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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유곡에서 10만석의 거대대한 군량을 대여해 준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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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복 소설가
기사입력 2018-06-10

▲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기인 범장생을 찾아간 서연과 이웅은 중화 때가 조금 지나서 적조산의 백리 계곡어귀에 당도하였다. 거기에서 마을까지는 80 리를 더 가야하므로 해지기 전에 마을에 당도하고자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골짜기는 들어갈수록 숲이 우거지고 오솔길이 들쭉날쭉하여 말이 제대로 걷지 못하여 인마가 다 같이 고행이 되었다. 어느덧 해는 서산 너머로 기울고 골짜기에는 산그늘이 드리워졌다. 두 사람은 개울가 평평한 바위위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하였다. 고삐가 풀린 말은 얼음같이 차고 맑은 물을 싫건 들여 마셨다. 이웅은 멀리 가물거리는 산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산의 정상은 구름인지 서기인지 하는 것이 가려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과연 영산(靈山)이로다.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무슨 복을 타고 났기에 돈을 들이지 아니하고 맑은 공기 맑은 물 맑은 계곡 물소리를 들으면서 산단 말인가! 나도 온갖 것 다 털어 버리고 산 사람이나 되어 버릴까. 하늘이 가만히 마련해 둔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과 누리며 자연인으로 살아가 볼거나. 일생일사라 말하는데 무엇 때문에 안달복달하며 진세의 격랑 속에서 욕질하고 다투어대고 헤비고 싸우고 욕심 부리며 금수의 심성으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마음을 한번쯤 풀어두고 싶은 사람이라면 해봄직한 생각이 저절로 솟아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양심의 채찍이 무엇인지 저절로 우러나게 하는 정경이 이곳이었다. 그리고 덧없는 인생임을 잠시나마 생각하며 무엇인가 구애된 것을 훨훨 털어버리고 싶은 감정에 빠져들게 하였다. 아마도 이 산이 사람들에게 내어 주는 공짜 선물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이 산의 정취에 어울리게 청아하게 들려왔다.

松下問童子하니 言師採藥去只在此山中인데 雲深不知處

소나무 아래 있는 동자에게 물었더니 / 선생은 약초를 캐러 갔다하네/

그러면 이 산중에 계시겠구나./ 그러나 구름이 깊으니 계신 곳을 모르겠구나./

 

深山幽谷詠歌轉淸이나 오직 두 사람의 장한만은 幽賞未己이다. 서연이 오묘하고 애련한 풍광에 도취되었다가 깨어난 듯 말문을 열기를

지난날 후한 영제 때 산속에서 숨어 살던 하복이 임려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후 집안사람들이 그를 찾아 산속을 샅샅이 헤매었으나 끝내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고사전에는 (夏馥入林慮山中 家人求之不知處)라 하였습니다. 자고로 현사는 대괴(大塊:대자연)와 벗하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렀습니다. 우리가 지금 찾아가는 범장생 선생도 바로 그런 분입니다.”

이웅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입 밖에 내어 표현하지 못하나 그도 자연에 반하고 맑고 청아한 노래 소리에 도취되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다른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偶來松樹下 高枕石頭眼 山中無曆日 寒盡不知年

어쩌다 소나무 아래 왔노라/ 높은 돌베개를 베고 잠자노니/산속에는 달력이 없네./ 추위가 가고 봄이 온 것은 알아도 올해가 몇 년일까?/

노래 소리는 들려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로 미루어 생각해보면 먼저 노래한 사람은 여자이고 나중에 노래한 이는 남자인 것 같았다. 그러나 두 노래가 벽류수(碧流水)처럼 맑고 깨끗했다. 이윽고 그윽한 정취에서 깨어난 두 사람은 다시 말에 올라서 가던 길을 재촉했다. 두 사람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은 어두워서 집집마다 등불을 켠 뒤였다. 마을은 180여 호로 모옥인데 마을 둘레를 높고 튼튼하게 돌담장을 쌓아놓았다. 그 돌담장 남쪽으로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가 있었다. 마을은 하나의 공동체로 형성되어 집집마다 울타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집집마다 과목을 심어 이것이 경계라면 경계일 수 있게 보였다.

두 사람은 말에서 내려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앞에 가는 서연은 거침없이 마을에서 제일 큰 집으로 들어섰다. 뜰에서 주인을 찾으니 사랑채 방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밖으로 나와 말하기를

말굽소리를 들으니 외래 객 인줄 알겠소만 뉘시오?”

