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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을 그만 두고 물러나 집에 있으니 불러다 쓰시지요

이순복 소설가 l 기사입력 2019-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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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동진의 무창군공 왕돈은 힘으로 황제를 위협하고 초왕과 감탁 등 여러 충신들을 죽이거나 내어 쫓고 나자 아무런 두려울 것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역모의 준비작업으로 형 왕함을 무창자사로 왕이를 장사태수로 심복장수 주려를 양양태수로 임명코자 명제 앞에 청했다.


 이때 왕서는 나라에 충성한 공이 커서 형주자사로 임명되었고 왕돈은 자기를 반대하는 왕빈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광주자사로 임명하기를 청했으나 두 사람은 왕돈의 선심공세를 받지 않았다. 칙명을 받들고 왕빈 왕서가 임지로 떠나자 왕돈은 두 아우의 뒤를 쫓아가서 먼저 왕빈에게 조용히 타이르기를
 “네가 부임해 가는 광주는 국가의 요지이다. 우선 나는 우리 집안사람을 모두 요지에 세워두고 손쉽게 황권을 빼앗고자 하니 그리 알아라.”
 “그게 남의 신하된 사람으로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왕빈은 형의 말을 듣자 얼굴을 붉히며 그리 말하자 왕돈은 왕빈의 멱살을 잡고 말하기를
 “너는 나를 모욕하려고 그러느냐! 위아래도 몰라보는 놈!”


 이 곁에서 모양을 보고 난처해진 왕서는 조용히 왕돈의 소매를 잡아끌면서 말리기를
 “지난날 형님은 손위인 왕징과 왕릉도 죽인 일이 있습니다. 이제는 동생마저 죽이려고 하십니까. 고정하십시오.”         
 왕서의 말을 듣자 왕돈은 억지로 성질을 참으며 슬며시 왕빈의 멱살을 놓았다. 그러나 형제간의 작은 갈등이지만 왕돈의 마음은 아주 무거웠다.
 어느 날 심충이 왕돈을 찾아와 가만히 말하기를
 “곽박은 장래를 내다볼 줄 아는 이기한 재간을 가졌습니다. 지금 모친상을 당해서 벼슬을 그만 두고 물러나 집에 있으니 불러다 쓰시지요.”
 그 말을 들은 왕돈은 즉시 곽박에게 사람을 보내 불렀으나 곽박은 모친상을 핑계로 하여 찾아오지 않았다. 왕돈은 기분대로 곽박에게 부조 돈을 크게 보내 마음을 사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곽박을 움직이지 못했다.
 이때 왕돈이 재삼 사람을 보내어 빨리 곽박을 오라고 재촉했다. 곽박은 더 거절할 수 없음을 알고 대강 집안일을 수습해 두고 왕돈의 부중으로 들어갔다. 왕돈은 곽박을 보자 크게 기뻐하며 참군 벼슬을 내렸다.
 허손과 오맹이 이 사실을 알고 고숙 땅으로 곽박을 찾아왔다. 곽박은 두 친구를 만나 지난 일을 다 말하고 재앙에서 빠져나갈 길을 묻자 허손이 대답하기를
 “오늘날 곽공이 들어선 길을 추이해 보면 이것은 천수입니다. 인산(人算)이 용납되지 않으니 재차 다른 방법을 행하더라도 달리 수가 없을 것입니다.”
 곽박이 되묻기를
 “그렇다면 빠져날 길은 없을까요?”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난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명백하게 하되 얼버무리지 마십시오. 그래야 경우에 따라서 재앙을 풀고 면하는 수도 생길지 모릅니다.”


