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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학하여 함부로 사람을 죽여 충량한 신하가 사라지고 없다

이순복 소설가 l 기사입력 2019-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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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한제 유총은 석늑이 진류태수 왕찬을 쳐서 지경을 넓히자 조서를 내려 석늑의 공을 포장(襃獎)하고 그에게 남로의 대총관을 제수하였다. 남로의 대총관이 된 석늑은 강성한 자기의 병위를 이용하여 가까운 군현을 병탄하고 왕준의 지경까지 침공하게 되었다. 이에 왕준의 장사 유양과 사마고유는 왕준에게 말하기를

석늑의 세력이 날이 갈수록 강성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유곤 병주자사가 영양태수와 동맹을 맺고 요서의 단씨와 척발씨의 힘을 합하여 석늑의 기반이 더 굳어지기 전에 제거하여 후환을 없애야 할 것입니다.”

너무 걱정이 심한 것 같소. 나에게 30만 웅병이 있고 여러 번 강한 도적을 토멸시켰거늘 어느 놈이 나를 대적하겠소.”

 

왕준은 큰소리치며 충고하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양은 적극적으로 석늑을 꺾자고 간하자 왕준은 자신을 가볍게 보아 충고한다고 오해하고 크게 성깔을 내며 칼을 들어 유양을 베려고 하자 곁에 있던 사마고유가 말하기를

유양의 말은 진실로 충직한 올바른 말입니다. 주공을 아끼고 모시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니 용서하십시오. 언로를 막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에 왕준은 더욱 노하여 사마고유와 유양이 붕당을 지어 자신을 망친다고 낙인찍었다. 그래서 둘을 함께 목을 베어 각 영채로 수급을 조리돌려 보이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며칠 사이에 부곡과 같은 수많은 장졸이 왕준을 버리고 석늑에게 투항했다. 부곡 등의 여러 항장으로부터 왕준의 근황을 면밀히 알게 된 석늑은 왕준을 치고 싶었다. 그러나 왕준이 군략이 능하고 양초가 충분하며 강군을 가지고 있어 그 기반이 든든한 고로 성급하게 서두르지 못했다. 특히 왕준이 선비 오환 북대와 가까워 일단 유사시에 왕준을 도울 것을 안지라 기회가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또 위곤과 소속은 그의 동패로서 이들이 왕준의 한쪽을 구원할 것이기 때문에 더구나 쳐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근래에 세작을 풀어 유주(幽州:북경)의 정세를 알아보니 유주의 백성들이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다가 왕준이 잔혹하여 백성은 원한을 품고 군졸은 마음이 떠서 머지않아 패망할 것이라는 정보였다. 또한 유양과 사마고유를 참수한 뒤에는 감히 충언을 하는 자가 사라지고 두드러진 인재마저 없었다. 곧은 말을 하는 자를 무참히 벌하였으므로 민심이 이반하여 대부분 석늑에게 가고 남은 자는 벙어리처럼 지냈다. 그러나 왕준은 오로지 조숭 주원의 말은 잘 듣고 의지했다.

 

왕준은 만만한 인걸이 아니라 아직도 인재를 구하려 애쓰지만 마가 붙어

왕준은 다소 인심을 잃고 부하들의 신망을 잃은 것이 사실이나 아직도 자기 세력을 떨치려고 천하에 현재보익(賢才補翼)을 구하였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마침 곽원이 광제(匡濟)의 재질이 있다하여 천거하였다. 곽원은 중주인으로 본시 충량(忠諒)을 품은 사람으로 지절이 청고하며 흥폐를 알았다. 그런고로 산간에 숨어 살며 왕준이 재삼재사 벼슬을 주고 초빙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하루는 왕준이 크게 노하여 곽원을 베려고 하니 대장 손위가 간하기를

이 사람은 유명한 분이니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됩니다.”

