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말 앞에 선 졸개 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건방을 떠느냐?”

- 작게+ 크게

이순복 소설가
기사입력 2018-01-08

▲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진조의 제일장수 주처는 과연 말과 같이 명장이고 맹장이었다. 만년과 일전에서 편장을 하나는 손쉽게 생포하고 다른 하나는 어렵지 않게 죽였다. 이 놀라운 전과를 가감 없이 양왕 동에게 사자를 보내어 보고했다. 사자가 돌아와서 양왕의 하는 모양을 전해준 말을 듣고 주처는 크게 분노하여 당장 수하 장수들을 모두 불러놓고 말하기를
 “어제는 너무 일찍 출전하여 긴 시간 동안 시달렸기에 인마가 배가 고프고 몸이 피로해서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패하였다. 오늘은 진시에 출전준비를 갖추었다가 사시에 출병할 테니 여러 장수들은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 그 동안에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쉬게 하라.”
 

이때 갑자기 양왕 동의 사자가 찾아왔다. 주처는 양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사자를 맞자 그 사자가 말하기를
 “날이 밝았으니 속히 출전하라는 대왕의 명령이오.”
 주처는 사자의 말에 마음속에 들어 있는 울화 덩어리를 어렵게 억제하며 대꾸하기를
 “이미 모든 장수에게 출전명령을 하달했으니 대왕께서는 방념하시도록 전하오.”
 주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양왕이 복윤을 데리고 나타나자 주처가 의례적으로 양왕을 맞아 인사하기를
 “대왕께서 어인 일로 이른 새벽에 여기까지 거동하십니까?”
 “장군이 어제 일진에 패하여 겁을 먹고 오늘은 출전을 접을지 우려되어 왔소. 그러다가 적이 옹주성을 들이친다면 우리 대진의 위명이 땅에 떨어질 것이 아니요. 만약 장군이 적이 두려워서 출전을 못한다면 내 조정에 주달하여 다른 장수를 청해 올까하오. 혹여 그렇지 않고 아직도 싸울 마음이 있다면 장군은 속히 출전하여 어제의 울분을 시원하게 갚아주시오.”
 주처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입을 열어 대꾸하기를
 “소장은 이미 출전명령을 내렸고 지금 한창 밥을 짓고 있는 중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이리 늦장을 부려서야 어찌 승리를 장담한단 말이오. 모름지기 장수란 전쟁에 임하면 밤에도 갑옷을 끄르지 않는 법이오. 이미 날이 밝은 지 오랜데 여태까지 밥을 먹지 않았다니 말이 되는 소리요. 이는 태만이 아니고 무엇이오. 그래 가지고도 나라의 대임을 맡은 대장군이라 말할 수 있겠소.”
 

주처는 양왕에게 트집거리를 주어 단단히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면책을 톡톡히 당하자 식욕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군사를 시켜 가급적 빨리 식사를 마치고 출전하라는 영을 양왕 앞에서 내리고 좋은 말로 양왕을 처소로 돌아가도록 종용했다. 그러나 양왕은 자리를 뜨지 않고 말하기를
 “장군은 속히 식사를 하시오. 내가 기다렸다가 장군의 출전을 전송하겠소.”
 종지 목을 대고 양왕이 주처의 행동까지 간섭하자 주처는 식사 당번이 밥상을 가져왔으나 양왕이 자리를 비우지 않고 버티고 있어서 주처는 수저를 들고 밥을 먹기도 어렵게 되었다. 하여서 주처는 끼니조차 거르고 갑옷을 입고 칼을 들고 장막을 나서야 했다. 양왕은 주처가 말에 올라 여러 장수들을 호령하여 출전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속으로 비웃으며 옹주성으로 돌아갔다. 둘의 소행을 보면 국사는 제처 두고 사사로운 원한의 끈을 놓지 못하고 밀당을 계속하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둘의 속이 대장부의 속이 아니라 밴댕이 속과도 같아 보였다.
 

