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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니 적의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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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복 소설가
기사입력 2018-01-10

▲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제대로 된 전쟁터라면 대장과 대장끼리의 싸움은 기마에 의한 창이나 칼을 주된 무기로 하여 싸움을 하는 법인데 주처와 양흥보 둘 사이에 벌어진 한판 싸움은 유별란 싸움이 되었다. 하나는 준마를 타고 싸우고 하나는 땅위를 딛고 서서 싸웠다. 그러나 둘의 싸움은 20여 합을 싸웠으나 승부는 나지 않고 양흥보의 영용함이 점점 더 두드러져 갔다. 마상의 주처는 맥이 빠졌다. 보졸 따위인 줄 알고 가볍게 대한 놈이 시간이 갈수록 그 영용함이 두드러지자 기가 막혔다. 주처는 그만 입을 떡 벌리고 싸우면서 탄식하기를
 “허허, 별꼴이다. 내가 노리개가 되었단 말인가. 마전소졸에게 이리 당하다니...”
 

주처는 몹시 자존심이 상했지만 양흥보와 싸움을 그칠 수도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러나 이대로 양흥보에게 발이 묶여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중얼거리기를
 ‘여기서 꽁무니를 빼면 웃음거리가 되겠지. 그러나 우선 살고보자.’
 주처는 그리 결심하면서 양흥보를 뒤로하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어느덧 해가 저물자 경양산에서 보내는 깃발의 신호도 쓸모가 없게 되었다.
 ‘이젠 밤이 들어 캄캄하니 추격해 올 적군은 없겠지.’
 주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을 조심스럽게 몰아가 부장 금면에게 지시하기를
 “이제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니 적의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요. 민첩한 군사 서너 명을 골라 속히 양왕에게 보내어 구원을 청하시오.”
 

부장 금면이 영을 받고 전령을 보낼 때는 주처와 3백군이 모두 한군의 포위망에 빠져들었을 때였다. 주처와 3백군이 경주호를 지날 때 강바닥이 어떤 곳은 늪으로 남아 말발이 빠진 곳이 있었다. 그런데 어두운 밤이라 구분을 못하여 늪으로 들어간 것인지 갈수록 말굽이 빠져 말을 타지 못하고 걸어서 가야 했다. 시간이 지나자 먹구름 탓인지 별빛마저 잠들고 인마의 보행이 크게 어려워졌다. 이에  주처는 행군을 멈추게 하고 말하기를
 “이제 구원병이 올 때까지 휴식을 취하라. 날이 새기 전에 구원병이 올 거다.”
 주처는 양왕의 심보를 알기에 의심하면서도 구원병이 올 것을 말하고 기다리기로 하였다.
 한편 주처의 명으로 양왕에게 구원을 청하러 떠났던 병사는 운 좋게 한군의 에움을 벗어나 양왕의 영채로 가서 위급함을 말하고 구원을 청했다. 그러자 양왕은 단번에 고개를 흔들며 말하기를
 “주장군은 지용이 뛰어난 맹장이다. 나의 도움이 없어도 잘 빠져나올 것이다. 나의 수하 장수들은 모두 용열한 자들뿐이니 어찌 주장군을 구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염려하지 말고 물러가 쉬어라.”
 양왕의 냉정하고 매몰찬 말에 장사 부인이 곁에 있다가 바른 말로 아뢰기를
 “주처가 크게 곤경에 빠졌나 봅니다. 지금 구하지 않으면 반드시 용장 하나를 잃고 말 것입니다. 그리되면 이후에 오는 장수는 대왕의 명을 좇아 앞으로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옹주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속히 구원병을 보내서 주장군을 구하십시오. 그렇지 아니하면 옹주성도 잃게 될 것이며 나라의 막중대사를 그르치게 될 것입니다.”
 “저 못된 주처라는 위인이 적과 부딪쳐 보기도 전에 제 힘만 믿고 장담하며 나의 수하 장수를 업신여겼소. 그리고 일찍이 내가 낙양에 있을 때는 제 강직함만 내세워 나를 탄핵한 일도 있소. 내가 구원병을 보냈다가 실패하는 날에는 공연히 패전의 누를 함께 입게 될 것이니 내가 응하지 않는 거요.”
 