너희가 무엇을 알겠느냐. 나서지 마라. 장안에 유행되는 동요에 천자가 두전(荳田)에 있다는 구절이 있다. 두는 곽()이고 전은 원()이다. 만일 곽원을 죽이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반드시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강하게 변설을 늘어놓고는 곽원을 잡아 죽이고 모든 정사를 주원과 조숭에게 위탁하여 맡아보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어리석게도 왕준의 믿음을 저버리고 탐혹(貪酷)에 깊이 빠져버렸다. 그런고로 북주 사람들은 이 일을 속담으로 만들어 말하기를 부중 모두 주구백(朱丘伯) 십낭(十囊) 오낭(五囊) 조랑(棗郞)에 들어간다.’ 고 비꼬았다. 그런가 하면 주부 전교도 탐욕하고 잔혹하였으나 왕준이 이를 방관하자 병졸들도 이를 본떠서 검은 바람을 일으켰다. 그들은 왕준을 설득하여 널리 산택(山澤)을 작답하여 파종하고 물을 끌어 들여 소득을 보게 하여 조세를 늘려 중간에서 이익을 챙겼다. 그리고 남의 총묘(冢) 방옥을 침해하고도 구휼하지 않으며 공역을 함부로 하니 민심은 이탈되어 선비(鮮卑)족을 찾아가 활로를 찾은 사람이 많이 발생하였다. 이에 승사랑 한함이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간곡히 간하였으나 오히려 곤장을 맞고 드러누웠다. 이로 인하여 관원이나 병사나 선비나 서민이 다 같이 왕준을 원망하기를

망할 세상 석늑이라도 쳐들어와서 왕준을 콱 해치워버려라!”

 

적이 쳐들어와 원한을 풀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하니 적이 침입한다면 왕준의 왕국은 모래성과 같이 허망하게 허물어지게 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세작이 석늑에게 똥겨주자 석늑은 왕준을 도모하고자 유흥과 도호를 유주 지경으로 보내어 시험해 보았다. 그러자 왕준은 단질육권에게 석늑을 정벌하라 명했다. 그러나 단질육권은 왕준이 여러 번 독촉하여도 석늑을 두려워하여 싸우러가지 않고 여럿이 의논하기를

왕준은 늙어 패덕(悖德)하고 잔학하여 함부로 사람을 죽여 충량한 신하가 사라지고 없다. 또 다시 우리를 재촉할 터인데 이번에 거절하면 우리를 주살하려 들것이다. 그런데 일찍이 석늑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형제의 의를 맺었다. 어찌 그를 정벌하랴. 차라리 왕준과 등을 지고 석늑과 동맹하여 정의를 되찾으면 석늑은 우리를 도와줄 것이니 왕준을 겁낼 것이 없소이다.”

 

단말배가 그리 말하자 단질육권이 옳게 여겨 사람을 시켜 서장을 석늑에게 바쳤다. 석늑은 단질육권의 사자를 후히 대접하고 깊이 단씨와 동맹할 것을 맹세해 주었다. 이리하여 단씨는 마음이 석늑에게 돌아갔다. 왕준은 단질육권이 자기를 배반하고 서늑에게 붙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분개하여 척발의로의 아들 좌현왕 일율손에게 예물을 보내어 단질육권을 공략하여 그 영지를 가지라고 선동하였다. 그러자 좌현왕 일율손은 왕준의 말을 좇아 군사를 움직여 단질육권을 공략하기로 하였다. 이에 단질육권은 곧 석늑에게 구원을 청하여 일율손을 무찔러 7천군을 베고 200 리를 추격하였다. 이 싸움에서 일율손은 급히 달리다가 숨이 막혀 죽었다. 여러 장수들은 대병(代兵)이 크게 패한 틈을 타서 즉시 유주를 급습하면 이길 수 있다고 석늑에게 권하자 석늑이 말하기를

오래 전부터 유주를 갖고 싶었으나 아직 경솔히 기병할 수 없소. 왕준은 전량이 풍부하고 강하오. 척발의로의 아들을 우리가 상했으니 반드시 보복하려 들 것이오. 그리고 유곤과 소속은 진조의 신하로써 내가 만약 기병하게 되면 반드시 세 곳의 군사가 함께 달려들 것이니 승리를 장담할 수 없소. 지금 척발의로가 우리를 원수로 보고 있을 때 왕준에게 글을 보내어 그에게 북벌보구(北伐報仇)의 마음을 돌리도록 하고나서 도모하여도 늦지 않을 거요. 의견을 말해 보시오.”

이리하여 석늑은 중의를 두루 모아 왕준에게 다량의 금백과 함께 서장을 보내니 대략 다음과 같았다.

