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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작은 배려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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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권 시인
기사입력 2018-06-11

▲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배려(配慮)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보살피고 도와줌 또는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거나 마음을 써서 보살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배려와 양보는 손해라는 인식을 하고 내가 잘 되고 편하기 위해서는 남의 손해는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타인의 행동과 대화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손익과 비교해 계산하며 의심 먼저 하는 세상은 너무나 삭막합니다. 누군가가 비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그 원인과 시스템에 대한 비판보다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 패배자, 못난 사람이라고 치부합니다. 그저 돈이 많은 게 그 사람의 인격이 되고 좋은 사람이 되며, 착하고 마음이 좋은 사람은 그저 바보로 불리거나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어 가기 십상인 세상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의 행태가 바로 그런 것 같습니다. 그저 나와 내 새끼만 잘 살면 된다고 합리화 하면 끝인가요?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면 결국은 자신들도 아파지는 것을 왜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요? 다들 이 메마른 세상에 합리화로 적응해나가는 것 같은 모습들이 참으로 무섭습니다. 일본의 여류 작가 미우라 아야코가 조그만 점포를 열었을 때 장사가 너무 잘 돼 트럭으로 물건을 공급할 정도로 매출이 쑥쑥 올랐습니다. 그에 반해 옆집 가게는 파리만 날렸습니다. 그때 그녀는 남편에게 솔직한 심정을 털어 놓았습니다. “우리 가게가 잘 되고 보니 이웃 가게들이 문을 닫을 지경이에요. 이건 우리의 바라는 바가 아니잖아요?” 
 

남편은 그런 아내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가게 규모를 축소하고 손님이 오면 이웃 가게로 보내주곤 했습니다. 그 결과 시간이 남게 되었고 평소 관심 있던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그 글이 바로 저 유명한 <빙점(氷點)>이라는 소설입니다. 그녀는 이 소설을 신문에 응모하여 당선되었고, 가게에서 번 돈보다 몇 백배의 부와 명예를 얻었으니 그것은 그녀의 빛나는 ‘배려’ 덕분이었을 것입니다.

 

배려는 사소한 관심에서 출발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다 보면 배려의 싹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배려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작은 배려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인생살이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을 우아하고 아름답게 하는 방법은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남과 원만하게 지낼 수 있는 배려의 기술은 충분히 배울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럼 배려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먼저 그 사람에 대한 적극적인 과심을 갖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말한 곳을 직접 가보거나, 그가 말한 것을 해봅니다. 그리고 간단하게 그 느낌을 전해주면 바로 그것이 배려인 것입니다. 쉽게 말을 걸기 힘든 사람, 주변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가 사랑하는 가족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관심거리에 초점을 맞추어주는 배려이며,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인 것이지요. 
 

우리가 행복하고자 한다면, 먼저 사랑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행복해지고 싶다면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정성 어린 배려를 베풀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상대의 바람과 결핍 등을 우리 자신의 내면에 비추어 찾아내야 합니다. 결국 진정한 배려를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바람과 결핍 등을 읽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논리로 사람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감정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지요. 자신이 잘못을 했다면 스스로 내가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곧 바로 사과하해야 합니다. 자기가 잘못을 했는지 안 했는지 세세한 점까지 따질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사과하는지 생각하며 그 사람의 행동을 살피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다른 사람의 호의를 누릴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분명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로 하여금 중요한 느낌이 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즉, 그들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우리도 가끔은 ‘조금 져주면 좀 어때’ 라는 심정으로 상대방에게 양보하고 상대방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배려는 결코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의란 원래부터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관습입니다. 예의가 바르다는 것은 이미 많은 부분 상대에게 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례하고 거친 태도는 빗장을 걸고 마음의 문을 닫게 합니다. 그런 반면 친절하고 예의 바른 행동은 모든 곳에서 마음의 문을 열게 합니다. 
 

친절하고 예의 바른 행동 앞에서는 빗장이 걸려 있던 모든 문들이 차례로 열립니다. 배려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이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 모임에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자리에 앉자마자 즉시 자기소개를 하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도 그냥 계속 앉아만 있으면 그것만큼 답답하고 지루한 모임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일은 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 일이 가치가 있으나, 스스로 사람들에게 자랑하면 효과는 반감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쓰면 이 세상 전체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집니다. 고독한 사람이나 의기소침한 사람에게 한 두 마디 부드러운 말을 걸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면 친절하게 대접받은 그 사람은 우리의 배려를 일평생 가슴에 품게 될 것입니다.
 

속담에 ‘콩 한쪽도 나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네 선조들은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결코 빗장을 걸거나 담장을 쌓아 이웃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따뜻한 인정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희망의 끈이 되어주면서 살아왔습니다. 넉넉해서 곳간을 열어 나누었던 것이 아닙니다. 비록 오늘 나누고 내일 모자랄지라도 이웃의 아픔과 고픔을 결코 나몰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목숨부지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입니다. 우리 서로 돕고 의지하며 보다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행하여야할 배려의 힘이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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