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46년간 홍어 좋아하는 지한파 일본인 다치카와 마사키 기자와 두 친구

이래권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19-05-18

본문듣기

가 -가 +

지역마다 제사와 잔치에 오르는 기호식품은 다르다. 경상도는 상어를 숭덩숭덩 썰어 찐 돔배기와 대왕문어, 강원도는 바닷가가 멀어 해산물보다는 닭을 삶아 상에 올린다. 전라도는 제사나 잔치네 삭힌 홍어로 만든 찜 무침 탕이 빠지면 손님과 조상에 대한 결례로 여기며, 장리(고리채)를 내서라도 반드시 그 귀한 홍어를 상에 올리는 것이 토속음식으로서 위상이 크다.

 

보수가 인터넷 익명성에 숨어 댓글로 호남인을 비하할 때 ‘홍어×’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무지의 소치이다. 홍어는 두 개의 생식기로 이루어져 있다. 수놈 생식기 하나도 제대로 활용하비 못하여 제비족에게 바람난 부인을 뺏기는 조루증(早漏症) 남자들에게는 선망과 동경의 심볼이다. 만약 신이 ‘홍어’처럼 생식기를 사내들에게 두 개 선사했다면 부부금슬이 좋아 요즘 저출산 문제는 단숨에 해결됐으리라. 생물학에서 암홍어가 바람나서 성생활이 문란하다는 예를 그 어디에서 들어본 역사가 없다.

 

중국의 명차(名茶)인 보이차가 중국 남동지역 운남성 부근에서 자란 보통차를 베이징에 진상하러 가던 와중에 발효되어 그 독특한 맛과 향을 세계에 자랑하고, 한 뭉치에 현지 가격으로 10만원(한화)에 육박한 것은 인간에게 유익한 균이 선사한 발효의 미학 덕분이다. 홍어도 마찬가지다. 흑산도 남방 60m 해저에 흩뿌린 수천수만 개의 미끼와 미늘 없는 ㄷ자 바늘에 걸려 잡히는 것이 홍어다. 이는 선원들에게 미끼를 다는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격이니 참으로 요상하게 어부를 돕는 물고기다.

 

조선시대에는 나주목(금성)이 전남의 도청 격이었는데 흑산도 어부들이 현물로 세금을 내는 와중에서 홍어도 포함되는데, 현지 흑산도에 파견되어 세금을 부과하던 관리가 그 맛이 ‘기가 막히다 하여 상납을 명령했다. 어민들은 소금에 절이거나 말리지 않는 홍어를 바치라하는 관리의 명을 따라 지게에 지고 먼 세금납부 길에 올랐다. 아뿔싸! 암모니아로 퀴퀴하게 썩은 홍어에 볼기를 맞을 요량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예상대로 나주목사는 대노하여 썩은 홍어를 어민들에게 먹게 하고 옥에 가두었다.

 

나주목사는 보름 후에 옥을 방문했다. 배탈이 나 허기로 쓰러졌을 거라고 생각하며 대물(代物)납부를 명하려 한 움큼의 연민과 적당한 징벌로 여기며 옮긴 발길이었다. 왠 걸? 옥에 갇힌 어민들의 얼굴에 기름기가 좌르르 흘렀다. 어민들을 취조한 결과 사실이었다. 밤마다 이처삼첩(二妻三妾)과 관기(官妓)을 번갈아 관계했던 나주 목사의 양기(陽氣)가 메말라가던 차에 음흉한 속내를 감추며 썩은 홍어를 몇 점 먹던 나주목사는 양기를 느꼈고, 홍어 애호가가 되었다. 그리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구쳐 근래엔 마리당 30~100만원에 호가했으나, 호남의 애경사엔 호르몬과 콜라겐의 보고(寶庫)인 홍어가 꼭 오른다.

 

▲ 다치카와 기자.    ©브레이크뉴스

세월이 흘러, 세계 10대 악취 나는 음식으로 선정되어 외국인들에겐 기피 음식으로 인식되지만, 46년 동안 홍어에 매료된 일본인 다치카와  마사키 전 일본현대 대기자와 친한파 역사 문화교류 측면에서 한일 대학생 교환방문 운동을 벌이고 있는 지인 두 분과 지난 16일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위치한 안산자락(鞍山自樂) 식당에서 번개미팅을 가졌었다.

 

이들은 한일관계에서 극우적 혐한정책을 일관하고 있는 일본수상 아베와 다르게 동북아평화공동체 구축을 위한 역사공유 문화교류를 주창하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수상과 정치적 궤(軌)를 같이하는 대표적 친한파 인물들이다.

 

첫째, 일본 일간현대의 대기자 출신인 다치카와 마사키(太刀川  正樹) 씨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한국 감옥에 투옥되고 추방된 인물이다. 전남 명예시민으로 위촉되었고, 현재는 전남에 이어 전북 일본어 가이드북을 집필 중이다. 와세다대 영문과 졸업생으로서 뉴욕과 한국 특파원으로 4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으로서 한국인보다 홍어와 김치를 더 즐기는 매니아이다. 한국 여성과 결혼했었다. 감옥 생활과 추방이라는 고난을 준 한국을 다치카와 씨는 여전히 왕래하며 일본 여행객들에게 한국 바로 알리기 운동의 선봉장으로서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집필활동 중이다.

