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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께서는 어인 근심이 그리 많아 용안이 어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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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복 소설가
기사입력 2018-03-10

▲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여기에서 국가를 경영하는 비상수단이 군대말고 또 있는 것일까? 라는 명제를 두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로써는 전혀 이해가 불가능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추우의 번이란 것.’
 

이 이야기의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대진국 말고 조선의 역사에는 추우의 번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아보니 성인의 덕에 감동하여 나타난다는 전설상의 동물인 추우(騶虞)를 그려 넣은 기(旗)란 것이 있었다. 여기서 기와 번(旛)은 둘 다 기를 상징하는 의미의 글자이다.
 조선 태종 때 하륜(河崙)의 건의로 삼군(三軍)을 통솔하는 군기(軍旗)를 만들었다. 추우(騶虞)란 사람의 생명을 중하게 여긴다는 의미라 한다. 또 삼군이 윤번으로 숙위를 섰다. 만약 번을 서고 나오면 장군총제의 집에 가서 호령을 들었다. 그러나 임금 태종은 군정(軍情)이 여러 문에서 갈린 것을 근심하여 하륜에게 상의하였다. 이에 하륜은 추우의 번을 만들어 군정을 개혁하자고 청하자 태종이 이를 옳게 여겨 시행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다시 이야기는 대진국 혜제 때 가황후의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한다. 이조와 공손굉이 가후에게 지난밤에 역도를 제압한 사실을 아뢰고 돌아설 때 가모가 들어와 가후에게 아뢰기를
 “마마께서는 어인 근심이 그리 많아 용안이 어둡습니다.”
 “그리 보이오. 내가 저절로 눈물이 나오. 내 소견이 짧아 아까운 충신을 둘씩이나 한 몫에 잃었소. 지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마는 내 가슴이 터질 듯 아프오.”
 “아니 벌써 태재와 태보를 참형에 처하셨나이까?”
 

가모가 크게 놀라며 반문하자 가후가 대답하기를
 “지금 생각하니 내가 너무 경망했소. 그들이 일찍부터 이심을 가졌다면 어찌 오라비도 몰랐겠소. 어찌 초왕 사마위 한 사람만 알고 나섰겠소. 내가 잠간 소인의 간계에 넘어간 것 같소. 지금은 두 충신이 저승으로 가서 나를 원망할 것이오. 내 그 간사한 자를 제거하여 두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하오.”
 가모와 장화는 가후가 그리 뇌까리자 가모가 가후의 심정을 다 듣고 진지하게 아뢰기를
 “제가 알기로 갑자기 간사한 무리에 의해 숨진 두 분은 일편단심으로 진충보국하였습니다. 지금 조정에는 참변을 알고 온 신하들이 술렁거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초왕 위가 병권을 믿고 횡포를 자행한다면 이 나라 사직이 정말로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기회를 타서 초왕 위를 단호히 조처하심이 좋겠습니다.”
 가모의 절절한 진언을 듣고 난 가후에게 장화가 한마디 덧붙여 아뢰기를
 “가중서의 말이 참으로 합당한 줄 아옵니다. 속히 난적을 확실하게 조처하옵소서. 신이 보건데 초왕은 간사하고 간악한 난적인 것 같습니다. 벌레가 맛있는 잎을 다 갉아 먹어버리면 미구에는 가지를 말려 죽일 것입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여남왕 양은 잎이며 초왕 위는 가지라하여 잘못이 아닐 것입니다.
 “알겠소. 내 폐하께 아뢰어 곧 조처토록 하리다. 오늘은 그만 둘 다 물러가시오. 내가 너무나도 황망한 가운데 충신을 잃다보니 너무나도 괴롭고 피곤하오.”
 