양왕이 옛 일을 들추어 주장군의 구원을 거부하자 장사 부인이 재차 간하기를
 “대왕께서 가슴속에 아무리 분기를 품었다하나 조정의 근친이시니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한병과 주장군이 일주야를 대치하였으니 쌍방 간에 몹시 지쳤을 것입니다. 새로운 군사로 들이친다면 한병은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적이 패한다면 모든 공은 대왕께로 돌아갈 것입니다. 부디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생각을 고쳐주시기 바랍니다.”
 양왕 동은 한번 가진 주처에 대한 원한을 고치지 않았다. 그는 끝내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주처는 경주호 바닥에서 밤을 새우며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렸다. 오전 내내 눈이 빠지게 기다렸으나 구원병은 오지 않았다. 주처는 구원병이 올 것을 단념하고 호수 가장자리를 향하여 나아갔다. 그러자 어디에 숨어 있었던지 밤새 잠잠하던 한군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갑자기 사방언덕에서 화살이 날아와 순식간에 모든 말을 맞추어 쓰러뜨렸다. 말이 죽자 모든 장졸이 급기야 보병으로 변하고 말았다. 심지어 주처의 말도 죽어버렸다. 주처도 화살 4개를 맞았다. 군사들은 연달아 화살을 맞고 푹푹 쓰러져 죽었다. 주처는 혼신의 용력을 다하여 호수가 언덕위로 올라섰다. 부장 금면이 뒤를 따르고 수하 장졸이 연이어 뒤를 따라 기어 올라왔다. 천신만고의 노력으로 언덕위에 올라 주처는 부장 금면에게 의미심장하게 말하기를.
 “그대는 요령껏 이곳을 벗어나 곧장 낙양으로 가라. 조정으로 가서 오늘날 우리 모두가 당한 이런 일을 남김 없이 황제에게 주달하고 양왕의 비열한 처사를 규탄하라. 나는 이곳에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싸우다가 죽겠다.”
 “으으흑 아니 됩니다. 소장도 장군과 함께 여기 남아 싸우겠습니다. 그래서 죽으면 원귀가 되어 양왕 동을 저주하겠습니다.”
 “아니다. 그대가 진정 충절을 아는 장수라면 여기서 나와 함께 분사할 것이 아니라 이 원통한 죽음을 조정에 주달하여야 한다. 나의 죽음은 양왕 때문에 비롯된 것임을 그대가 알 것이다. 어서 바삐 떠나라. 그래서 양왕의 죄를 만천하에 밝히고 다시는 이 나라에 이와 같은 비열한 위인이 나타나지 않도록 교훈이 되게 하여야 한다.”
 주처의 비장한 말에 부장 금면은 할 수 없이 울면서 주처를 경주호반에 남겨두고 6명의 수하를 이끌고 헤어졌다. 한군의 포위망은 생각보다 더 단단했다. 결사적으로 포위망을 뚫고자 힘껏 싸웠으나 원통하게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장렬하게 모두 죽었다. 주처는 금면이 멀리 떠나는 것을 보고 남은 10여 명을 이끌고 앞에 보이는 한군과 육탄전을 벌렸다. 말 한 필도 없는 그들의 마지막 선택은 육탄전뿐이었다. 그러나 진조의 제일 용장도 힘을 쓰지 못했다. 그것은 이미 독자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주처는 어제 석식을 했을 뿐 지금까지 먹는 것이 없었다. 꼬박 1주야를 굶주린 몸으로 화살 4개를 맞고 보병의 흉내를 내어 싸워야 하니 어찌 힘인들 쓸 수가 있겠는가.
 ‘아아! 원통하구나! 서럽구나! 부끄럽구나!’
 

대진의 맹장 주처는 조개의 예리한 창에 옆구리를 찔려 맥없이 퍽~ 하고 쓸어져 버렸다. 그리고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이 싸움에서 주처를 따라 나섰던 1만군 가운데 살아남은 자가 기백 명에 불과했다.
 ‘진조와 한실의 전투에서 맹장 주처가 거느린 1만군이 함빡 죽었다.’
 대장군 주처가 이끈 1만군이 전멸 당하고 뒤에 남은 3만군은 주처가 전사하자 목을 놓아 통곡했다. 그리고 하나 같이 양왕의 휘하에 들기를 거부하고 죄다 낙양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그러나 양왕은 달아나는 병사들을 붙들지 않고 방관해 버렸다. 지독한 뚝심의 사나인지 냉혈한인지 역사가 판단할 일이다.
 한장 만년은 주처를 완벽하게 폐사시키고 곧 제갈수지와 장맹손 두 군사를 찾아갔다. 사실 이 싸움의 승자는 힘이 아니라 머리였기에 만년은 두 군사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다음 전투사업을 상의하려고 간 것이다. 그래서 만년이 두 군사와 숙의한 결과 이 승세를 그치지 않고 몰아가 옹주성을 겹겹이 에워싸기로 했다.
 ‘쥐새끼 한 마리 새지 못하게 철통같이 에워싸라!’
 

