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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같이 마음씨 넉넉한 인간학 아티스트 박항서 감독

이계홍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18-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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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 칼럼니스트.

사람들은 박항서 마법(Magic)이라고 한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삼촌같이 마음씨 넉넉한 인간학 아티스트. 필자는 언론 현역시절 시사월간 신동아에 휴먼 스토리 이 사람의 삶3년간 연재했다. 그중에는 성공한 사람들도 있지만 의미있게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생활과 인생관, 세계관을 소개했다.

 

박항서 감독은 2002 월드컵에서 우리 축구팀이 4강에 오른 다음달 10월호에 신동아에 인터뷰가 나갔다. 인터뷰하던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변함이 없다는 데 다정함을 느낀다.

 

그때 나는 이렇게 썼다.

 

-웬만한 축구팬이라면 2002 월드컵 기간 동안 우리팀 벤치에 앉아 그라운드를 뛰는 우리 선수들을 지켜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대머리에 조금은 못생긴 얼굴, 키가 작지만 돌멩이처럼 다부진 체격의 중년 사내를 어김없이 보았을 것이다.

외모에서 풍기는 선입감은 다소 험악해보여서 사람들 접근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솜사탕같이 부드럽고 다정한 사람이다. 바로 우리 한국 대표팀 박항서 코치(당시 45).

히딩크 감독에 가려서 크게 노출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선수들의 운동 스케줄, 트레이닝, 배식, 심지어 잔 일까지 챙겨주는 마음씨 착한 선임하사로 통한다. 그는 우리 축구가 다시 멀리 보고 준비하는 것만이 4강 신화를 재현하는 길이라며, 계속 축구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그 결실이 15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동남아 국가대항전인 베트남 대표팀 대 말레이시아 대표팀 결승전 경기에서 꽃피었다. 축구 팬으로서 10 승리에 다소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가 이끈 베트남이 10년만에 스즈키컵을 안았다는 데 우선 격려를 보낸다. 사실 실점 위기도 있었지만, 후반 말레이시아가 체력이 뚝 떨어졌을 때 몰아붙였으면 20, 30도 가능했다고 본다.

 

그러나 10으로 만족하는 듯 소극적인 전법을 쓰는 것 같았는데, 어쨌든 이겨서 기뻤고, 관중석 이곳저곳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승리 퍼레이드를 펼치는 베트남 청년들이 베트남기와 태극기를 휘날리며 거리를 휩쓸 때는 꼭 우리 선수단이 승리한 것같은 기쁨을 주었다.

 

박항서 감독의 승리는 어디에서 오는가. 역시 삼촌같은 자상함이다. 베트남 선수가 말레이시아와의 게임에서 부상을 당한 선수에게 귀로 비행기에 2등석을 양보해주었다는 것은 바로 그런 자상함의 한 전형이다.

 

다음으로 배려와 성실성이다.

필자가 그의 배려와 성실성을 적은 대목을 인용해본다. 대표선수 탈락 선수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보낸 마음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

 

-최종 엔트리가 확정될 때까지 국가대표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을 합니다. 그러나 최종확정에는 한정된 선수만 선발되잖아요. 대표선수 탈락통고를 해줄 때가 가장 가슴 아픕니다. 어제까지 같이 뛰던 선수를 탈락 통고를 하려고 하니까 인간인 이상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되었죠. 따지고 보면 살생부 아닙니까. 그래서 꼭 도살장에 가는 기분이죠. 하지만 히딩크 감독님의 명령이니 어쩌겠습니까. 감독님의 메시지를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전달했습니다. 이동국 선수의 경우, 우리에게 공격수가 너무 많다. 젊은 신인을 쓰겠다. 능력을 인정하니 좌절하지 말라. 하지만 이런 이유 저런 이유를 대지만 탈락은 탈락이니까 선수들이 상심하고 좌절하죠. 울먹이는 선수도 있습니다. 고종수 선수의 경우는 부상 때문에 일찍 탈락을 했지만 자기 나름으로 완쾌했다고 생각하니 불만이 없을 수 없지요. 보따리를 싸가지고 갈 때 내가 울음을 삼켰습니다. 김도훈 선수가 탈락했을 때는 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연령상 대표선수로는 마지막이었는데, 스페인 전지훈련 때 탈락해 돌아갈 때, 본인보다 제가 더 가슴이 아프더군요. 김용대나 심재원이 탈락한 것보다 비교가 안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는 잘나가는 선수보다 탈락한 선수와 함께 울어주었다는 데 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그리고 그의 말이었기 때문에 섭섭하지만 선수들은 수긍하고 보따리를 쌌을 것이다.

