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우주-자연을 관찰, 불변의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 작게+ 크게

이법철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3-12

▲ 이법철     ©브레이크뉴스

불교는 중국을 경유하여 중국인 번역가의 한문 번역으로 불경이 집대성하여 한반도에 전해졌다. 한반도인들은 번역본이 제대로 부처님 말씀인지, 진위여부(眞僞與否)를 감정할 수도 없이 팔만데장걍만대장경으로 판각되어 현재 경남 합천 해인사 내에 필만대장경각(八萬大藏經閣) 인에 국보로 봉안되어 있다. 문제는 부처님이 직접 팔만대장경을 써서 기록한 것도 아니고 불멸후(佛滅後) 5백년이 지나서야 제자들이 대대로 입의 암송으로 전하여 마침내 문자(文字)로 전해진 것일 뿐이다.

 

부처님은 무슨 수행방법으로 우주의 진리를 깨달았을까? 부처님의 수행방법은 직접 우주를 관찰하는 공부를 해오다가 6년 고행 끝에 니련산하(泥蓮禪河)의 강가 보리수 아래 바위에 정좌하여 밤새 자지 않고 밤하늘에 보이는 항하사 모래수와 같은 별들을 관찰해오다 새벽에 떠오르는 “명성(明星)을 관찰하면서 마참내 우주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전해온다.


그러나 작금에 대한민국의 불교는 부처님 말씀 보다는 중국 승려들이 창안한 수행공부법인 선불교(禪佛敎)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다.

 

승려의 일생이 가부좌하여 면벽하고 화두(話頭) 공부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화두공부로 일생을 보내는 선불교의 일부 승려들은 불경은 읽지 않다시피 한다. 예컨대 “부처도 아니요, 중생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고?” 의 “이 뮛고” 화두를 들거나,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즉 개는 왜 불성이 없는가?“ 등을 화두삼아 면벽정진하는 것이다. 출가위승한 후 수 십년을 두고 화두공부를 하면 뇌 속이 단순해진다. 때 되면 밥 먹고, 면벽하다가 화장실 가는 세월만 보내는 승려들의 얼굴을 보면 천진(天眞) 바보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선불교의 화두가 성불의 첩경이라고 철저하게 믿는 일부 수행자들은 중국선불교를 한반도에 전한 음모를 통찰해야 할 것이다. 부처님 말씀 보다는 중국 승려들이 창안한 선불교로 진짜 불교를 퇴색 시키고, ”또 하나의 사대주의속에 순진한 바보가 되어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나는 감히 주장하는 바이다.

 

나는 중국에 있었던 예화 하나를 들어 나의 주장에 근거로 들어보겠다.


당나라 때 유명한 시인 백락천(白樂天:772-846)은 뛰어난 경륜을 지닌 정치가이며 불심깊은 불제자였다. 그는 권학문(勸學文)을 지어 후학들을 일깨우는 교육자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거이(居易), 벼슬은 형부상서(刑部尙書)에 이르렀다. 그는 불교를 믿어 사찰을 찾아 참배하며, 고승들의 법문듣기를 좋아했다.

 

백락천이 항주태수(杭州太守)로 부임했을 때이다. 어느 날 관청이 쉬는 날, 고승을 찾아 법문을 듣고자 관원들에게 항주의 고승을 물었다.

 

관원은 보고하였다. 

 

“그분은 과원사의 도림선사(道林禪師)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은 조과선사(鳥窠禪師)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왜 그런가?”
“그 분은 다른 스님들의 수행법과는 달리 높은 나무 위에 정좌하여 수행을 하고 있는데, 새의 보금자리 같다고 해서 별명이 생겼다고 합니다.”

 

백락천은 수많은 고승들을 친견했지만, 높은 나무 위에 정좌하여 수행한다는 고승은 처음이었다. 그는 기이한 고승을 만난다는 설레임을 안고 수행원을 거느리고 조과선사를 찾아 나섰다.

 

도림선사(道林禪師: 741-824)는 특이한 수행방법으로 참선을 했다. 고목의 소나무 높은 가지 위에 앉아 좌선을 했다. 그것은 참선공부를 하다가 졸다 추락하면 즉사(卽死)할 수 있는 위험한 공부 방법이었다. 추락하여 죽지 않으려면 정신이 졸지 않고 깨어있어야 했다.


백락천이 도림선사를 찾으니 과연 소문대로 높은 소나무 가지위에 앉아 두 눈을 감고 수행하고 있었다. 백락천은 놀라서 도림선사를 올려보며 소리쳐 외쳤다.

"위태합니다, 위태해."


메아리가 울려오듯이, 도림선사의 우렁찬 대답이 들려왔다.

“위태합니다, 위태해.

백락천은 다시 소리쳐 말했다.

“위태한 것은 선사이십니다. 왜 제가 위태합니까?”

“땅위에 서 있는 상공이 더 위태합니다. 나무 위의 나는 상공보다 안전합니다.”

“제가 위태하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인심(人心) 조석변(朝夕變 )의 속세에서 황제에 명리와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더 위태하다는 말입니다.”

 

백락천은 그제서야 도림선사의 위태하다는 말씀을 알아들었다. 어제 황제의 신임을 받아 위명을 떨치다가 하룻밤 사이 황제의 변심에 가산적몰(家産籍沒)과 참수(斬首)를 당하고 귀양을 가는 허망한 부귀영화가 위태하다는 법문에 백락천은 감동하여 합장하여 정중히 감사의 예를 드렸다.