 

서연은 얼른 말에서 내려 앞으로 나서며 대답하기를

한대인 귀체 무양하십니까? 시생은 성도에 사는 서연이올시다.”

아니 서공이 이 밤에 웬 일이오? 이거 몇 년 만이오? 어서 들어갑시다.”

주인은 반가이 서연의 손을 잡아끌었다. 서연은 주인에게 이웅을 소개하기를

시생이 모시는 주공입니다. 대인께 소개드립니다.”

주인은 서연의 말에 깜짝 놀라며 반문하기를

나 자사께서 오셨단 말씀이오?”

아닙니다. 새로 익주목이 되신 분이십니다.”

서연은 이웅을 익주목이라 소개했다. 주인과 이웅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방에 들어와 밝은 불빛에서 유심히 이웅을 관찰한 주인은 무릎을 탁~치면서 무엇인가를 경탄하고 말하기를

사흘 전에 잠룡선생이 다녀가셨는데 문득 내게 이런 말씀을 남기셨소. 내가 천문을 보니 미구에 촉천 땅에 새로운 나라가 설 것 같소. 그 나라를 다스릴 사람이 일간 찾아올 것이니 그때는 여차여차 하라 하셨소.”

 

서연과 이웅은 크게 놀랐다. 서연이 주인을 향하여 숨을 한 차례 고르고 나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를

한 대인께 이 분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해 드리는 것이 제가 할 일일 것 같소.”

서연은 그렇게 서두를 떼고 이웅에 대한 이야기와 자기가 그를 주공으로 모시게 된 연유를 소상히 이야기하였다. 서연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다 듣고 난 한대인은 옷깃을 여미고 바르게 몸가짐을 한 다음 이웅에게 앉은 자세로 절을 하였다. 별안간 노인이 자기에게 경건히 절을 하자 이웅은 당황해 하면서 얼른 답례를 하고 말하기를

황송하게도 노대인의 환대를 받고 보니 몸 둘 곳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무례하고 몽매함을 꾸짖어 주시기 바랍니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산간에 묻혀 사는 야인이 어찌 감히 천수를 헤아리겠습니까. 잠룡선생께서 깨우침을 주셨기 때문에 이 늙은 우부도 생시에 귀인을 뵙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평생에 영광이올시다.”

한 대인의 말이 여기서 그치자 서연은 다시 재촉하기를

, 이제 어서 잠룡선생이 하신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한대인은 차분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장차 촉천의 주인이 될 사람이 나를 찾아 이곳을 와서 나의 출려를 간청할 것이오. 그러나 나는 도저히 속세로 나갈 마음이 없소. 다만 그 분이 패업을 이룰 때까지 상당한 군량의 결핍을 겪을 것이오. 그러니 마을에 비축한 양곡에서 10만 석을 대인이 그에게 빌려주시오. 그리고 장군에게는 부성과 소성 같은 작은 고을을 버리고 나상의 군량 공급원인 건위성을 취하여 굳게 지키면 성도는 불원간에 스스로 성문이 열 것이라고 전하라 하더이다.”

이웅과 서연은 다시 크게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심전심으로 묵언의 말을 전하기를

어떻게 우리에게 군량이 부족하다는 것 까지 안단 말인가!’

이때 안에서 주안상을 가져왔다. 세 사람은 밤이 깊도록 술잔을 기우리며 환담하였다. 이웅이 미련을 가지고 불쑥 묻기를

잠룡선생께서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내일 밝은 날에 잠시 찾아뵙고 존안이라도 배견했으면 한이 없겠습니다.”

한대인은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저으며

아니 됩니다. 지난날 촉한의 강백약께서 두 번이나 친히 찾아와서 출사를 간청했으나 선생은 끝까지 거절하셨습니다. 설사 장군이 내일 산에 오르신다 해도 선생이 어디계신지 도저히 찾지 못할 것입니다.”

서연이 혼자말로 중얼거리기를

운심부지처로군

어떻게 서공이 그 글귀를 아십니까?”

 

한 대인이 서연에게 물었다.

낮에 이리 오는 도중에 산에서 약초 캐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이 마을 사람은 아이들까지도 그 노래를 즐겨 부릅니다.”

