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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놈도 놓치지 말고 모조리 주륙을 내라!

이순복 소설가 l 기사입력 2019-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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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바다에서는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뛸 수 있다.’

 

바다는 넓다. 물이 5대양이 모두 다 하나로 엮어져 있다. 그 속에서 헤엄치는 온갖 물고기들은 대어는 중어 식하고 중어는 소어 식하며 소어는 조류와 해초 나부랭이를 먹고 산다. 그게 먹이 사슬이고 바다가 살아가는 질서다. 그렇다면 육대주는 어떠한가? 이 뭍이란 것은 각기 독립적인 생태계를 품고 있어 먹이 사슬도 다양하지만 인간들의 순위 결정은 참으로 참혹하리만큼 지혜 싸움이 있는 뒤에 몸부림을 쳐서 승패를 가늠하는 것이니 왕조를 두고 싸우는 투쟁은 글자 그대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양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 진흙 밭의 개싸움에서 승리한 자가 왕좌를 나누어 가지는 것인데 왕준도 개싸움의 승리자이나 마음을 널러놓고 승리자로써 행세하기에는 어딘가 모자람이 많은 왕준이었다. 그런 왕준이 한 치 앞을 내다 볼 조차 없는 불안한 정국 속에서 태자 책봉을 시도 하였다.

 

왕준이 장자에게 내려준 태자자리가 심히 불안하다.’

그러나 저러나 왕준은 단을 모아 태자 책봉을 마치고 천하에 자립의 뜻을 두어 관속을 두고 작품(爵品)을 정하였으니 다음과 같다.

조숭 배헌을 상서좌우복야로 하고 그 아들을 거정궁으로 하여금 절월을 내려 흉노중랑장을 시키고 장인 최필을 동이교위를 주고 주원은 기병급윤의 제반 군사를 다스리게 하고 주석은 유연요계의 제반군사를 맡기고 안북대장군에 임명하고 또 전휘를 하문태수로 하고 이혼 전교 등은 1등급을 높였다.’

 

이를 보고 순작이 위에 간하기를 옛날 조조나 사마의가 신하된 도리를 다하지 않았음을 예를 들어 말하였다. 왕준은 순작이 자기 일을 방해꾼이라 믿고 그를 위군으로 내어 쫓고 범양태수 유설을 위군의 수령을 시키고 고침을 범양태수로 승직시켰다. 중부의 연리 왕제는 충량하고 재주가 있어 왕준이 등용코자 하였으나 순작이 내어 쫓기고 대신 고침이 승직한데 대하여 상간(上諫)하여 아뢰기를

순작과 유창은 나라의 동량인데 어찌 이들을 밖으로 내치십니까. 고침과 전교는 후부우용(朽腐愚庸)하여 대군을 다스릴 인재가 못됩니다. 또 일을 함에 하늘의 뜻에 응하고 사람에 순하여야 하거늘 교만 자대(自大)함은 웬 일이오니까.”

이 말을 듣고 왕준은 생각하기를 네놈을 그냥 두면 뒷날 반드시 자립하려는 자기의 뜻에 항거할 것으로 보아 서둘러 중부 연리 왕제를 참해 버렸다. 이로부터 모든 신려들이 왕준의 처사에 반발심을 품고 아무도 올바르게 간하지 않았으며 은밀히 밀어를 지어 성안 어린이들에게 가르쳐서 부르게 하니 다음과 같았다.

 

유주는 성문을 닫은 것 같고 그 속에는 시체가 누웠으니 그는 곧 왕팽조니라.’

왕준은 이런 동요를 듣고도 반성하지 않고 도리어 이 노래를 부르는 자를 잡아 그 부형들을 죽이자 모두 두려워하며 입단속을 시켰다. 이와 같이 왕준이 잔학무도함으로써 벼슬아치들이 석늑에게 도망가는 자가 늘어났다. 그래서 석늑은 왕준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뚫어지게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석늑은 왕자춘을 가까이 불러 은밀하게 묻기를

지금 왕준을 칠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하는가?”

저의 요량으로는 왕준이 잔학무도하고 법도를 무시하고 살생을 이유 없이 일삼아서 민심이 크게 이반되었습니다. 또 무절제한 낭비로 부고가 텅텅 비었으며 양초가 바닥날 지경이니 지금 왕준을 쳐서 손해 볼일이 없을 줄 압니다.”

 

왕자춘이 이같이 주장하자 석늑이 다시 말하기를

유곤과 왕준은 동료이니 동맹하고 결사할 염려가 없겠는가?”