 

도림선사는 나무에서 내려와 수인사, 통성명(通姓名)후 백락천을 방장실로 안내하여 차를 대접하며 물었다.

“상공께서는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평소에 좌우명을 삼을 만한 법문 한 구절을 듣고자 찾아왔습니다”

도림선사는 미소를 지으며 붓을 들어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써주었다.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제불통계(諸佛通戒)였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착한일을 행하라

自淨其意 是諸佛敎

스스로 마음을 청정히 하면/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백락천은 도림선사가 적어 준 게송을 받아 읽은 후 불만에 차서 말했다.

"선사님! 그것은 8살난 어린이도 아는 말입니다."

도림선사는 엄숙히 대답했다. 

"8살난 어린이도 아는 말이지요. 그러나 80난 노인도 실천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도림선사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팔만대장경을 옳게 외우고, 거꾸로도 외우는 능력이 있다 해도, 모든 악(惡)인연 맺기를 좋아하고, 모든 선(善)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수행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백락천은 비로소 글의 의미를 깨달았다.


도림선사는 작별의 예를 갖추는 백락천에게 이러한 법문을 주었다.

“유정(有情)의 법문을 구하지 말고 무정(無情) 법문을 들으시어 깨달아야 합니다.”


백락천은 작별하고 도림선시의 말씀에 무슨 뜻이 있는고? 의문을 가지다가 말을 타고 산모퉁이를 돌아서는 데, 거대한 폭포수기 내리치는 소리를 듣고 의문을 깨우쳤다. 도림선사는 “인간을 의미하는 유정법문에 의지하지 말고, 우주자연을 관찰하여 무정법문으로 진리를 깨달으라”는 고마운 말씀이었다.

 

한국 불교에서는 수행자에게 평생 강조하기를 “백년탐물(百年貪物一朝塵=백년의 탐물은 하루아침에 티끌”이라고 하면서 정작 실천은 하지 않고 속인 뺨치는 재물욕에 빠져 보인다. 돈에 청정한 수행 보다는 대처승(帶妻僧), 은처승(隱妻僧)들이 처자를 숨겨놓고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매불행위(賣佛行爲)를 상습하는 자들도 부지기수이다. 진짜 부처님 말씀을 전해주고 시주물을 받아야 하는 데 일부 승려들은 부처님 말씀은 제대로 전하지 않고 돈만을 목적으로 한 사기를 치고, 거의 가난한 민중을 돌보지도 않는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불교정화의 불교정책으로 대한불교 조계종 본사주지는 예전의 만석군이 넘는 부귀를 누리고 있다. 바위가 많은 유명기도터에는 “한 가지 소원은 이룰 수 있다”는 혹세무민에 1백억이 남는 시주돈이 나와도 도시빈민, 농어촌 빈민들에 보시하지를 않는다. 개인 착복을 하여 은처자에게 주고, 소리없이 산사를 떠날 뿐이다. 따라서 민중들은 원성이 크고 깊어만 간다. 참된 불교는 없고, 산도적만 즐비해서는 한국불교는 망해갈 뿐이다. 한국에서는 불교의 교세가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떨어지고 있다. 국교였던 불교가 이제 기독교 다음의 순위로 추락했다.

 

나는 거듭 주장한다. 중국은 1천년의 세월을 두고 한반도에 사대주의를 심기 위해 예전에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 공부에 공자와 맹자와 주자학 등을 공부하여 선발하도록 강요하였다.

 

불교도 중국 창안의 선불교를 만들어 속성(速成)으로 성불하는 길은 중국선불교를 실천하도록 강요하였다. 부처를 선발한다는 선불장(選佛場)을 전국 대형 사찰에 건립하고, 선불교의 원칙 구호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이다. 선을 하는 자는 경서를 버리고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정신으로 화두를 들어 정진하면 확철대오(廓徹大悟)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뇌 속의 일체 학문을 지워 백지화 하고 오직 ‘이 무엇인고“ 등의 화두공부만 하라는 것이다. 깨닫고 보면 인간이 이룬 과학과 철학 등 문명의 정수를 버리라는 뜻이다. 결론은 천진의 바보요, 중국이 한국 승려를 바보로 만드는 사대주의 속박이었다. 이제 한국불교는 긴 잠에서 깨어나듯 사대주의 이상한 수행방법에 벗어나 우주자연을 관찰하고 대장경을 읽는 수행자가 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한문을 몰라 불경을 모두 읽을 수 없으면, 부처님의 수행방법대로 우주자연을 관찰하여 불변의 진리를 깨닫기 바란다. 일체생명과 초목 등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태양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천지창조를 자신들의 유일신이 창조했다고 주장하나, 지구 이전에도 우주에는 항하사 모래수와 같은 별의 세계가 있어 생멸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시간의 흐름은 짐작할 수가 없다. 현재 까지 우주에는 1천개의 태양이 생명에 자비의 광명과 온도를 주고 있다. 이 주장은 천체물리학에 밝혀졌다. 이 글을 읽는 현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초록빛 나는 행성(行星)인 지구만 보지 말고, 광대무변한 우주의 항성(恒星)과 행성(行星)을 관찰하여 불변의 진리를 깨달았으면 한다. 그 가운데 과거 칠불(七佛)이 하나같이 세상에 전하는 제불통계(諸佛通戒)를 망각하지 않는 청정과 자비를 실천하는 수행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bubchul@hotmail.com


*필자/이법철. 시인. 스님. 이법철의 논단 대표. 칼럼니스트.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Copyright ⓒ 브레이크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