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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없는 영도자들은 강경론자들 냉전 레토릭에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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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 주필
기사입력 2018-06-11

 

▲이계홍 본지 주필.

10수년 전 언론 현업에 종사할 때, 언론사 부설 통일문제연구소장직을 잠깐 맡은 일이 있다. 필자는 기왕 보직을 맡았다면 남북화해와 협력, 동질성 회복, 통일에 이르는 길을 의미있게 연구하고, 통합의 담론시장을 끌어가고자 나름으로 의욕적인 계획표를 짰다. 기존 설치된 타언론사 부설 통일연구소 간부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고, 통일부, 국정원 등 여타 기관 종사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나의 그런 희망은 무망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순진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결같이 냉전 반북적인 그들의 태도가 필자를 당황케 했다. 체제의 차이는 엄존하기 때문에 그 토대 위에서 이질성과 동질성, 그중 공통분모를 찾아내 남북문제를 열어주는 것이 통일연구소의 기능이자 역할이라고 보았는데, 기관 종사자들이나 해당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북한에 대해 대결적이었다.

 

통일연구가 아니라 증오의 논리를 개발하는 반공 반북기구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지원을 받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북한체제는 지구상에서 박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대결적 자세를 보고 이게 통일연구기관인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객관적으로 남북을 보려는 태도는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체제경쟁장 같은 인상이어서 진정한 연구소의 역할이 아니라고 판단되었다. 물론 사람마다의 차이는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그랬다.

 

국제정세와 독일 등 여타 분단국을 경험한 나라들을 살펴보고 우리가 처한 분단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과 협력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연구소의 역할일진대, 정부나 정보기관이 제공하는 정보를 가지고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북을 박멸해야 할 집단으로 여기는 대결적 모습. 한마디로 반공연구소라고 불러야 했다. 그러면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주요 방송과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고 패널로 나갔다. 이 시간 현재도 일부는 종편 등 언론 패널로 나가 전문가로서 역할(?)을 다한다. 내용을 보면 상투적 관점에서 한발짝도 나아간 것이 없다.

 

우리는 노태우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쳐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살아왔다. 남북간에 화해협력 기조를 유지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빼고, 보수정부인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본다. 이들도 초기에는 화해협력 모드로 갔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강경 모드로 변질되었다.

 

김영삼 정부의 경우, 통일부를 통일원으로 격상시키고 한완상 부총리가 주도적으로 남북화해와 협력의 정책을 수행해나갔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32월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며 김일성 북한 주석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했다. 그리고 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북송하고, 남북 정상회담 분위기를 이끌어나갔다.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해 정상회담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조문정치로 화해정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틈새를 이용해 강경 테크노크라트들이 끼어들어 조문을 방해하고, 끝내 화해정책을 무산시켰다. 대화파인 한완상 부총리도 물러났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집권 초기 남북화해정책을 폈다. 박근혜는 통일대박을 독일에 가서 발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강경 대결주의자들이 파고들어 파투를 냈다. 영혼이 없는 영도자는 이들에게 포위되어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들은 현란한 대결 레토릭을 수십년 준비해놓았기 때문이다.

 

남북한은 정전상태가 아니다. 언제든지 전쟁을 재개할 수밖에 없는 휴전상태다. 그래서 평화를 사기 위해 휴전관리를 하는 것이다. 특별히 강조할 것없이 물샐틈없는 안보를 상수에 놓아야 한다. 그런데 남북 화해분위기다 싶으면 대결론자들은 예외없이 북한의 도발적 정보를 가공해 대대적으로 유포시킨다. 철학이 없는 영도자들은 강경 대결론자들의 냉전 레토릭에 무너진다. 거기에 미 군산복합체가 끼어든다. 이런 체제가 70년을 이어왔다.

 

지금도 이들은 엄존한다. 여전히 북의 호전성과 위협을 내세우며 북한붕괴론과 지도자 동지 참수론을 거론한다. 지금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니 잠복해있을 뿐이다.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11일자 동아일보에 이명박 정부 초기 대통령실장을 역임한 임태희 한경대 총장의 인터뷰 기사(이진구 기자의 대화’)가 실렸다. 냉전세력의 발호가 얼마나 집요했던가를 보여주는 대목이 나와있다.

