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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도 악처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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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권 시인
기사입력 2017-06-15

▲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TV조선 다큐 프로그램 ‘코리아 헌터’에서 본 서귀포 노(老)부부 이야기입니다. 일흔세 살 남편은 25년 전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치매에 걸렸습니다. 부모 자식도 기억 못 하지만 딱 한 사람 아내만은 알아봅니다. 불편한 대로 걷고 밥 먹고 책도 봅니다. 일흔두 살 아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간병 일지를 쓰며 지성으로 수발한 덕분이지요.

 

남편은 아내가 장 보러 간 사이 마루 걸레질하고 세탁기도 돌립니다. 아내 고생을 덜어주려는 마음에서이지요. 부부는 늘 손을 꼭 붙잡고 다닙니다. 하루는 이 부부에게 추억 어린 계곡에 갔습니다. 남편이 “여기 온 생각이 난다”더니 노래를 부릅니다.

 

“내 사랑 양춘선은 마음씨 고운 여자/ 그리고 언제나 나만을 사랑해….” 남편이 결혼식 때 불러줬던 노래라고 합니다. 의사는 “기적 같은 일”이라면서도 “병이 나아진 건 아니다”라고 합니다. 아내가 말합니다. “남편의 기억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행복하게 살아갈 용기가 있습니다.” 
 

“부부 사랑은 주름살 속에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든 싫든 기대고 부대끼며 서로 닮아 갑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시인 김종길은 늙은 부부를 한 쌍의 낡은 그릇에 비유했습니다. “오십 년 넘도록 하루같이 붙어 다니느라 때 묻고 이 빠졌을망정, 늘 함께 있어야만 제격인 사발과 대접”이라고 했지요. 
 

그러나 남자들 명이 짧아 해로(偕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2000년만 해도 예순다섯 넘는 고령자 성비(性比)는 여자 100명당 남자가 62밖에 안 됐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고령자 통계’에서 노인 성비가 올해 70.7까지 올라갔다고 밝혔습니다. 부부 함께 사는 노인 비율도 2000년 52%에서 2010년 57.7%로 높아졌습니다. 남자 수명이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지요. 
 

일본 어느 조사에서 아내 없는 노인 사망률이 아내 있는 경우보다 80%나 높았다고 합니다. 반면 남편 있는 노인 사망률은 없는 경우보다 55% 높았습니다. ‘여자는 남편 수발하느라 제명에 못 죽고, 남자는 아내 수발 없으면 오래 못 산다’는 얘기이지요. 어쨌든 통계청 조사를 보면 부부 노인의 만족도가 독신 노인보다 두 배 높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노부부들의 노후 준비, 건강관리, 문화생활, 생활비가 문제입니다. 마음이 안정되고 규칙적으로 사는 덕분에 생명은 늘었지만, 그 생명을 유지할 자금의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속담에 ‘효자도 악처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또 ‘곯아도 젓국이 좋고 늙어도 영감이 좋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그렇게 정답고 알뜰살뜰하게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한 것입니다.

 

몇 달 전인가요? 강원도 춘천시 중도동 상중도 강변의 흰색 승용차 안에서 70대 노부부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운전석과 옆 좌석에 나란히 앉은 노부부는 손을 꼭 잡은 채 세상과 잡았던 끈을 스스로 놓은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죽음을 결심한 듯 트렁크 안에는 목숨을 끊는 데 쓰이는 도구만 있었을 뿐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습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 관계자는 “강변에서도 경치가 좋은 곳을 골라 신경 써서 주차한 것 같았다. 강물이 잔잔히 흐르는 게 달빛이 강물에 비치면 참 멋있었을 것 같은데 노부부의 죽음이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위암에 걸린 아내(70)는 수술을 했으나 좀처럼 병세가 나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난해 8월 아들을 잃은 탓에 남편(70)도 우울증을 앓고 있던 것입니다. 노부부는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춘 때, 자녀가 보내준 생활비도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현장에 남긴 유서에는 “암에 걸린 아내의 병세가 좋아지지 않아 같이 가기로 했다”고 적혀 있었지요. 이것이 다 견딜 수 없이 밀려오는 아픈 통증과 생활비 때문이 아닐까요?

 

‘생사 학’ 전문가인 오진탁 한림대 교수는, “노인 고독 사를 막으려면 지자체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오 교수는 ‘웰 다잉(Well-Dying)’, 즉 ‘아름다운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연구와 교육의 사회적 확산이 노인 자살을 막는 데 자극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렇다면 노부부가 한 달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생활비는 어느 정도일까요? 송파구의 25평 아파트에서 애완견 한 마리를 키우며 친구들과 가벼운 모임을 몇 군데 나가신다는 70대 노부부가 있습니다.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는 평범한 노후생활을 하시는 부부이시지요.

 

그런데, 하루는 며느리가 전화로 여쭤봤다고 합니다. “어머님! 한 달에 생활비가 얼마나 드시나요?” 시어머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야~ 말도 마라! 숨만 쉬는데 300들어!” 우리 70대 노부부 한 달 생활비는 적어도 300만원은 들 것입니다. 그것으로도 사람 노릇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아마 그 300만원의 대부분은 병원에 갖다 바쳐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며칠 전 한국은행에서 기준금리를 10개월째 1.25%로 유지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시중은행들이 올해 들어서만 예금금리를 0.1~0.2%포인트씩 인하해 이젠 금리로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또한 경기불황에 전국 오피스 공급물량이 줄었는데도 공실률은 오히려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부동산 투자수익률도 하락하고 있다는 얘기지요. 
 

예 · 적금 이자소득으로 생활비를 꾸려야 하는 은퇴자들의 고민은 더 커지게 됐습니다. 예금금리가 연 1.3%라고 가정했을 때, 1억 원을 예금해서 얻을 수 있는 연 이자소득은 109만9980원(이자소득세 15.4% 제외)입니다. 월 기준 9만1655원으로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예금자들이 실제로 손에 쥐게 되는 이자소득은 거의 없는 셈인 것입니다. 
 

은행 이자 외의 별다른 소득원이 없는 노년층은 당장 금리인하에 따른 피해가 보통이 아닙니다. 현금 2억 원을 가진 노부부에게 연 1.5% 정기예금으로 돌아오는 예금이자는 연 253만8000원입니다. 월 21만1500원은 생활비로는 턱 없이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한살이라도 젊었을 때부터 돈을 모아야 합니다. 젊을 때는 객기로도 살 수 있지만 늙어서 돈 없으면 그것만큼 비참한 게 없기 때문입니다. 자식들도 제 먹고 살기에도 힘이 부칩니다. 이제 이 땅의 노인들에게는 정부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그래야 ‘효자도 악처만 못하다’는 마누라와 해로라도 하지 않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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