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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神妙)하고 기적(奇跡) 같은 소강절의 예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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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한 사주풍수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2-12

 

▲ 노병한 자연사상칼럼니스트     © 노병한 사주풍수칼럼니스트

[노병한의 운세힐링] 송대 특히 북송시대에 소옹(邵雍,1011~1077)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16세부터 소문산(蘇門山)의 백원사(百源寺)에서 머물면서 공부를 시작했고, 북해(北海)<정지(挺之) 이지재(李之才)>를 스승으로 모시고 <하도낙서복희8천문역법>을 배워서 크게 깨우쳤다.

 

소옹(邵雍)은 유명한 역학가(易學家)로 선천학(先天學)의 창시자이다. 1077년에 67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철종 원우(元祐) 연간에 강절(康節)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이렇게 그의 시호가 강절(康節)이었기에 주로 소강절(邵康節)로 불리어왔다.

 

소강절(邵康節)의 철학은 도가(道家)사상의 영향을 받고 유교(儒敎)의 역철학(易哲學)을 발전시킴으로써 특이한 수리철학(數理哲學)이 세웠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그는 선천학(先天學)이라는 새로운 역학(易學)을 창시하고 만물은 모두 태극(太極)에서 말미암아 <변화생성>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우주만상을 <()()()()>4(四元)을 근본으로 하고 4의 배수로써 모든 사안들을 설명하였다. 그는 자신의 수리철학(數理哲學)인 상수(象數)학설에 기초한 우주관과 자연철학에 독보적인 인물이었으며 천지시간대의 1년 개벽수가 1296백 년임을 처음 밝힌 인물이기도하다.

 

소강절은 젊어서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20대의 젊은 나이에 상서의 지위에 올랐고 문장이 빼어나으며 시()를 잘 지었을 뿐 아니라 주역(周易)에 아주 밝았고 학문이 높아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공부하고 궁구하느라 20대 후반에서야 겨우 장가를 가게 되었고 결혼 후 신부와 첫날밤을 맞았으나 너무 긴장한 탓이었는지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깨어났는데, 닭은 아직 울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심심하던 차에 산가치(산대: 주역점치는 젓가락)를 뽑아 자신의 점을 치게 되었다.

 

신혼 첫날 비록 하룻밤을 잤지만 과연 자신의 아이가 잉태했을까 궁금했던 것이다. 점을 친 결과 아들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행이었지만 아직 닭은 울지 않고 날이 밝아지려면 멀었다. 그래서 그 아들의 평생운수를 점쳐보게 되었고 아들이 자기보다는 못해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살 팔자였다.

 

이어서 <내 아들이 낳을 내 맏손자의 운명>이 궁금해졌다. 점괘의 결과 그 손자도 그런대로 괜찮았고 5대손에 이르렀는데, 5대손이 중년에 이르러 <역적의 누명>을 쓰고 사형당할 수도 있는 운명이라는 점괘가 나왔다. 그 점괘 이후로 고민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소강절도 늙어 임종을 앞두게 되어 자손들에게 유언하는 자리에서 맏며느리에게 비단으로 싼 함()을 하나 내어 주면서 <앞으로 집안에 무슨 큰 일이 생기거든 이 함()을 열어 보거라만약 너희 대()에 큰 일이 생기지 않거든 네 맏며느리에게 물려주고그 맏며느리 대()에 아무 일이 없으면 또 그 다음 대()의 맏며느리에게 물려주고 하여대대(代代)로 이 함을 전하라>고 하였다. 유언은 실행되어 맏며느리에게서 또 그다음 맏며느리에게로 함()은 전해졌고그런데 5대 손부(孫婦)에게 와서 진짜로 집안에 큰 사단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5대 손부(孫婦)의 남편이 느닷없이 임금에 반역하는 역적(逆賊)의 누명을 덮어쓰고 감옥에 하옥되었다. 국법에 역적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입어 가문의 명예가 더렵혀질 수밖에 없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가문이 아예 망해버릴 순간이었기에 백방으로 구명할 길을 찾았으나 뾰쪽한 방법이 없었다.

