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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나우, 독일 사진작가 베른트 할프헤르 사진전

박정대 기자 l 기사입력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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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진작가 베른트 할프헤르(Bernd Halbherr“의 전시회(Same same but different)515일부터 28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39, 관훈동 성지빌딩 3F갤러리 나우에서 열린다.

 

갤러리나우 측은 베른트 할프헤르(Bernd Halbherrd)의 주된 관심사는 시간과 공간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Sphere><Stories>시리즈이다. 두 작품의 결과는 매우 다른 형태로 완성된다. <Sphere>시리즈는 구()의 형태로 3차원의 입체적 방식으로 완성되어지고, <Stories>시리즈는 동영상을 2차원의 평면으로 풀어서 완성되는 작업이다. 두 시리즈는 근원적인 사물을 해석하고 관찰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결국 그의 관심의 시작은 시간과 공간에서 출발한다. “The panoramic sculpture”라고 명명한 <Sphere> 시리즈는 1994년부터 시작되어 이번 전시에서는 <cologne>, <colognedom>, <disneyland>등의 신작을 선보인다고 설명하면서 본래 사진 이미지는 어느 한 시점 혹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장면을 프레이밍 하여 촬영한다. 그러나 Bernd Halbherr는 어떠한 공간에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 짓지 않고 모든 것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그는 공간의 무엇이든 놓치지 않기 위해 카메라의 프레임을 확장시키고자 360도 파노라마 촬영방법을 선택한다고 소개했다.

 

▲ 베른트 할프헤르 seokpacheong forest 2019 20cm.  ©브레이크뉴스

▲ 베른트 할프헤르 seokpacheong hanok 2019 20cm.    ©브레이크뉴스

▲ 베른트 할프헤르 seokpacheong pavillion 2019 20cm.  ©브레이크뉴스

▲ 베른트 할프헤르 Seoul_Story_05_60x42cm.    ©브레이크뉴스

 

이어 우리의 눈에 보이는 3차원의 공간을 하나의 시점에서 360도 파노라마방식으로 길게 평면적으로 펼쳐 촬영한 후, 이를 다시 3차원으로 재해석 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즉 건축물의 내부를 파노라마 방식으로 촬영하여 평면으로 펼치고 다시 건축물을 짓듯이 3차원의 구 모양으로 재조합 하여 완성된다. 이때 내부를 촬영한 사진은 건축적방식의 외피로 바뀌게 된다. 구의 형태로 완성된 외피로 조작된 건축물의 내부임을 관람자는 아무런 의구심도 가지지 못한다. 베른트의 작업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형태감으로 인해 현실과 비현실, 실제와 허구, 개념과 이미지를 교묘하게 교란시키면서 시각적 유희를 이끈다고 지적하고 과학과 디자인의 도시 독일 울름(Ulm)에서 태어난 Bernd Halbherrd의 치밀하게 계산된 작업과정과 과학적 사고는 그에게는 어린 시절부터의 자연스러운 일련의 사고 체계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실과 허구'의 관계에서 어떤 공간과 시간적 기억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으로, 혹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으로 존재 하는 것 모두에 대한 완전함에 대한 추구로 보인다. 의 의미는 전통적으로 만물을 생성시키는 근원을 의미하며 완전한 완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베른트의 작품에서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를 담겠다는 베른트의 의지는 최종적으로 구()의 모습으로 완성되는 형태감으로 드러난다. 즉 구()가 지니는 상징적 의미인 우주적인, 완전함의 의미를 수면위로 끌어올리는 시도라고 강조했다.