가후는 심히 괴로워했다. 자기에게 충성을 바친 충신을 경솔하게 죽인 것이 크게 후회가 되었다. 그러나 다시 주어 담을 수 없는 엎어진 물이 되어 버렸다. 짜증이 나고 자신이 미워져서 견딜 수 없으나 달리 변통수가 없었다. 장화와 가모를 돌려보내고 가후는 내전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심신이 모두 피로하여 누었다. 가후는 이날부터 원인 모를 병을 앓아 병치레를 계속했다. 눈을 감으면 수많은 잡것들이 나타나 머리통이 아파 지끈거렸다. 유령처럼 나타나고 사라지는 잡것들이 계속 괴롭혔다. 열흘이 지나가고 보름이 되었다. 그래도 가후의 병은 차도가 없었다. 환각으로 인하여 요귀에게 시달림을 받은 가후의 얼굴은 마치서리릏ㄹ 맞아 시들어가는 국화꽃을 연상하게 하였다. 비록 추녀지만 제법 포동포동하던 가후의 용모가 보기조차 흉물스러울 정도로 초췌하게 변했다. 그런 가후 앞에 동생 가밀이 문후 차 찾아왔다. 가후는 맥 빠진 손으로 가밀을 가까이 불러 묻기를
 “요즈음 조정의 공론은 어떠하더냐? 바깥 백성들의 동정은 어떻고.”
 “초왕 위의 방약무인함이 극에 달하여 조야인의 빈축을 사고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합니다. 좀 더 시일이 지나면 모든 조정의 크고 작은 일을 초왕 위가 전부 다 주장할 것 같습니다. 뿌리가 튼튼해지기 전에 속히 손을 써서 뽑아 버려야 할 것입니다.”
 

가밀의 말을 듣고 가후는 길게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리기를
 ‘내가 내일은 옥청관에 나가 7일 기도를 드려서 무고하게 죽은 노대신의 원혼들을 달래주는 위령제를 드리고 싶구나. 그러고 나서 몇몇 원로대신과 상의하여 간녕배를 제거해야 하겠다. 내일 네가 잊지 말고 나와 동행토록 하여라.’
 다음날 가후는 궁녀 몇과 함께 제물을 갖추어 가지고 가밀의 호송을 받고 낙양 동쪽 산록에 있는 옥청관에 가서 여남왕 양과 위관의 위령제를 지냈다. 위령제를 지내고 돌아온 가후는 그날 밤 편하게 단잠을 잘 수 있었다. 보름 만에 단잠을 자고나니 가후는 날아갈 듯 몸이 가벼워져서 식사도 예전처럼 맛있게 먹었다.
 새날이 밝았다. 가후는 썩 상쾌한 기분이 되어 가모와 장화를 대궐로 불러 초왕 위를 제거할 계책을 묻자 가모가 대답하기를
 “초왕 위는 육위의 병권을 가졌으니 성급하게 건드리다가는 적반하장의 결과를 가져 올수 있사옵니다. 그러하오니 시간의 여유를 충분히 갖고 신중하게 연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경은 별도의 계책이 없습니까?”
 

가후가 장화에게 그리 묻자 장화가 대답하여 아뢰기를
 “신이 마마를 뵙고 귀가하여 여러 날을 연구하고 검토해 보니 그럴 듯한 계책이 하나 있었습니다. 소신의 이야기가 다소 길지라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신이 고서를 살펴보니 옛날에 성인의 대에 있었던 일로 ‘추우의 번’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역신을 다스릴 때만 부득이하게 사용한 깃발입니다. 성군은 이 깃발을 놓고 제후와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서약을 한 다음 그 기를 무기고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만약 부도하고 이심을 먹은 자가 나타나면 그 기를 꺼내어 모든 대신과 장상과 국척되는 사람에게 돌렸습니다. 그러면 이 기로 인하여 그들이 모두 일어나서 역신의 목을 베는 법제로 쓰였습니다. 다행히 진조에서도 선제께서 옛일을 본받아 추우의 번을 만드셔서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는 줄로 압니다. 황후께서는 천자께 아뢰어 조칙을 내려 그 깃발을 가져다가 초왕 위에게 보내시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아니하고 단순한 조서만 내리시면 초왕 위는 입궐치 아니할 것입니다. 이미 초왕 위는 자신의 과오를 알아 적이 있음을 알고 경계를 신중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추우의 번을 대하면 초왕 위는 반드시 자기 아닌 다른 역신을 벨 줄 알고 의심치 않고 입궐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입궐할 때를 이용하여 다시 그 깃발을 흔들어 조정의 문무백관에게 보이시면 쉽게 초왕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초왕을 잡는 방법은 이것이 최선책이라고 노신은 믿사오니 깊이 생각하시어 이 계책을 쓰시옵소서.”
 장화의 긴 설명에 가후는 크게 기뻐하며 곧 혜제에게 아뢰어 추우의 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칙을 내리게 했다. 가후는 그길로 곧 사자를 시켜 초왕에게 추우의 번을 보이게 하였다. 초왕은 추우의 번을 보자 바로 준비해서 입궐을 서둘렀다. 아무리 천자의 중대하고 은밀한 부름이라 해도 심복부하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어 초왕은 이조 공손굉 성기를 불러 말하기를 
 “천자께서 추우의 번을 보내 급히 불러서 입궐하고자 하니 부장 성기는 1천 철갑군을 이끌고 나를 호위하라!”
 

