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정복자인 칭기즈칸도 두려워한 두 명의 영웅이 있는데 그는 그의 맞수 자무카와 잘랄 앗 딘이다. 자다란 자무카는 칭기즈칸의 어렸을 적부터 형제와 같은 친구였다. 그는 자다란 부족에서 태어났고 칭기즈칸과 함께 자랐다. 그러면서 당시 테무친이었던 칭기즈칸과 의형제인 "안다"의 맹약을 맺었다. 그는 테무친이 큰 고초를 겪었을 때마다 도와줬으며 1182년에 테무친의 부인인 보르테가 메르키트 족에게 납치당했을 때, 케레이트 족의 옹 칸과 동맹을 맺고 테무친과 함께 그녀를 구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테무친과 대립하기 시작하면서 1201년에는 메르키트족의 토크토아 베키, 타이치우드 족의 타르구타이 쿠릴투크, 타타르 족의 자일부카와 연합하며 세력을 키웠으며 쿠릴타이는 자무카를 우주적인 왕이라는 뜻의 구르 칸에 선출한다. 쟈무카의 이 호칭은 테무친과의 불화를 불러오고, 테무친으로 하여금 쟈무카에 맞서는 부족연합을 구성하게 만든다.
자무카는 테무친보다 연합세력을 키우는 데 실패하였던 이유는 통치철학이 달랐기 때문이다. 자무카는 그가 그의 세력 내에서 부족 간의 전통적 경계를 유지하였고, 능력보다 서열을 중시했다. 특히 쟈무카는 몽골 전통 상 낮은 지위를 점하는 양치기를 등용하지 않았고, 반면 테무친은 전통보다 능력을 우선시했다. 그는 양치기였던 무칼리, 제배 등을 기용했고 수부타이 같은 지장을 등용해 능력에 맞게 적재적소에 인물을 배치했다.
자무카는 테무친과 맞선 초반에 절대적인 우위를 점했다. 그는 전술도 뛰어났으며 용맹했기에 테무친의 군대가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러나 1204년을 기준으로 달라진다. 나이만 족의 타이양 칸, 메르키트 족의 토크토아 베키와 연합하여 테무친을 제거하려 했으나 전투 중에 타이양 칸이 전사하고 나이만족이 패배하여 실패하면서 승부는 테무친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쟈무카는 결국 1206년 테무친에게 패배하여 근거지를 잃고 유랑하던 중 부하의 배신으로 테무친에게 포로로 잡혀왔다.
테무친은 쟈무카를 배신한 자들을 그의 눈 앞에서 처형하고, 그를 살리려 하였으나 자무카는 이를 거부하고 하늘에 해가 둘일 수 없듯이 몽골의 왕도 한 명 뿐이라며 자신을 죽일 것을 청하여 결국 처형된다. 자무카는 뛰어난 군사 전술과 용맹함으로 테무친, 칭기즈칸을 위협하였고 칭기즈칸도 자무카에게 매우 고전했으나 결국 자무카는 전체 몽골의 판도를 보는 능력이 없었고 전략에서 밀려 패배했다. 그에게 그런 전체 판도를 판단하는 능력이 있었다면 칭기즈칸이 아닌 자무카가 세계를 정복했을 것이다.
또 다른 영웅, 잘랄 앗 딘은 호라즘의 왕으로 칭기즈칸과 자주 전투를 벌였고 칭기즈칸이 호라즘에 침공했을 당시 대단한 용맹을 떨치기도 했다. 그러나 1221년 5월, 호라즘의 수도 구르간즈가 함락되고 완전 페허화됨으로써, 호라즘 제국은 그 존재가 사실상 소멸되었고 잘랄 앗 딘은 쫓기게 된다. 잘랄 앗 딘은 끈질긴 항몽(抗蒙) 투쟁을 시도했으나, 호라즘을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 때 잘랄 앗 딘은 자신을 추격해 온 4만 5천명의 몽골군을 가즈나와 바미안(Bamian) 사이의 파르완(Parwan)에서 격퇴하는 등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게릴라 전도 한계가 뚜렷했고 잘랄 앗 딘은 몽골군의 추격을 받게 되어 인도, 타브리즈, 이스파한, 아나톨리아 등지로 도주를 계속했다. 결국 잘랄 앗 딘은 1231년 봄, 티그리스 강변의 알 자지라(Al-jazira)에서 쿠르드 족에 의해 살해됨으로써, 호라즘 제국의 마지막 흔적도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 소개했던 이 두 영웅은 칭기즈칸을 뛰어 넘는 무력과 전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칭기즈칸은 소규모 전투보다는 큰 그림을 가지고 결정적인 타격을 주어 결국은 자신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진 두 인물을 굴복시켰다. 칭기즈칸의 힘은 전술을 아우르는 전략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필자/ 정길선.
