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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1 아들에게 받은 눈물겨운 선물

송현 시인 l 기사입력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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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현 시인     ©브레이크뉴스

나는 3대 독자인 내 아들이 잠실중학교에 입학 했을 때 이혼을 했다. 걔 누나는 3학년이었다. 이혼으로 애들 엄마가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식구는 하나가 줄었는데, 슬픔과 불행은 배가 되었다. 우리 가정에 이런 큰 시련이 올 줄은 몰랐다. 그때 애들과 나는 서울 잠실 장미아파트 17동에서 살았다.

 

그해 겨울은 여기저기에서 수도가 얼어터질 만치 추웠고 가정이 깨어진 우리 집안 분위기는 강추위보다 더 냉랭하고 더 황량했다. 어느 날 아들이 내게 말했다.

 

“아버지, 신문 배달을 하고 싶어요.”
“난데없이 웬 신문 배달?”


아들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대답이 없었다. 평소에도 말이 별로 없던 앤데 엄마가 나간 뒤로는 더 말이 없어졌다.
“돈이 필요하냐?”
녀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용돈이 적니?‘
녀석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무슨 사고를 쳤냐?”
녀석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는 답답해서 언성을 높여 웬 신문배달이냐고 다그쳤더니 그제사 퉁명스레 말했다.
“그냥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그 이유라면 나중에 고등학교 때 해도 늦지 않아! 안 돼! 그런 경험을 하기엔 넌 너무 어려! 넌 겨우 중1이야!. 중1!”
그 순하고 물러터진 애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차분하게 타일렀다.
“정 그렇다면 내년에 중2때 하면 안 되겠니?”

녀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얘야, 굳이 해보겠다면 지금은 겨울이라 새벽 공기가 너무 차가우니 따뜻한 봄이 되면 그때 해보렴.”
그래도 녀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굴 닮아 그런지 물러터져 애비 말 한 번 거역한 적이 없던 애가 그날따라 물러 설 기색이 없어보였다. 에미만 집에 있었다면 녀석의 뒤통수라도 한 대 쳐서라도 못하게 했을 건데, 에미가 없다는 것이 불쌍해서 내가 물러서고 말았다. 할 수 없이 ‘겨울 방학 한 달간 너무 많은 구역을 맡지 말고, 장미 아파트단지만’ 배달하는 조건으로 신문배달 하는 것을 승락했다.

 

“아침마다 내가 깨워주마.”
녀석은 아무 표정도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날 밤 나는 별별 생각 별별 상상을 다 하면서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녀석의 방에도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해 겨울은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한강을 건너서 잠실 장미아파트 17동쪽으로만 몰려오는 것 같았다. 잠실 중학교 1학년 지 XX이 엄동설한의 미명에 신문 배달하러 제 손으로 현관을 따고 집을 나설 것이 안쓰러워 나는 녀석보다 먼저 일어나서 내 방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내가 깨워주지도 않았는데 용하게 혼자 일어난 녀석이 신발장 앞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 뒤 현관문을 따고 나가는 것이었다. 에미 없는 고아 같은 녀석의 뒷모습을 보니 억장이 무너졌다. 에미라도 집에 있었으면 덜 애처로웠을 것이고 내 마음도 덜 아팠을 것이다. 그 순간 우리 집 시계는 멎고 우리 가족의 시계도 멎고 내 삶의 시계도 멎고 내 심장도 멎는 것 같았다.

 

잠실중학교 1학년 지 XX의 뒷모습을 보고는 나는 망연자실하여 그 자리에 오랫동안 입상처럼 서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날 밤을 뜬 눈으로 보낸 녀석의 누나도 그 시각 제 방에서 소리 죽여 흐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신문 배달을 한 지 한 달이 되던 날 쯤에 녀석이 선물 꾸러미를 내 앞에 내 밀었다. 내가 물었다.


  “이게 뭐냐?”
  “아버지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신문배달로 번 돈으로 샀습니다.”
  “.........”

 

겉으로 기쁜 표정을 짓고 고맙다는 말을 과장해서 했지만, 내 마음은 기쁘기는커녕 납덩이처럼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녀석이 보는 앞에서 포장을 뜯어보니 민중서관에서 발행한 가죽 장정의 이 희승 국어사전이었다. 내가 평소에 갖고 싶었던 사전이었다. 나는 갑자기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못하고 사전 표지를 넘기니 속 페이지 첫 장에 녀석이 또박또박 다음과 같이 쓴 글귀가 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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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아버지께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땀 흘려 번 돈(신문배달)으로 이 사전을 선물합니다.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1994년 1.. 31.

아들 지 XX 올림(서울 잠실중학교 1학년 13반 2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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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을 읽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억장이 무너졌다. 목이 메어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녀석의 손을 꼭 잡았다. 내 손에 전해오는 따뜻한 기운이 바로 ‘내 새끼’의 기운이구나 싶었다. 그 순간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미안하다. XX! 이 순간 너의 엄마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미안하다. 그리고 너는 내 새끼이고 나는 네 애비다. 이 선물 하나로 차고도 넘친다. 그러니 앞으로 내게 어떤 선물도 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애비 마음을 녀석은 알았지 싶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녀석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 등 뒤에서 아까부터 이 광경을 지켜보던 녀석의 누나도 마침내 소리내어 엉엉 울면서 문을 쾅 닫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우리 집 모든 불은 초저녁부터 다 꺼졌고 어떤 인기척도 나지 않아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 같았다. nowh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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