주처가 양왕 동으로 인하여 아침을 먹지 못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싸움이란 힘으로 하는 것이다. 헌데 대접전을 앞두고 대장군이 속이 허한 몸으로 전쟁터에 나갔다 하니 들은 사람이 다 안타까워하였다. 그래서 수하 장수들이 주처 앞에 모여들어 진심으로 권하기를
 “대장군께서 마음을 편케 가지시고 들어가시어 식사를 드시고 나오십시오. 그 동안 저희들은 기다리겠습니다.”
 주처는 수하들이 고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저으며 말하기를
 “장수가 한번 군사를 움직였으니 돌아 설 수 없는 일이오. 양왕이 나를 의심하는데 내가 만약 다시 장막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을 트집 잡아 나를 모멸하고 힐책할 것이오. 생사는 천운이고 또 진조를 하늘이 돕는다면 내가 공을 세우게 될 것이니 여러분은 속히 진군하시오.”
 주처가 군사를 이끌고 10여 리를 나가자 만년의 군이 포진하고 있었다. 한진에서 만년이 월지마에 높이 앉아 60근 대도를 비껴들고 나오며 큰소리로 외치기를
 “진장 중에서 자신 있는 놈은 속히 나와 한판 승부를 내보자. 목숨이 아깝고 겁이 나면 속히 왕정을 돌려보내서 나의 수고를 덜게 하라.”
 “이 경박한 필부 놈아! 가히 네놈이 나를 알겠느냐?”
 주처는 만년의 대단한 야유하는 소리를 듣고 말을 몰고 나가며 대꾸하자 만년이 다시 욕설을 풀어 놓기를
 “네놈이 어느 말 뼈다귄지 내가 알게 뭐야!”
 “무식한 필부 놈아, 내가 바로 정서대장군 주처시다. 네놈은 내 이름이 두려워서 몇날 며칠을 옴짝달싹도 못하다가 이제야 간신히 나타났느냐?”
 “하 하 하. 네놈은 내가 단 일진의 싸움에서 두 마리 범 새끼를 처치한 것도 못 들었구나. 나는 죽이려면 죽이고 살리려면 살리는 진병의 염라대왕이시다. 네놈들의 생사여탈권을 내가 쥐고 있으니 알았거든 냉큼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듣자니 만년이란 놈이 개돼지만도 못한 도적놈이구나. 네놈이 그토록 죽기를 재촉한다면 그 소원을 즉각 들어 주마. 어서 말에서 내려 목을 빼고 기다려라.”
 

주처는 그리 말하고 칼을 휘두르며 만년을 향하여 달려갔다. 만년도 뒤질 새라 대도를 휘두르며 주처를 맞았다. 2용장이 온 힘을 다 쏟아 죽기 살기로 싸우니 마치 하늘에서 신장이 내려와서 승부를 내려는 것 같았다. 2장의 싸움이 50여 합에 이르렀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내가 이제 군사가 일러준 대로 써 먹자.’
 만년은 장빈 군사가 준 계책대로 짐짓 힘이 모자란 것 같이 보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다가 얼른 말머리를 돌려 동남쪽 언덕을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주처는 그런 줄도 모르고 크게 꾸짖기를
 “이런 미련 곰탱이 같은 필부 놈아, 그 모양 그 꼴을 해 가지고 서리 날 이기겠다고 호언장담했더냐. 네놈은 참 뻔뻔한 놈이로구나. 사내놈이 부끄럽지도 않느냐! 달아나지 말고 거기 서서 나와 승부를 내자.”
 소리치며 한사코 끈질기게 따라갔다. 만년은 언덕 배기로 쫓기다가 선뜻 말머리를 돌리고는 주처를 향하여 외치기를
 “네놈이 진짜 미련 곰탱이다. 오늘은 네 재주를 이 정도로 시험했으니 쉬었다가 내일 다시 대결하자. 싸움도 싸움 나름이다.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싸운다고 누가 벌주겠냐? 오늘은 너도 피로할 테니 이만 돌아가서 양기를 길렀다가 내일 다시 결판을 내자.”
 