이리하여 초왕 위가 대궐 앞에 당도하자 문을 지키든 지밀 무사들이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백관들을 편전으로 듭시랍니다. 추우의 번을 놓고 토의하실 때는 내시조차 출입을 못하는 법이니 대왕은 군사를 두고 혼자 참여하시기바랍니다.”
 초왕 위는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어 철갑병을 그곳에 남겨 두고 홀로 뚜벅뚜벅 편전을 향하여 걸어갔다. 초왕 위가 편전 어귀에 이르자 상곡군공 맹관과 태부부중도위 왕궁이 편전으로 나왔다. 또 그 뒤를 중서 가모와 상서 유송이 따라왔다. 초왕 위가 편전 앞에 이르자 맹관 등 4사람이 초왕 위를 둘러싸고 나자 상서 유송이 말하기를
 “성상께서 초왕 전하가 다른 사람을 헐뜯고 위로 아첨하여 국가의 초석지신을 함부로 주륙한 죄를 물으시어 추우의 번을 돌리셨다. 그리하여 신에게 하명하시기를 전하를 정위청에 구금하라 하셨으니 순순히 포박을 받으시오.”
 초왕 위는 깜짝 놀라 사방을 둘러보니 도위 왕궁의 손에는 벌써 포승이 쥐어져 있었다. 그러나 초왕 위는 굽히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고가 천자의 친제임을 모르느냐. 내가 친히 천자를 뵙고 사리를 밝히겠다.”
이에 중서 가모가 눈에 힘을 주어 레이저를 쏘며 덧붙여 말하기를
 “비록 천자의 아우라 할지라도 법을 범하면 다른 신자와 동등한 죄로 다스려야하오. 추우의 번은 막중 유사시에만 쓰는 법이오.”
 초왕은 가모의 말을 다 듣지 않고 허리에 찬 보검을 뽑아 쥐자 맹관과 왕궁이 이것을 보고 재빨리 칼을 날려 초왕의 목과 허리를 베어버렸다.
 “으아악~”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오다 말고 그쳤다. 초왕 위는 어린 나이 불과 21세에 허무하게도 목이 떨어져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권력이 그의 인생을 불행으로 끝을 맺게 하였다. 초왕 위가 죽자 장화는 곧 사람을 금위부로 보내어 이조와 공손굉 등 초왕의 심복 장수들을 대궐로 부르게 했다. 초왕 위가 급히 부른 것처럼 위장하여 부른 것이다. 이들은 전혀 의심치 아니하고 대궐로 달려와 고스란히 잡혀 포승줄에 묶이었다. 이들이 꼭꼭 묶이자 상서 유송은 이들을 묻지도 따져보지도 아니하고 즉시 도부수를 시켜 참형해 버렸다. 그러자 마지막 차례에 목이 잘릴 성기가 한 마디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기를
 “이것은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 아니라 한 마리 쥐를 태산이 명동시켰구나...”         
 

문득 이 말을 우연히 듣게 된 유송은 잠시 도부수를 멈추게 하고 그 말이 무슨 연유에서 하는 말인가 물었다. 이에 성기는 태부부중의 수반 호우아로 인한 사건의 자초지종을 낱낱이 이야기하였다. 유송은 성기의 형 집행을 중지시키고 그를 데리고 입궐하여 가후에게 다시 주달하였다. 가후와 가모 그리고 장화의 경악함이란 상상을 초월하였다. 끔찍스러운 그 살육이 한 계집의 원수를 갚겠다는 사내의 고자질에서 비롯되었으니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가후는 호우아를 능지처참하여 그 목을 저자거리에 효수토록하고 9족을 멸하게 하였다.
 허나 인명은 재천이라 하든가. 죽을 자리에서 신세타령을 풀어놓은 것이 빌미가 되어 죽지 않고 살아 귀양 가서 연명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성기였다.
 혜제는 여남왕 양을 충순왕으로 시호를 내리고 위관을 태위 난릉공으로 추서하고 그의 아들 위조에게 후로 봉하여 원통하게 죽은 노충신에게 보답하였다.   <계속>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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