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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 회담에 담긴 역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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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6-11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간의 세기의 만남이 6월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이루어 졌다.     ©JTBC화면 갈무리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6월 12일 오늘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이는 미국과 북한의 지도자가 최초로 만나는 기록적인 장면이다. 나아가 전쟁을 불사한 극한 대립에서 평화를 건져 올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회담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와 같은 북미정상회담은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대한 합의를 전제로 열리는 회담으로 그 결과에 대하여 당사자인 우리나라는 물론 온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같은 회담이 열리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적 해결을 통한 전쟁 불가라는 나라의 명운을 품은 소신을 가지고 주도적인 역할을 짊어진 사실이 빛난다, 이는 북한의 연속적인 핵개발과 발사체 실험으로 첨예한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달은 난국을 오직 평화라는 소신으로 극복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숭고한 노력을 바탕으로 드라마와 같은 평화적인 회담이 온 세계에 펼쳐진 위대한 오늘을 우리는 역사의 기록으로 후손에게 물려주게 될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중대한 회담의 결과에 대하여 그 누구도 이를 예단 할 수 없지만, 그간의 협상 과정을 살펴보면 한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큰 틀의 합의가 이루어진 정황이 느껴진다. 이에 온 세계는 두 정상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고 신성한 평화 시대를 열어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약속을 선언하는 회담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해 2017년 11월 5일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을 거쳐 7일 한국을 방문하여 우리 국회에서 연설하였던 내용 중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한 메시지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북한은 귀하의  할아버지가 그렸던 낙원이 아니다. 그 누구도 가서는 안 될 지옥이다. 귀하가 신과 사람 앞에 저지른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귀하에게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을 제안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것은 북한 정권의 도발 종료와 탄도 미사일 개발의 중단 그리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총체적인 비핵화와 함께 시작된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국내는 물론 세계 주요한 언론은 그의 즉흥적이며 파격적인 화법에 비추어 돌출적인 메시지를 예상하였지만. 그의 연설은 매우 차분하면서도 격조가 담긴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이후 그는 같은 날 8일 중국을 방문하였다, 이와 같은 일본과 한국 그리고 중국을 차례로 방문하였던 그는 어디에서건 최후의 메시지라는 표현을 달고 있었다. 

 

이후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났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판문점 선언이 이루어졌다. 이후 5월 7일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 랴오닝성 다롄으로 가 시진핑 중국 주석과 회담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5월 11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하여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북미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발표했다.

 

이렇듯 급류의 물살로 흘러가던 흐름이 5월 24일 북한이 풍계리 핵 실험장 폭파와 폐기라는 절차를 밟았지만, 당일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서한을 통하여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이는 북한 주요 인사의 적대적인 강경 발언을 지목하였던 내용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주변국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지난 5월 31일 평양을 방문한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의 만남과 같은 내용이 사전에 감지되면서 북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강력한 메시지에 대한 확인 차원의 경고이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주변국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사안이라는 분명한 선을 그은 것이다, 이에 북미정상회담을 통한 완전한 비핵화를 직접 확인하고 실현하려는 의지가 분명하였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라는 충격적인 발표가 있었던 다음 날, 5월 25일 북한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회담 재개를 바라는 담화를 서둘러 발표하였다, 이어 5월 26일 김정은 위원장의 요청으로 전격적인 2차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다시 이루어졌다, 이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밝히면서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통한 인류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난 5월 31일 북한 김영철 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하여 폼페이오 장관과 회동 이후 트럼프 대통령을 방문하여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리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통하여 새로운 평화 시대를 추구하는 대 선언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관점에서 1953년 7월 27일 실시된 6․25 전쟁 정전협정 이후 올해로 65년을 맞는 지구촌 최장 휴전 상태인 전쟁을 종식할 종전선언의 기대 또한, 커지고  있다. 그러나 당시 전쟁 중이던 1951년 7월 10일 북한 개성에서 첫 정전회담이 열린 이후 1952년 10월 판문점으로 회담 장소가 옮겨지면서 휴전선 설정과 외국군 주둔에 대한 첨예한 주장이 맞서면서 우여곡절 끝에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6․25전쟁 정전협정에는 간단치 않은 많은 문제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당시 정전협정에 서명한 인물과 정전협정 조인식에 참석한 인물에서 부터 가지고 있는 문제이다, 당시 정전 협정서는 서언과 전문 5조 63항과 부록 11조 26항으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정전 협정서의 서명은 북한군 총사령관이었던 ‘김일성’(金日成. 1912~1994)과 중공 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 1898~1974) 그리고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미국 ‘마크 웨인 클라크 장군’(Mark Wayne Clark. 1896~1984)이 서명하였다.

