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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다!

황흥룡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1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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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흥룡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모든 인생은 어쩌다로 점철된다. 뛰어난 자가 신의 계시를 받는 것조차도 어쩌다이다. 그래서 어쩌다보니 평생을 교육과 함께 했다.(교육을 받으면서 교육을 했던 중복되는 기간이 있다).

 

그렇다면 교육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잘 알지 못한다. 교육을 받을 때는 그냥 받았고 그것을 교육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교육을 할 때는 전문지식을 전수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을뿐 교육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 긴 세월을 교육이라는 생각이 없이 그냥 교육의 일부를 이수하거나 담당한 것이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교육학개론을 비롯한 교육 참고도서와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에 잘 정리되어 있다. 참고하면 된다. 특별한 논점도 없다.

 

무엇을 교육해야 할까? 중요하다. 살아가는 법과 살아남는 법을 가르친다. 동물과 식물과 사람이 모두 그렇다. 방식이 다를 뿐이다. 동물도 그렇지만 특히 인간은 협력을 통해서 살아남는다. 그러므로 일견 모순적이지만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가르친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경쟁 중심으로, 협력 중심으로, 혹은 경쟁과 협력의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적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은 일차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고 거의 모든 교육의 역할이 여기에 배치되어 있다. 국어에서부터 역사까지 모두 그렇다. 이것만으로도 많고 벅차다. 그러나 이것에 머물면 단순교육이다. 비판적 전달이 필요하고 비판을 통해서 창조적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창조의 출발점은 비판이다. 비판없는 교육은 죽은 교육이고 비판없이 창조를 요구하는 것은 없는 아들에게 손자를 요구하는 백년하청식 교육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지점, 모든 교육은 비판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교육자, 모든 지식인, 모든 학교는 필히 비판적이어야 한다. 비판하지 않은 교육은 체제순응형 교육인데, 실상 사회와 역사의 특성상 체제순응을 위해서라도 일정한 비판은 불가피하다. 체제가 굴러가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한 개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육은 전달, 비판, 그리고 창조의 변증법적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전달은 초등학교서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배우고 가르치는 교과를 보면 알 수 있다. 명칭은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국어, 산수, 사회, 과학, 역사, 음악, 미술, 체육, 도덕, 영어 등을 가르친다. 대부분의 교과는 이 범주에 속한다. 적절히 비판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태부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창조는 어떨까? 능히 짐작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주로 칠판에 적고 받아쓰고 시청각 수업하고 현장견학 하는 방식으로 가르치고 배운다. 토론은 거의 없다. 지식전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일차원적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이야기에는 끝이 없지만, 하나 더 추가하면 우리 교육에는 인간과 인간사회에 대한 성찰이 없다. 인간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다음으로 자기 개인에 대한 성찰, 가족과 이웃과 사회에 대한 성찰, 국가와 세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자연과 다를 뭇생명에 대한 성찰로도 확장될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교육에는 이 영역이 통째로 빠져 있다. 그 자리는 불행하게도 학벌과 점수와 순위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리하여 소수의 기득권자는 노력없이 기득권을 재생산하게 되므로 발전이 없고 다수의 비기득권자는 기득권에 접근할 사다리를 발견하지 못하므로 발전을 포기하는 상태가 된다.

 

잠정적인 결론. 그맇다면 모든 교육자가 교육전문가가 되어야 할까? 아니다. 모든 교육이 주입식 전달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많은 교육학자들의 이론에 의하면 교육은 밀어넣는 부분과 끌어내는 부분이 있는데, 주입식 교육과 전달 교육은 밀어넣는 교육이다. 반면 토론, 비판, 사색, 독서 등은 끌어내는 교육이다. 어느 한 쪽만에 치우쳐서는 안되겠지만 밀어넣기 주입식 교육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유태인식 하브루타, 미네르바대학의 교육, 일본 아키타현의 국제교양대학의 교육 등이 모두 끌어내기 교육에 기반하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거꾸로 수업도 그 일환이다.

 

교육을 유교식으로 표현하면 든사람, 난사람, 된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을텐데 든사람은 주입식 전달교육에, 난사람은 영재교육이나 수월성 교육에 해당하는 반면 된사람은 비판교육, 성찰교육, 창조교육에 해당한다.

우리가 늘 강조하는 교육혁신이 이 방향으로 맞추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 초중등교육에서는 이런 흐름이 있는 반면 안타깝게도 고등교육은 그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최근의 대학교육을 기업맞춤형 교육지향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heungyong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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