늑은 편호(偏胡)에 근본을 두고 융예(戎裔)에서 나왔는데 마침 진의 기강이 해이하였나이다. 이에 해내에는 기근이 심하고 민생이 도탄에 빠져 허덕이고 중원에는 주인이 없으니 창생은 절망에 빠졌나이다. 이런 중에 명공의 주향(州鄕)만이 사해의 대종이 될 수 있다고 믿어 신 늑은 명공의 덕망을 흠모하는 바입니다. 명공께서는 신의 부족함을 살피시어 속히 대용을 내려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석늑은 왕자춘과 사인 동조에게 서장을 왕준에게 가서 바치게 했다. 왕준은 석늑이 보낸 서장과 공물을 받고 마음속의 기쁨을 감추며 왕자춘을 불러 묻기를 석늑은 일세의 영웅이거늘 왜서 고에게 칭신하는지 묻자 왕자춘이 대답하기를

석 장군은 영재가 뛰어나고 인마가 융성하나 오직 명공의 주향 교망(喬望)을 흠모할 뿐이요.”

이 말에 왕준은 웃기만 한데 조숭은 봉서와 금주보옥 등의 많은 뇌물을 보고 곁에서 한 마디 거들기를

석공은 양인(諒人)이며 왕자춘은 신인(信人)입니다.”

말하여 석늑의 진심을 받아드리기를 종용했다. 이에 왕준은 조숭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왕자춘 동조를 열후에 봉하고 또 석늑을 유인하기 위해 별도로 전교를 내리고 석늑에게 많은 금백을 사자로 하여금 가져가 전하게 했다. 석늑은 거짓으로 북면하여 배수하고 전교를 대접하기를 천사의 예로서 하였다.

이때 왕준의 우사마 유통의 가신이 범양을 수비하고 있었는데 그는 왕준이 그의 친구 한함을 살해하자 이를 보고 배반하여 석늑에게 투항하였다. 석늑은 유통의 가신을 참하여 수급을 왕준에게 보냈다. 이 일로 왕준은 유통을 벌하지 않았지만 깊이 석늑의 진심을 믿고 다시는 의심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왕준과 인연을 맺은 석늑은 그 후 또 다시 왕준이 보낸 예물을 가지고 온 사자 전교의 심방을 받았다. 석늑은 맹손선생에게 묻기를

전교가 여기 온 데는 무슨 까닭이 있을까요?”

전에 사자로 왔던 전교가 다시 온 것은 우리의 강약과 허실을 알아가려고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써 우리의 속내를 감추어야 합니다. 부고를 비우고 약졸로 시위를 두어 이를 만나게 한 다음 술에 취한 틈을 타서 고장영채(庫藏營寨)를 보이십시오. 우리가 약하게 보이면 왕준은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석늑은 맹손선생의 말에 따라 그 말을 옳게 여겨 그대로 시킨 후 전교를 접견하였다. 그리고 자리를 남면에 베풀어 왕준이 보내온 진미(塵尾)를 벽에 걸고 사조(罩)로 이것을 덮은 다음 북면하여 재배하고 전교에게 말하기를

내 조석으로 왕공을 뵈옵지 못하다가 내리시는 물건을 받자오니 왕공을 모신 듯 감격하오이다.”

석늑은 수하 동조로 하여금 전교를 따라가서 왕준에게 2월에 석늑 자신이 친히 유주로 가서 뵙겠다는 서장을 받치게 했다.

 

한편 왕준은 석늑의 서장을 보고 또 조숭이 석늑을 편드는 말을 들으니 더욱 석늑을 신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석늑이 혹시 자립을 꾀하더라도 오직 유곤이 병주에서 충절을 지키고 군사를 모아 문죄할 것이니 감히 참립(&#20707;)을 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또 유요가 유곤에게 패하여 유총이 자주 군마를 내어 양가의 구살(仇殺)이 끊이지 않아 안정이 되지 않았는데 대병(代兵)이 구원하여 다행히 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왕준은 유곤이 자기 때문에 여타 일을 돌 볼 겨를이 없었다고 짐작했다. 그래서 왕준은 여러 정황을 고려하여 안심하고 궁전을 웅장하게 영수(營修)하고 단을 모아 태자 책봉을 하늘에 고하였다. 왕준의 어리석음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아울러 석늑은 자기 뜻대로 왕준이 움직여 준다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계속>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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