한군은 완전에 가까운 포위망을 쳤다. 그래서 성 밖 원근의 백성들은 갑자기 성안과 왕래가 끊어지자 불안과 공포에 떨며 마음마저 붕 떠서 멘붕이 되어 갈팡질팡했다. 이런 백성의 형편을 간파한 장맹손 군사는 곧 군령을 엄하게 내려 추호도 군사들이 백성을 약탈하고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단속하였다. 그리고 곳곳에 방을 붙여 백성을 안정시키고 장수들을 시켜 그들을 무휼케 하였다. 그 결과 백성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며 한군을 믿게 되었다. 하루는 무명소졸이 백성의 집에 들어가 말을 탈취하였다. 장빈이 보고를 받고 당장 그를 잡아다 목을 베어 원문에 효수했다. 그로부터 군기가 엄정하게 서서 백성들은 개나 닭 1마리도 잃은 일이 사라졌다. 그로부터 짐승조차 한군을 두려워하지 않고 피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엄정한 군율이 존재했기 때문에 한실 중흥이 빛이 바래지 않고 진척되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양왕 동은 한군에 의해 옹주성이 포위되자 다급한 끝에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땅굴을 파서 사자를 낙양으로 보내 급보를 알리게 했다. 백치황제 혜제는 양왕의 급보에 크게 놀라 당장 중신을 모아서 대책을 세우고자 먼저 진준에게 하문하기를
 “짐이 경의 말을 듣지 아니하여 낭패를 당하였소. 대장군 주처의 죽음은 싸움의 결과가 아니고 사마동의 사사로운 원한이 빚어낸 비극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진실로 애통하기 짝이 없구려. 모두가 짐이 어두운 탓이니 경은 짐을 허물치 마오.”
 중신들은 주처가 전사했다는 말을 듣자 경악하며 눈을 크게 뜨고 서로 수근 거렸다. 이에 진준이 앞으로 나와 말하기를
 “소신의 충성된 말을 황상께서는 가납치 않으시더니 나라의 동량을 잃었습니다. 이는 곧 이 나라의 손실이고 크나 큰 불행입니다.”
 “짐이 후회막급이나 이제 와서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그보다 지금은 옹주성이 위급하다고하니 속히 구하지 않으면 더 큰 손실이 아니겠소. 경들은 어서 좋은 계책을 말해 보오.”
 

혜제가 아주 불안해하며 속마음을 털어내어 말하자 사공 장화가 나와 아뢰기를
 “전번에 진중서가 진언한 대로 이제 강적을 막을 장재는 사마 맹관밖에 없는 줄 압니다.”
 “짐이 그 말을 기억하고 있소. 그럼 경이 서둘러서 맹관을 즉시 입궐토록 조처하시오.”
 “하오나 맹관은 이미 10일 전에 양태부의 영으로 진주성으로 부임하는 길에 올라 지금은 낙양을 떠나고 없사옵니다. 속히 비마를 보내서 불러들이옵소서.”
 혜제는 장화의 말을 듣자 깜짝 놀라 양준을 보고 꾸짖기를
 “지난날 중신이 입을 모아 맹관은 낙양과 궁성을 지켜야 된다고 하는 것을 경도 들어서 알 것이오. 헌데 어찌하여 짐과 상의도 없이 경은 맹사마를 외지로 내쳤단 말이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소신 역시 심려하는 바가 있어 맹관을 진주성으로 보냈나이다. 지금 반적의 세력이 강성해 져서 특별히 맹관을 보내어 서역을 진압토록 조처하였사옵니다.”
 혜제는 양준에게 더 이상 추궁치 않고 급히 조칙을 내려 맹관을 다시 낙양으로 부르게 했다. 맹관이 조칙을 받고 보름 만에 낙양에 당도했다. 그 동안 혜제는 조급증이 나서 대신들을 달달 볶아대었다. 이럴 때 같다면 백치황제가 아니라 현철이 철철 넘쳐 보이기도 했으나 기실은 그 배후에는 가남풍이 백치황제를 조정하고 있었기에 그리 보였을 것이다.<계속>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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