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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쌔려 죽일 죄인 놈을 잡을 묘수를 생각해 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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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복 소설가
기사입력 2018-02-10

▲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조정에서 황상의 슬하에서 국사를 다루는 사람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을 가죽 신발이 다 달아 없어지도록 뛰면서 엄히 지키고 주변 사람을 단속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늘 외세에 의해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부패나 시기 질투로 망가진다는 사실을 증명해 왔다. 아래 사람이 상전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가 약점을 잡아 밀고를 해서 중대사가 들통이 나서 대사를 망친 일은 비일비재하였다. 지금 여기에서도 밀담을 들어 사태가 급변하고 엄청난 정변이 일어나게 되었다. 역사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나 진조의 실권자 가황후를 정점으로 하여 인사태풍이 불고 간 후의 후유증이 탈을 낸 것이다. 아직은 불평과 불만이 수면 아래 있어 잠잠한 듯 보이나 조정안에서는 조금씩 모략중상과 같은 음모가 수면 위로 드러날 조짐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병권을 두고 일어난 암투가 진의 조정에 회오리바람을 몰고 올 것인데 그 시작이 밀담을 엿듣는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위관의 부중에 수반 호우아가 온 신경을 곤두세워 위관과 여남왕의 대화를 엿들었다. 똑 부러지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다만 초왕 위를 외지로 내치려는 음모만은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호우아는 평소 여남왕 양의 오만불손한 태도에 반감을 갖고 비위에 거슬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모시는 태보 위관을 생각해서 여남왕의 행동거지를 보고도 참고 견뎌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중추절이 되자 온 장안이 축제 분위기로 들뜨게 되었다. 저녁 무렵 호우아의 아내는 달맞이를 하려고 종자와 함께 동산위로 올라갔다. 둥근 달이 밝게 비친 동산에는 이미 수많은 청춘남녀들이 나와서 한가위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여기저기 장막을 치고 여러 패의 벼슬아치들이 술자리를 벌여놓고 흥겨워하고 있었다. 호우아의 아내 꽃다운 취련은 조심스럽게 달구경할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어느 장막 앞을 지날 때 한 사내가 덥석 손을 잡아끌어가며 희롱하기를
 “여보 낭자, 이리 와서 술 한 잔 따라 주시구려. 중추가절 밝은 달 아래 절세가인이 없으니 술맛이 나지 않는 구려. 아하하하.”
 

취련은 깜짝 놀라 손을 빼내려고 하였으나 장정의 힘을 당할 수 없어 그만 장막 안으로 질질 끌려가고 말았다. 장막 안에서 술을 마시던 5명의 사내들은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그 중 한 사내가 취련에게 희롱하기를
 “허어. 절세가인인데 어떤 사내인지 몰라도 이런 미인을 끼고 살자면 돈푼깨나 들겠네.”
 “히야. 아문장 나리의 솜씨가 대단해요. 저런 미인을 약속대로 모셔왔으니...”
 “자, 저 어른께 한 잔 따르시오. 낭자를 모셔온 저 어른은 바로 태재...”
 “쉿 말을 그쳐!”
 