 

임 전실장은 인터뷰에서 강경파는 입장도 간단명료하고 말하기도 쉽다. 하지만 그러면 도대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건가. (북이)무릎 꿇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전쟁밖에 없지 않나. 우리 현실, 특히 보수정부에서 대화파는 아주 힘들다. 북한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자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북한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몰린다. 그 와중에 북한이 도발을 하면 정말 곤란해지고. 일이 어떻게 되는지와는 별개로 강경한 사람이 마치 원칙과 소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도 있다고 대북 접촉의 고충을 설명했다.

 

그는 200910월 이명박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에서 남북 비밀접촉을 했던 당사자다. 동아일보 주요 인터뷰 내용을 인용한다.

 

북한은 대화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힘들게 해서 무릎을 꿇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 이 라인에서 끊임없이 (당시 이명박)대통령에게 백악관 분위기가 북한에 대해 강경하다며 정상회담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대결론자들은 사대의존적인 태도를 여과없이 나타내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강경파는 북한이 늘 우리에게 더 얻어내기 위해 떼를 쓴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 그런 잘못된 버릇을 들였다는 것이지.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북한도 원하는 것이 있다. 그걸 주고받는 건 뒷거래나 이면 합의가 아니다. 그런데 북한이 약속을 지키는 것 같으면 우리를 이용한다고 보고, 깨면 그것 봐라한다. 철저하게 상대를 불신하면서 어떻게 남북관계가 진전되겠나. 당시에도 북한은 정상회담 대가를 요구한 적이 없다. 북한이 약속을 이행한 뒤에 우리가 지원해주는 것조차 북한의 외화벌이우리가 삥뜯기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걸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남북관계가 잘 안된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게 돈을 주고 정상회담을 산다는 시각이다. 그래서 북측과 프라이카우프(Freikauf:프라이카우프는 자유를 산다는 의미의 독일어. 서독이 동독의 정치범만을 서독으로 데려오기 위해 현금과 현물을 동독에 제공한 방식을 말한다. 1963198933755명을 데려오고 대신 346400만 마르크에 해당하는 현물을 지불) 방식으로 정상회담 조건을 이행하기로 협의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것을 미리 다 주는 게 아니라, 정상 간에 합의한 내용이 실행될 때마다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산가족이 상봉하면 얼마, 고향방문을 하면 얼마를 지원하는 식이다.”

 

“(대북강결파들은)북한은 대화가 아니라, 항복시켜야 하는 상대라고 여긴다. 수십 년간 북한이 보인 행동을 생각하면 이런 시각을 잘못이라고 탓하기는 어렵지만,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믿지 못할 집단과의 대화란 무의미하니 군비증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까.”

 

협상에 나섰던 임 전실장이 겪은 것이 이런 것이라면 강경론자들의 협공이 얼마나 컸던가를 알 수 있다. 필자가 이래저래 겪은 것도 대동소이하다. 북과 화해협력을 얘기하면 좌빨아니냐고 의심한다. 빨갱이 공격에는 약도 없다. 이런 오만과 광기의 시대를 우리는 살았다.

 

이제 냉전세력, 강경 대결세력이 답할 차례다. 광기의 시대, 그들 스스로 국민을 묶어두는 정권안보 도구가 된 것은 아니었던가. 그것으로 군림하며 한 세상 주물러왔던 것은 아닌가. 과오를 범했다면 이제는 자숙해야 한다. 미국에 기댔던 그들이 미국이 백팔십도 대북정책전환을 하고 있다면 세상이 달라진 것도 살펴보고 궤도수정을 하든지 물러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남북화해가 실패하기를 바라며 도처에 덫을 놓고 있다면 성숙한 국민지성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khlee0543@naver.com

 

*필자/이계홍. 소설가. 본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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