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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권, 김대중 6·15 선언ㆍ정동영 9·19성명 되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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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태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9-14

▲ 정성태     ©브레이크뉴스

인류가 완전한 평화를 이루기란 사실상 어렵다. 국가, 조직 혹은 개인 사이에 있어서도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며 상존한다. 그러나 그 갈등의 폭이 깊게 되면 상호 관계를 파국으로 이끌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위협 요인을 제거하려는 부단한 노력과 상황 조성을 통해 평화에 근접할 수 있어야 한다.

 

평등의 문제 또한 그렇다. 모든 사람이 정치권력과 경제력 측면에서 다 같을 수는 없다. 이는 이론적으로도 설명이 불가한 일이다. 세계 어떤 모범적인 국가도 저마다 차이가 나타난다. 다만 권력의 오용과 남용, 부의 독식과 편중의 폭을 최대한 줄이려는 제도적 보완을 통해 불평등 문제를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두 개의 결정적 키워드가 있다. 우리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끊임없이 야기하고 있는 바로 전쟁의 공포와 불평등에 관한 문제다. 덧붙여 영남패권으로 일컬어지는 지역 편차 또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당면 과제가 되고 있다. 이는 역사와 시대를 보는 안목에 있어서도 매우 상이한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남북문제에 대한 특정 세력의 인식은 극단적 경향을 띄기도 한다. 북한에 대한 거침없는 악마화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정치인 및 그 맹목적 추종자들의 언행이 그렇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어긋난 정치적 선동을 마치 애국인 듯 치환한다. 자칫 비장한 것으로 오인될 수 있는, 그러나 참으로 졸렬한 행태에 다름 아니다.

 

그들은 말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했고, 미사일 능력도 미국까지 도달하는 대단한 성능을 갖췄으니 한국도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또는 미국의 전술핵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전쟁불사를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는 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으로, 한낱 무지몽매한 자기 감정의 배설에 다름 아니다. 

 

왜일까? 그것은 남북 모두 핵무기 대치 상태에 놓이게 됨을 뜻한다. 특히 전시작전권도 없는 한국 입장에서는 우리 운명을 미국 손아귀에 쥐어주게 되는 꼴이다. 그로인한 생사 여탈권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미국의 뜻에 따라 결정나게 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그러한 죽음과 파멸의 권한을 미국에게 주려고 한다는 것인가?

 

결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그간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자행한 숱한 전쟁의 양태를 고려할 때,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일으킬 개연성이 있다. 그에 따른 후과는 남북 전체가 지구촌에서 사라지는 공멸만이 남게 된다. 다만 권력과 금력을 쥔 자만이 사전에 해외 도피를 통해 살아남을 것이다.

 

생각해 볼 일이다. 현재 한국은 가동 중에 있는 핵발전소가 20기 가량 된다. 그렇다면 북한이 굳이 남한을 향해 핵무기를 쏘아야 할 이유는 없다.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로 남한 내 산재한 원전 몇 곳을 향해 원점 타격하게 되면, 그로부터 1년 이내에 남한 인구 1천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게 된다. 아울러 장사정포와 스커드 미사일을 모두 열고 남한을 향해 일시에 날리는 날이면 그 순간 파멸을 맞게 된다.

 

평화여야 한다. 아니, 적극적으로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의 힘겨루기 전선에 한국이 부화뇌동하며 미국을 맹신하는 사대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우리 문제를 전적으로 남에게 의존하려는 자세로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따라서 민족 공동체라는 자주적 관점에서 남북 사이의 신뢰 형성에 일관된 자세와 정성을 쏟아야 한다.

 

날로 대결과 갈등 구조를 강화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은 이제라도 대화의 틀을 조성하는데 나서야 한다. 아울러 남북 평화협정 체결을 넘어 북미 평화협정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필요한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에 따른 국민적 총의 또한 모을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은 짧지만 역사는 유구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 앞에 두려운 자세로 민족문제와 그에 따른 외교 전반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특별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6·15 선언 그리고 정동영 의원이 참여정부 당시 성사시킨 9·19 합의 정신과 그러한 실천적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거기 해법의 실마리가 있다.

 

* 필자 : 정성태(시인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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