 

또한 “<Stories>시리즈는 <Sphere>시리즈와는 반대로 영화를 2차원 이미지로 변환하여 보기의 관점을 새롭게 하고자 하는 시도로 동영상을 이미지로 변환하는 작업이다. 2002년부터 시작된 <Stories> 시리즈는 영화를 이미지로 변환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작업의 진행 과정을 ‘translate’라고 표현하는데 동영상의 한장 한장의 이미지를 나열함으로 전체적인 비슷한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나열되게 된다. 비슷한 이미지가 반복되는 듯이 보이지만 전체적인 영상은 다른 새로운 이미지로 완성되는 새로운 경험을 유도한다. 이는 시간과 공간의 반복과 연속성, 즉 무수하게 많은 반복과 반복의 연속적 과정을 거쳐 새로운 이미지가 생산되는 구조로 그는 'Same is same is same is another' 라고 표현하고 있다. 작품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구조 및 구성하고 있는 낱장의 이미지는 유사하지만 재생산된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가 되었다는 의미로, 형태와 형태가 반복되어 최종적으로는 추상이미지로 완성된다면서 “21세기의 다원화된 문화현상과 사회구조 안에서 베른트만의 감수성에 의해 새롭게 연출 되는 미시적 시점의 확장이 거시적으로 패턴화 되고, 의 형태로 재생산 되는 새로운 시공간의 재해석의 진수를 보여주는 전시라고 덧붙였다.

    

고충환 미술비평가의 전시회 평<전문>

  다음은 고충환 미술비평가의 이 전시회에 대한 평이다.

 

베른트 할프헤르의 사진설치작업 전체를 본다는 것, 이면을 읽는다는 것

-고충환 미술비평가

 

사진은 진실을 증언하는 사진에서 거짓말을 하는 사진으로 진화해왔다. 한쪽에 다큐멘터리와 르포 가 있고, 다른 한편에 페이크(fake)와 시뮬라크라 (simulacra, 실제로는 없는데, 정작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 그러므로 가상현실)가 있다.

 

베르겐 벨젠(Bergen-Belsen)과 다하우(Dachau) 의 유태인 수용소 학살 장면을 찍은 한 장의 흑백사진이 나를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았다는 수전 손택 (Susan Sontag)의 증언이 전자에 해당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라크 전쟁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는지 도 모른다는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역설 이 후자의 경우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버튼을 눌러 폭탄을 투하하는 전투기 조종사에게 땅 위에서 벌어지는 참극이며 아우성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다. 적과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전쟁에서 군인 은 추상적인 기계가 되고 전쟁은 게임이 된다는, 그러므로 현실이 가상현실이 된다는 역설적 현실을 보드리야르의 증언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현대사진에서 페이크는 그저 눈속임을 위한 것 이라기보다는, 이를 통해 숨겨진 현실, 진정한 현실, 지극한 현실을 눈앞에 불러내기 위한 경우가 많다. 친근한 현실을 낯설게 해 억압된 현실을 폭로하는 아방가르드의 낯설게 하기와도 통하는 경우로 보면 되겠다.

 

그리고 사진은 찍는 사진에서 만드는 사진으로 진화해왔다. 그리고 만드는 사진은 디지털 환경 이 후 보편화된 현실이 되고 있다. 이때 만드는 사진은 그저 사진을 조작한다기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고, 하나의 현실을 만들고, 하나의 세계를 만들 고, 또 다른 실재를 제안하는 능동적인 행위로 받아 들여져야 한다. 그런가 하면, 보는 것의 문제가 사진 의 한 축이라면, 그렇게 본 것을 어떻게 재현하는가 의 문제가 또 다른 한 축이다. 그렇게 사진은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문제와 긴밀하게 얽혀있다. 본다는 것, 그것은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사회경제적인, 미학적인, 문화적인, 관습적인 수많은 차이를 포함하고 있고, 그 차이는 그대로 재현의 문제에로, 그리고 사진의 문제 속으로 전이된다. 한 컷의 사진에, 이미지에, 영상에 내포된 이런 차이를 우리는 이미 이라크 사태에 대한 CNN과 알자지라 (Aljazeera) 방송에서 확인한 적이 있다. 객관적 사실보도를 전제로 한 것임에도 그 차이는 어쩔 수 없이 드러나고 만다.

