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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순간은 오직 나의 시선이 귀한 삶에 방점이 찍혔을 때만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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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1-11

세상은 서구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동양적 생활방식과 음식 문화를 도외시하고 서구화의 바람을 타고 카페가 동네마다 우후죽순 생겨나며 병원과 음식점이 즐비한 공간에서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잘 들여다보면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에서 출발하여 먹거리로 인한 질병을 얻어 병원에 안착?하기까지의 길거나 짧은 동선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생명은 자연이다.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의 전부이기도 하다. 생명을 다루는 사고방식이 기존의 방식에서 서양의 방식으로 바뀌면서 우리의 삶은 급변하는 속도에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듯 보인다. 맹목이란 눈이 멀었다는 뜻이다. 눈이 멀면 사물을 제대로 파악할수 없다. 눈이 머는 방법도 매우 다양하다. 우리는 목하 매스컴에 의하여 눈이 멀고 혀가 행복해 하는 음식에 의하여 눈이 멀고 잘못된 생활방식에 의하여 눈이 먼다. 교육을 받으면서 체계적으로 눈이 멀고 습관에 의하여 눈이 먼다. 공부를 게을리해서 눈이 멀고 알지 못해서 눈이 먼다. 눈이 멀면 사람은 편견과 선입견 덩어리가 된다. 특히 음식에 관한 편견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고방식이나 가치관과 다를 바 없이 강화되게 되어 있다.

 

▲ 이서영     ©브레이크뉴스


몸을 사유해야 할 시간이다. 음식은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몸이 맑으면 마음이 맑아진다. 마음이 맑지 않다는 것은 몸이 맑지 않다는 것이다. 몸이 맑지 않다는 것은 늘 질병을 끼고 산다는 것이다. 질병이 틈입하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고 원인이 있을 것이다. 원인은 결국 음식과 몸을 바라보는 나의 편향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나의 인식이 깨어 있지 않고 올바르지 않으면 나는 몸이 원하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혀가 맹렬히 좋아하는 음식으로 기울게 된다. 혀란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혀는 맛에 민감하다. 맛이란 달고 시고 짜고 맵고 쓴 맛을 느끼는 일종의 '감정'이다.


[마음밥]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같은 방식의 발화가 계속되면 뇌에 동일한 신경 화학 물질과 동일한 신경 펩티드가 분비된다. 이것은 뇌에서 몸의 각 부분으로 재빨리 전달되고 그러면 동일한 화학물질들이 몸을 물리적으로 다시 바꾼다. 몸은 그것을 '감정'을 통해 더욱 깊이 기억하도록 훈련된다."

 

말하자면 맛에 대한 '감각'은 반복된 경험을 통해 곧 한 인간의 '감정'의 일부분이 되어 버리고 한 인간의 몸의 구석구석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세밀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세계란 의지와 표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우리 눈에 드러나보이는 세계가 의지와 표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다. 표상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세계를 말한다. 표상은 사실은 객관적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것은 무슨 말일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나의 의지가 겉으로 드러나 있는 세계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으며 또한 반드시 인과율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다.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있는 것이다. 세상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과율의 근거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운용되고 계속되어지는 것이다.

 

작금 21세기는 질병의 세기인 것처럼 보인다. 너나 나나 할 것없이 작고 소소한 질병들을 몸에 장식처럼 줄줄이 달고 다닌다. 가끔은 두통에 시달리고 가끔은 치통에 시달리고 피부에 염증이 생기고 배가 너무 아파 뒹굴뒹굴 굴러다닌다. 위에 궤양이 생기거나 귀에 이명이 생기거나 배가 볼록 나오거나 너무 살이 찌거나 소화가 안 되어 더부룩하거나 온갖 종류의 암에 걸려 죽음 직전에 이르기도 한다. 신파드라마를 보면 21세기에도 여전히 주인공은 아프고 병에 걸려서 먼 이국땅으로 떠나가기도 한다. 아름다운 이야기 속 질병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겉모양이 아무리 아름답고 애틋해도 먹거리에 대한 노예로 혹은 습관적인 쓰레기음식 선호를 지닌 채 살고 있다면 결국 그는 자신의 삶을 방기한 책임, 무책임하게 자신의 삶을 운용한 것에 대한 최종적인 결과물을 스스로의 어깨에 짊어지고 마지막 책임까지를 져야 맞는 게 아닐까? 그것을 사랑으로 포장하고 애틋함으로 슬픔으로 포장한다. 포장지를 벗겨보자. 그 속에 무엇이 드러날까? 잘못된 식습관 또는 잘못된 인식.


