon God of the East Sea” in 1931 and the thesis “On the Myth and Ritual of the Appearance of the King in Ancient Joseon” in 1933, and is a person who specialized in researching our myth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

 

What is important to note is that he was the first person to spread ‘Peninsula’s view of history’, the source of colonial history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Because our history is peninsular in nature, it is inevitable that we will be dominated politically and culturally by peripheral forces that deviate from the center, and the influence of this geopolitical flunkeyism has developed into our national character. We have developed a peak of ignorance and have published works such as “The Historical Study of Samguk Yusa” and become one of Japan’s leading figures. I became an expert in Korean mythology. In this respect, the mention of Princess Gyesan has even greater meaning.

 

The capital of the thousand-year kingdom of Silla was Gyeongju, an unusual place in world history for 991 years from 57 BC to 935 BC. Their names were Seorabeol (徐羅伐) and Geumseong (金城). This is Silla (新羅) in the language of the time, with the two characters “Saera” meaning a stream and “Bul” meaning a plain.

 

Later, during the Goryeo Dynasty, Gyeongju was called Donggyeong (東京). As in the first verse of Cheoyongga, an octal-shaped hyangga from the Silla period written as a hyangchal, “Tokyo, playing all night in the bright moon - Donggyeong is a name used even during the Silla period.”

 

After it was annexed by Goryeo in 935, its name was Gyeongju (慶州). Afterwards, in 987, it started with the Three Gyeongs of Gaegyeong (Gaeseong), Seogyeong (Pyeongyang), and Donggyeong (Gyeongju), and was briefly changed to Gyeongju (慶州) in 1012, before being restored to Donggyeong (東京) from 1030. Afterwards, in 1204, it was briefly used as Gyeongju (慶州) again, but in 1219, it was restored to Donggyeong (東京), and changed to Gyerimbu (鷄林府) in 1308 in the late Goryeo Dynasty. After Joseon was founded in 1392, it was renamed Gyeongju-bu (府) in 1394, which is what it is today.

 

Additionally, the name of Tokyo, the capital of neighboring Japan, originated in modern times. The Edo Shogunate period, which ruled for 865 years from 1603 to 1868, came to an end and the era of the 122nd Emperor Meiji (1852-1912) began in 1868. At this time, the emperor who was in Kyoto (京都) was moved, and Edo (江戸) was changed to Tokyo (東京), meaning east of Kyoto, and has nothing to do with our historical place name Tokyo.

 

​History, which embraces myths blended with legends and tales, exists based on objective facts of the past and the records of such facts. Accordingly, myths are stories that unfold outside the constraints of reality, like history. It was accompanied by a sacred story based on history.

 

From this perspective, the empirical data on the legendary Princess Gyesan were revealed to be records recorded by Japanese peopl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 is a shame of history that was ignored. Therefore, it is our responsibility to find, identify, and research the fundamental data.

 

Taeyeon Kim - Princess Calculation YouTube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Y8V2kyTsEDY

 

Born from the deep consciousness of veteran composer Kim Dong-chan, the legendary female warrior Princess Gyesan comes to our hearts when we listen to the heart-rending song of history sung by Kim Tae-yeon, a prodigy who transferred to Seoul and is currently attending the 6th grade. artwww@naver.com

 

Writer: Lee Il-young

Director of the Korea Art Center. Columnist. 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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