취련을 끌어온 사내는 얼른 손짓으로 말하려던 사내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금방 굳은 표정으로 변하더니 동료들을 힐책하였다. 바로 이 틈을 타서 취련은 날쌔게 몸을 빼어 장막을 나와 사람이 많은 곳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취련을 잡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취흥이 깨어져 멀건이 바라볼 뿐이었다.
 처음 취련을 끌어들인 사내는 태재 여남왕 부중의 아문장 이용이었다. 그는 동료와 수하 몇을 데리고 평복차림을 하고 동산에 올라 달맞이 술추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용은 ‘추월명주(秋月名酒)는 월하미인(月下美人)이 따라야 한다.’ 고 객기를 부렸다. 그리고 그런 시를 본인이 읊조리고 보니 가만히 있기가 민망해서  이용 자신이 미인을 구해오겠다고 장담한 바람에 취련을 장막으로 끌어온 것이다. 알고 보면 어디까지나 취흥에서 저지른 작은 실수이었다. 그러나 이용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특히 동료가 태재라고 하던 말이 뇌리를 스쳐가며 머리를 크게 짓눌렀다. 그러나 안타까운 자기 마음을 위로하고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괜찮겠지. 아무도 모르겠지. 아무런 탈도 나지 않겠지. 내가 말을 중도에서 끊었는데... 만약 태재라는 그 한마디 말 때문에 이 일이 탄로가 난다면 나는 끝이야. 태재의 체면이 있지 않는가. 대왕께서 용서하지 않을 거야. 용서는 무슨 용서여. 죄인이 될 거야. 내가 죽일 놈이야. 태재 부중의 아문장이 감히 여염집 규수를 희롱하다니...아냐, 희롱한 것뿐만 아니야. 납치를 했지. 그래 납치야. 납치, 아아! 미치겠다. 미쳐... 내가 죽일 놈이야.’
 이용은 취련이 달아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깨어질 것만 같았다. 술맛이 쓰디쓰게 느껴졌다. 술맛은 천길만길 달아나 버렸다. 달맞이고 달구경이고 뭐고 모두 싫어졌다. 그래서 동료들을 재촉하여 부산하게 술자리를 걷어치우고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호우아의 아내 취련은 허겁지겁 도망쳐서 대문 앞에 이르자 그만 긴장이 풀려 혼절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함께 갔던 종년이 변고를 알려와 찾아 나섰던 하인이 그녀를 대문 앞에서 발견했다. 그녀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희고 맥이 풀려서 산송장을 방불케 했다. 그런 그녀를 안으로 업어다 눕히고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등 간단한 응급처치를 하자 깨어났다. 정신을 차린 취련이 좌우를 둘러보니 자기 집이고 가족들임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어 쉬었다. 이런 사태를 보고 하인이 태보 부중에서 근무 중인 호우아에게 알린다고 하자 취련이 만류했다.
 

하인과 종년이 물러가고 취련이 보료에 누워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분하고 원통했다. 양갓집 주부가 외간 남자에게 손목을 잡혔고 장막까지 끌려가 뭇 사내에게 희롱을 당했으니 여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취련은 가만히 일어나 지필묵을 챙겨왔다. 그리고 한자 한자 써 내려갔다. 그것은 남편에게 남기는 유서였다. 유서를 다 쓰고 난 취련은 장롱 깊숙한 곳에 숨겨둔 비상이라는 독약을 꺼내었다.
 

다음날 아침 호우아가 당직을 마치고 집에 와보니 아내 취련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었다. 호우아는 떨리는 손으로 아내가 마지막 남긴 유서를 읽어보니 눈에 남는 것은 ‘태재 부중의 아문장.’ 이라는 7자 뿐이었다.
 호우아는 원수를 갚겠다고 이를 부드득 갈았으나 원수를 찾는다는 것이 막연했다. 그것은 태재 부중에는 아문장이 10명도 넘었기 때문이다. 호우아의 생각은 번민이 되고 번민은 불면이 되고 불면은 다시 사람을 반쯤 미쳐버리게 하였다. 호우아는 식사를 전폐하고 간신히 아내의 장례를 치렀다. 장례를 마치고 호우아가 보료위에 누워서 아내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찔끔거리고 있는데 종년이 점심상을 가져왔다.
 “얘야, 너는 너희 아씨와 함께 갔으니 무슨 할 말이 없느냐?”
 “주인님! 일을 당하자마자 집에 알리려고 뛰었기에 아무런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년이 죽일 년이네요. 흐흑 주인어른.”
 “그래. 나가 봐라. 내가 그 쌔려 죽일 죄인 놈을 잡을 묘수를 생각해 낼 테다.”
 

종년이 나가고 몸부림치면서 애를 태우다가 불현 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그것이다. 그것이여.’
 얼마 전에 여남왕과 위관이 수작하던 일이 생각났다. 호우아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초왕의 부중으로 발을 옮겼다. 그리고 초왕 위를 독대하고 사실을 다 털어 놓자 초왕 위는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늙은 여우같은 도적놈이 너무나도 질투심이 심하구나. 내가 요즘 들으니 동안왕  요도 죄 없이 그들에게 내침을 당했다더니 거짓이 아니었구나. 이제 나를 겨냥하다니... 내가 가만히 있나 어디 두고 보자.”
 