이웅이 다시 묻기를

대단히 무례한 말씀이오나 잠룡선생의 춘추가 얼마나 되시는지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난 날 강백약 장군이 선생을 만나셨다고 하셨으니 필경 선생의 춘추가 백을 헤아리게 될 것이 아니 온지요.”

한 대인은 잠시 말이 없다가 불쑥 지껄이기를

산중무역일이고 한진부지년이 잠룡선생의 대답이십니다. 그 시는 바로 선생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한 대인은 더 말을 하지 않으려했다. 하지만 역사의 뒤안길을 헤치다보니 범장생의 내력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백제의 담로중의 한 사람이었다. 여기서 잠시 담로제를 설명해 보면 부여가 망하고 부여의 후손들이 대륙백제에 참여했다. 그러한 백제가 영역을 넓혀감에 따라서 점령한 지역마다 자국민을 이주시켰다. 그리고 왕족 중에서 덕과 지혜가 있는 이를 담로왕으로 삼아 다스리게 했다. 이 통치제도는 담로국이 다시 담로국을 만들어 가는 형태로 영토를 넓혀갔다. 그러니까 토착민의 자치를 보장해주는 지방 분권적인 정치제도로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는 아니었다. 이 제도는 사마천의 사기가 역사를 왜곡시켜버렸기 때문에 백제라는 이름으로 사서에는 존재하지 않으나 516국의 난리 속에서 여러 나라의 전쟁에 호()라는 이름으로 숨어서 존재하는 것이 모두 다 백제의 담로들의 호할동이었다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하여서 백제는 대륙의 절반을 지배하기도 했기에 훗날 고구려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공격에서도 여유 있게 살아남아 668년을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이야기이나 담로는 고구려의 다물(多勿)과 같은 어원에서 나왔으며 거점 또는 분국(分國)이라는 뜻으로 근대의 식민지와 비슷한 성격의 것이다.

이웅도 더 이상 한 대인에게 잠룡선생에 대해 묻는 것을 삼가고 조용히 잔을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이웅과 서연은 가져온 예물을 한 대인에게 정중히 예물로 바치고 마을을 떠나왔다. 끝내 아쉬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으나 10만석이란 막대한 군량을 빌리게 된 것과 나상과 싸움에 있어서 핵심을 교시 받은 것이 크게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이 작은 마을에 그것도 심산유곡에서 10만석의 거대대한 군량을 대여해 준다는데 적지 않은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 서연에게 궁금증을 묻자 그가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너무 사소한 일까지 드려다 보려하지 마십시오. 잠룡선생은 강유는 직접 도와주지 않았으나 주공을 돕겠다는 언질을 한 대인에게 준 모양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군량미는 호인들의 도움을 받을 모양입니다.”

호인이라 했소?”

, 제가 알기로는 호인이란 한족들이 그렇게 부르지 사실은 동이족들이오. 백제의 감로들 말이요.”

그렇군요. 제가 숙부님에게 들어서 그들에 대한 예비지은 다소 가지고 있소만 앞으로 그들과 관계를 계속하여 이어나갈 필요가 있어요. 군사께서 각별히 유념하시오.”

 

광한성으로 돌아온 이웅과 서연은 이유와 염식 그리고 양포에게 적조산을 다녀온 결과를 눈에 나타난 대로만 보고하였다. 이유는 곧 이웅에게 2만군을 주어 건위를 공략하라 했다. 이에 서연이 한마디 거들기를

건위태수 이필은 문관이고 수장 하인은 얼마 전 군량을 호송하여 성도로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은밀하게 군사를 움직여 이필이 그의 수장 하인에게 연락하기 전에 건위성에 당도하면 성을 쉬이 깨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웅은 서연의 말을 좇아 군사를 밤에만 움직이고 낮에는 산과 숲에 잠복시켜 이필이 모르게 이동을 했다. 과연 이필은 이웅이 쳐들어오는 것을 모르다가 이웅의 군사가 성 밖 30 리 허에 당도했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다급해진 이필은 여러분을 모아 대책을 숙의하자 하인의 동생 하준이 나서서 말하기를

제게 5천군을 주시면 나가서 반적을 격파하겠습니다. 적은 여러 날 먼 길을 왔기에 지쳐있을 것입니다. 적이 쉴 틈을 주지 않고 친다면 이일대로(以逸待勞)로써 적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준의 그럴법한 의견에 이필이 찬동하고 듣는 이가 다 경탄하였다<계속>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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