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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분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김정기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1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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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수호대가  분단은  미국  탓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무지 그 자체다. 그래서 용감한가 보다.
 
마지막까지  통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있었던 김구 선생이 1945년  11월 23일 상하이  강만 비행장을 출발하여  해방된 고국 땅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 이유를 아는가?


먼저 김구 선생의 소회를 보자. <천신만고로 참전 준비한 것도 허사다. 진실로 전공이 가석하거니와 그보다도 걱정되는 것은 우리가 이번 전쟁에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장래에 국제간에 발언권이 박약하리라>.  구체적으로 말하면 2차대전 당시 광복군이 조선에 상륙하여 일본군과 교전하고 무력으로 조선을 해방시켰다면 그 후의  신생 대한민국이 승전한 강대국들의 잔칫상에 올라 남북분단이라는 민족사의 질곡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보기에 분단의 1차적 책임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 이제는  솔직해지자. 남 탓하지 말자는 거다.  무능하고 힘이 없어서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 합병이 되었고, 2차대전 때는 강제 징용이었지만 연합군과 적군으로 싸웠다. 우리가 민족해방을 위해  무엇을 했을까? 일제 강점기 초기인 1919년 3.1운동 후에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지만  1932년이 되면  한반도에서 독립운동의 씨가 마르고,  만주에도 일본의 괴뢰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경지대를 제외하고는  아주 힘들어진다. 그로부터  5년 후 중일전쟁이, 9년 후 태평양전쟁이 일어난다. 아시아  최강국이 된 일본이 대동아공영을 외칠 때  조선의 독립은 요원해보였다. 이후 식민지 조선인  일부도 루쉰의 아큐처럼 살지 않았는지.....?
 

▲ 김정기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명맥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1919년 상하이에서 시작해 해방 직전까지 일본군에 쫓기는 장제스의  국민당을 따라 1940년 충칭에 자리를 잡았다. 결정적인 것은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임시정부에  재정 지원을 해주던 국민당의 장제스  총통이  미국  루즈벨트와 영국 처어칠을 설득하여 '적당한 시기에 조선의  독립을 보장한다' 고  선언했던 카이로회담까지는 좋았지만, 얄타회담에서는 장제스가 빠지고  스탈린이 참석하여 태평양전쟁에 참전하기로 하면서 소련의 발언권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종전 이후를 논의했던 포츠담 회담에서는 중국  장제스의  영향력이 많이 약화된 상태였다. 이것이 굳이 말하면  분단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소련은 청일전쟁  이후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3국간섭을 주도하면서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욕을 드러냈다.  그 당시도 한반도 39도 분할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만주의 관동군을 접수하면서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북쪽을 분할 점령하게 된 것이다.  소련군의 한반도 진출이 워낙 빨라서  당황한  미국도 38도를 경계로해서 분할 점령하기로 한 것이었다. 당시에 무력한 중국도,  조선에 대한 그림이 전혀 없었던 미국도 분단된 한반도를 원한 게 아니었다. 소련이  분단상황의 주범이고, 한국전쟁을 승인하면서 분단을 고착화시켰다.

 

*필자/ 김정기 석좌교수

* 법학박사 * 제8대 주 상하이 대한민국 총영사 * 숭실사이버대학교 초대 총장 *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특임교수 * 한남대학교 경제학부 예우교수 *중국 베이징대학교 북한학 연구교수 * 법무법인 대륙아주 중국총괄 미국변호사 *저서 : <밀리언셀러 거로영어시리즈> <대한민국의 미래를 말하다>  외 2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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