 

그래서 세 번째는 소통력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적 소통력이 부족하면 통하지 않는다. 베트남의 우승도 선수들과 함께 하는 소통력이 큰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의리를 지키는 축구인이다. 상관이자 인생의 스승이 되었다는 히딩크를 끝까지 모셨다. 월드컵을 마치고 그가 한국을 떠날 때 공항 배웅을 나가자 히딩크가 비행기 안까지 데리고 가서 그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고 한다. 이는 백마디 말보다 진한 의리와 신뢰감의 표현일 것이다.

 

그는 히딩크가 풋내 나는 신인선수를 과감히 끌어내 자질을 살려주는 것에서 많이 배웠다. 그 역시 축구 인생으로는 늘 2진이었고, 키도 1m66의 단신이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고향 산길을 타고 달리며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서울의 축구 무대는 그에게 늘 버거웠다.

 

77년 이란세계청소년대회, 78년 방글라데시 청소년대회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79년 국가대표 1진이 되었다가 3개월만에 2진으로 물러났다. 이때 탈락의 쓰라림을 맛보았다. 그후 한번도 국가대표 모자를 써본 적이 없다. 그래서 지도자가 된 뒤 낙오되고 도태되고 좌절하는 선수의 벗이 되고, 힘이 되고자 노력했다.

 

이런 훈훈한 인성과 헌신의 정신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선수를 감동시키고, 끝내 베트남을 감격시킨 우승국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가 이룬 베트남의 우승은 우리 외교관 수백명이 이룬 업적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때 베트남과 우리는 교전국이었다. 이런 아픈 상처를 씻어주는 데도 박감독의 역할이 클 것이다. 마을 주민을 학살하고 아직도 개별적으로 사과한 것 같지 않은데 일본에게 우리가 당했던 것을 생각하더라도 우리가 언젠가는 그들 마을에 들어가 사과해야 하지만, 그에 앞서 박 감독이 이런 응어리를 풀어준 역할하고 크다고 본다.

 

우리나라와의 경제교역도 중국 미국, 다음이 베트남이다. 그리고 한국에 가장 많이 베트남 신부들이 들어와 다문화가족을 이루고 있다. 서로 역사와 전통, 정서, 문화를 공유하고 시장을 넓히고, 옛 상처를 다스려나가기를 우리 모두 갖기를 바란다.

 

박항서 감독의 영광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정치를 되돌아본다. 여전히 상대방을 부정하고 배제하고 공격하는 모습은 살벌하다 못해 지겹다. 남북 관계도 그렇다. 가해자들이 더 잔인하다. 남북 대결로 이익을 챙긴 사람들이 더 증오외 저주의 언어를 남발한다. 박감독에게 배우라고 전하고 싶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이 스즈키컵에서 우승하면서 내년 3월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과 A매치 평가전을 갖게 됐다. 지난해 동아시아연맹컵 우승팀인 한국과 올해 스즈키컵 우승팀이 내년 326일 베트남에서 경기를 갖기로 사전에 합의한 것이다. 그때 단체여행을 가서 멋진 응원전을 펼쳐도 좋을 것이다. khlee05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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