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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이 참형을 집행하는 것을 보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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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복 소설가
기사입력 2018-02-12

 

▲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대륙풍운에서 진조의 황족인 사마씨 8왕 간의 권력투쟁으로 벌어진 싸움을 골육상쟁이라 한다. 따지고 보면 이 8왕 간의 골육상쟁이 서진의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것이다. 서진은 도읍을 낙양에 두었으나 골육간의 전쟁과 석늑과 유요의 침입으로 장안을 위시한 여러 곳으로 몽진을 다니다가 8왕 간의 권력다툼에 국력이 쇠잔해져서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이와 같이 서진을 멸망케 한 골육상쟁은 오랜 기간 정치와 군사를 크게 흔들어서 통치기반을 약화시켰다. 그리고 이 권력다툼에서 반드시 승리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여러 왕들은 이민족인 흉노족의 군사까지 끌어 들이므로 해서 결국 서진은 멸망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를 전개하기 전에 서진국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면 사마염의 조부인 사마의가 정적인 조상을 물리침으로써 정권을 획득하였다. 그 후 사마일족은 조위의 3대 황제 조방과 4대 황제 조모를 폐립시켰다. 조위의 마지막 황제인 원제 조환의 대에 이르러서는 사마씨의 수장인 사마소가 승상에서 진공(晉公)을 거쳐, 진왕(晉王)으로 진봉(進封)되었다. 그런데 사마소가 특별한 것은 그에게 황위에 오를 기회는 많이 주어졌으나 그는 주나라 주공과 위나라 조조의 선례를 따르고자 황좌에 오르지 않았다.

AD265, 사마소가 죽고 진왕직을 승계한 사마염은 조환을 겁박하여 선위를 요구해 선위하게 하여 받고 위왕 조환을 진류왕(陳留王)으로 봉하며, 낙양에서 국호를 진()으로 바꾸고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진은 혜제에 멸망하므로 훗날 사마예가 건업에 건설한 동진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마염이 건설한 진을 서진이라 부른다.

 

서진은 AD280년에 명장 두예(杜預)와 왕준(王濬)의 분투로 손호가 다스리고 있던 오나라를 멸망시키면서 60년간의 삼국정립의 시대를 마감시켰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사마염은 처음에는 성군(聖君) 노릇을 하며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나 말년엔 부패한 정치를 하여 서진몰락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 이후에 사마염의 뒤를 이은 진혜제 사마충의 황후 가충의 딸인 가남풍이 정권을 잡고 전횡을 일삼아, 8왕의 난의 화를 키워 서진 왕조가 막을 내렸다.

그러나 8왕의 골육상쟁 이후 목숨이 살아남은 황족 가운데 낭야왕 예가 강남으로 피신하여 나라를 다시 일으켰지만 과거 서진이 차지한 화북영토는 되찾지 못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동진이다. 동진이란 건강을 도읍으로 하여 대진국의 명맥을 유지했다.

서진이 망한 후 화북지방에는 흉노족 등이 세운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였고 훗날 수나라에 의해 통일될 때까지 약 250년 이상 전란의 시대를 겪었다.

 

그럼 원수악수로 질기게 싸워서 몸통인 서진을 망하게 한 사마씨 8왕을 살펴보자.

여남왕(汝南王) 사마양(司馬亮) - 무제 사마염의 숙부, 선제 사마의의 5). 초왕(楚王) 사마위(司馬瑋) - 무제의 5. 조왕(趙王) 사마윤(司馬倫) - 무제의 숙부 사마의의 9. 제왕(齊王) 사마경(司馬冏) - 무제의 조카 무제의 동생인 제헌왕 사마유의 아들. 장사왕(長沙王) 사마애(司馬乂) - 무제 사마염의 16. 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穎) - 무제 사마염의 6. 하간왕(河間王) 사마옹(司馬顒) - 무제 사마염의 6촌 사마의의 동생인 안평헌왕 사마부의 손자. 동해왕(東海王) 사마월(司馬越) - 무제 사마염의 6촌 사마의의 동생인 사마규의 손자 고밀문헌왕 사마태의 차남이다.

 

서진 1대 황제 진무제(武帝)는 건국 후 황족의 권위와 국가의 힘을 과시하고 지방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아들 조카 등 황족을 왕()으로 임명하여 군대와 조세권 등을 주고 해당 지방을 통치토록 했다. 물론 왕 지위의 세습도 허용했다. 그러나 무제가 죽은 후 중앙정부의 황권(皇權)이 약화되면서 지방 번왕들은 그들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앙정부에 간섭하는 도전 세력이 되어 정치혼란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다.

