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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동쪽을 가리키면 동을 에워싸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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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복 소설가
기사입력 2018-01-06

▲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주처가 백치황제의 명을 받고 구원군을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나타나자 양왕 동이 아주 불편해하는 얼굴로 무관심함을 드러내어 놓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서 마지못해 체면치례로 주처에게 자리를 권하며 입을 떼어 말하기를
 “들어서 알겠으나 적괴 만년이란 자는 듣기보다 훨씬 한맹하고 영용한 자요. 하니 장군은 절대로 적장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고 매사에 신중을 기하시오.”
 “염려 놓으십시오. 내가 내일 출전하여 당장 그 적괴를 사로잡아 대왕 앞에 바치겠으니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주처가 그리 말하자 양왕은 손사래를 치면서 주처의 말을 막고 말하기를
 “그렇지 않소. 내가 어제까지 장군처럼 그놈을 얕보다가 2장만 잃었소. 이제는 후회가 막급이니 장군도 저들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오. 만약 장군에게 변고라도 있게 되면 이는 우리 진조를 위해서 그보다 더 큰 불행은 없을 것이오. 앞으로는 일체 혈기를 앞세우지 마시오. 실패하면 필부의 비방을 들으리다.”
 “대왕의 수하 장수인 허사와 허갱은 용맹스러우나 지모가 부족하기 때문에 패한 것뿐입니다. 내일 똑똑히 지켜보십시오. 소장이 출진하여 반드시 적괴 만년을 오금을 못 펴게 하고 사로잡아 오겠습니다.”


 양왕은 주처가 자기 장수의 무능함을 말하자 당장 얼굴색이 변하면서 크게 노한 음성으로 말하기를
 “장군이 그리 큰소리치다가 여의치 못하면 여기 모인 장졸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신중히 가려서 하시오.”
 “소장이 내일 출전치 않거든 조정에 주달하여 파직을 하십시오. 또 만년을 잡지 못하면 크게 비웃으십시오.”
 양왕은 주처가 조금의 양보하는 빛도 없이 자기와 맞서자 크게 불쾌한 생각을 가졌다. 주처는 양왕과 헤어지자마자 심히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진으로 돌아왔다. 둘에게 전부터 남아 있는 뿌리 깊은 앙금이 무섭게 똬리를 틀고 있다가 만나자마자 발동이 걸린 것이다.


 다음날 날이 밝자 주처는 곧 군사를 이끌고 한군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한군은 움직이지 아니하고 굳게 지키기만 하였다. 진군은 하루 종일 뙤약볕을 맞받으며  휴식도 없이 한군을 들이쳤으나 주처는 한군의 얼굴마저 보지 못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저녁이 되자 양왕이 주처에게 사람을 보내어 묻기를
 “양왕께서 장군이 만년을 사로잡아오셨나 알아보고 오라 하셨습니다.”
 주처는 그 말이 비웃음 같아 배알이 뒤틀어졌지만 참고 변명하여 말하기를
 “강적이 나의 위명에 겁을 먹고 나타나지 않으니 어찌 하겠소. 만약 그놈이 나타났다면 어찌 놓아 보냈겠소.”
 사자가 돌아가 양왕에게 주처의 말을 들은 대로 전하자 양왕은 다시 사자를 주처에게 보내어 말하게 하기를
 “어제 장군은 한번 출진에 반드시 적괴를 산채로 잡는다고 장담하였으나 그것이 불가능한 결과가 되었소. 이제는 더 이상 만심하지 말고 신중히 헤아려 움직이시오. 함부로 움직였다가 실패하면 대국의 위명을 손상시키게 되니 부디 삼가고 자중하시오.”


 사자의 전하는 말을 듣자 주처는 심히 마음 아파하며 대답하기를
 “그렇소. 나는 이미 큰소리를 쳤소. 어찌 내가 자신이 없으면 그리 말했겠소. 대왕도 자기편 장수를 조롱만 하지 말고 힘을 합하여 반적을 토멸하는데 지혜를 보태라 전하시오. 내가 내일은 전심전력을 다하여 한의 영채를 쳐서 무찌르고 만년을 베겠소.”
 사자가 돌아가서 주처의 말을 그대로 전하자 양왕은 허탈해하며 쓰디 쓴 미소를 뿌리고 침실로 가서 누워버렸다. 참 못 말릴 사람들이요, 그들 둘의 관계라하겠다. 양왕 동과 주처의 반목은 진준이 혜제에게 예고했던 대로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만 갔다.


