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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전 총리-차기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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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권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7-10

▲ 이해찬  전 총리.    ©브레이크뉴스

 

지난 미 대선에서 힐러리는 표로 트럼프를 앞섰어도 ‘스윙-스테이트(부동층이 많은 지역)’를 무시했다가 역패(逆敗)를 당하고 말았다. 물론 미국 선거가 직접선거로 선거인단을 뽑고, 50개 주마다 다른 선거인단에게 대통령 투표권을 주는 약한 간선제를 융합해서 치르고 있다. 또한 올 11월에 중간 선거에서 상원 100명(임기 6년)+하원 435명(임기 2년)의 3분의 1일 2년마다 선출하여 중간선거로 국정지지도를 가늠하게 하는 다소 합리적이지만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한번 선출된 대통령이 5년 임기 내에 중간 심판을 받지 못하게 하는 우리나라 선거구조와는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부동층의 향배가 선거 막판 당락을 결정짓는데, 그 스윙-스테이트가 충청도 민심이며, 충청을 통하지 않고는 그 어느 정당도 집권을 위한 안정적 의석을 가지지 못한다.

 

충청도는 그간 많은 부정적 시각을 가진 이들이 정치적 성향이 좌우로 해바라기성으로 바뀐다하여 종속변수로 폄하해왔다. ‘능구렁이 핫바지 영원한 2인자 배출지역’으로 낙인찍혀왔다. 그런데 만약, 이번 더민주당 당대표 선거를 통해 이해찬 전총리가 당선되면, 내친김에 대통령 배출지역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이해찬 총리는 1952년생 임진(壬辰) 생으로 연령대로 보면 차기 70대 경륜가이자 대권 잠룡임에 틀림없다. 원칙과 소신파로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이란 시에서 절규했듯이, 여름날의 태양의 정열을 더 흡수하여 원숙하고 달콤한 포도주의 원료가 되어 부가가치를 높이고 안정적인 당 관리에 적임자 중은 한명이다. 이는 지난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충청인 요직배치를 배제하고, 당의 정체성인 친노친문의 계승속내를 잘 화합시키고 계승 발전시킨 공로가 크다.

 

친문친노의 원로로서 차후 총선에서 전라도 부산 경남 몰빵 공천을 저지하고 당내 민주적 절차를 잘 지켜 종파적 분열과 계파주의를 잘 어우를 정치적 역량과 산업화 과정에선 반 유신투쟁 민주화 과정에선 군부독재 타도를 밑거름 삼아 항상 정의와 약자를 위한 편에 서서 간고(艱苦)한 동면기를 보낸바 있다.

 

이해찬의 민주화를 위한 투사적 삶은 이미 대권도전 가능 개인적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 내어 충청인의 지조와 절개의 표상으로서 대통령직 수행에 아무런 하자가 없을 것이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어 약 1년을 복역하고 출소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이 되었다가 해금 조치되면서 1980년 복학하여 복학생협의회 회장을 맡았다. 그해 6월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이해찬은 재판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수감 2년 6개월 만에 크리스마스 특사로 석방됐다.

 

이후 재야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하여 그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총무국장에 선출됐다. 군사독재 정권은 그를 요시찰 인물로 삼아 감시했으나 굴하지 않고 반독재운동과 출판 활동 등에 종사했다. 1985년에 처음 서울대를 입학한 지 14년 만에 졸업하였다. 1987년 말에 한겨레신문 창간발기인을 지냈다.

 

이후 정계에 진출하여 국무총리까지 지낸 이력을 볼 때 시대가치를 군부와 독재세력으로부터 지켜내는데 주저하지 않고 푸른 수의(囚衣)로 대답했다.

 

당시에는, ‘낮에는 투사 밤에는 공안권력에 회유되어 프락치 활동’을 하던 시절이었고, 동지이자 배신자로 이중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군부독재의 후예인 보수 집권당에 영혼을 팔아 신분세탁으로 호화로운 직을 보장받고 보수여당에 복무하던 사람들이 생겨나던 시절이었다.