초왕 위는 호우아에게 후한 상을 주고 그 밤으로 동안왕 요의 사저를 찾아갔다. 두 왕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서 잡인들을 멀리 물리고 은밀히 마주 앉았다. 먼저 찾아간 초왕 위가 말문을 열기를
 “우리들이 사직을 위해 양준 도당을 제거하고 형님께서 6위를 관장하시어 사직이 안정되어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런데 두어 달 전에 6위의 관장을 제게 맡기기에 의아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제 판단이 그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알고 보니 여남왕과 위관의 농간이었습니다. 이번에 꾸민 농간은 저를 외직으로 쫓아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괘씸하나 저로써는 대처할 방책이 없습니다. 부디 묘책을 일러주시면 제가 형님께서 당하신 설분까지 되갚아 주겠습니다.”
 

동안왕 요도 처음에는 자신이 과실 없이 전보되자 몹시 불쾌하였으나 성품이 온화한 고로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초왕 위가 토해 놓는 말을 들으니 분하기 짝이 없었다. 따져보면 자기는 천자의 4촌이지만 초왕 위는 친아우가 아니던가. 동안왕 요는 한참을 생각해 보고나서 가만히 하나의 계책을 일러주기를
 “기선을 잡아 확실히 눌러버려야 하오. 먼저 가황후에게 여남왕 양이 작당하여 황후의 추행을 비방하고 있다고 전하시오. 그리고는 여남왕 양 스스로가 상나라 이윤이나 한나라 곽광이 되어 암군과 음탕한 황후를 갈아치워야 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고 아뢰시오. 그리되면 가황후는 지난날 자기가 저지른 과실 때문에 당장 초왕의 말을 들을 것이오. 그래서 명이 떨어지면 병권이 초왕에게 있으니 시각을 지체치 말고 여남왕 양과 위관을 주륙하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오.”
 초왕은 기묘한 계책을 얻자 몹시 기뻐하며 동안왕의 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밤이 깊은 데도 입궐하여 가황후에게 독대를 청했다.

 이날 밤 혜제는 가후의 침실로 찾아와서 오래간만에 부부가 동침하게 되었다. 그러나 혜제는 가후에게 기쁨을 주지 못했다. 혜제가 무기력해서가 아니었다. 정력이 딸려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는 보양 보신하는 천하 명약을 다 구해먹어 정력이 팔팔했다. 그리고 이제 팔팔한 40대 사나이로 후궁도 하나뿐이었다. 가후가 두려워 궁녀도 가까이 못했다. 이 모든 말은 혜제가 정력이 뛰어나지는 않으나 정력이 부실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그런 정력이 원만한 혜제이나 천하의 색골단지 가후를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 왜냐하면 가후는 명물명기를 타고났던 것이다. 100명의 사내를 거느리고도 남을 음기를 가지고 있었다. 가후는 자기만 만족을 채우고 깊이 잠들어버린 혜제가 몹시 원망스러워 중얼거렸다.
 ‘몹쓸 사람. 자기 미워...’
 

가후는 이렇게 입 성구를 하면서 잠들어 있는 혜제를 바라보면서 가슴팍을 쓸어내렸다. 가후가 혜제를 만나는 밤은 이와 같이 원망만을 쌓는 밤이 되었다.
 한때 가후는 젊음을 불태울 곳이 마땅치 않아 황후의 체면을 구겨가면서 사음(邪淫)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사건을 불러일으키게 되자 입술을 깨물고 단념했다. 모든 것이 흘러간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 뒤에 가후는 규방의 일을 버린 대신 수렴청정이란 발을 치고 정사에 몰두하였다. 그래서 권력의 진한 맛으로 여자의 뜨거운 가슴속 깊은 맛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밤과 같이 혜제가 찾아와 불을 질러 놓고 꺼주지 못하면 질기게도 짜증나는 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가후는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여자의 몸에 불을 붙여서 활활 타오르게 하여 무아경지의 세계로 끌고 가서 태워 죽여 버릴 수 있는 남자가 그리웠다.
 ‘아아! 나를 내 몸을 충분하게 만족 시켜 줄 남자는 없을까? 그리워라. 그 희열이여. 그 몸부림이여. 그 뜨거운 입술이여. 끈끈한 땀이며 사내의 땀 냄새여!!’
 

가후가 반미치광이가 되어 자기 가슴의 탄력 있는 대를 쥐어뜯자 아래 쪽 깊은 샘에서는 꿀물이 펑펑 솟아나고 있었다. 여자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이건만 그 샘물의 풍성함이 오히려 형벌인양 가후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계속>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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