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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독재의 심장이었고, 김재규는 그 심장을 쏘았다!

문일석 발행인 l 기사입력 2019-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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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의인들(김재규, 박흥주, 박선호, 유성옥, 이기주, 김태원).      ©브레이크뉴스

 

▲ 서대문형무소, 통곡의 미루나무. 김재규가 사형됐던 사형장.     ©브레이크뉴스

▲5월24일.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는 김재규와 함께 거사에 가담했다 사형당한 ‘10.26 의인들(김재규, 박흥주, 박선호, 유성옥, 이기주, 김태원)’의 추모행사가 열렸다.    ©브레이크뉴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고, 1979년 10.26(김재규 총격사건)으로 암살됐다. 그의 삶은 격정적이었다. 총으로 일어섰다가 총으로 패망했기 때문이다. 박정희를 암살했던 김재규는 박정희가 총애했던 부하였다. 두 사람은 장군 출신이다. 암살 당시 박정희는 유신정권으로 장기집권을 꾀하고 있었다. 대학가의 유신반대 시위는 격해 있었다. 민란 직전의 부마항쟁에 직면해 있었다. 박정희 권력은 심하게 흔들렸고, 종국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의해 붕괴됐다. 거대한 탄압의 독재 심장이 김재규가 쏜 총성과 함께 멈췄다. 그의 권력 시계는 18년 6개월에 멈춰 섰다.


중앙정보부는 막강한 정보기관이었다. 이 기관은 무소불위의 국가기관으로 권력의 중추였으며, 지탱기관이기도 했다. 중앙정보부의 박정희 암살공작은 중앙정보부 생긴 이래 최대의 공작이었다. 그 공작 하나로 모든 죄를 사함받을, 역사적인 '비밀공작'이었다. 그럼에도 박정희를 암살했던 정보기관의 최고 수장이었던 김재규는 체포되어 군사법정에 넘겨졌고 끝내 사형 됐다.

 

박정희 암살사건은 재판 과정에서 주장되어지는 내용에 따르면, 우발적 사건이 아니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암살 실행이 사전에 준비되었다는 말이다.

 

박정희를 암살했던 김재규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와중에 사형됐다. 1980년 5월24일, 그가 사형된 날이다. 올 5월24일은 그의 39주기 제삿날이다. 이날 서울시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추모 모임이 열렸다. 필자는 이 모임에 참석한 이후, 그가 교수형에 처해졌던 사형장을 둘러보았다, 일제 강점기에 수많은 애국자들이 사형됐던 통곡의 미루나무는 짙푸른 녹색을 발하면서 큰 키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나무는 비극을 증언하는 나무로 남아 있는 셈이다. 이 통곡의 미루나무는 김재규가 교수형에 처해지는 장면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년~1616년)는 희곡작가이다. 그가 남긴 ‘줄리어스 시저(ulius Caesar)’는 그가 쓴 희곡가운데 대표적인 비극을 다룬 작품. 이 비극의 원전은 1599년에 토마스 노스(Thomas North)가 번역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다. 이 비극 스토리는 권력자 시저가 정적이었던 폼페이우스를 제거하여 정치가로서 권력의 정상에 올랐을 때 암살 당하는 내용이다. 시저의 총애를 받았던 부하 브루투스가 상관이었던 시저의 암살에 가담한다. 브루투스는 시저 암살 후 파멸한다. 브루투스는 자신이 모시는 상관이 ‘독재 군주’가 될 것을 우려해 그의 제거에 동참했다. 당시 시저의 측근 장수였던 안토니우스는 시저의 최측근으로서 시저 암살 이후 시저 암살파를 진압하고 권력을 장악한다.

 

시저는 자신의 권력이 붕괴되는 것을 예감했다. 암살 당일 시저의 아내는 지난밤의 악몽을 이야기해줬다. 시저는 최후의 독백에서 “비겁자는 죽기까지 몇 번이든 되풀이해서 죽지만 용감한 자는 단 한 번 죽음을 맞이하는 법이오(2막 2장 32-33)”라고 중얼거린다.


시저 장례식에 참석한 브루투스는 자신이 시저를 암살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장례식 연설에서 “만약 시저의 친구 브루투스가 시저에 왜 역모를 일으켰냐고 묻는다면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브루투스가 시저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한 것이라고. 여러분은 시저가 죽고 만인이 자유롭게 사는 것보다 시저가 살고 만인이 노예로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 시저가 날 사랑했기에 그를 위해 울었고, 그가 영광스러웠기에 그를 위해 기뻐했고, 그가 용감했기에 그를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시저가 야심가였기에 전 그를 죽였습니다. (3막 2장 20-29)”고 외친다.