 

사진과 영상과 설치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더 이상 사진으로만 정의하기가 어려운 베른트 할프헤르의 작업은 이처럼 현대사진과 긴밀하게 맞물린 제반 문제들, 즉 본다는 것의 문제, 재현의 문제, 보 는 것이 포함하는 차이의 문제, 한 장의 사진이 증언하는 거짓과 진실의 문제, 찍는 사진과 만드는 사 진의 경계에 대한 문제를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다. 사진으로부터 비롯된, 그리고 이후 점차 영상과 설치 같은 조형 일반으로 그 범주가 확대 재생산되는, 그리고 그 와중에 꽤나 의미심장한 인문학적 관심사가 읽히는, 그리고 그렇게 작가의 작가적 아이덴티티가 전개되면서 덩달아 사진이 다양한 형식을 얻는 형식적 스펙트럼으로 볼 수가 있겠다.

 

360도에서 본 파노라마 정경을 하나의 구 형태 로 구현한, 작가의 전형적인 작업이다. 전체를 볼 수 있는 이미지, 어떤 각도에서도 볼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사진조각) 감각은 인간의 감각을 넘어선다. 뒤편을 보 기 위해서 뒤쪽으로 돌아가야 하고, 아래편을 보기 위해서 구를 들어서 보거나 몸을 굽혀서 보아야 한 다. 여전히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서 몸을 움직여야 하고, 그렇게 본 단편들을 조합해 보아야 한다. 이전 에 상상력이 그 보조역할을 했지만, 그 보조역할(상상력)의 물화된 형식을 보는 것 같다. 그 감각은 심지 어 기계의 감각도 넘어선다. 최근에 360도 카메라 가 출시돼 작가도 거기에 빠져 있다지만, 그 결과를 보면 아직은 매끄럽지가 않다. 작가는 디지털로 이루어진 구조를 아날로그 미디엄으로 되돌리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그렇게 작가가 아날로그로 만든 감각이 더 완전해 보인다. 사진은 미디어다. 마 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를 인간의 감각능력이 확장된 것으로 본다. 이전에는 보지도 듣지도 만질 수도 없던 것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작가의 사진조각은 감 각, 특히 공간에 대한 시지각 영역을 확장시킨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를 계기로 어쩌면 차후에 천리안이 열리고, 심안이 열리고, 혜안이 열리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는 필름 상태의 비디오 영상을 개별 스틸 컷으로 분리하고 열거하는 방식으로 한 장의 사진 을 만들었다. 그건 분명 사진이지만 추상적인 패턴처럼 보인다. 의도적인 조작이 아니라면 대개 사진 은 그 속에 현실을 담고 구상적인 형상을 담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진 속엔 현실도 없고 구상적인 형상 도 없다. 그리고 그걸 작가는 단편이라고 부른다. 짧은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정작 거기에 이야기는 없다. 현실도 없고 알만한 형상도 없고 이야기도 없는 사진이다. 사진이라고 부를 수조 차 없는 역설적인 사진이다. 그러나 엄밀하게는 현 실도 있고 형상도 있고 이야기도 있지만, 다만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인 사진이다. 여기서 작가는 현실(현실인식)도 형상(어떤 형상을 알만하거나 추상적인 형상으로 지각하는)도 이야기(서사)도 시지각 방식에 연동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너무 멀리서 보면 현 실도 추상처럼 보인다. 그렇게 작가는 현실이 추상으로 넘어가는, 현실이 무수한 셀(cell)들의 집합으로 환원되는 시지각의 변곡점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의 장소를 한 장의 사진으로 압축한 장소특정적인 아카이브의 한 유형을, 사진적인 한 유형을 제안하고 있다.

 

 

사람들은 똑같은 것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저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 본다는 것은 객관적인 현상이 아니다. 개별 적인 현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본다는 것은 욕망에 연동되고, 무의식을 파고든다. 그러므로 사진을 매개로 본다는 것의 문제를 파고드는 작가의 작업은 그 자체로는 색깔도 형태도 없는 욕망에 색깔을 덧입히고 무의식에 형태를 부여해주는 행위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는 사람의 눈과 카메라의 눈의 경계(광학의 메커니즘)를 넘나들고, 겉보기와 이면보기의 차이(시선의 정치학)를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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