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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개혁개방 40년

김정기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1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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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개혁개방  역사는 참으로 눈부시다. 1978년 덩샤오핑은 문화혁명의  아픔을 뒤로 하고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했다.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쥔이 1962년 류즈단 사건에 연루되어 숙청된 지 16년만에 복권되어 경제특구 청사진을 그렸다. 광둥성의 선전, 주하이, 산터우와 푸젠성의 샤먼을 경제특구로 지정하여 중국식 자본주의를 실험했다. 특히 시중쥔은 광둥성 당서기로 임명되어 과감한 규제혁파를 통해  투자유치와 기술도입에 성공하여 1980년대 1차 개혁개방의 상징인 주삼각지역의 경제신화를 창조했다. 
 
1989년 톈안먼사건이 일어나면서 개혁개방이 단기적으로 좌초되었다. 덩샤오핑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상하이시 당서기  장쩌민을 중국 공산당 총서기로 내세우지만 보수파가 득세하여  개혁개방이 정체되었다. 덩샤오핑은  1992년 남순강화 이후 보수파의 거두 천윈을  무력화시키고 장쩌민을 압박하여 상하이를 중심으로 1990년대 2차 개혁개방의 상징인 장삼각지역의 경제신화를 창조했다.
 
이로써 점선면 전략에서 점선에 해당되는 동부  연안 도시들이 선부론에 입각하여 먼저 부자가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점에 해당되는 내륙도시들에게  나누는 차원에서 중서부지역은 2000년대부터 본격적인 개혁개방에 착수했다.

 

▲ 김정기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후진타오 시절인 2008년 금융환란은 중서부 내륙도시들에는 오히려 호기였다.  중국의 주요 수출시장이었던 미국, EU, 일본에 빨간 불이 켜지면서, 내수시장 활성화에 4조 위안의 예산을 책정했고, 특히 중서부 지역의 낙후된 인프라 구축비용으로 대거 투입되었다. 이로써 점선면 전략이 성공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동부 연안지역과 중서부 내륙지역의  불균형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개혁개방은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한 것이다.  이후에  서방 선진국의 본격적인  신뢰를 획득하여 대규모 외자 유치와  첨단기술 도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2010년에 경제올림픽인 상하이올림픽으로 절정을 이루었지만, 개혁개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필자/ 김정기 석좌교수

* 법학박사 * 제8대 주 상하이 대한민국 총영사 * 숭실사이버대학교 초대 총장 *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특임교수 * 한남대학교 경제학부 예우교수 *중국 베이징대학교 북한학 연구교수 * 법무법인 대륙아주 중국총괄 미국변호사 *저서 : <밀리언셀러 거로영어시리즈> <대한민국의 미래를 말하다>  외 2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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