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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L선생 눈과 나의 중대결심

송현 시인 l 기사입력 2019-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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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현 시인     ©브레이크뉴스

나는 동화작가 L 선생을 참 좋아한다. 내가 서울 화곡동에 있는 W신학교 문창과에 강의를 할 때, 선생님 댁이 우리 학교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반가워서 선생님께 전화를 하였더니 선생님도 나만큼 반가워했다. 이왕 통화한 김에 오늘 당장 선생님 댁으로 가서 한 두어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야간 강의하러 학교에 가면 알맞을 것 같다는 내 사정을 말씀 드렸더니, 빨리 오라고 하였다.

 

선생님께 드리려고 그 동안에 출간된 내 책들을 찾았다. 네 권이 되는 것을 보니 선생님을 꽤 오래 못 만난 것이다.


오랜만에 선생님을 만났다. 문간방에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내가 준비해간 책을 드렸다. 그러자 선생님도 그 동안 출간된 선생님 동화책들을 내게 서명해 주시겠다고 했다. 선생님이 앉은뱅이 책상 가까이 다가갔다. 앉은뱅이 책상 위에는 선생님의 동화책이 다섯 권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앉은뱅이 책상의 높이가 아무래도 이상했다. 보통 앉은뱅이 책상보는 훨씬 높았다.  그리 깔끔하지 앉고 울퉁불퉁한 이미지로 보아서 선생님께서 뚝딱뚝딱 만든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앉은뱅이 책상의 높이였다. 보통 것보다 약 이십 센티미터는 높아보였다. 그래서 책상으로서는 좀 부자연스러웠고 어색해 보였다.


선생님이 서명을 하기 위해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아서 첫 번째 서명을 하는 순간 나는 책상 높이에 대한 의문이 확 풀렸다. 사실 선생님이 시력이 좋지 않다는 소문은 이미 들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서명하기 위해서 책상 위로 바싹 고개를 숙이는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선생님의 눈과 서명할 책장과 거리는 불과 10 센티미터 정도 될까 말까였다. 나는 선생님의 시력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그 정도일지는 꿈에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조심스레 책에다 서명을 했다. 선생님이 서명을 하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감전된 듯이 꼼짝 않고 숨을 죽여 바라만 보았다. 마침내 서명이 다 끝났다. 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의 시력이 좋지 않다는 소문은 이미 들었는데, 이렇게 나쁜 줄은 몰랐습니다.”
선생님은 멋쩍게 허허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송 선생은 여태 내 눈이 이 정도인줄 몰랐어요?”
  “예. 선생님. 이렇게 나쁜지는 몰랐습니다.”
  “공안과에서 공 박사에게 치료도 받았지만, 다 소용이 없었어요.”
  “선생님, 언제부터 눈이 그리 나빠졌습니까?”
  “오래 되었습니다. 오래.”
  “그러면 그 눈으로 공부를 하고 독서를 하고, 그 많은 작품들을 썼습니까?”
  “그럼요.”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만져 보았다. 두 눈 다 멀쩡한 것이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이렇게 나쁜 눈으로 그 좋은 작품을 많이 쓰신 것에 대해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 정말 대단합니다.”

 

그럴 즈음에 사모님께서 술상을 차려왔다. 선생님은 따님이 동화작가가 된 이야기, 박사과정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야기,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오래 전에 싸게 산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줄곧 내 눈을 생각했다. 나는 두 눈이 멀쩡하다. 신문도 보고 명함 밑에 박힌 주소 글자까지 다 볼 수 있다. 선생님은 저런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 아동문학사에 남을 명작들을 수없이 썼는데, 나는 그 동안 뭘 했단 말인가? 나는 자괴감이 들었고 내가 참 초라하고 작은 것을 알았다.


그날 저녁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칠판에 다음과 갈이 썼다.

 

“아동문학가 L 선생의 역경과 위대한 승리”

 

두 시간 연속으로 특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줄곧 차 안에서 골똘히 생각했다. L선생보다 열 배 백 배나 더 좋은 눈을 두 개나 달고 그 동안 나는 뭘 했나 하고 반성하고 자책했다.

 

집에 오자마자 책상머리에 앉아 그 동안 생각한 것을 정리했다. 목표를 정하고 실천 강령을 정했다. 나도 이 세상에 나서 이 땅의 아동문학을 위해서 뭔가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 별별 상상과 별별 생각을 다 한 끝에 ‘우리나라 농촌 풍경을 동시와 동화에 담기’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1.목표: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을 하기 이전의 우리나라 농촌 풍경을 600편의 동시와 600편의 동화로 담는다.
2.실천강령 :
매일 한 편을 쓰지 않으면 밥을 굶는다.

 

위의 내용을 A4지에 매직으로 여러 장 썼다. 책상머리에 붙이고, 침대 머리맡에 붙이고, 화장실에도 붙였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즉각 실천에 옮겼다. 신들린 사람처럼 매일 매일 한편씩 작품의 초고를 썼다. 한편을 쓰고 밥을 먹을 때는 전과는 다른 묘한 느낌이 들었다. 보람도 있고, 자신감도 생겼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 이 오덕 선생님께도 자랑을 하였다. 선생님께서는 매일 한편씩 쓴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고 반신반의했다.


결론을 말하면, L선생 눈을 보고 충격과 자극을 받고 한국 농촌모습을 그린 김치 냄새와 된장 냄새가 나는 우리 동시 600편을 썼고, 동화 100편을 썼다. 특히 명상출판사에서 출간한 “우리 엄마 회초리” “코딱지 후비는 재미” “풍뎅아 나랑 놀자”는 일본의 사꼬 선생이 번역하여 일본어 출판을 준비 중에 있으니 나로서는 여간 기쁘지 않다. 

 

아직 동화 500편을 더 써야 그때 나와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다. 그런데 아직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죽기 전에는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참이다. nowh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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