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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가 각박해지면 가면 갈수록 태산이라든가?

이순복 소설가 l 기사입력 201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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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운수가 각박해지면 가면 갈수록 태산이라든가?’

 

진조는 망조가 들어 더는 추락할 내야 추락할 곳이 없을 정도로 추락해 버렸다. 주액의 변과 골육상쟁의 뒤끝이 이리도 맵고 혹독할 줄 누가 알았으랴. 진왕 사마업의 곁을 지키던 순조 순번 숙질과 유주가 양식과 수레마저 가지고 도주하니 진왕은 맨몸이 되고 말았다. 이에 염정은 이근과 함께 유주를 추격하여 간신히 유주의 목을 베고 양식과 수레를 가까스로 되찾아왔다. 그러나 고통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또 다시 태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염정은 진왕 업을 우마차에 태우고 무관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또 다시 태산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도중에서 산적을 만나 목숨을 구하고자 죽을힘을 다하여 싸워야 했다. 이 싸움에 병졸들이 상하여 죽고 흩어지고 달아나버렸다. 이런 격난을 치르고 보니 이제 늙고 상한 패잔병 백여 명이 남아 애면글면하며 남전에 당도하였다. 염정은 생각다 못해 왕비를 옹주의 대부 가필에게 보내어 진왕의 옹색한 행차를 숨기지 말고 모두 알리게 하였다. 진왕의 남루하고 옹색한 행차를 전해들은 가필은 곧 수하대장 양위와 양종을 이끌고 양식을 조발하여 운송해 주고 진왕의 행차를 장안까지 호송하였다.

이젠 태산을 넘었으니 평지가 나올 것인가?’

 

이때 옥구(玉龜)가 패수에서 나오고 신마(神馬)가 함양에서 울었다고 한다. 거북이와 말은 다 같이 상서로운 조짐을 나타내는 상징물인지라 이에 용기를 얻은 남양왕은 진왕을 추대하여 제위에 오르도록 준비하니 AD310년의 일이다. 남양왕은 정성껏 단을 모으고 천지신명과 종묘사직에 고하고 연호를 건흥 원년이라 정하고 진왕을 민제라 고쳐 부르게 하였다.

민제의 이름은 업이요 자는 언기이며 오왕 안의 아들이다. 그는 즉위하자 염정을 대사마에 총리군사를 겸하게 하고 가필을 정서장군 수조참찬에 임명하고 시평태수 국기를 옹주자사에 임명하고 경조태수 색침을 상서좌복야로 발탁하고 양종을 보국대장군 양위를 진국대장군에 임명하고 장안의 노장 미황을 보국대장군에 임명하고 순우정을 호국대장군 왕비를 보가전장군 이근을 보가후장군에 남양왕을 대사도 좌승상 도독 관서제군 총리국정으로 하고 낭야왕 예를 시중 우승상 도독 섬동의 제군사(諸軍事)로 임명하였다.

그리하여 낭야왕 예에게 자기가 진조의 중흥을 위하여 제위에 오른 사연을 적은 조서를 내렸다. 낭야왕은 조서를 받고 북쪽을 향하여 울면서 통곡하며 절하고 그 날로 표를 올려 황제를 경하하고 조적과 주이에게 영을 내려 삼가 변방을 수비케 하고 강회의 방비를 엄중하게 하였다.

민제는 표를 보고 낭야왕은 중원을 경략할 뜻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격문을 각처로 보내어 군사를 모으고 병사들과 양초를 모으게 하여 국토회복을 꾀하였다. 세작이 이 소식을 전서구를 날려 평양에 보고하자 소무제 유총은 백관들을 모아 놓고 숙의하기를

진조는 민제를 세워 중흥을 꾀하고자 한다. 유요 석늑은 낙양을 공략하고 나서 아직도 중주에 의거하고 있다. 또한 관씨형제와 호연형제는 모두 사망하였으니 유요와 석늑을 소환하여 진에게 수모를 당하지 않아야 하겠다.”

