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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소통 방법이 달라서 서로 반목하고 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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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권 시인
기사입력 2018-02-12

▲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이제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귀에 이상이 생긴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서로 대화를 하다가 말의 뜻을 잘 못 들었는지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을 자주 봅니다. 그렇다고 말 한 마디에 절연(絶緣)을 할 수도 없고 실로 난감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그 화만 내뿜지 않았던들 그간 그 사람에게 품었던 좋은 감정과 깊은 인연에 손상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경청(傾聽)은 상대방의 말을 귀를 기울여 주의 깊게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통(疏通)은 인간관계가 서로 잘 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더군다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조율하고 다스리는 능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38년 동안 미시간대학 총장을 지낸 J.B.에인절(재임 1871~1909)이 바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더 많은 문제를 처리해야 하는 자리에서 38년이나 훌륭하게 자리를 지킨 그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경청’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그 어려운 총장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가 은퇴할 즈음 기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에인절은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팔보다 안테나를 높이는 데 있었습니다.” 항상 아랫사람에게 나팔처럼 떠드는 것보다는, 안테나가 전파를 잡아내는 것처럼, 사람들의 의견을 잘 경청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개와 고양이가 서로 앙숙인 이유는 서로 소통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개는 반가우면 꼬리를 흔드는데, 고양이는 상대를 공격할 때 꼬리를 흔듭니다. 그래서 개는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지만 고양이는 “이놈이 나를 공격하려고 하네?”하며 발톱을 세우는 것이지요. 
 

우리의 인간관계도 바로 그 소통의 방법이 달라서 서로 반목하고 싸우며 틀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나는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었는데, 상대는 단단히 오해를 해서 갈기를 세우고 달려듭니다. 서로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이에는 이렇게 오해를 사는 일이 비교적 적습니다. 서로를 충분히 알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서로 알고 지낸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일수록 이러한 오해들이 잦기 마련입니다. 아마도 상대의 습관이나 성품이나 깊이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서로 소통하는 방법 또한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버드대 심리학과에서 실험 하나를 했다고 합니다. 농구코트에서 검은 셔츠와 흰 셔츠를 입은 선수들이 서로 농구시합을 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면서 흰 셔츠를 입은 선수들이 시합 중에 패스를 몇 번이나 하는지를 세어보라고 했지요. 
 

학생들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패스 하는 횟수를 세었습니다. 드디어 모든 영상이 끝나고 교수는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화면에 고릴라가 몇 마리 등장했는가?” 학생들은 일순간 당황했습니다. 당연히 “흰 셔츠의 선수들이 패스를 몇 번 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을 줄 알았기 때문이지요.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농구코트에 고릴라가 등장한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때 교수는 영상을 다시 틀었습니다. 그 영상에는 선수들이 시합을 하는 중간에 고릴라 분장을 한 학생들 여러 명이 코트 위에 등장해서 가슴을 두드리는 고릴라 흉내를 내며 퇴장을 하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학생들은 선수들이 패스하는 숫자만 세느라고 고릴라가 등장한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입니다. 또 다른 학생들을 대상으로 똑같은 실험을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서 알게 된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본다는 사실입니다. 평상시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사실조차도 보지 못하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서 그것이 마치 사실인양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살아온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요? 
 

말이란 이처럼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한 말일지라도 듣기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대단히 심각한 얘기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 소통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누군가의 말을 경청한다는 의미는 그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에서 시작되는 것이 경청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내는 사람은 대부분 성격에 문제가 있을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수행을 많이 하고, 지식이 많으며, 능력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인간관계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그는 인생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내 자신을 낮추고 비우며 살아야 하는 것이 경청과 소통의 지름길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 잘났다고 하는 사람이나 욕심이 가득한 사람은 사람들이 멸시하거나 싫어합니다. 그러나 간단없이 자신을 낮추고 비우며 경청과 소통에 애쓰는 사람을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 경청과 소통의 달인이 되는 비법이 있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편은 적고 적은 많습니다. 대화는 편을 만드는 일이니, 말 잘하는 사람은 대화를 못하는 사람입니다. 
 

정말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말을 마칠 때까지 듣습니다. 끝까지 듣고 말합니다. 다 들은 다음에 짧고 조리 있게 할 말을 하는 것이지요. 말하기를 너무 좋아하는 건 손해 보는 일입니다. 듣기를 좋아해야 이익이 많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말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대화를 잘하고 싶거든 먼저 마음으로 듣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한 능력은 경청입니다. 
 

말 한 마디에도 죄와 복이 왕래합니다. 그러므로 한 마디 말일지라도 함부로 하면 화가 미칩니다. 그래서 옛말에 ‘구시화복문(口是禍福門)’이라 한 것입니다. 입을 잘 쓰면 복문이지만, 잘 못 놀리면 화문이 열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지요.

*필자/김덕권.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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