 이처럼 세 사람이 이야기 할 때 왕돈이 사람을 시켜 이들을 초대했다. 세 사람이 가보니 왕돈은 술자리를 마련해서 손님을 환대하고 다른 한편에는 집안 종족과 장수들을 모두 배석시켰다. 술자리가 무르익어 가자 기고만장한 왕돈이 두 도사를 바라보며 묻기를
 “두 분 선생께 장수하는 비결을 듣고 싶습니다.”
 이에 허손이 술잔을 내려놓고 대답하기를
 “공은 조정의 대관이신데 뭣 때문에 산야에 묻혀 사는 선비나 바라는 수련법을 물으십니까?”
 그러나 왕돈은 그 대답이 신통치 않았던지 잠시 후 또 묻기를
 “나는 어제 꿈을 꾸었는데 곧게 선 한그루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하늘을 들어 받았습니다. 이것이 무슨 징조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허손이 손가락 끝으로 술상을 가볍게 치면서 대답하기를
 “한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하늘을 들어 받아 뚫었으니 바로 이것은 말(末) 자올시다. 모든 일을 함부로 도모하지 마시라는 징조이니 일을 꾸민다 해도 반드시 성사되지 않을 것입니다. 꿈이란 믿어도 좋은 것이므로 근본을 지키는 일이 중요할 것이옵니다.”
 왕돈은 내심 이놈들이 나를 비방하는가 싶어서 당장 잡아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묵묵히 앉아 있던 오맹은 벌써 왕돈의 안색을 보고 그 속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오맹이 술잔을 들어서 대들보를 향해 집어던지자 술잔은 한 쌍의 흰 비둘기가 되어 지붕 위로 날아올라 갔다. 좌중의 모든 사람들이 얼이 빠져서 그 비둘기를 쳐다보는 사이에 두 도사는 낭하 밖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한참 후에 제 정신으로 돌아온 여러 사람들이 눈을 허손과 오맹이 앉았던 자리로 돌렸을 때는 이미 그들은 연기처럼 사라진 뒤였다. 이때부터 왕돈은 마음이 크게 놀라 앙앙불락(怏怏不樂)하며 은연중 곽박을 싫어하고 죽일 마음을 먹었다.


 왕돈은 왕돈대로 곽박은 곽박대로 서로가 딴 마음을 가지고 꿈꾸는 가운데서도 세월은 흘러갔다. 그런 세웡을 만들면서도 왕돈의 용상을 차지하려는 욕심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곽박의 친구 허손도사의 해몽은 정확해서 왕돈의 심중을 꿰뚫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꿈 괘가 나쁘게 나오자 왕돈은 역모를 도모하려고 해도 감히 양심이 찔려 시행하지 못하고 망서리고 있었다.
 이때 유외는 후조국으로 도망쳐서 석늑에게 왕돈의 난을 말하자 그 틈을 타서 동진을 치자고 했다. 그래서 공장과 도표에게 5만군을 주어 동진 남쪽 경계에 있는 추산을 치게 했다. 추산을 지키던 극감은 석늑군이 쳐들어오자 대적하지 못하고 합비로 물러갔다. 공장은 승세를 타서 팽성을 치니 변돈자사가 패하여 우태로 후퇴했다. 이로부터 서주와 연주의 군현은 대부분 석늑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복야 기첨은 극감이 패하자 황제에게 상소를 올리기를
 “극감은 본래부터 글을 숭상하는 문신으로서 힘든 군려(軍旅)는 감당하지 못할 위인입니다. 폐하께서 차라리 조정에서 쓰시면 합당할 것입니다.”


 황제는 그 말을 옳게 여겨 극감을 불러 상서우승을 시켰다. 극감은 황제에게 주연을 천거하여 황제를 잘 보필하니 왕돈은 크게 불안하여 심충 정봉을 불러 의논하기를
 “지금 조정대신이 주. 왕 두 성씨가 많아 내가 거사를 하려해도 그들이 아직 내 명을 따르지 않소. 주광 주무가 내 심복이지만 그 외에 주씨가 현직을 맡고 있으니 그들이 내 일을 막을까 두렵소.”
 심충과 전봉이 살펴보니 주씨가 요직에 많아 왕돈의 근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왕돈이 그의 생각을 말하기를
 “일전에 건강에서 회군할 때 생포한 주찰과 백관들을 조정으로 돌려보낸 것이 잘못인데 만약 주연마저 정치에 참여한다면 주씨가 권력을 잡게 될 것이니 이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지금 유명한 도사로 주탈이 있습니다. 그는 요술로써 혹세무민하여 감방에 들어가 있는데 주연의 일족입니다. 우리가 손을 써서 주탈이 국가의 변란을 조장시킨다하고 그 일족인 주연까지 걸면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돈은 심충의 계략을 듣자 곧 출동할 준비를 시키고 두홍과 위의에게 군사를 주어 성을 포위하게 했다. 그리고 성내에 역적을 잡는다고 하고 3천군을 침입시켜 주연의 관아로 달려가서 선언하기를
 “주탈이 주연과 주찰을 불러서 음모를 꾸미고 백성을 모아 난을 일으키고자 하므로 황제의 조서를 받들어 체포한다. 다만 죄는 도성에 가서 문죄하리라.”
 관청에서는 왕돈의 세력이 두려워 감히 막지 못하자 두홍은 주연을 체포하여 배로 데려가고 남은 주씨 종족 7백 명을 모두 죽여 버렸다.


