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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鳳)자’ 들어 좋은 곳

이승철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1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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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브레이크뉴스

봉(鳳) 자 들어 ‘비봉면’ 이름이 좋고, ‘봉산’ 지명 장하다. 봉황은 좋은 새. ‘천리를 날아도 오동나무 아니면 앉지를 않고’, ‘굶어 죽을지언정 썩은 고기 절대 먹지를 않으며 대나무 열매만을 먹는다.’는 길조(吉鳥)이다. 그래서 청와대 정문이나 대통령 집무실에 봉황 문양(紋樣)을 해 놓았다. 그런데 봉황을 잊은 대통령마다 좋은 꼴을 보지 못했다. 어느 대통령은 ‘최순실(崔順實)’이라는 나쁜 열매(여인)를 잘 못 다루다 본인은 물론 나라를 요동시켰다.

 

비봉면 봉산리는 교통이 좋아 전에 새뺑이(새빤이)재를 넘으면 봉상(鳳翔) 전주 땅이요, 고산 읍내가 먼지 않으며, 북행하면 여산(礪山) 익산(益山)과 통한다. 죽산(竹山) 뒷산이 봉실산(鳳室山·鳳實山). 봉동(鳳東) 사람들이 더 존엄하게 여긴다. 학림사(鶴林寺)도 있지만 풍수지리 상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할 때 바로 이 ‘산’으로 본다. 이서구 전설이나 아홉 바위[고인돌] 등 모두를 진기하게 여기며 명산 대접을 한다. 봉산리는 ①원봉산 ②죽산 ③월암 ④사치 ⑤용동으로 너른 지역이다. 월암(월촌) 뒷산을 비봉산(飛鳳山)이라 하는데 묘 쓰는 이마다 ‘봉황의 알 명당’을 염두에 두었고, 저마다 자기네가 ‘명당 쓴 집안이라’ 자부한다.

 

어쨌든 이 산에 구영(具瑩:1584∼1663) 선생 묘가 있다. 묘도 묘지만 묘비가 유명하다. 송시열(1607∼1684)이 글을 짓고, 송준길(1606∼1672)이 글씨를 썼는데 자손과 유림 측에서 애지중지한다. 구영 사당은 고산면 백현(栢峴)에 있으며, 고산 6개면 유생들은 향현(鄕賢)이라며 사모한다. 소금바위[鹽岩:염암]의 다른 얘기는 제쳐두고 수도관을 묻어 서해 물을 퍼 올려 이 지역에 염전(鹽田)을 만들어야 한다. ‘염거감(鹽車感:준마가 하찮은 소금이나 실어 나르는 안타까운 처지)’을 벗게 하자는 말이다.

 

▲ 우보환     ©브레이크뉴스

 

여러 곳에 큰돈 들여 먹고 놀 시설을 넘쳐나게 만들었지만 사람 모으는 데는 실패해 지켜나가기가 어려운 곳이 많다. 예전엔 비봉 대덕탄광 지하수가 냇물을 더럽혀 올챙이 한 마리 없었던 때가 있다. 이렇게 놀란 주민들이 몇 년 전 돼지 막[돈사:豚舍] 문제로 업자와 엄청나게 싸웠다. 봉산리 학생들은 고산면 어우리 삼우(三牛)초등학교에 다닌다. 전화와 자동차가 있으니 비봉 7개리 가운데 봉산·이전리는 고산, 대치·수선은 화산면이 가까워 학자들은 편입 주장에 반대하지 않는다, 원 봉산(이을순)과 죽산(조재영)에서 면장이 나왔고 죽산에 평양조씨 재실이 있으며 은행나무와 소나무가 귀물이다.

 

봉산 성주이씨는 오래 살았으니 집안에 서책이 있으면 보여줘야 한다. 투자를 많이 한 ‘완주 힐조타운’이 성공해야 완주가 이름난다. 서울 살던 이진수 봉산이 좋아 새 집을 짓고 산다. 비암재(뱀재/蛇峙:사치)는 잿길이 꼬불꼬불해서 붙여진 이름. 뱀탕을 조심해야 한다. 박두식 면장 기쁜 날이 많아야 한다. esc2691@naver.com


■필자: 이승철 /칼럼니스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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