 

2대 황제 진혜제(惠帝, 사마충)는 암우(暗愚)한 제왕으로 무제가 죽고 즉위하자마자 계모인 황태후 양씨가 정치에 하여 황태후의 친정인 양준(楊駿) 일가에게 대부분의 권력이 주어졌다. 이에 정치적 야심이 있는 가황후(賈氏, 가남풍)는 실권을 잡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사실 무제는 황태자 사마충(혜제)의 무능함에 실망하여 황태자를 제왕 사마경으로 바꿀 것을 고려했다. 그러나 이 기미를 미리 알아챈 신하 가충(혜제의 장인)이 무제에게 황태자에 대한 능력을 테스트해 보도록 권유하였다. 그리고 미리 답을 황태자에게 주고 무제의 의심에서 벗어나 황태자 지위를 유지했다. 그런 연유로 해서 가씨 집안이 혜제에게 기여한 바가 공이 컸다고 볼 수 있는데 권력에서 배제됨에 따라 양씨 일족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게 되었다. 이런 기막힌 배경을 가진 진조에는 8왕 간의 골육상쟁이 시동이 걸리기 시작되었다. 이 역사적린 깊은 밤중에 초왕이 입궐하여 가황후와 독대를 원하므로 궁녀가 황후에게 아뢰는 소리가 초왕의 귀에 까지 들려는데

황급을 요하는 일이라면서 초왕께서 마마를 뵙자고 하십니다. 지금 내전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초왕이라 했더냐.”

, 마마 그러하옵나이다.”

 

가후는 거기까지만 궁녀의 말을 듣고 가만히 초왕을 생각해 보았다.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번지며 웃음을 만드는가 싶더니 이내 지워버렸다.

젊은 사내. 씩씩한 장군! 대왕! 초왕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다가 무엇을 생각했던지 가후는 벌떡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자리옷 위에다가 가벼운 겉옷을 걸치더니

내 나간다.”

 

말하니 궁녀가 미닫이를 열어주어 발걸음을 가볍게 하여 나왔다. 그리고 궁녀에게 초왕을 내전으로 부르게 했다. 초왕을 기다리는 가후의 입가에 요염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초왕은 그런 가후 앞에 나아가 한번 머리를 조아리고 나서 조심스럽데 말문을 열기를

밤이 깊었는데 내전까지 들어와서 황공하옵니다. 다급히 아뢰올 말씀이 있기에 시각을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황공하오나 잠시 잡인을 물려주시옵소서.”

가후는 시립하고 있는 궁녀를 물리었다. 시녀가 물러가자 초왕은 동안왕이 알려준 말을 그대로 가후에게 전했다. 그 말을 들은 가후의 얼굴에는 요염함은 물러가고 언제 나타났는지 표독하기 짝이 없는 냉기가 서릿발처럼 서리고 그 차가움이 입술을 통하여 말을 만들기를

내가 진심으로 대권을 맡겨 은혜를 베풀었거늘 두 노적이 그 갚음을 원수로 한단 말인가. 괘씸한 놈 덜.”

 

가후는 분을 참지 못하여 부들부들 몸까지 떨었다. 두 주먹을 어찌나 힘껏 쥐었던지 뽀드득 소리가 났다. 그리고 가끔씩 몸부림을 치자 백옥 같은 속살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다시 독기를 뿜어내어 말하기를

그 두 노적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그냥 둘 수 없지 않소. 초왕은 무슨 방책이 있소? 어서 말해보오.”

감히 어느 존전이라고 거짓을 아뢰오리까. 큰일을 당하기 전에 먼저 손을 쓰는 것이 상책인가 하옵니다. 속히 조칙을 내려 주시오면 신이 이 밤 안으로 두 노적을 소멸하여 후환을 없애버리겠나이다.”

가후는 조칙을 내리기로 정하고 모든 일을 초왕의 자유재량에 맡기어 처리토록 하였다. 가후는 자신의 지난 추행을 들춘다 하자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분노하여 두 사람의 심복을 처리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가후 자신의 음탕이 가져온 반사재앙으로 도둑이 제 발 저린 격과 방사한 일 처리였다.

 

동안왕 요의 계책은 간단하면서도 완전무결한 것으로 대사를 결정지었다. 이제 남은 것은 초왕의 실제 행동뿐이었다. 초왕은 바로 금위부로 돌아오자 수하 장졸들을 불러 모아 영을 내리기를

금위대장군 이조는 일지군을 거느리고 태보부에 가서 위관과 그 권솔 및 도당을 모두 잡아오라. 부장 성기와 공손굉은 나와 함께 태재부로 가서 여남왕을 잡아 끌어온다. 이 두 사람은 찬역을 도모한 역도다. 여기 황제의 칙서가 있으니 모두 지체치 말고 행동하라.”