 

일이 여기에 이르자 밤새 끙끙 앓던 소강절의 5대 손부(孫婦)가 새벽녘에 갑자기 시어머니의 유언이 생각났다. 급히 벽장을 열어 함()을 꺼내어 비단 보자기를 풀어보니 거기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지금 잠시도 지체하지 말고 즉시 이 함을 형조상서에게 전하라>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소강절의 5대 손부(孫婦)는 급히 집사를 불러 의관을 갖추게 한 후에 함()을 들려 형조상서를 찾아가서 전하라고 하였다. 낙양성 중에서도 형조상서네 집은 거리가 좀 먼 곳에 있었지만 집사는 달리다시피 하여 그 집에 당도했다. 형조상서는 마침 아침을 먹고 의관을 차려 입고 입궐을 준비하던 참이었는데 하인이 와서 아뢰기를 <소강절 선생의 유품을 가지고와서 나리를 뵙고자 청하는 사람이 왔다>고 하는 게 아닌가.

 

형조상서는 그 말을 듣고 비록 100여 년 전에 작고했지만 워낙 명망이 높은 <대정치대문장가대학자대시인>이고 특히 동서고금을 통틀어 주역에 통달하여 천지가 돌아가는 운수와 사람의 길흉화복은 물론 세상의 모든 이치를 한 손바닥에 꿰고 있었던 분의 선물을 방안에 앉아서 받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당까지 나아가 돗자리를 깔게 하고 한 쪽 무릎을 꿇고서 그 유품 함()을 받는 순간 자기가 방금 앉아 있던 사랑채가 통째로 폭삭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형조상서는 급히 함()을 열어 보았는데 함()속에는 글자 10()가 쓰인 채로 접혀진 하얀 창호지 1장만 뎅그러니 있었던 것이다.

 

놀란 눈으로 형조상서가 하얀 창호지를 펼쳐 보니 적힌 글은 놀랍게도 <활여압량사(活汝壓樑死)구아오대손(救我五代孫)>이라 적혀 있었다. <당신이 대들보()에 깔려 죽을 것을 살려주었으니당신도 즉시 나의 5대손(代孫)을 구해 주라>는 뜻이었다. 형조상서는 지시에 따라 즉시 재수사하여 소강절 선생의 5대손의 무죄함이 밝혀졌으니 이 얼마나 신묘(神妙)하고 기적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말이다.

 

소강절은 살아생전 자기 자손을 구하기 위해 5대 손자 대에 살아갈 모든 사람들의 점괘를 뽑아보고 대들보에 깔려 죽을 형조상서의 운수(運數)150여 년 전에 미리 알아냈던 셈이다. 가히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하늘과 땅이 함께 놀랄 일이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내용이 과연 인간의 영역으로 단정 지을 수 있을 것인지 또 우주를 관장하는 신()의 영역을 침범하게 된 인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라 해야 하는 것일까? 소강절이야 말로 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걸출한 <대문장대학자대예언자>의 후예(後裔)들이 어쩌다가 가끔 1명씩 나왔다. 전해오는 옛말에 수명(壽命)<삼천갑자(3,000×60甲子)=18만년> 동안이나 오래 살아 BCE 49년까지 살았던 신선 동방삭(東方朔)이고 부자(富者)는 중국 서진시대 사치의 끝을 보여준 부자의 대명사 석숭(石崇)>이며 문장(文章)은 당대 중국의 최고 시인 이태백(李太白)>이고 인물(人物)은 당대의 시인이자 병법가였던 풍류공자 풍류제일기남 두목지(杜牧之)이며 <예언(豫言)예측(豫測)예지(叡智)>로는 송대 최고 예언가 소강절(邵康節)>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주역(周易)을 깊이 연구한 소강절은 관매점(關梅占)을 창안해 냈다. 그는 평소에 앉아서 백리를 내다보고 누워서 천년을 내다보는 재주가 있다. 소강절은 늘 <영혼(靈魂)과 신()의 유무>에 대한 분명성과 함께 귀신을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음을 강조했다. nbh1010@naver.com

 

/노병한:박사/한국미래예측연구소(소장)/노병한박사철학원(원장)/자연사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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