 이때 주찰 부자는 회계를 진수하고 있는데 왕돈은 후환을 염려하여 심충에게 1만군을 주어 회계를 치고 주찰을 없애라 했다. 심충은 군사를 이끌고 회계로 달려가니 백성들이 모두 놀라 달아났다. 심충이 군사를 재촉하여 회계성에 당도하니 주찰이 급히 군사를 모아 대항하려했으나 심충은 성문을 열고 들어와 무작정관아로 들어갔다. 이것을 본 주속은 수병 50명을 이끌고 나가 싸웠으나 제갈요가 휘두르는 칼을 맞고 죽자 심충은 관아로 들어가 큰 소리로 외치기를
 “주가네 집안이 모반했기 때문에 주연을 체포한다. 너희들이 주찰을 돕다가 집을 빼앗기고 멸족을 당하고 싶으냐!”
 이 말에 놀라 군사들이 모두 달아나자 심충은 거침없이 주찰을 목 베어 죽이고 주씨 종자를 몰살시키고 말았다. 왕돈이 주씨를 완전히 제거하고 나자 조야에는 자기 뜻을 거스를 자가 없었다. 이에 왕돈은 심충과 전봉을 불러 군사를 일으켜 거사할 일을 의논했다. 둘은 이심전심으로 협력하고 왕돈의 말을 듣기도 전에 행하고 말하기를
 “이제 조정에는 모든 장애가 사라졌습니다. 회계의 병력은 쇠퇴하고 조정에는 대항할 장수가 없으니 이제 제업을 빼앗아야 할 것입니다. 속히 결정하십시오.”
 “유하 채표 소준이 이끈 병마가 아직도 회상의 제군에 있다. 아마도 아직은 쉽지 않으리라.”
 왕돈의 말에 심충이 보태어 대꾸하기를
 “전번의 일을 상기하십시오. 공은 주현의 군사를 두려워하시는데 지금 거사하지 않고 망설이다가 인심이 변하고 어진신하가 폐하 곁을 차지하면 어떻게 거사를 하시렵니까?”        
 왕돈은 그 말을 듣고 택일하여 건강을 공략하자고 했다. 그때가 진명제 태녕 2년 전조 광초 7년 후조 태화 6년이었다. 왕돈은 주무와 등악을 좌우선봉으로 삼고 자신은 중군을 거느리고 건강을 향하여 발진하기로 하고 명령을 내리기를
 “일이 성공되는 날 경들은 곧 원훈이므로 의당 공후에 봉하고 대대로 부귀영화를 함께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경들은 최선을 다하여 내게 충성을 다하라!”


 두 장수가 명을 받고 나가자 왕돈은 다시 위의 여의 제갈요를 길을 나눠서 각 군을 초무하고 당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리하고 나서 형 왕함을 표기장군에 임명하여 전군을 감독하게 하고 자신은 주려 등하 주광 전봉 심충을 거느리고 후군이 되어 곧장 호음으로 나가서 주둔했다. 이에 그 고을의 순군은 밤낮을 도와 건강으로 달려가서 그 사실을 황제 앞에 상주했다.
 명제는 전에 태자일 때 충신 조협이 나가 죽은 것을 보고 왕돈을 칠 마음이 있었으나 온교가 말려서 억제하며 지내왔다. 그런데 순군이 와서 보고하자 말없이 두 근시를 데리고 날랜 순마를 타고 달 밝은 밤길을 달려서 호음에 당도했다. 먼동이 트기 전 여명인데 황제는 홀로 왕돈의 영채를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리기를
 ‘이 역적놈이 준비를 철저히 했구나! 그러나 성공은 네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절대로 네 뜻대로 되지 않으리라. 두고 보면 알 일이다. 하늘이 누구 손을 들어 줄지...’
 이때 황제를 따라온 근시는 자세히 왕돈의 군세를 관찰하고 둔영 주변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으나 영문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이때 순찰병이 황제를 발견했으나 홀로 말을 타고 왔으므로 새벽 장사꾼으로 알고 잡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말의 재갈 모양이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위에 보고하러 간 사이에 황제는 말을 돌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때 왕돈은 깊은 잠에 빠져 두 개의 태양이 영채 위에 떨어져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해 가는 꿈을 꾸었다. 꿈이지만 그 광채가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왕돈은 깜짝 놀라 잠을 깨었다. 그리고 급히 옷을 챙겨 입고 영문 밖을 나오니 이미 그곳에는 참군 곽박이 일어나서 천체의 운행을 우러러 보고 있어 왕돈이 묻기를
 “선생은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곽박이 황홀경에 빠져서 입이 시키는 대로 대답하기를
 “안 된다. 참으로 신도(神道)는 수가 무궁무진하구나! 그가 일등성을 보호하여 동쪽으로 사라졌으나 대낮이라 그 별을 알아본 자가 있을지라도 그의 신분은 모를 것이다.”
 마치 꿈꾸듯 중얼대는 곽박의 말 속에 자기가 꾼 꿈과 부합되는 점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에 왕돈은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아까 황제를 발견한 순찰병이 달려와서 좀 전의 일을 왕돈에게 보고하기를
 “어떤 사람이 영채 밖에 혼자 서 있었습니다. 모습은 대강 이러저러하고 날랜 준마에 몸을 실었는데 그의 준마에 재갈은 번쩍거리고 찬란한 것이 황금 같았습니다. 그는 군영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더니 갑자기 동남쪽을 바라보며 달려가기에 그 뒤를 쫓아갔으나 어찌 빠른지 잡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노랑수염의 선비족 아이일 것이다.”
 “노랑수염이라니 누구를 말하십니까?”
 “그 사람은 황제임에 틀림없소. 황제의 모친 순씨는 연나라에서 태어나서 선비족 가운데서 성장했소.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은 황제의 수염이 노란 것을 보고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하오.”   