 

홍어삼합과 돼지고기 앞다리에 신 김치 두루치기를 특히 좋아하는 한식 마니아로서 일간현대 은퇴 후에도 일본어 한국명승지 가이드 책을 오랫동안 집필하고 있다. 수십 년간 한국을 오가며 익힌 한국 문화와 언어에도 일가견이 있는 친한파로서 일인자임은 자타가 공인하는 인물이다.

 

▲오사무 전 교수(오른쪽)는 반핵반전 운동가.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 철수를 외치며 극우적 아베 내각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시마 부쿠로(島袋義彦)씨(왼쪽). 그의 문화센터에서 활동하는 강사진만 정관계 문화역사계 전문가를 위시하여 약 200여명이 출강하고 있다.    ©브레이크뉴스

둘째는, 오키나와 대학에서 고고학 교수로 정년퇴직 후 한중일 역사와 문화 상사점을 비교하며 동북아평화공동체를 주장하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수상의 오키나와 지역 조직 책임자로 활동하는 오사무 오가타(緖方 修) 씨다. 오키나와 지역 동북아공동체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년에 하토야마 유키오 전 수상이 합천을 방문하여 원폭피해자를 방문하여 무릎을 꿇고 사죄한 바와 같이 참회하는 일본인이다. 또한 위안부 문제는 무한대로 용서를 구해야 된다고 역설하는 양심 있는 몇 안 되는 일본인 중 한분으로서, 정부는 이런 일본인을 초청하여 그 공로를 치하할 필요가 있다. 오사무 전 교수는 반핵반전 운동가.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 철수를 외치며 극우적 아베 내각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덜어진 원폭을 보고도 다시 전쟁을 운운하는 일본정부의 군사대국화 전쟁가능국가로의 발전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며, 어떤 형태로든 동북아에서 더 이상 국가 간 전쟁이 있어선 안 되겠고, 그 선두에 미국이 있고 전쟁이 나면 일본은 자동 참전하게 되어 수많은 동아시아인들이 희생되기 때문에 전쟁보다는 평화를 위한 역사와 문화교류로 공동인식을 만들어가야한다는 지론이다.

 

오다 노부나가-토요토미 히데요시(전국 통일 후 임진왜란 일으킴)-도쿠가와 이에야쓰(차기 사무라이 정권 270년간 한일 간 최고의 평화 시기 유지+관동 징역 영주로서 임진왜란 시 토요토미의 조선 출병을 거부했고, 전후 사명대사와의 담판에서 포로로 잡혀간 민간인 무조건 조선으로 귀국시킴)으로 이어지는 바쿠후 사무라이 정권 한중일 문화교류를 최우선시 했던 인물은 도쿠가와다. 오사무 전 교수는 도쿠가와 이후 나타난 최고의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연구소장으로서 한중일 삼국에 널린 문화유적지를 발굴하여 유네스코에 등재되는데 일조(一助)하는 평화운동가이다.

 

셋째로, 일본 오키나와에서 대규모 문화센터(well educatiom center)를 운영하며 한일 간 대학생 교류를 위해 방한한 시마 부쿠로(島袋義彦)씨다. 그의 센터에서 활동하는 강사진만 정관계 문화역사계 전문가를 위시하여 약 200여명이 출강하고 있다. 이번에는 한일 대학생 교환연수를 위해 방한했으며 각 대학의 총장들과 구체적인 방법과 규모시기를 결정하기 위한 논의를 했다. 그는 수백 명의 한일 대학생 교류 프로그램을 실재적으로 진행시킬 건물과 재력을 가진 인물이다. 또한 하토야마-다치카와-오사무-시마부쿠로로 이어진 문화교류의 선봉자로서 이번에 방한했다. 아베 내각의 독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인식이 상치(想峙)된 상황에서, 우선 민간차원에서 문화와 역사 바로알기 프로그램을 진척시키고자 내한(來韓)한 3인방의 첫걸음은 귀한 일이다.

 

역사적 군사적으로 적국이라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공생공멸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경제적 동반자를 적으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중국은 일본에 희토류 수출금지, 일본은 한국에 반도체 정밀기계 가공물자 반출금지란 외통수로 연결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중일은 우리에게 참담한 고통을 수천 수백 년간 안겨준 적국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어쩌랴! 정글의 법칙에 약자는 먹히거나 고갤 숙여야 하는데. 더 이상의 국수주의적 과거논쟁으로 한중일이 대치되는 것은 동북아 안정과 발전에 도움이 되질 못한다. 용서하되 과거는 잊지 말고, 영원한 적으로 삼는 것은 자본주의의 역사발전과 공생공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낙수(落水)가 바위를 뚫는 법. 어렵더라도 한중일이 경제공동체로 먹고 사는 것은 현실임을 자각하고, 대치보다는 유연하고 장기적인 대화와 협상이 필요하다. 정치에 의해서 막힌 한중일 관계를 민간차원에서라도 첫길을 내고 걷다보면 큰 도로가 생길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상기 일본인 세분의 과거 공로와 현재 활동을 높이 평가한다. 경색된 한일관계에서 상대를 적으로 내세우면 서로 피해만 입을 뿐이다. 경제적 국경이 무너진 무한경쟁 무한 타협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고, 적보다는 친구가 낫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야만 동북아 평화번영이 열림을 믿고 싶다. samsohun@hanmail.net


*필자/삼소헌 이래권. 작가. 칼럼니스트.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Copyright ⓒ 브레이크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