 

그의 연설은 논리적이었다. 브루투스는 만인 앞에 자신이 암살자-살인자가 아님을 피력했다. 그는 “시저가 살고 만인이 노예로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라고 외쳤었다.

 

국내외 정보를 장악했던 김재규는 아마 자신의 혁명진행(박정희 제거)을 위해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 ‘줄리어스 시저’를 탐독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시저의 측근 장수 안토니우스는 시저암살 이후 암살파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다. 박정희 암살 이후 권력을 장악(12.12군사 쿠데타)한 전두환 장군을 빼닮았다.


김재규는 교수형으로 사형되기 전 자신이 ‘혁명가’임을 부각시켰다. 김재규가 1979년 12월18일에 개정됐던 10.26군사법정에서 가진, 최후 진술은 브루투스가 시저의 장례식장에서 행한 연설에 버금간다.

 

김재규는 최후 진술에서 “이 혁명(박정희 암살)은 5․16혁명이나 10월유신에 비해서 그야말로 정정당당합니다. 허약한 자유민주당정권을 무력하다는 이유로 밀어치우는 것과는, 앞마당에서 자기 마음대로 한바탕 혁명을 더해서 자유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여기에 비하면 서슬이 시퍼렇고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유신체제를 정면에서 도전하여 유신체제를 타파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를 회복하는데 완전 성공했습니다. 따라서 10․26혁명이야말로 역사상에 가장 정정당당한 혁명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고 외쳤다, 이어 “여기에서 한마디 확실히 말씀해 둘 것은 결코 저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혁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군인이었고, 혁명가입니다. 군인이나 혁명가가 정치를 하게 되면 독재를 하기 마련입니다. 독재를 마다고 혁명한 제가, 독재의 요인을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또 제가 대통령 각하와의 개인의 의리를 청산하고 혁명을 했습니다만, 대통령 각하의 무덤 위에 올라설 정도로 아직까지 내 도덕관은 타락되어 있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김재규의 최후진술은 브루투스가 시저 장례식장에서 행한 연설과 맥이 통한다. 브루투스는 “시저가 살고 만인이 노예로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라고 외쳤고, 김재규는 “나는 오늘 마지막으로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 놓았다. 20~25년 앞당겨 놓았다는 자부를 가지고 있다. 아무쪼록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가 만만세가 되도록 기원하고, 또 10․26민주회복 국민혁명이 만만세가 되도록 기원한다”고 외쳤다.

 

5월24일.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는 김재규와 함께 거사에 가담했다 사형당한 ‘10.26 의인들(김재규, 박흥주, 박선호, 유성옥, 이기주, 김태원)’의 추모행사가 열렸다. 안동일 변호사(홍익법무법인 고문변호사)는 추모사에서 “우리가 매년 추모집회를 하고 백방으로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재평가(김재규)의 날이 오리라고 굳게 믿는다. 사육신(死六臣)의 신원(伸寃)도 200년을 넘어서 이루어진 역사를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출신 극작가.그는 1616년에 사망했으니, 김재규가 박정희를 암살한 1979년에서 역산하면 363년 전의 인물. 김재규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를 암살했던 사건은 유럽에서 희곡으로 쓰여져 연극으로 공연-줄기차게 군주독재를 고발하는 공연물 스토리를 현실로 재현했던 미개한 사건이었던 셈이다. 박정희, 그의 군사 쿠데타를 용인했던 대한민국 국민도 미개했다고 말할 수 있다. 김재규의 박정희 제거는 당시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군부 독재정권이라는 정치적 미개함을 한 순간에 제거했던 살인사건이었다.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 스토리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기록된 영웅전 일 수 있다. 박정희는 장기집권으로 국민을 탄압했던 독재의 심장이었다. 김재규는 그 심장을 쏘았다.

 

김재규의 박정희 제거, 그리고 그 이후의 논리는 아주 간단-명료하다. 김재규는 독재자 박정희를 항구적으로 영원히 제거했다. 그래서 그는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 있어 영웅(英雄)’인 것이다.

