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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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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6-20

▲ 이승철     ©브레이크뉴스

“북(北)이 도발을 감행 땐 2차대전 후 최악의 전쟁이 된다.” 2017년 3월 19일 <문화일보> 머리기사이다. 2차 대전 시작과 끝을 보았기에 ‘とっこたい(도고다이:特攻隊:특공대)’를 배웠고, 전쟁 말기엔 하늘을 나는 B-29 미국 비행기를 보았다. ‘리인쇼오크(이인석:李仁錫) 삼용사(三勇士)’를 외우며 살다가 6·25전쟁도 겪었다.

 

전쟁 앞에서는 못나고 똑똑함이 없다. 죽이면 죽을 수밖에 없다. 신에 빌어서라도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 전쟁 후 재미 볼 사람 좋아할 일을 저질러서는 절대 아니 된다. <1950년 6·25 전쟁 희생자 위령단> 비문이다.

 

“지금으로부터 62년 전 1950년 6월 25일 하늘도 울고 땅도 통곡하며 바다도 슬퍼 울었노라. 이 글을 새겨 이 비를 어루만지려하니 누가 엿볼세라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며 가슴으로 통곡하노라.

 

6·25전쟁에 관한 정부발행 간행물에 따르면 자연부락 단위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백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지역이 이곳 ○촌리란다. 그 당시 좌나 우나 이념과 사상을 알고나 그랬던가. 그 시대의 상황을 이제 와서 탓한들 무엇 하리오.

 

그 간 골 깊었던 서로 간 증오심의 빗장을 풀어헤치고 그날의 아픔과 미움을 사랑으로 승화하고자 이 비를 여기 세워 애절한 마음으로 대곡하며 기도합니다. 천추의 한이 서린 수백여 영령들을 하나님께서 부디 보살펴 주옵소서. 2012년 3월 24일 유송 이병○ 삼가 글을 쓰고 비를 세우다.”

 

전쟁의 비극과 아픔을 숨기거나 감출 일이 아니다. 위 글의 비석이 충남 논산시 ○○면 ○촌리에 있다.

 

역사는 특정인만이 쓰는 게 아니라 누구든지 쓰면 역사요 뒤에 반면교사의 사료가 된다. ‘6·25 실증 문교부 자료에 실려 있는(논산군 1994년 전병요 발행 성동면 편)’ 희생자 수가 엄청나 차마 사실대로 올리지를 못하겠다. 여기 이병○는 좌익의 아들이다. 종전 후 지금까지 고향을 떠나지 않고 한 마을에서 산다. 이렇게 대단하나 평생 공산당, 종북 소리에 놀란단다. ‘원수의 총칼 앞에 피를 흘리며/ 마지막 주고 간 말 공산당은 싫어요./ 구름도 망설이는 운두령 고개/ 새 무덤 오솔길을 산새가 운다.’ 이승복의 이런 노래 앞에 표정 관리가 어렵고, 생업이 힘들어 팔다보니 종토에도 손을 대어 노년엔 집안 일가들의 군담까지 듣는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언제 종북(從北), 호북(好北), 전쟁, 주적 소리가 지워질 것인가.

 

아픔은 곳곳에 있다. 비봉 유희창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즉 유희빈 두 백부는 한날 비운에 가셨다. 어찌 분로와 원한이 없으련만 민족의 화합을 위해 평생 입 한 번 크게 열지 않는다. 국민의 스승, 군자, 천사들이다. ‘춘한노건(春寒老健)’이라 했으니 세인들은 지나친 강박감의 집착에서 벗어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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