 그리 설명해 주고 나서 좌우에 모여 있는 군사들을 향하여 큰 소리로 외치기를
 “누구든지 그를 생포해 오는 자는 만호후 벼슬을 내리리라.”
 장교 몇이 곁에 서 있다가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듯이 말을 달려 동쪽을 바라보며 달렸다. 
 이때 황제는 어느 떡 가게 앞을 지나는데 뒤에서 말발굽소리가 요란하여 슬쩍 떡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떡을 파는 노파는 떡을 사먹으러 온 손님인 줄 알고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다가왔다. 황제는 불쑥 노파 앞에 칠보 장식이 달린 말채찍을 내밀면서 말하기를
 “이 말채찍을 노인에게 드리니 저 뒤에서 추격해 오는 자들이 내가 간 곳을 물으면 이것을 내 보이시고 이곳을 지난 지 한참 되었으니 깨나 멀리 갔을 것이라고 대답하여 주십시오.”
 노파가 영문도 모르고 응낙하자 황제는 깊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마치고 또다시 말을 타고 동쪽을 바라보며 달려갔다. 한참 후에 과연 군인들이 떡 가게 앞으로 몰려들어 노파에게 묻기를
 “노란수염을 단 소년이 보랏빛 말을 타고 이 앞을 지나가지 않았소?”
 노파는 눈을 좁혀 뜨고 그들을 쳐다보더니 칠보 장식을 한 말채찍을 내보이며 시치미를 떼고 대답하기를
 “이 말채찍과 떡 10개를 바꿔 가지고 갔는데 지금쯤은 아마도 깨나 멀리 갔을 거요.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요?”
 그러나 군인들은 묻는 말에는 대답 없이 그 채찍을 드려다 보면서 한마디씩 지껄이기를
 “틀림없이 황제요. 다른 사람은 이런 채찍을 가진 것을 못 봤소. 빨리 뒤를 쫓읍시다.”


 노파는 그처럼 웅성대는 군인들을 바라보면서 점잖은 어조로 말하기를
 “여보시오. 젊은 양반들, 아까 그분이 틀림없는 천자라면 어찌 방비가 없겠소. 그리고 그는 용구를 탔을 것이니 당신들의 보잘 것 없는 말로 어떻게 뒤를 쫓겠소. 헛수고 말고 돌아들 가시오.”
 한 군인이 노파의 말에 대꾸하기를
 “과연 노인의 말이 옳소이다.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그를 본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알아보겠습니까.”
 여러 사람들도 그 말에 동조하여 말하기를
 “곽참군이 말하지 않던가. 신도가 일등성을 보호하여 동쪽으로 사라진다고. 이야말로 황제의 기운이 아직도 왕성한 증거이니 그가 정말 천자였다면 모든 신명이 그를 가호할 것인즉 우리가 무슨 수로 잡겠는가.”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은 장교들은 노파에게 황제 사마소의 것으로 보이는 채찍을 돌려주고 영채로 돌아왔다.