외연이 지나치게 확장된 시대. 먹거리들이 온갖 화려한 외피와 향기를 가지고 사람들을 자극한다. 어려서부터 먹거리의 거대한 영향력에 대해 무지한 부모들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먹거리 습관에 의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길들여져 온 아이들은 결국 먹거리의 또다른 노예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소박한 밥상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온갖 설탕으로 만들어진 음식에 행복해 하고 과도하게 많이 먹는다. 위는 쉴 시간이 없고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거나 너무 맵거나 '너무'한 음식들로 끊임없이 위와 장을 혹사시킨다. 이렇게 과중한 노동을 쉬지 않고 하게 되면 지치고 병들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에너지를 쏟을 공간도 없는데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먹으면서도 운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 하루 세끼 외에도 끊임없이 간식들이 인간의 몸 속으로 쳐들어온다. 잠자는 동안에도 위와 장은 쉴 틈이 없다. 위와 장을 무리없이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물과 산소가 필요하지만 몸을 제대로 통찰한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으므로 온갖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유일한 방편으로서 무언가를 쉬지 않고 먹어댄다. 소화불량이나 과식, 식품 첨가물인 온갖 화학물질들은 면역 체계를 교란시키고 내성을 약하게 만든다. 건강이 담보되지 않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성실하게 운용한 결과물로서 우리는 결국 온갖 질병의 산실이 되는 것이다.


띠라서 내가 지금 몸이 좋지 않다면 그것이 선천적이라는 원인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몸뚱이의 주인인 내 탓이다. 내가 만든 결과물로서 나는 건강하거나 아프다. 건강한 몸은 건강한 마음이라는 말이고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진다는 뜻이며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삶의 중심을 나의 몸과 마음에 두고 나의 삶에 둔다면 삶을 운용해가는 책임 또한 온전히 나에게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1920년 지구별에 도착한 김형석 교수는 "일할 수 있고 타인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으려면 건강해야 한다. 하지만 건강은 한 순간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80, 90대의 건강은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60, 70대에 만들어지고 60, 70대의 건강은 50대부터 쌓여서 결정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건강은 한순간의 결정이나 결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규칙적이고 의식적인,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저 높은 곳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인간은 한 번에 한 생을 산다. 한 번 태어나 여러 몫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한 번에 한 생을 살기 위해서는 영혼의 베이스캠프인 '몸'이 반드시 필요하다. 몸은 존재의 근거이며 나라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근저인 것이다.


김형석 교수처럼 90이 넘어 100세를 향해 가는 사람에게 건강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 혹은 세 번씩 수영을 한다. 몸이 마음과 손등과 손바닥처럼 붙어 있기 때문에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게 되어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임을 안다. 몸을 위하여 음식을 들여다보고 운동을 하고 그리고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안다. 그리고 체계적으로 시간과 정성을 들여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나'를 돌본다. 김형석 교수는 생각할 것이 있으면 앉기 보다는 서서 하고,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2층인 집에서는 걸어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몸을 편하게 하는 것은 건강하게 한다는 것이지 게으르게 운용한다는 뜻이 아니다.


먹거리를 들여다 보자. 몸의 유기적 구조를 들여다보자. 우리가 먹는 음식이 몸 안에 들어가 어떻게 운용되는지 하나하나 차근차근 공부해 보자. 몸이 없으면 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몸 건강을 위해 감정이 건강해야 한다. 감정이 건강하려면 감정이 풍요로워야 한다. 풍요로운 감정은 풍요로운 감성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감성이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많이 보고 느끼고 배우고 성찰하는 과정에서만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삶의 진리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무언가 큰 일을 하고 싶다면 먼저 내 몸을 들여다보자. 먼저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들자. 사랑하고 싶다면, 행복하고 싶다면, 꿈을 이루고 싶다면, 걷고 싶다면, 뛰고 싶다면, 손잡고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를 오래 들여다보고 싶다면, 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그 아이의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인생을 2막, 3막 신나게 살고 싶다면 먼저 몸을 들여다보라. 몸을 들여다 보려면 먼저 내 입 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들여다보라. 음식에 대한 성찰 없이 우리는 단 하루도 건강하게 살 수 없다. 그것은 사소하지만 가장 귀중한 진리이다.통찰의 순간은 오직 나의 시선이 귀한 삶에 방점이 찍혔을 때만 가능하다. ebluenote@hanmail.net

 

*필자/이서영. 북카페 <책읽어주는여자 블루노트> 주인장.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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