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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약속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따뜻한 세상

김덕권 시인 l 기사입력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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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인간 간의 약속(約束)을 헌신짝 버리듯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별로 중요한 약속이 아닐지는 몰라도 그 후 그 사람과 다시는 거래를 않게 되었습니다. 작은 약속도 안 지키는 사람이 결국 큰 신의(信義)를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약속이란 장래의 일을 상대방과 미리 정하여 어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럼 신의란 무엇인가요? 믿음(信)과 의리(義)를 말합니다. 조그마한 이해에도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세태, 참으로 서글픕니다. 그 사람이 소인인지 대인인지 아는 방법은 작은 이익을 주어보는 것입니다.

 

신의를 버린다는 것은 후일 그보다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인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약속부터 믿음과 의리에 투철한 대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독일의 역사학자였던 랑케가 산책하던 중 동네 골목에서 한 소년이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우유배달을 하는 소년이었는데 실수로 넘어지는 바람에 우유병을 통째로 깨뜨린 것이었습니다.

 

소년은 깨진 우유를 배상해야 한다는 걱정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랑케는 울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가 말합니다.

 

“얘야, 걱정하지 마라라. 지금은 내가 돈을 안 가져와서 줄 수 없다만 내일 이 시간에 여기 나오면 내가 대신 배상해주마.”

 

집으로 돌아온 랑케는 한 자선사업가가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 내용은 역사학 연구비로 거액을 후원하고 싶으니 내일 당장 만나자는 것이었습니다. 랑케는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지만, 순간 소년과의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그 자선사업 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먼 길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소년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랑케는 망설임 없이 자선사업가에게 다른 중요한 약속이 있어 만날 수 없다며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랑케는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소년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랑케의 편지를 받은 자선사업 가는 순간 상당히 불쾌했지만 전후 사정을 알게 된 후에는 더욱 랑케를 신뢰하게 되었고, 그에게 처음 제안했던 후원금 액수보다 몇 배나 더 많은 후원금을 보냈습니다.

 

랑케에게는 역사학 연구보다 한 소년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어느 것보다 더 소중했던 것입니다. 눈앞의 커다란 이익을 저버리면서까지 약속을 소중히 지켰기에 소년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선사업 가는 랑케의 더욱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작은 약속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따뜻한 세상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진정한 약속 하나를 더 소개하겠습니다. 옛날 오(吳)나라 계찰(季札)의 이야기입니다. 계찰은 엄밀한 의미에서 자신과의 약속을 황금처럼 지킨 사람입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이 이야기입니다. 기원전 560년, 오(吳)나라 임금 제번(諸樊)이 그 부왕의 복상(服喪) 기간을 끝내자 오왕의 다음 자리를 넷째아들 계찰에게 넘길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부왕의 심중을 헤아린 위의 첫째 둘째는 오나라를 떠나 남방 오랑캐 땅으로 피했습니다. 그러자 왕 자리에 관심 없는 계찰은 셋째가 왕위가 오를 때 까지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런 계찰에게 ‘계찰괘검(季札掛劍)’이라는 신의의 상징에 관한 고사(古事)가 있습니다.

 

때가 되어 부왕 제번이 죽고 계찰을 왕의 자리에 올리려고 하자, 그는 그 집을 버리고 연릉이라는 시골로 내려가 농민이 되어 밭을 갈며 살았습니다. 그런 계찰이 중원의 제후국으로 사신의 임무를 띠고 북쪽으로 출발할 때였습니다. 맨 처음 서국(徐國)의 군주를 만나 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서국의 군주가 계찰이 허리에 차고 있던 검(劍)을 보고 갖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입 밖으로 표현을 하지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계찰이 그 마음을 읽고 속으로 서국 군주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중원의 제후국을 들려 사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사신의 징표이기도 한 그 검을 서군(徐君)에게 주지 못했습니다.

 

계찰은 마음속으로 모든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흔쾌히 선물하겠노라 다짐하고 떠났지요. 그 후, 사신으로서의 순회 임무를 마치고 귀국길에 올라 서국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서군(徐君)이 이미 죽고 난 다음이었지요. 그래서 그는 서군의 무덤을 찾아가 허리에 찬 보검을 풀어 사당에 걸어 놓고 오나라로의 귀국 길에 올랐습니다.

그러자 이를 본 계찰의 수행원이 “서군이 이미 죽었는데 그 보검을 누구에게 주신 것입니까?” “비록 서군은 죽었으나 내가 이미 보검을 서군에게 주기로 마음속으로 허락했는데, 지금 비록 그가 죽었다고 해서 그 마음을 바꿀 수 있겠느냐?”

 

이렇게 하여 신의를 중히 여기는 것의 대명사로 ‘계찰괘검’이라는 고사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마음과의 약속은 자신을 두고 하는 맹서이니 만큼 약속을 깬들 아무도 탓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진정한 약속은 아마도 마음으로 한 스스로의 약속에 충실 하는 그런 약속이 아닐까요?
 

지난 5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국민 기자회견을 시청하였습니다. 그 대담을 보면서 참으로 대통령이란 자리가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북한의 김정은이 약속을 깨고 불과 몇 시간 전에 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보고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에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남북 정상회담 때, 더 이상 무력시위는 하지 않기로 약속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을 빌미로 또 특유의 벼랑 끝 전술(戰術)을 펴는 것 같습니다.

 

북한의 전술은 약속을 어기는 것이 여반장(如反掌)인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트럼프대통령, 이 세 분의 정상은 현실파악을 제대로 하고 진정한 평화를 위해 진실한 약속을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약속과 신의는 생명처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작은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인간이 어찌 세계평화를 지킬 수 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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