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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팍스 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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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6-18

 

▲ 시진핑     ©브레이크뉴스

작금 급격히 국제적 격랑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상황은 매우 예측하기 힘들며 빠르게 변화한다는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반도에 긴장이 반복되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상황이 왔다는 점은 더욱 그러하다.

 

19458,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소련군이 만주로 진격함으로써 일본은 드디어 항복을 선언하였다. 중일전쟁의 발발 이후, 2차 국공합작을 거쳐 국민정부군과 공산군이 함께 항일전에 참여해왔다.

 

물론 194910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당시의 중국은 장기간의 내전으로 온 나라가 피폐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마오쩌둥(毛泽东)은 국가 발전의 기초를 다지는 5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5대 운동으로 국가발전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작업이 끝나자 중국은 장기 발전 목표 두 가지를 선포하였다. 첫째, 사회주의 공업화의 점진적 실현이 그것이며, 둘째, 농업과 공업, 수공업에 대한 사회주의 개조가 그것이다. 사회주의 3대 개조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얼마 후 중국은 사회주의 3대 개조가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어 1956년에 일차 완성을 이룩했다고 발표하였다.

 

특히 덩샤오핑(鄧小平)을 시작으로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에 이르는 개혁파 지도자들은, 정치적으로는 일당의 공산주의체제를 굳게 견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덩샤오핑이 주창한 선부론(Getting Rich First)’을 앞에 내걸고 개혁개방 노선을 줄곧 유지하면서 세계의 경제대국 G2(Group of Two, 미국-중국)로 성장하게 되었다. 덩샤오핑이 집권하여 개혁개방 노선을 펴게 된 1979년초부터 약 30년 동안 중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9.8%라는 높은 성장을 달성은 세계에서 유일한 일이다. 그동안 중국의 GDP는 약 16배 상승했고, 1인당 GDP12배로 상승했다.

 

▲ 이창호     ©브레이크뉴스

 여기서 더 나아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일대일로(一帶一路, 21세기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등 중국의 영향력을 크게 확대를 하고있다. 물론 일본 및 미국의 힘을 견제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유연한 대처를 위해서 주변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계산도 했겠지만, 중국이 국익을 위해서는 국제사회를 주시하는 반응은 적어 보인다.

 

특히 시진핑은 다혈질의 보시라이(薄熙来)와는 다르게 무척 신중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그러한 특징은 남들이 인정하고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장점 중에 장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시진핑이 갖추고 있는 정치적 감각은 장쩌민과 후진타오, 그리고 덩샤오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다. 이러한 평가는 중국 공산당 안팎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의 일반 국민들도 그렇게 내리고 있는 부분이다.

 

비단, 중국이라는 거대한 경제대국의 G2라는 용어가 일본을 제치고 이미 사용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나라가 세계의 문제들을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 용어의 뒤에 내재된 발상이다. G2라는 용어를 사용되면서 중국이 전면적으로 국제정치, 국제무역, 국제금융, 지구 온난화 등의 대책에서 책임 있는 태도를 적정히 취해가고 있다.

 

한편, 평화라는 의미의 팍스(Pax)는 라틴어의 뜻은 국제정치에서 중심국가의 지배에 의해 주변국가가 평화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또한 20세기 후반 냉전 체제이후 G2로 부강한 중국이 이제 냉전의 대외 관계에서 가장 주된 분투 목표가 바로 팍스 차이나. 중국은 이 시점에서 팍스 차이나(Pax China)’로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글 : 이창호(李昌虎). 이창호스피치리더십연구소 대표. 시진핑리더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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