 

 


 장교들이 황제의 것으로 보이는 채찍을 순진하게도 노인에게 건네주고 빈손으로 돌아와 보고하자 왕돈은 마음속으로 심히 안타까워했다.
 ‘이런 머저리 같은 것들!’
 이 보고를 신중하게 받고 난 왕돈은 발을 구르면서 억울해 하며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하기를
 “아아! 사마소가 제 발로 그물에 걸어들어 왔는데 잡지 못했구나. 이것으로 보건대 건강성도 취하기 어렵겠구나.”


 마음속으로 크게 고민하여 왕돈은 마침내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워버렸다. 이에 곽박이 침소를 찾아 들어와 말하기를
 “진조 왕기는 아직도 왕성합니다. 공은 이제 음모를 그만 거두십시오. 그리고 황제에게 표를 올려서 군신의 의를 돈독히 하고 영원토록 부귀를 누리게끔 하십시오. 어제 밤 꿈에 본 붉은 해가 바로 그 조짐입니다.”
 왕돈은 그 말을 듣자 더욱 근심하더니 몸에 열이 심하여 불덩이 같았다. 심충 전봉 두 모사가 문병 와서 앞일을 물으니 힘없이 눈을 내려뜨며 말하기를
 “내가 대사를 눈앞에 두고 갑자기 이 같은 중병을 얻었으니 아마 하늘이 나를 돕지 않으시나 보오.”
 이에 전봉이 말하기를
 “승상의 병은 보아하니 매우 중한 것 같습니다. 만약 쾌유하실 희망이 없으시면 후사를 무위장군 왕응에게  부탁하십시오.”
 왕응은 왕함의 아들이다. 왕돈에게는 후사가 없기 때문에 왕응으로 뒤를 잇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왕돈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하기를
 “비상한 일은 비상한 사람만이 능히 이룰 수 있소. 왕응은 재주가 없으니 어찌 이 같은 대사를 감당할 수 있겠소.”
 두 모사가 말을 못하고 고개를 빠뜨리고 있자 왕돈이 말을 다시 잇기를
 “나에게 세 가지 계책이 있으니 그대는 잘 들으오. 그 첫째는 군사를 해산하고 조정에 귀순하여 임금과 백성들의 마음을 평안케 하는 것으로 상책이오. 둘째는 내가 죽었다고 표를 올리고 무창으로 회군하여 군사를 수습해서 지난날의 공로를 인정받는 것으로 중책이오. 셋째로 내 병이 요행히 차도가 있어 곧 군사를 이끌고 건강을 기습해서 한번 싸움으로 자웅을 결정하는 것으로 하책이오.”


 전봉은 그 말을 듣자 곧 여러 사람 앞에 나가 선포하기를
 “승상의 하책은 곧 상계요”
 마침내 심충과 계략을 짜고 군사를 나누어 급히 나가 건강을 쳤다.
 한편 황제는 호음의 적정을 돌아보고 나서 밤새껏 달려 건강성 밑에 당도하니 수비병들은 황제를 호위하여 궁성으로 들어갔다. 온교와 유량 두 대신이 황제를 뵙자 황제가 옥음을 내리기를
 “짐은 경들의 말을 듣지 않고 몰래 적정을 살피다가 늙은 도적의 추격을 받았소. 왕돈이 반역할 뜻을 완전히 하였소이다. 내 마땅히 그를 막으리라.”
 온교가 정중히 아뢰기를
 “신속히 군사를 정돈해서 적을 맞아 싸우도록 하십시오. 옛말에도 약을 가지고 강을 이긴다 했으니 전쟁의 판가름은 군사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오직 장수의 용기와 지혜에 달려있는 줄 아나이다.”
 황제는 결단을 내리고 곧 중외에 분부하기를
 “우리는 하나가 되어 왕돈 역적의 반란을 막는다.”
 이 소식은 첩자를 통해 곧 왕돈에게 들어갔다. 왕돈은 온교가 황제에게 아뢴 말을 듣자 심히 온교를 미워하고 있을 때 전봉이 아뢰기를
 “오늘 아침에 궁성을 지키는 숙위가 더욱 많은 것 같으니 틀림없이 계략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선 표를 올려서 대궐의 위병 셋 중 둘을 쉬게 해서 국경에 증파하여 석늑의 침입을 막게 하십시오. 그리고 온교를 잡아들여 이곳으로 끌고 와서 영중에 구금한다면 성사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돈의 표를 보신 황제는 진노하면서 온교를 불러서 숙의하기를
 “금위병 제도는 고금부터 있는데 늙은 도적은 뭣 때문에 트집을 잡는 것인가. 이것은 필시 그놈이 내 우익을 모두 떼어버린 후에 궁궐을 침입하고자 하는 것일 거요. 짐은 오직 경만 믿으니 조만간 가부를 결정해 올리시오.”
 이에 온교가 다시 아뢰기를
 “지금 숙위들은 모두 도성 중에 있으며 신의 지휘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왕돈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필연코 그는 노여워할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아직 방비가 부족하니 그 비위를 거슬러서 난을 속히 불러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신이 가서 그의 마음을 눅어지게 하고 옴으로써 급박하게 일어날 난을 막도록 하겠습니다. 그 동안 폐하께서는 밀조를 내리시어 회예(淮豫)의 여러 진의 군사를 불러 들여서 궁궐을 지키라 하십시오.”     
 그러나 황제는 온교가 왕돈의 진영으로 가는 것을 말리고 분부하기를
 “경이 그곳에 한번 가면 기필코 돌아오기 어려우리다. 그리되면 짐은 한 팔을 잃게 되니 어쩔 것이오.”
 비장한 결의를 얼굴에 나타낸 온교는 다시 아뢰기를
 “신은 간다 해도 다시 올 계획이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심려하지 마시옵소서.”