 다음날 주처는 진시에 출병하여 크게 만년의 영채를 공격하였다. 그 맹렬한 기세는 참으로 놀라웠다. 그러나 만년은 오시가 지나도록 굳게 지키기만 하면서 화살과 돌로 응전할 뿐이었다. 이때 제갈수지 군사가 여러 장수들을 모아놓고 의견을 말하기를
 “적이 저토록 싸움을 돋우는 것은 필시 주처가 양왕에게 필승을 장담한 때문일 것이오. 우리가 적에게 약을 올려 주고 마음이 태만하기를 기다렸으니 적은 마음을 놓고 쉬고 있을 것이오. 이때를 타서 우리는 힘껏 적의 예봉을 한번 꺾어야 할 것이오.”


 이에 장맹손 군사가 찬성하자 제갈수지 군사가 여러 장수를 불러 계책을 일러 주기를
 “우선 2천 궁노수를 채책 안에 매복시켰다가 적이 후퇴할 때 강궁경노를 일제히 쏘아 적을 어지럽게 하라. 만년과 장경 호연유 황명 조개 5장은 군사를 배불리 먹이고 모두 채문 안에 대기하고 있다가 포 소리를 신호로 삼아 모두 짓쳐나가라. 영이 없으면 적이 아무리 영채 가까이와도 그냥 두고 보기만 하여라. 별명이 없는 한 이 점 각별히 명심하라.”


 여러 장수가 제갈수지 군사의 영을 받고 돌아갔다.
 한편 주처는 군사를 계속 독려하여 미시까지 공격을 늦추지 않았으나 한군의 영채는 잠잠하기만 하고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날이 저물자 온종일 공격하던 진병들이 모두 기진맥진하였다. 진병들은 마침내 한군을 업신여기고 땅에 앉아 쉬기도 하고 갑옷과 투구를 벗고 땀을 닦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한의 영채 가까이 가서 마구 욕설을 퍼 붓다가 제풀에 겨워 늘어져 쉬었다.


 그때 진병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제갈수지 군사는 드디어 신호의 포를 터뜨리라 영을 내렸다. 일성포향이 침묵을 깨고 석양의 천지를 진동하자 한의 영채에서 갑자기 강한 쇠뇌가 빗발처럼 날아갔다. 한채 가까이에서 욕설을 퍼붓다 지쳐 늘어져 있던 진병들이 순식간에 살을 맞고 쓰러졌다. 그리고 동시에 한채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5장을 앞세우고 한병들이 노도처럼 밀고 나왔다. 장졸이 모두 사기가 충천하고 살기가 등등하였다. 반면 온종일 무모한 공격을 하느라고 부대껴서 맥이 탁~ 풀린 진병들은 갑자기 일을 당하자 혼비백산하였다. 서로가 우왕좌왕하며 달아날 구멍을 찾는 쥐 꼴이 되어 허둥대었다. 주처는 이와 같이 흩어진 군심을 바로잡고자 큰소리로 외쳤으나 막무가내였다. 진병은 갑자기 일을 당하자 영이 서지 않는 오합지졸이 되고 말았다. 주처는 생각다 못해 필마단기로 몰려오는 한병을 막아서며 닥치는 대로 찍어 넘겼다. 그때 한의 아장 왕정이 칼을 휘두르며 나타났다. 주처는 말을 왕정 가까이 몰아가 호통을 치기를
 “무명 편장이 감히 내 앞을 막는단 말이냐!”
 “이놈아, 너무 얕보지 마라. 내가 이름 아직 나지 않아도 할 짓은 다 한다.”
 

왕정이 이리 말하고 주처에게 대들었으나 주처의 칼을 단 1합도 막아내지 못하고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 모양을 가까이서 본 장경의 편장 동기가 왕정을 구하려고 달려들자 주처는 왼팔에 왕정을 끼고 오른 손에 든 칼로 동기를 찍어 낙마시켜버렸다. 동기는 주처의 단 1격을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한장들은 퇴각하라는 영이 떨어지자 2편장을 잃고도 미련 없이 군사를 거두어 어둠을 헤치고 영채로 돌아갔다. 이 싸움에서 주처는 비록 패하기는 하였지만 편장 하나를 베고 하나는 사로잡은 것으로 위로를 삼았다. 주처는 일단 양왕 동에게 전공을 보고했다. 양왕은 보고를 받고 사자를 세워두고 빈정거리기를
 “그래 사로잡은 것이 만년이 아니고 무명편장이란 말이냐. 수많은 군마와 군기를 잃은 죄는 슬쩍 덮어두고 2편장을 잡은 것도 공이라고 보고한단 말이냐. 듣기 싫다. 냉큼 돌아가라.”
 