주처는 만년이 자기를 이 같이 희롱하자 발끈 화를 내며 외치기를
 “세상에 별 놈이 다 있구나. 비겁하게 달아나는 놈이 웬 잔말이 그리 많으냐. 힘이 달린 줄 알았다면 잔소리 말고 냉큼 내려서 항복하라!”
 막무가내로 만년에게 말을 몰고 다가오다 잠시 머뭇거렸다. 아마도 만년의 계책에 빠진 것이 아닐까 하여 그런 것 같았다. 주처는 머리를 들어 사방을 살펴보고는 울창한 수목도 깊은 골짜기도 없는지라 안심하고 만년을 쫓아가며 말하기를
 “네놈이 달아나면 하늘로 오를 테냐? 땅으로 꺼질 테냐? 속히 말에서 내려 잔명을 보존하라!”
 “하하하. 네놈이 큰소리치지만 이제는 별수 없이 그물 안에 든 고기 꼴이 되었다. 네가 꾀를 써서 너를 유인했다. 알겠으면 속히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만년의 말에 주처가 놀라 사방을 훑어보니 과연 주변에 살기가 등등했다. 그는 급히 군사를 독려하여 회군하려 할 때 앞산에서 일성포향이 터졌다. 그러자 그것이 신호였던지 크게 함성이 일어났다. 이 함성이 얼마나 컸던지 진군이 탄 말들이 놀라 전후좌우종횡을 구분치 못하고 날뛰었다. 난데없이 말이 수난을 겪자 진병들의 형세가 크게 어지러워 졌다. 이와 같이 통제 불능상태가 되자 주처는 우선 말부터 진정시켰다. 말이 안정되자 주처는 대열을 정비하고 서쪽 평탄지역으로 군사를 이동시켰다. 그런데 서쪽에서 일지군마가 나타나는데 위수대장은 유영과 조개다. 주처는 어마 뜨거워라! 하고 놀라면서 다시 말머리를 돌려 동쪽을 향하여 달아났다. 그러나 활 한마당 거리도 못가서 다시 만년이 앞을 가로 막고 나타났다. 주처는 허둥지둥하며 북쪽으로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는데 앞에서 황신과 장경이 일지군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주처는 별수 없이 경주호를 바라보고 달아났다. 호수에 다다르니 바닥이 드러난 깡마른 호수였다. 이곳도 올 곳이 아닌지 이번에는 학흠이 일지군을 이끌고 소리소리 지르며 달려들었다. 주처는 이제 더 이상 달아날 길이 없자 이판사판으로 학흠을 맞아 싸웠다. 2장이 눈싸움을 한 차례 주고받더니 학흠은 주처의 매서운 눈빛에 놀라 숨을 고르게 쉬지 못했다. 아마도 둘은 적수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갑자기 주처가 말을 달려 칼을 허공중에 번뜩이더니 학흠의 목이 달아났다. 놀라운 일이었다. 목이 달아나자 학흠의 몸통이가 짚단 넘어지듯 낙마했다. 그러자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황명과 호연안이 기를 쓰고 주처에게 대들었다. 하지만 주처는 웬일로 전의를 상실하였는지 2장을 뒤로하고 호수 오른 편을 끼고 달아났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땅거미가 들기 시작했다. 깡마른 경주호에도 저녁노을이 내려덮이고 있었다. 주처는 황혼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기를
 ‘아아! 이게 무슨 개망신이냐!  나 주처가 쥐새끼들한테 놀림을 당하다니...!’
 

서글퍼하며 잠시 군사들을 쉬게 하였으나 다들 어디로 사라졌는지 따르는 수하 장졸이 겨우 수백 명에 지나지 않았다. 주처는 마음은 괴롭고 몸은 더할 나위 없이 피곤했다. 눈을 감으면 금방 깊은 잠이 들어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저녁때 끼니를 때우고 지금까지 빈 입으로 싸우고 있었다. 생각하니 양왕이 한없이 얄미웠다. 가까이 있다면 당장 한 대 먹여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간신히 달래고 있는데 앞에서 크게 함성이 일어나며 일지군이 달려왔다. 주처는 허다한 망상을 털어버리고 다시 군사를 독려하여 앞을 바라보니 일반 전장터에서 보기 드문 일을 만나자 중얼거리기를
 ‘내가 헛 걸 보나! 나를 얼마나 만만히 보았으면 기병이 아닌 보병이 달려드나?’
 

주처는 앞에 나타난 적이 말을 탄 장수가 아니고 웬 보졸 장한이 철주를 위로 휘두르며 달려와 큰소리로 외치기를
 “진장 주처는 속히 하마하라. 그대는 오나라의 은혜를 잊고 원수의 나라를 위해 소중한 목숨을 버릴 작정이냐? 어리석고 못난 놈아.”
 “이런 말 앞에 선 졸개 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건방을 떠느냐?”
 “하하. 이놈 봐라. 이놈아! 나는 졸개가 아니다. 한의 장수 양흥보다. 내가 끝까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네놈 목을 맡을 수밖에 도리가 없겠구나.”
 주처는 양흥보의 겁 없는 말에 크게 노하여 말을 몰아 양흥보를 취하려 달려들었으나 상대는 말과 같이 쉽게 처리될 놈이 아니었다. <.계속>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Copyright ⓒ 브레이크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