초왕의 작전은 전광석화와도 같이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여남왕과 위관은 그 밤이 새기 전에 모두 금위부로 압송되어 감금되었다. 모두 잠을 자다가 꿈 중에 당한 변이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일대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여러 중신들은 혜제를 배알하고자 서둘러서 입궐했다. 그러나 그들이 혜제를 만나기전에 초왕은 이미 여남왕과 위관을 형장으로 끌어내어 목을 베어 버렸다. 위관의 작은아들 위조와 위개 만은 어머니와 함께 외가에 가서 있었기에 죽이지 못했다. 이 날 아침에 죽은 자가 60명이 넘었다. 초왕은 형을 집행하고 이조와 공손굉으로 하여금 입궐하여 가후에게 경과를 아뢰게 하였다. 그러나 이 보다 앞서서 장화가 입궐하여 가후에게 울면서 주달하기를

마마 통촉하옵소서. 여남왕과 위관은 소신과 함께 폐하로부터 중임을 맡아 오로지 나라에 충성된 일만을 하였사옵니다. 두 사람은 추호도 두 마음이 없는 사람임을 하늘이 아실 것입니다. 부디 무고한 두 사람을 풀어 주옵소서.”

 

가후는 노신 장화의 간절한 호소를 듣자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지난밤 갑자기 초왕의 말을 듣고 내린 조칙에 대하여 후회하게 되었다. 사실 알고 보면 자신의 추행을 공박하고 다닌다는 여남왕과 위관이 미워서 조칙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순간적인 감정대로 행한 경솔한 자신이 미워졌다. 그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여남왕과 위관은 혜제와 자기 자신의 주석지신이 아니던가. 그런 소중한 두 사람을 단지 한 사람 초왕의 말만 믿고 마음대로 자유재량으로 처결하라 명했으니 말이다. 경박한 자기 자신이 뉘우쳐졌다. 그래서 장화 노신에게 가후가 조용히 말하기를

찬역의 혐의를 받은 사람들이니 일단 인수만을 거두었다가 진상을 알아본 후에 다시 선처토록 하오. 경이 몸소 초왕을 찾아가 내 뜻을 전하시오.”

 

가후는 그 자리에서 친서를 닦아 장화를 주었다. 장화가 안심된 마음으로 가후의 친서를 받아 가지고 나가려고 하는데 이조와 공손굉이 들어와 부복하고 아뢰기를

황후마마의 분부대로 여남왕과 위관의 도당을 모조리 잡아다가 목 베어 죽였습니다. 초왕께서 우선 소신들이 먼저 가서 주달하라 하셨습니다.”

뭣이야!”

아 아니 저런 일이 벌어지다니...!”

가후와 장화가 동시에 놀라고 말았다.

예 마마 모두 목을 쳐서 죽였습니다.”

 

이조는 자랑이라도 하듯이 여물게 말하자 가후와 장화는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한참이 지나고 가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기를

그래 그대들이 참형을 집행하는 것을 보았느냐?”

, 소신이 도부수를 지휘하여 형을 집행하였나이다.”

이조를 제치고 공손굉이 상이라도 받을 듯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들이 죽어가면서 남긴 말은 없더냐?”

 

이조가 머리를 조아리면서 조심스럽게 아뢰기를

태보는 웃으면서 포승을 받았습니다. 목이 달아나기 직전에는 대궐을 향하여 4번 절한 다음 내 여기서 죽어도 한은 없으나 단지 폐하와 황후를 뵙지 못하고 죽는 것이 서운하구나. 한번 뵙고 나를 깊이 알아주셨던 폐하양위께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었다. 이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여남왕은 남기는 말이 없었느냐?”

소신 공손굉 아뢰겠나이다. 여남왕은 나의 충심은 밝은 하늘에 비추어도 변함이 없도다. 내가 죽는 것은 원통치 않으나 이 나라 사직이 위태롭구나! 라고 하셨습니다.”

 

두 사람의 전하는 말을 들은 가후는 눈에 이슬이 맺히고 말문이 막혀 입을 열지 못했다. 이런 처절한 현장에서 장화는 무겁게 입을 떼어 두 장수를 물러가라 명했다. 그리고 바닥에 엎드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계속>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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