참으로 안타까운 둘의 관계이었다. 이래서야 어찌 대장부라 할 것이며 전승인들 장담하겠는가. 마치 서로가 부모 죽인 원수처럼 대하고 겉돌고 있으니 말이다.
 한편 주처와 일진을 싸우고 돌아온 만년은 곧 두 군사를 찾아가 보고하기를  
 “오늘 주처를 보니 그의 영용함은 참으로 비범합니다. 단 1합으로 왕정을 사로잡고 한손으로 칼을 들어 동기를 베었습니다. 우리가 굴욕을 당한 셈이지요. 하지만 내일은 우리가 그를 공격하여 왕정을 되찾아 와야 하겠습니다. 두 분 군사께서 좋은 계책을 알려주십시오.”


 만년의 주문에 군사 장빈이 만류하기를
 “장군은 성급하게 굴지 마시오. 세작이 전해 오기를 주처가 왕정을 생포한 것을 양왕이 성에 차지 않아 투덜대고 있답니다. 날이 갈수록 둘 사이가 더욱 나빠질 것입니다. 참고 며칠만 더 기다렸다가 이 지방의 지세를 이용하여 계책을 써서 주처를 제거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만년은 군사 장빈의 말을 쫓아 군사들에게 영을 내려 굳게 지키게 하였다.
 다음날 장빈과 제갈 두 군사는 만년과 여러 장수를 데리고 영채를 나와 근방의 지리를 답사하였다. 한 지점에 이르니 언덕이 넓게 뻗었는데 사방으로 난 굴곡이 급하기도 하고 완만하기도 하였다. 왼쪽은 상당히 넓은 경주호 라는 연못이 있는데 바닥이 말라 드러나 있었다. 두 군사는 근처의 지세를 모두 살피고 나서 아주 만족해하며 말하기를
 “주처를 잡을 곳이 바로 이곳이다.”


 장빈이 단정적으로 말하고 여러 장수들에게 매복할 곳을 일일이 지적해 주면서 계책을 일러주기를
 “주처는 어제 싸움에서 왕정을 생포하고 동기를 베었기에 많이 누그러져 있소. 그런데다가 며칠 동안 우리가 출전을 하지 않으니 여러 생각을 할 것이오. 하니 마영과 호연유 2장은 각각 2천5백군을 거느리고 이 언덕의 왼편에 매복하고 장실과 양흥보 2장은 5천군을 거느리고 언덕의 오른편에 매복하여 굳게 길목을 지키시오. 또 황신 장경 2장은 5천군을 이끌고 경주호의 동쪽 길로 나가고 유영 조개 2장은 5천군을 이끌고 호수의 서쪽에 매복하시오. 학명 학흠 2장은 5천군을 거느리고 언덕의 중턱에 잠복하시오. 조염 호연호 2장은 5천군을 거느리고 요소요소의 길목에 나무와 돌을 쌓아 통로를 차단하시오. 호연안 장군은 3천군을 거느리고 유군이 되어 어느 쪽이고 약한 곳을 구원하시오. 그리고 전만년은 5천 정병을 거느리고 나가 싸우면서 적을 이곳으로 유인하시오. 나와 제갈 군사는 5백군을 거느리고 경양산 위에 올라가서 기와 포성으로 때를 맞추어 지시하겠소. 기가 동쪽을 가리키면 동을 에워싸고 서쪽을 가리키면 서쪽을 에워싸시오. 포성이 터지거든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적을 위협하시오. 적이 경주호 까지 오면 활을 쏘되 사람을 쏘지 말고 말을 쏘아 쓰러뜨리도록 하시오. 반드시 대승을 거두고 주처를 생포할 수 있을 것이오.”


 상세하게 지시하고 나서 장빈과 제갈 두 군사는 여러 장수들과 함께 영채로 돌아와 진병이 침입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계속>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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