강발이 유총의 의견을 옳게 여기자 유총은 곧 조칙을 내려 유요와 석늑을 불렀다. 그러나 석늑은 표를 올려 조적이 군사를 수춘에 주둔시켜 기회를 엿보고 있으니 군사를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고 하며 불참하였다.

 

한편 유요는 서방으로 돌아가 진병의 침입에 대비하라는 조서를 받고 또한 석늑의 서장도 받았지만 자기 뜻이 간대로 조고에게 1만군을 주어 낙양을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석늑에게는 별도로 회답을 보내기를 허창과 업성에 군사를 주둔시켜 조고를 구원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5만군을 이끌고 평양으로 가서 입조하고 신제께 배하하였다. 이에 신제 유총은 유요에게 원로의 노고를 위로하고 자리를 내어 주고 나서 여러 대신들에게 묻기를

짐의 부자와 고구대신들이 심력을 다하여 수십 년을 싸운 결과 낙양을 취하고 유평을 다시 평정하여 관중을 탈취하므로 해서 천하일통의 대업을 이루고자 하였오. 그런데 뜻밖에 진왕 사마업이 일어나 도리어 각 진에 격문을 띄워 진조의 천하를 회복코자 하고 있으니 만약 진조에게 사세가 역전 당한다면 우리 한실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두렵구려. 경들은 이 모든 영토를 수성을 할 수 있도록 기탄없이 양책을 말해 보오.”

이에 강발이 한발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진제가 제위에 올라 뜻을 이루려고 하지만 군사를 계획한 대로 모으기 어려울 것입니다. 강동에는 군사가 있으나 오직 수전에 익숙할 뿐 궁마에는 서툽니다. 하서유병 4주의 제후들은 각기 패자임을 자칭하고 있어서 진실로 진제를 돕지 아니할 것입니다. 하물며 어느 세월에 군마를 조발하여 기병하겠습니까. 단 옹양관중진농주의 강병이 아직도 수십 만군이 건재합니다. 그러나 수십 만군은 있으나 양장이 없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한 사람의 양장을 얻고 수십 만군을 휘동하여 진제가 재기를 꿈꾼다면 천하는 다시 혼란이 야기될 것입니다.”

이에 한제 유총이 말하기를

석늑의 군사는 강하나 허창과 업성에 있으면서 중주를 지키고 있으니 경망되게 움직일 수 없을 것이요. 그러나 남병을 넘볼 우려도 있고 왕씨와 관씨는 숙장으로 그 위세를 진조에 떨쳐 놀라게 하였으나 모두 다 죽고 없구려. 짐이 생각하니 영웅은 옛만 못한데 어찌 장안을 얻을 수 있으리오.”

 

한제 유총의 탄식하는 처량한 말에 시안왕 유요가 호언장담하기를

옛 장수중에 사망한 자가 많다고 하나 후진 영웅 또한 적지 않습니다. 대병은

강성하며 예기는 바야흐로 충천합니다. 어찌 심려가 그다지 크시옵니까? 신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원컨대 일지군을 이끌고 곧 장안을 쳐서 진조의 군신을 사로잡아서 후환을 없애겠습니다.”

이때가 진의 민제 건흥원년이고 한제 유총의 가평 3년이며 성왕 이웅의 옥형 3년이었다. 유요의 말을 들은 유총은 크게 기뻐하며 즉각 유요로 정서평진대원수를 삼고 강발을 행군모주(行軍謀主)로 강비 관산을 전두선봉으로 하고 유경 관심을 중군부로 삼고 노장 황신 황명을 후군부로 하여 20명의 새로운 장수와 근문귀 등을 영솔하게 하고 20만대군을 내어 주었다. 그리고 소무제 유총은 특별히 세자 유찬을 감군을 하게 하여 그날로 평양을 떠나 곧 바로 장안을 향하여 진군하게 하였다.