 

또한, 이와 같은 정전 협정 조인식에는 유엔군 대표로 미국 ‘윌리엄 해리슨 장군’(William Kelly Harrison . 1895~1987)과 북한군 대표 인민군 총참모장 ‘남일’(南日. 1914~1976)이 참석하였다, 여기서 당시 남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李承晩. 1875~1965)은 정전협정에 반대하여 서명하지 않았으며 이에 남한측 대표는 조인식 또한 불참하였다,

 

이는 결국 당사자인 남한의 서명이 없는 정전협정으로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이 설치되면서 국제연합군과 공산군 장교로 구성된 군사정전위원회가 판문점에 설치되었으며, 나아가 다국적 중립국 감시위원단이 설치되었다. 이후 1954년 4월부터 7월까지 열린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문제를 다룬 이른바 제네바회의에서 당시 중국의 외교부장관이었던 ‘주은래’(周恩来. 1898~1976)가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의 전환과 이에 대한 체결을 제안한다. 그러나 당시 미 국무장관이었던 냉전 주의자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 1888~1959)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또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내용이지만 당시 정전협정서 제13조 (d) 항에 남북한 모두 새로운 무기를 도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항에 대한 부분이다, 1956년 미국은 유엔 동맹국들의 반대를 무시한 채 정전 협정서에 있던 이와 같은 제13조 (d) 조항을 일방적으로 폐지한 것이다, 이는 한국에 미국의 새로운 무기도입에 대한 장애를 걷어낸 것이다, 

 

나아가 이후 1975년 유엔총회에서 우리의 정전협정을 평화조약으로 전환하자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당시 분명한 것은 이와 같은 평화 협상에 대한 북한의 적극적인 의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유엔 기록을 보면 이 부분은 너무나 명확하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이 또한 고도의 계산된 속내로 이를 피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내용을 안고 1991년 3월 당사자인 한국군 대표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로 임명되었으나 상징적인 군사정전위원회를 북한과 중국이 철수하면서 그 실체가 모호해진 것이다, 이에 1997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전쟁 당사국인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과 중국 대표들이 모여 4자회담을 열었으나 이 또한 별다른 진척이 없는 회담이었다.
 
더욱 상세하게 이를 살펴보면 1996년 10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의장 성명서와 같은 많은 내용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1974년부터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한 북한의 내용이라 할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정전 협정에 서명되지 않은 남한이 아닌, 서명 당사자인 국제연합군 사령관이 미국인이므로 평화협정 또한 미국과 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이다,

 

또한, 이와 같은 이면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6․25전쟁이 발발하자 6월 28일 한강대교를 폭파하고 부산으로 도피하면서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Douglas MacArthur. 1880~1964)에게 7월 14일 한국군 전시 작전권을 이양하였다, 이는 휴전상태의 남북 대치상황에 대한 전시 작전권이 지금까지 미국에 있기때문에 북한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해결을 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6․25 전쟁 정전협정서 제13조 (d) 항에 남북한 모두 새로운 무기를 도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항에 대한 부분을 1956년 미국이 일방적으로 폐지한 사실에서 국제적인 협정과 협약에 대한 부정적인 신뢰를 경험한 북한의 입장도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 그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만나게 된다, 이와 같은 인류의 평화가 걸린 소중한 자리에서 북한은 비핵화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과, 미국은 지난 냉전시대의 계산된 전략을 버리고 역사에 담긴 교훈을 깊게 인식하여 진정한 인류 평화 시대를 여는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필자: 이일영, 시인. 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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