노바토포스 회원, 역사학자, 고고인류학자, 칼럼니스트,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유라시아 고고인류학연구소 연구교수.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입니다. '구글번역'은 이해도 높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The following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It is assumed that there may b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Two heroes that even the world conqueror Genghis Khan feared
Columnist Jeong Gil-seon
There are two heroes that even the world conqueror Genghis Khan feared: his rival Jamukha and Jalal ad-Din. Jadaran Jamukha was Genghis Khan's friend and brother since childhood. He was born in the Jadaran tribe and grew up with Genghis Khan. He made a pact with Genghis Khan, who was Temujin at the time, as a sworn brother, "Anda." He helped Temujin whenever he was in great trouble, and when Temujin's wife Borte was kidnapped by the Merkit tribe in 1182, he formed an alliance with Ong Khan of the Keraite tribe and rescued her together with Temujin.
However, as he began to increasingly confront Temujin, he united with Tokhtoa Beki of the Merkit tribe, Targutai Kuriltuk of the Taichiud tribe, and Zaylbuka of the Tatar tribe, and in 1201, he grew his power, and Kuriltai elected Jamukha as Gur Khan, which means universal king. Jamukha's title caused discord with Temujin, and Temujin formed a tribal alliance to oppose Jamukha.
The reason Jamukha failed to build a coalition force compared to Temujin was because they had different ruling philosophies. Jamukha maintained the traditional boundaries between tribes within his power and valued hierarchy over ability. In particular, Jamukha did not employ shepherds, who held low positions in Mongolian tradition, while Temujin prioritized ability over tradition. He employed shepherds such as Mukali and Jebae, and appointed generals such as Subutai, placing people in the right positions according to their abilities.
Jamukha had an absolute advantage in the early stages of his confrontation with Temujin. He was excellent in tactics and brave, so Temujin's army was not able to exert much force. However, things changed in 1204. He allied with Taiyang Khan of the Naiman tribe and Toktoa Beki of the Merkit tribe to eliminate Temujin, but Taiyang Khan was killed in battle and the Naiman tribe was defeated, so the game began to tilt toward Temujin. Jamukha was eventually defeated by Temujin in 1206, lost his base, and was captured by Temujin while wandering due to the betrayal of his subordinate. Temujin executed those who betrayed Jamukha in front of him and tried to spare him, but Jamukha refused and asked to be killed, saying that just as there cannot be two suns in the sky, there can only be one king of the Mongols, and was eventually executed. Jamukha threatened Temujin and Genghis Khan with his outstanding military tactics and bravery, and Genghis Khan also had a hard time against Jamukha, but in the end Jamukha did not have the ability to see the entire territory of Mongolia and was defeated by his strategy. If he had the ability to judge the entire territory, Jamukha, not Genghis Khan, would have conquered the world.
Another hero, Jalal ad-Din, was the king of Khorezm and fought often with Genghis Khan and displayed great bravery when Genghis Khan invaded Khorezm. However, in May 1221, the capital of Khorezm, Gurganj, fell and was completely destroyed, effectively ending the existence of the Khorezm Empire and Jalal ad-Din was chased away. Jalal ad-Din attempted a tenacious anti-Mongol struggle, but it was not enough to restore Khorezm. At one point, Jalal ad-Din achieved success by repelling the 45,000-strong Mongol army that was pursuing him at Parwan between Ghazna and Bamian. However, such guerrilla warfare had clear limitations, and Jalal ad-Din was pursued by the Mongol army and continued to flee to India, Tabriz, Isfahan, Anatolia, etc. In the end, Jalal ad-Din was killed by the Kurds at Al-jazira on the Tigris River in the spring of 1231, and the last traces of the Khwarazm Empire disappeared. The two heroes introduced today had military power and tactics that surpassed Genghis Khan, but Genghis Khan dealt a decisive blow with a big picture rather than small-scale battles, and eventually defeated the two figures who had abilities that surpassed him. It can be said that Genghis Khan's power came from a strategy that encompassed tact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