 

특기, 변절자 중 A 의원은 1980년대 대학생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운동권 출신의 비박(비박근혜)계 다선 의원이다. 그는 지난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한 대학의 총학생회장으로 민주화운동을 이끌었고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한 전력이 있는 인물로서 양지만 쫓는 사이비 운동권 투사로 변절하고 대신 보수당에 영혼을 팔고 안락한 의정생활을 해오고 있다.

 

▲ 이래권     ©브레이크뉴스

A의원과 비교해보면, 이해찬 전 총리는 이번 더민주의 당대표 선거에 나가는 것은 역사의 필연적 보상이요, 민주세력으로부터 가시밭길을 걸어온 정치원로로서 출마자격은 차고도 넘친다.

 

혹자는 말한다. 이젠 386에게 자릴 넘기고 당 원로로서 뒷방 노인네로 살아도 충분하다고. 지난 6.13 지선에서 TK 단체장을 만들진 못했지만 투표율에서 약진한 공(功)이 김부겸 행안부장관에게 있다. 여론조사상 1위의 지지를 받고 있으니 겸양지덕으로 선양(禪讓)하는 게 어떠냐는 식인데, 이는 충청인의 대통령 출현을 바라는 65년 염원을 짓밟는 처사일 수도 있다.

 

YS와 DJ는 충청인의 대표주자인 JP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집권이었다. 두 분의 대통령을 만든 JP가 천상에서 바라보고 있다면, “왜 안 되는 겨? 이봐 해찬이? 한번 나가봐! 헐 겨 말  겨?  해찬이 이 사람아, 내 소원 풀어주는 대타 말고 선수로 나가봐! 당신은 구색 맞추는 핫바지가 아녀. 당당하게 그리고 꾸준히 사람들 만나고 지지를 구하면 충청인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표르 줄 것이여. 자자, 작설차 한잔 마시고 당 대표에 나가는 겨? 담엔 대통령도 한번 꿈꿔보고...” 라고 조언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해찬 전 총리의 당대표 출마는 당당하고 소신 있게 스스로 결정하되, 민심은 도덕적 정치적 역량이 충분하다며 출마를 고대하고 있다. 특히 충청 민심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해찬 당대표 후 대권출마를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리고 있는 게 확실하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나 가난한 자를 위하는 진보야당의 길을 변심 없이 걸어왔고, 1974년부터 시작된 투옥과 협박 속에서도 유유자적하고 담대한 투사의 길을 걸어온 원로로서 이제 국사를 고루 냉철하게 다룰 경지에 오른 몇 안 되는 정치지도자다.

 

지선 승리가 자신들의 독자적 점유물인양 여기며 이번 당대표에 나가 가문의 영광으로 몸값이나 올려보자는 식의 우후죽순격 출마의 변을 늘어놓는 386 운동권 후배에게 쫄 필요가 없다.

 

이해찬 총리가 충천 대표로 당 대표에 출마하면 충청인들은 전폭적 지지를 보낼 것이다. 또한 당내의 패권을 쥐려는 386 운동권 투사들에게 내심 불만을 가진 당 원로그룹이 소리 나지 않게 힘 있는 지지를 보낼 것이므로 이미 상승기류를 탄 이해찬 총리의 떠오르는 위상을 제어할 수는 없지 않을까?


물리적 나이로 원로니 신예니 하는 이분법적 분류는 실로 어리석은 판단이다. 트럼프를 보라! 1946년생이다. 이해찬 전 총리는 미국의 대통령보다 6년이나 더 젊다. 다음 대선에 출마할 명분은 트럼프에게서 배우고 전달하면 된다.

 

요즘 구직난에 공기업 각종 고시에 젊은이들이 수십대 일, 즉 20년간 부모의 등골 브레이커가 되어도 안정된 일자리를 원하고 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으로 전남 나주의 한전이나 전북 전주의 국민연금공단에 합격하고도 교육난 문화시설 열악 들을 들어 자진사퇴를 일삼는 젊은 일꾼들이 날로 증가한다는 전언이다.


군부와 독재세력에 맞서 1974년부터 44년간 외길을 걸어온 투사이자 경륜가로서 이해찬 총리는 출마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다. 내친김에 충청인의 열망인 충청 출신 대통령감으로 변신해도 지지자들이 있을 것이다. samsohun@hanmail.net

 

*필자/삼소헌 이래권.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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