 이리하여 온교는 마음 가볍게 호음으로 달려가서 왕돈을 만났다. 온교가 왕돈의 덕 있음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자 왕돈은 매우 기분이 좋아졌다. 온교는 교묘히 세 치 혀를 놀려서 왕돈을 속이고 한편 밀모를 진행시키며 각각 다른 말로 막료들의 환심을 사자 전봉조차도 온교를 심히 좋아하게 되었다. 온교가 거짓으로 전봉의 비위를 맞추어 말하기를
 “전장군은 참 눈이 좋소. 온 정신이 모두 눈에 모여 있소. 훗날 반드시 귀하게 되실 것이외다.”
 전봉은 본래부터 온교가 사람을 보는 눈이 있음을 알고 있으므로 그 말을 듣자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마침내 전봉은 정성을 다해서 온교의 지우(知遇)를 얻고자 힘썼다.
 한편 온교는 계략이 잘 맞아 드는 것을 보고 몸을 빼내어 황제 앞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뾰쪽한 수가 없어 고민하는데 단양윤 자리가 비게 되었다. 온교가 왕돈에게 말하기를
 “단양윤 자리는 도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을 지키는 요직이니 승상께서 마땅한 사람을 골라 맡기십시오.”
 왕돈은 그 말에 귀가 솔깃하여 누가 황제 앞에 가서 그 말을 아뢸 것인가 물으니 온교가 대답하기를
 “아마 전봉이 아니라면 어려울 것이옵니다.”


 그러나 전봉은 조만간 거사를 할 속셈을 가지고 있어서 사퇴하고 대신 온교를 천거했다. 온교는 내심 기뻐하면서도 거짓으로 고사하며 듣지 않았다. 그러나 왕돈은 온교가 고사한 것을 듣지 않고 마침내 사람을 시켜서 표를 올려 온교를 단양윤에 임명하고 그날로 주연을 베풀어서 전송하기로 했다. 온교는 떠나는 마당에 왕돈을 보고 진실로 슬픈 듯 눈물까지 흘리면서 세 번씩이나 작별인사를 하자 왕돈은 진정 온교가 자기를 하직하는 게 서러워 그런 줄로 믿고 온교의 손을 잡고 위로하며 조용히 부탁하기를
 “경이 단양에 도착하여 즉시 조정의 소식을 엿보아 내게 알려주면 그대를 위해 다행일 것이오.”
 온교는 머리를 끄덕이며 근심스런 말투로 말하기를
 “어제 송별연에서 소신은 취한 바람에 전봉 사마의 옷자락에 술을 엎질렀습니다. 아마도 전사마는 그러한 나의 실수를 받아드리지 않으시리니 그것이 두렵소이다.”
 왕돈이 온교의 등을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기를
 “하하하. 뭐 그 정도의 일을 가지고 그러시오. 힘써서 임지나 지키고 다른 걱정을 하지 마시오.”
 온교는 왕돈의 말에 감격하여 몸 둘 바를 모르며 황송해 하면서 임지로 떠났다. 왕돈이 어진 선비 한 사람을 자기 그늘로 끌어드릴 수 있었다고 자부하면서 무척 기뻐했다. 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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