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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잊혀진 의생 이용덕 생애 최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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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객원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2-12

▲박관우 본지 객원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국내언론사로는 최초로 브레이크뉴스에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 의생(醫生)으로서 독립운동을 하였던 이용덕(李容悳)의 생애를 공개하게 된 것을 의미심장(意味深長)하게 생각한다.

 

필자는 인물을 추적하는데 있어서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편인데,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동안 전혀 몰랐던 이용덕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인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거슬러 올라가서 2018년 1월 26일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이승연(李承連)으로 검색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이승연으로 검색한 이유는 고성이씨(固城李氏) 참판공파(參判公派) 항렬로 볼 때 이승연이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의 집안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으며, 특히 대한족노동단(大韓族勞動團)과 이상룡을 연결시킬 수 있는 인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승연은 1923년 휘남현(煇南縣) 황이하자(黃泥河子)에 위치한 김봉상(金奉相)의 집에 대한족노동단 관련 문서들을 맡길 정도의 실세였다고 판단하였으며, 그러한 배경으로 이승연을 검색하였다.

 

그런데 이승연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뜻밖에 “불령자처분(不逞者處分)”제하의 일제문서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일제문서를 확인한 결과 이승연 관련 기록이 나오지 않고 동명이인(同名異人)이라 할 수 있는 이승연(李昇淵)이 나왔던 것이다.

 

일제문서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뜻밖에 이상룡 가문의 인물들이 발견되었는데 구체적으로 李象羲(李相龍의 本名)를 비롯하여 李鳳羲,李濬衡,李承和,李衡國,李承徽,李文羲 등을 확인하였는데 특히 이승휘와 이문희는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추가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3의 인물 의생(醫生) 이용덕(李容悳)을 발견한 것이 그의 생애(生涯)를 연구하게 된 최초의 출발점(出發點)이었던 것이다.

 

필자가 이용덕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그동안 브레이크뉴스에 여러차례 소개하였던 종두인허원(種痘認許員) 박승석(朴勝錫)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제3의 인물 이용덕을 조사하게 된 것인데 일제문서 내용에 서간도(西間島)에서 활동하고 있던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의 매부(妹夫) 만성(晩醒) 박경종(朴慶鐘)이 1914년 9월 군자금 모집 관계로 대구에 있는 이용덕 집을 방문하게 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용덕이 독립운동가와 교류하게 된 연유가 궁금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이용덕 관련 기록에 대한 번역을 의뢰한 결과 박경종이 방문하였던 이용덕의 집이 독립운동가들의 본거지(本據地)로 사용되었던 놀라운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의생(醫生)으로서 독립운동과 관련된 이용덕은 과연 누구인지 조선총독부 관보와 “일제강점기 의생총목록”제하의 책을 근거로 이용덕의 생애를 소개한다.

 

이용덕은 대구 출신으로서 1864년(고종 1) 6월 17일 출생하였으며, 51세가 되는 1914년 3월 30일 의생면허 1099번에 등록되었는데 안타까운 점은 의생 면허를 취득하기 이전의 50년동안의 행적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의생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의료인으로서 현재 한의사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생은 평생면허(平生免許)와 한지면허(限地免許) 의생으로 구분되었다는 것인데 평생면허 의생이었던 이용덕이 어떤 계기로 의생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그 내력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한편 이용덕은 의생면허를 취득한 이후 1917년 대구의생회(大邱醫生會) 부회장(副會長)을 역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로부터 8년이후인 1925년 6월 29일 향년(享年) 62세를 일기(一期)로 세상을 떠났다.

 

이상과 같이 그동안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용덕의 생애를 간략히 정리하였는데 필자는 특히 이용덕이 어떤 계기로 독립운동과 연관이 있었던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용덕의 집을 방문하였던 박경종이 언제부터 이용덕을 알게 된 것인지 여부를 추적하였으나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박경종(朴慶鐘)은 군자금 모집과 관련하여 이상룡(李相龍)의 당숙(堂叔) 담옹(淡翁) 이승화(李承和)를 비롯하여 이형국(李衡國),황종언(黃鍾彦),이승연(李昇淵),이헌교(李憲敎),이종태(李鍾泰) 등과 함께 체포된 이후 투옥되어 1915년 9월 20일 보안법위반(保安法違反) 사건으로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재판까지 받았으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이용덕은 발견되지 않았다.

 

여기서 거주지(居住地)를 독립운동가들의 회합장소로 사용하였던 이용덕의 적극적인 행보로 비추어 볼 때 본 사건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팩트는 판결문에 이용덕이 누락되어 있다는 것인데 과연 진실은 무엇인지 앞으로 밝힐 수 있는데 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용덕에 대한 기록은 한마디로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는데 본 칼럼은 이용덕의 생애를 복원하기 위한 하나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으며, 앞으로 새로운 행적이 발굴되면 추가로 공개할 것이다. pgu77@naver.com

 

*필자/문암 박관우.역사작가.<역사 속에 묻힌 인물들>저자.브레이크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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