석늑의 이 같은 염려에 대하여 맹손선생이 곁에서 한마디 하기를

유곤은 왕준과 같은 진조의 신하이지만 기실은 오월동주(吳越同舟)입니다. 유곤은 충으로써 섬기고 왕준은 간사한 자로써 지행(志行)이 각기 다릅니다. 또한 지난번 왕준이 유곤을 구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곤도 왕준을 구원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바로 유곤과 화친을 맺으십시오.”

석늑은 맹손선생의 말을 쫓아 유곤에게 보낼 서장을 쓰게 하여 장여로 하여금 서장과 예물을 가지고 양국으로 가서 바치게 했다. 유곤이 석늑이 보낸 서장을 펴보니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삼대를 잃은 것은 조응의 크나 큰 잘못이며 그가 대덕에 어긋난 일을 저질렀도다. 그러므로 조응의 직함을 깎아 내리고 백의로써 죄를 책망하였으니 바라건대 왕준의 참망(僭罔)의 죄를 토벌하고 우호를 맺어 보답하고자 하노라.’

 

유곤은 석늑의 서장을 탐탁히 여기지는 않았지만 첫째 석늑의 병세가 강성함을 염려하고 둘째 유요가 다시 내습할지 모르며 셋째 왕준이 성도왕과 기홍을 멸하고 장안을 약탈하던 참상을 미워하고 또 왕준이 백관을 내세워 진에 반역하려 한다는 소문을 듣던 차에 석늑이 왕준을 토멸하려 한다는 서장을 받고 그 청을 따라 격문을 각 고을에 띄웠다.

석늑이 나의 서장을 보고 잘못을 회개하고 유주를 깨고 왕준의 반역죄를 바로잡아 여러 해 동안의 잘못을 보답하려 한다. 그러므로 임무를 맡겨 통지하노니 석늑의 군사가 순찰을 다니더라도 저지하지 말지어다.’

이런 내용으로 석늑에게도 같은 뜻의 회서를 보냈다. 석늑은 유곤의 답서를 받고 곧 동조에게 거짓 서장을 보내어 우선 왕준에게 아뢰기를

기주목이 친히 경병을 이끌고 존호를 바칩니다.”

 

석늑은 마침내 경기(輕騎)로써 먼저 출발하고 대장군 장경에게 3만 경병(勁兵)을 주어 화급히 밤을 도와 뒤를 따라오게 하였다. 석늑은 백인에 이르러 주모자 유윤을 죽이고 앞서 가신을 죽인 원한이 있었음을 기록하여 그 형 유통에게 보고하였다. 이는 앞질러 유윤을 죽인 일이 세상에 누설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석늑이 이수에 당도하자 이수수장 손위는 석늑의 동정을 살피어 석늑이 표리가 부동함을 왕준에게 알리려 마음먹었다. 그리고 손위는 우선 유통과 약속하여 함께 석늑을 저지하고자 했다. 그런데 유통은 석늑의 군사가 적음을 알고 손위에게 권하기를 왕준에게 사자를 보낼 필요가 없다고 말렸다. 드디어 석늑이 목적지에 당도할 무렵 손위와는 별도로 왕준의 장수 왕갑시는 석늑을 사로잡아 불세출의 공훈을 세우려고 작정했다. 이때 조승은 본시 석늑에게 후한 선물을 받은 바 있어 왕준에게 주공을 따르려는 석늑의 진정을 꺾지 말라고 종용했다. 이에 왕준은 발끈하여 여러 장수를 질타하여 말하기를

석공이 이곳에 온 것은 고를 봉대하고자 함이다. 석공을 치려고 하는 자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참형에 처하리라.”

 

왕준이 성대한 주연을 베풀고 석늑을 기다렸다. 석늑은 이른 새벽에 당도하여 문을 지키는 관리를 질타하여 문을 열게 하였다. 그러나 혹시 복병을 의심하여 소와 양 1천 마리를 먼저 몰아 들였다. 이것은 우양(牛羊)으로 예를 올리고 항도(巷道)를 막아 군사의 진군을 어렵게 하고자 하는 계략이었다. 이때 왕갑시는 왕준이 자기 말을 듣지 않자 군사를 이끌고 영삭(寧朔)으로 나가자 왕창도 뒤를 따랐다.

 

그 시각에 왕준은 석늑이 당도했다고 들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종무소식이라 마음이 불안하여 좌불안석이다가 관아로 나와 보았다. 밖으로 나와 보니 석늑은 융복을 입고 정서당에 좌정하고 석호 석민은 갑병을 데리고 내아로 들어와 있었다. 그러더니 왕준이 나타나자 다짜고짜로 잡아 안전에 세우고 서광으로 하여금 문죄케 하기를

()는 원대(元臺)에 관절하고 작은 상공(上功)에 열하여 이 효한(驍悍)의 진()에 있으면서 연() 전역을 지배하며 강병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조정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사시로 보고 구원해 주지 않았다. 그 뿐이랴. 천자께서 적국에 생금되었어도 이를 구원하지 않고 자존하며 오로지 간악하고 포악하여 충량한 신민을 살해하고 마음껏 욕심을 부려 해독을 온 천하에 뿌렸으니 지금 진조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원흉이 되었다. 이런 불학무식하고 포악한 자를 어찌 하늘 이 용서하고 그대로 놔두겠는가.”

