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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장 응모적폐 文정부는 청산해야

강행원 화가 l 기사입력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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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행원     ©브레이크뉴스

무술년이 저물고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는 대길상의 꿈을 품고 미래에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에 기대를 갖기 마련이다. 그 기대치를 가늠하는 지식인 교수들이 뽑아 교수신문에 게재 된 새해의 사자성어는 임중도원(任重道遠)이다. 논어(論語)의 태백(泰伯)편에 나온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한국을 이끄는 문재인정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힘든 길을 예시한 아포리즘이다. 문재인 정부의 탄생은 우리사회가 앓고 있는 70년 적폐청산의 임무를 띠고 출발한 셈이다. 하지만 그 임무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답답한 지경이다. 바라는 것이 많은 민심의 눈높이를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남북화해의 비핵화를 위한 평화적인 중대사와 나라살림까지 이끌고 가야하는 그 책임이 어찌 무겁지 않으랴?

 

문제는 우리사회에서 가장 정의로워야 할 법과 원칙이 말로만 존재할 뿐, 그 원칙을 집행하는 자들이 민심의 신망을 저버린 아픔이 현재도 상존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천심을 농단한 두뇌 집단인 상당수의 법조인들이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는 이 두뇌들과 공조한 당시 정치력의 공로가 하늘을 찔렀다. 하늘을 찌르던 현재의 뒤집힌 과오중 하나는 문화예술계에 남긴 큰 적폐로 국가를 뒤흔든 블랙리스트와 문화계를 비리 소굴로 만들었던 인사정책이었다. 그중 국립현대미술관장 임명도 포함된다. 미술계의 폐해가 적지 않다. 화이트 리스트는 차치하고라도 블랙리스트에조차 들지 못한 5만여 명이 넘는 미술인들은 한갓 부질없는 미술재료와 밥만 축내는 식충 같은 풀 무지렁이들 이상도 이하도 아닌 취급을 면치 못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기능이 정작 미술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얼룩져 있었던 지난 세월을 다시 회고하며 교훈삼기를 고려해 본다. 이런 점에 비추어 한국미술의 장래를 이끌 국립현대미술관장 응모자들의 성향이 자못 궁금하였다. 게다가 언론매체의 분분한 추측 기사들이 쏟아져 미술인으로서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문제는 이들 경쟁자들이 갖추고 있는 학벌과 스펙으로 포장한 실력의 진정한 알맹이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먼저 보수성과 진보성을 계보의 관점과 정치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거나 직간접적으로 암암리에 실력자의 뒷배가 되고 있는 경우 등으로 복잡한 추측이 나돌고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자신들이 지닌 스펙만큼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이는 스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스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대한민국을 부르는 부끄러운 첫 번째 별칭이 학벌공화국이다.

 

다시 말하면 종이(Paper)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뜻이다. 능력보다 종이가 우선인 스펙의 나라가 되어버렸다. 이제 무엇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박사가 아닌 사람은 없으며 이도 모자라 외국의 학위, 외국의 스펙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무한경쟁에 휩싸여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실질적인 능력을 검증하기가 쉽지는 않다. 더구나 미술계는 비평마저 사라져버린 무풍지대이다. 미술비평가 고 원동석 씨는 “평론의 부재는 화단의 부재이자 예술의 위기라는 사실을 비평이 상실된 이유라고 했다.” 한마디로 우리미술의 근간을 상실한 정체성에 대한 황폐화를 의미한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 응모자들은 대다수가 교수 출신이며 평론가나 미술사학자, 전시기획자 등이다.

 

이들은 거의가 동양미술의 깊이에 약하며 서구주의에만 촉각을 기울여온 풍토에서 현장경험을 지닌 능력을 기반으로 한 자들이다. 하지만 일단 출사표를 던진 이들 모두는 새겨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한국미술에 대한 비평이 사라진 무풍지대에서 안주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비평이 주례사로 지칭되고 자화자찬하는 허울의 울타리 안에서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 여기에는 이 나라가 군사독재의 어두운 시기를 지나오면서 민주화운동에 동참한 민중그림이 큰 힘을 발휘하던 진보계열의 인사들끼리도 서로 자리를 다투고 있다. 아마도 현 정부와 코드가 맞아서 출사한 것이지만 관장이 직업이 되어 스펙이 빛나는 자들을 포함한 전체의 자웅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종 1인을 선발하기까지 분명한 것은 동양예술, 즉 우리미술의 정체성을 곧추세울 수 있는 지적기반의 검증도 함께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한국의 현대미술이 70년대 이후부터 다양한 양상으로 빠르게 변한 연유이다. 그것은 퍼스트모더니즘의 진입과 동시에 모더니즘이 퇴행하면서 다양하고도 자유로운 양상으로 급변한 것은 서구논리의 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뿌리가 무엇이며, 또 무엇으로 우리 미술이 한국적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대책도 답도 없었다. 이유는 지금껏 서구주의 대세가 예술계의 패권을 장악해 왔기 때문이다. 해서 화단은 온통 서구주의로 매몰되어 대학교육까지도 같은 입장이 된 셈이다. 모든 예술기획이 서쪽논리에 맞추어져 우리미술의 정체성의 바탕인 동양사고의 예술은 고사지경에 놓이게 된 것이다. 퍼스트모더니즘은 아직도 건재하게 남아서 탈이념 탈국가주의를 획책하고 있다. 언제까지 여기에 맞춰가야만 할 것인가?