이들 대군이 지나는 군과 현은 시세를 좇아 모두 귀순하였다. 진의 군부에서 이 사실을 듣고 격문을 띄워 장안에 알리자 남양왕이 보고 크게 놀라 민제에게 아뢰니 민제는 즉시 백관을 모아 숙의하기를

짐이 유충하나 경들의 추대로 제위에 올라 종사를 주관하게 되었소. 헌데 복중의 암적 존재인 한적이 또 장안을 침구한다하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이에 남양왕 모가 아뢰기를

신은 선제의 위탁하심을 받아 군사를 관서에 모아 두었습니다. 대장 순우정 순우안 여의 진안 장춘 왕인 구장 미황 옹장 양종 양위와 10만 대병이 있습니다. 이로써 적을 방어하기 족하니 폐하께서는 크게 염려하지 마옵소서.”

남양왕이 이같이 말하자 장사도위 진안이 또 아뢰기를

지금 복야 색침 시중 국윤 정서장군 가필은 각처로 나가 군사를 모우고 있으며 아직도 적은 침입하지 않았습니다. 속히 사람을 격문을 돌려 모병하는데 주력하고 새로 맹장을 가려서 그 뒤를 크게 밀어주며 요관을 지키게 하십시오. 그리하면 한적이 비록 백만이라 하여도 이 관애를 지나치지 못할 것입니다. 또 다른 군사를 정비하여 남전을 수비케 한다면 장안은 태산처럼 평온할 것입니다.”

 

이에 민제와 남양왕은 크게 기뻐하며 진안에게 묻기를

누가 요관을 지키기에 적임자라 생각하는가?”

부장군 왕인에게 3만군을 주어 소애구를 막게 하십시오. 능히 한적을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속히 군사를 조련하여 전쟁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남양왕은 왕인에게 후한 상을 내리고 밤을 도와 진군하여 관애를 막게 하였다. 왕인은 관에 당도하여 나무를 베고 돌을 옮겨 요소요소를 막게 하였다. 특히 관상의 대도는 집중적으로 철저하게 막아 진을 치고 군사를 기세 높게 벌려 세우고 기치를 채책 주변에 무수히 세워 방비를 철저하게 했다.

시안왕 유요는 군사를 이끌고 요관에 가까이 이르자 탐마가 와서 진병이 관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고 보고했다. 유요는 대열을 멈추고 몸소 강발과 함께 말을 몰고 가서 적정을 살펴보았다. 산관은 매우 가파르고 험한 낭떠러지라서 짐승들도 교통하기 어려웠다. 그런 관애의 길목에는 정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이를 본 유요는 절망에 가까운 탄식성을 발하기를

이관이 어찌 이리도 초벽(峭)은 증린(嶒嶙)하여 금수(禽獸)도 불통(不通)이란 말인가! 진의 수장이 이다지도 엄히 지키고 있으니 새 한 마리도 넘을 수 없겠거늘 항차 병마가 어찌 넘을 손가.”

이에 강발이 나서며 말하기를

한번 부딪쳐 보아 관장의 지용 여하에 따라 작전을 세웁시다. 만약 용부라면 말을 해서 격노시켜 싸우고 기계를 써서 깨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지자라면 궤도로써 꼬여내어 쳐야합니다. 그리고 토착민을 데려다가 샛길을 알아내어 상금을 후히 주고 길잡이를 삼아 적을 격파해야 합니다. 5일 안에 이 관을 얻는다면 장안을 능히 공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일이 늦어져 구원이라도 오게 되면 승패를 가리기 어렵습니다.”

 

강발의 이 같은 제의에 대하여 유요가 다시 말하기를

이관은 천험의 지리에다 아주 엄하게 지키고 있소. 항우가 재생하고 제갈무후가 다시 나타난다 해도 격파하기 어려울 거요. 더구나 5일 안에 이관을 격파한다는 것은 도저히 어려운 일이오.”

유요가 절망적으로 말 하고 있을 때 군사들이 토착민 5명을 데리고 장막으로 들어왔다. 유요는 강발의 말대로 토착민을 후히 대접하고 마음을 안정시켜 관의 수비에 대하여 물으니 그들이 대답하기를

관의 수장은 촉인 왕인인데 그는 5천군으로 애로의 목마다 촘촘히 막아 놓았고 정기는 허장성세로 저리 많이 세워놓았습니다. 이곳은 천험의 땅이라 넘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이에 강발은 적정을 자세히 듣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었다. 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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