 

왕준은 서광의 말을 듣고 나자 노기가 탱중하여 이를 뽀드득 갈며 발악하기를

이 오랑캐들아, 어찌 반역하느냐.”

이때 왕준의 부장 호교 왕민이 이 소식을 듣고 군사를 되는대로 이끌고 허겁지겁 나오니 5천군이었다. 이들로 막 쳐들어가려고 하자 한장 장경이 3만 철갑병을 이끌고 들어왔다. 그러자 호교와 왕민 두 장수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음을 깨닫고 성을 나와 광평 영삭으로 가서 왕창과 왕갑시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한편 석늑은 아장 왕낙생에게 5백 정병을 주어 왕준 부자를 양국으로 호송하게 하자 서광이 깜짝 놀라 저지하며 말하기를

호송길이 하루가 아닙니다. 또한 이수와 백인과 같은 험한 애구가 있어 혹시 습격을 당하여 빼앗길 지도 모릅니다. 그들을 지금 당장 참하십시오. 그렇지 않고 놔두시면 반드시 후환이 될 것입니다.”

석늑은 이 말을 듣고 다시 소환하려고 했으나 이미 왕낙생이 멀리 가버렸기 때문에 몹시 후회하였다. 그러자 장경이 비마로 달려간다고 하여 이를 허락하였다.

석늑은 왕준의 1만병을 점검하여 불량한 자는 모두 다 죽였다. 그리고 조승 전교 주석 주원 전휘를 불러 그들의 죄상을 낱낱이 밝히고 참수하여 왕준의 복심 잔당을 모두 제거했다. 또 유통을 거두어 불충한 죄를 들어 도륙내고 배헌 순작을 소환하여 관직을 주고 상서 유한을 영삭장군 유주자사에 임명하였다. 그리고 왕준이 세운 위궁전을 불 질러 소각해 버리고 부고에 든 물건을 모두 양국으로 보냈다. 석늑이 부고의 미곡을 전리품으로 하여 양국으로 모두 가져가자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던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졌다.

쌀을 우리에게도 나눠 주라! 배가 고파 못살겠다! 부고의 쌀은 우리가 피땀 흘려 애써 생산한 쌀이다.”

 

백성들은 들고 일어나 외치다가 석늑을 미워하고 왕준을 그리워하며 끝내는 성을 나와 호교와 왕민을 쫓아갔다. 왕민은 광평으로 가서 형 왕창을 만나고 호교는 중도에서 왕갑시를 만나 저간의 사건을 이야기하고 울면서 말하기를

주공이 너무나 교패(驕悖)하여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소. 우리 모두가 이런 사태가 일어날 줄 알면서도 방관만한 죄가 작지 않소.”

서로 아파하며 호교는 광평으로 가고 왕갑시는 이우에 있는 손위에게 가서 다시 이 사실을 알리고 대책을 의논하고 곧 유주를 향하여 진군하였다. 이때 석늑은 37천군 중에서 장경에게 1만군을 떼어 주고 27천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석늑이 전후 처리를 하고 있을 때 왕준의 수하 장수 왕창과 손위가 10만군을 거느리고 성 아래 곧 당도할 것이라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만 석늑은 대경실색하여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밤을 도와 성을 비우고 떠나기를 감행하였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나서 호교와 손위는 석늑의 군사와 마주쳐 진을 벌려 세우고 길을 막았다. 이에 석늑은 대오를 갖추지 말고 일제히 적진을 뚫고 나가라 명했다. 이 명을 받은 손위가 곧 바로 크게 외치기를

군사들아, 적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달아난다.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모조리 주륙을 내라!”

이에 공장 장웅 소번 조녹이 일제히 짓쳐 나가자 유주의 병사들은 어려운 싸움을 하게 되었다. 이때 호교가 거짓으로 외치기를

광평 영산의 대군이 지금 오고 있다. 너희들은 힘껏 싸워라. 촌보도 물러서지 말라. 일제히 활을 쏘아라! 지금이 바로 공을 세울 절호의 기회다.”

병사들은 석늑이 사력을 다하여 길을 뚫으려는 기세를 알고 모두 명을 따랐다<계속>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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