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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10년 동안 엉뚱한 생각만 했더니

송현 시인 l 기사입력 20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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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현 시인     ©브레이크뉴스

나는 버스 안에서 10년 동안 엉뚱한 생각을 했다. 1974년에 상경하여 도봉구 쌍문동 도봉여중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출퇴근 할 때는 의정부에서 종로 5가지를 왕복하는 12번 13번 좌석버스를 이용했다. 그 무렵에는 버스 운전기사들은 온 종일 라디오나 카세트 테입을 틀어놓는 것이 예사였다.

 

대학 다닐 클래식 음악다방에서 개근상을 받을 정도로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 그런 내가 출퇴근 할 때마다 유행가를 들어야 하는 것은 고역 중에서도 고역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버스 운전기사에게 “유행가 좀 꺼 달라” 했다가는 “자가용 탈 고귀한 분이 버스를 왜 탔어요? 이 버스 당신 혼자 타고 다니는 게 아니오!”라는 핀잔을 안 들으면 본전이었을 것이다.

 

처음 한 두달 동안은 버스 탈 때마다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버스 타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다. 유행가 안 들으려고 별별 궁리를 다 했다. 책을 펴놓으면 그놈의 유행가 때문에 글자가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어 단어나 일본어 단어를 욀까 해도 그 역시 쉽지가 않았다. 듣기 싫은 유행가 가사가 귀에 들어오는 바람에 어떤 것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창 밖에 보이는 간판의 글자꼴과 도로표지판의 글자꼴을 연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리 속을 퍼뜩 스친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무릎을 쳤다.

 

--옳지, 도로표지판 글자꼴과 간판 글자꼴을 연구해야지!

 

당장 문방구에서 가서 배추장사들이 일수 찍을 때 쓰는 작은 공책을 여러 권 샀다. 그 하나를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 다음 날부터 버스만 타면 창밖에 보이는 간판과 도로표지판의 글자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참 신기했다. 다른 것에 신경을 썼을 때는 유행가 가락과 가사가 더 또렷하게 들렸는데, 글자꼴에 신경을 쓸 때는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유행가 가락과 가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간판이나 도로표지판의 한글 글자꼴을 보면서 나는 별별 상상을 다 하고 별별 궁리를 다했다. ‘어떻게 하면 글자의 모양이 좋아질까’에서 ‘어떤 글자가 가독성과 판독성이 높을까? 어떤 글자꼴로 도로표지판을 만들면 멀리서도 글자가 잘 보일까? 지금 내 내 눈에 보이는 저 글자의 획을 어떻게 키우면 가독성이 높을까?’

 

이런 생각을 골똘히 하다가 내려야 할 곳을 스치고 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의정부 가는 막차에서, 내릴 곳을 그냥 지나쳐 종점까지 가 통금에 걸려 여인숙에서 자고 온 적도 있었다.

 

버스만 타면 유행가 안 들으려고 창밖에 보이는 도로표지판 글자와 간판 글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글자꼴 공부를 한지 어연 10년이 흘렀다. 서당 개는 3년이면 풍월 읊는다던데 나는 도로표지판 글자와 간판 글자꼴을 10년이나 공부를 하였으니 나름의 풍월을 읊지 않을 수 없었다.

 

월간 디자인사의 이 영혜 사장에게 버스 안에서 유행가 안 들으려고 한글 글자꼴 연구를 10년 동안 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깊은 관심을 표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서 구체적인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서 10년 연구한 것을 출판했으면 좋겠지만, 팔리지 않을 책을 누가 찍어줄까 하고 염려했더니, 선뜻 디자인사 출판부에서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날 밤 집에 오자마자 10년 동안 연구한 자료를 한 장 한 장 최종 정리를 하여 ‘한글자형학’을 완성하여, 이 영혜 사장에게 가져갔더니, 그 무렵 우리나라 최고의 북 디자이너 정 병규 선생에게 표지 디자인을 맡기고 여러 가지 귀한 자료들들 곁들여 ‘한글자형학’을 출판해주었다. 그때가 1985년이었으니 내가 글자꼴 연구를 시작한지 꼭 10년이 지난 뒤였다.

 

이 한글자형학은 ‘한글자형학’이란 새로운 학문을 창시한 책이 되었다. 그 뒤에 북한의 김일성 대학교, 연변 대학교, 독일 본 대학 한국학연구소 등에서도 이 책을 연구한다고 하고 찾는 것을 보고 나는 적잖이 놀랐다.

언젠가 파주 출판단지에 갔더니(2008. 5) 도로 양옆에 화려한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한글과 스승’이란 주제의 한글 글자꼴 관련 전시회 깃발이었다. 짬을 내어서 가 보았더니, 서울여대 한 재준 교수가 총감독으로 기획한 한글 글자꼴 관련 행사였는데, 이 방면 행사로는 최대 규모의 행사였다.

 

그 행사장에서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데군데 내 사진이 붙어 있었고, 내가 쓴 ‘한글자형학’ ‘한글기계화운동’ 등이 아주 귀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했던 말들 일부는 ‘송 현 어록’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그때 다자인사 이 영혜 사장 외에 어느 누구도 심지어 내 아내까지도 거들떠도 안 보던 ‘한글자형학’이 약 25년이 지난 이제 비로소 관련 전문가들에게 인정을 받고, 귀한 대우를 받게 되다니, 세상에 이런 기막힌 일이 내 생전에 일어나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 주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되었던 국립국어원과 한국시각디자인협회가 주최하는 한글 글자꼴 세미나에 초대받고 갔더니 내게 한 마디 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1974년 상경하여 버스 타고 유행가 안 들으려고 도로표지판과 간판 글자꼴 연구를 10년간 하여 한글자형학을 완성한 이야기를 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어제는 산돌사 석금호 선생의 점심 초대에 갔다가 무슨 말 끝에 한글자형학 이야기를 했더니 예쁘고 깔끔하게 재판을 찍어 주겠다고 했다. 근 이십 년째 절판이 된 한글자형학을 석금호 선생께서 예쁘게 수정증보판을 찍어주겠다니, 세상에 이런 기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그때 유행가를 크게 틀었던 운전기사도 알고 보니 내게 엄청 고마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운전기사들이 유행가를 크게 틀지 않았더라면 이 땅에 ‘한글자형학’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내 주위에는 고마운 사람이 너무나 많고, 나는 운도 좋고 복도 많은 사람이지 싶다. nowh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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