 

▲ 임중도원 - 증자 가로대 선비는 가히 넓고 굳세지 아니하지 못할지니, 임무는 무겁고 길은 머니라. <논어論語 태백泰伯> 등에 진 짐은 무겁고 길은 멀다. 큰 일을 맡아 책임이 무거움.     © 브레이크뉴스

 

세계는 지금 정보화와 미래의 4차 산업을 통해 글로벌리즘의 소용돌이에 있다. 이는 곧 지구주의로의 순화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패권국가로부터의 지구를 독식하려는 힘의 논리이다. 패권국의 뜻대로라면 탈국가주의가 되는 일인데 문화양식마저 그 영역이 무너져 버린다면 무엇으로 우리를 보호하겠는가.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예술이라고 하는 문화적 영역은 한류를 지키는 우리의 삶에 중요한 도그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정서에 맞는 예술이 전통적으로 어떻게 서양미술과 다른가에 대한 자기 정체성을 재발견해야한다. 국립미술관의 리더들은 대부분 서구주의에 매몰된 편협한 눈으로 지금껏 현대미술이라는 탈을 쓰고 자리를 지켜왔다.

 

이는 이명박근혜정부에서 임명된 자들이 보여준 치적의 전례에서도 잘 들어난다. 한국미술의 10년을 미궁에 빠뜨린 미술관 암흑기능이 현재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MB때의 정 관장의 전횡이 국감을 통해서 밝혀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지상에 알려진 당시 내용을 다시 정리해 보면 “정 관장은 학예연구사 공채 시에 근대미술이론 분야를 지원한 자신의 제자 A씨가 서류전형에서 탈락하자 인사담당자에게 서류 조작을 지시해 3위로 합격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관장은 면접위원이 아님에도 면접장에 들어가 자신의 제자 B씨에게 질문을 집중적으로 하여 인사에 개입했다. 결국 A씨와 B씨는 근대미술이론과 동양화론 분야의 면접에서 각각 1등을 기록했고 학예연구사에 합격했다." 그의 전횡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2013년11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에 초대된 작가들의 85%를 특정학교(서울대) 출신으로 선정했다. 이 또한 자신의 재직학교 중심의 편파적인 부정인선으로 축제장이 되어야 할 미술계를 비탄에 빠뜨린 바 있다. 결과는 명문을 빛내는 것이 아니라 더 욕되게 했다.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미술은행(Art Bank)의 작품매입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의구심을 남겼다. 그것은 미술인과 외부전문가(미술평론가)로 하여금 심의위원을 배정하던 전례를 뒤집고 자체 학예사들만을 중심으로 구성한 비밀에 붙여진 월권을 하였다.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눈은 자체 학예사들 보다도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들과 외부 평론가들의 상호 참여와 견제하에 이루어져야 월등히 공정하다는 것을 어떤 논리의 변으로도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작품매입을 미술관 독단으로 비밀리에 처리했다면 어느 누가 그 투명성을 인정하겠는가. 3년여에 걸친 작품심의와 예산집행 내용의 비공개는 전례가 없는 독선을 자행했다.
 
탄핵된 박근혜정부는 국립미술관만이 아니라 문화계를 아예 빌미의 소굴로 만들었다. 그래서 더욱 `MB정부에서 전횡을 일삼다가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정 관장의 공석을 바로 메우지 못했다. 지시대로 따를 적임자가 없었던 것인지 수개월을 비워두다가 관장응모를 거처 최종 2명을 압축하였다. 미술계를 어떻게 이용하고 싶었던 것인지의 꿍꿍이 속내는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마져도 믿을 수 없었던 것인지 다시 1년여를 공석으로 두다가 결국 무효화하고 외국인을 임명했다. 한국역사도 한국어도 모르는 그 외국인을 개방직이라는 이유를 들어 스포츠 감독 모셔오듯 외국인 바르토메우 마리 씨를 임명한 것은 세계에서 미술대학이 가장 많은 나라인대한민국 미술인들의 자존심을 깡그리 짓밟는 폭거였다.
 
이에 임명권자와 임명을 수락한 마리 씨를 질타하는 꾸짖는 외침이 빗발쳤었다. 필자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알아듣지 못한 것인지, 알고도 모른 척한 것인지. 탄핵에 이른 박근혜정부의 문화예술 비리 그 한가운데서도 한국은 마리 씨의 호구 나라였다. 그는 자신의 나라에서도 국립미술관장직에서 해직된 자다. 미술관 리더가 아무리 개방직이라 해도 국격을 담보한 미술문화전당 운영을 외국인에게 맡기는 것은 넋 나간 짓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글로벌한 지구주의에선 자신의 색깔이 분명해야만 개성적인 동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쯤은 보편적인 상식이다. 그래서 더욱 자국의 정체성을 곧추세워야 할 장르를 외면하고 외래문화만을 부추겨 온 결과를 초래한 것은 우리문화 혼을 살해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의가 붕괴되면 사사로운 흐름의 역류가 강하게 밀려들 것은 자명한 일이다. MB때 정 관장의 독선과 교사한 미술관 종사자들은 예산이 집행되는 미술은행의 작품매입과 기타운영 등에 외부간섭 없이 석연찮은 자행도 같은 역류이다. 박근혜정부에 와서도 이러한 적폐에 길들여진 신나는 일들은 리더가 수 개월간 공석이 되어 더 견고해졌다. 게다가 실정도 모르는 뜬금없는 외국인 관장 마리 씨와의 적응은 직원들의 뜻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허수아비 결재자로 여길 수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이러한 모든 적폐들은 국민이 들어 올린 촛불로 쟁취한 민주화의 가치질서에 반하는 일이다. 미술관의 비민주적인 모든 적폐를 청산하고 우리예술문화의 정체성을 곧추세울 적임자가 필요하다. 자칫 논공행상의 과오가 미치게 된다면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정의가 적폐가 될 터이니. yoonsan47@hanmail.net


*필자/강행원, 화가. 동양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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