 

박정희는 김재규가 쏜 총성과 함께 권력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김재규-그와 함께한 의인들은 박정희 권력의 모든 적폐를 한꺼번에, 일시에 청산했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브레이크뉴스

아래는 김재규 최후진술의 전문이다.

 

박정희 살해 피고인 김재규의 최후진술(전문)
-1979년 12월18일 10.26군사법정


재판장님 그리고 심판관님, 최후진술의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이 잠겨서 제대로 얘기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최후진술이니까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금번 본인 외에 피고인이 내란죄로 지금 기소가 되고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 동안에 합법적으로 수립되었던 민주당정권이 5․16혁명에 의해서 밀려났습니다. 그 다음에 10월 유신은 말하자면 자기 집 앞마당에서 또 한 차례 치루는 혁명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이 혁명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말살했습니다. 그리고 금번 10․26혁명은 이 나라의 건국이념이고 또한 국시이고, 6․25를 통해서 전 국민이 수난을 겪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바치고 지켜온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서 혁명을 한 것입니다. 이 혁명이 어떻게 하여 내란죄의 심판을 받아야 되느냐 이런 생각이 듭니다. 또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는 우리 대한민국 전체국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3700만이 다 같이 갈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을 회복시키는데 어찌하여 내란죄의 적용을 받아야 되느냐, 이런 생각이 듭니다.


또 10․26혁명은 순수하고 깨끗합니다. 집권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사리나 사욕이 있는 게 아닙니다. 오로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는 일념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 이 혁명의 결과 자유민주주의는 완전히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보장이 되었습니다. 최대통령께서 권한대행시절에 국민 앞에 공약을 하셨습니다. 또 최대통령께서는 지금 현직 대통령자리를 임기를 다 마치지 않고 도중에서 그만두시겠다. 다시 말해서 과도적으로 이 정권을 지키겠다.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과도라고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로 가는,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해 가는 과도라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10․26혁명의 목적은 완전히 달성되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긴급조치9호를 해제결의 하였습니다. 이것 또한 만일 10․26혁명이 없었던들 어떻게 이러한 결의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 또한 이 혁명의 성공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또 이 혁명은 5․16혁명이나 10월유신에 비해서 그야말로 정정당당합니다. 허약한 자유민주당정권을 무력하다는 이유로 밀어치우는 것과는, 앞마당에서 자기 마음대로 한바탕 혁명을 더해서 자유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여기에 비하면 서슬이 시퍼렇고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유신체제를 정면에서 도전하여 유신체제를 타파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를 회복하는데 완전 성공했습니다. 따라서 10․26혁명이야말로 역사상에 가장 정정당당한 혁명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혁명을 하는데 무혈혁명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무혈혁명으로서는 혁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에는 부득이 최소한의 희생은 아니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번의 10․26혁명이야말로 최소한의 희생이 불가피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께서도 아시다시피 박정희대통령각하께서는 자유민주주의 회복과 자신의 희생과를 완전히 숙명관계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려면 대통령각하께서 희생이 아니 될 수 없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대통령각하를 잃은 것은 매우 마음 아픈 일이고, 그야말로 이 마음아픔을 비할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신이후 지금 7년이 경과되었습니다만, 영구히 집권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보장된 오늘날, 20년 내지 25년은 최소한 자유민주주의가 회복이 안 된다. 이렇게 볼 때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 나라 절대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은 이 혁명을 아니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들은 모두 감상적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감정이 몹시 앞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리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감정이 앞서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판단하기 쉽습니다. 다시 말해서 금번에 저희들이 내란죄로서 심판을 받는 것도 나는 그런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감정은 감정으로, 또 정치현실은 현실로써, 냉정하게 판단을 하고 거기에 법은 엄연한 자세로서 집행이 되어야 한다. 나는 법을 잘 모릅니다만, 때나 경우를 가리지 않고 공정한 법을 적용하기 위해서 판례를 매우 중요시 여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내 스스로가 내 생명을 구걸하기 위하여 최후진술을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대장부로 이 세상에 나서 내가 갈 수 있는, 내가 죽을 수 있는 명분을 하나 발견했다는 것은, 매우 나는 죽음의 복을 잘 탄 사람이다, 자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오늘 죽어서 영생할 수 있다는 자부가 있기 때문에, 나는 조금도 내 생명을 구걸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10․26혁명을 그 이념과 정신과 그 성공한 결과를 뚜렷이 해놓기 위해서, 법이 허용한 마지막 날까지 투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변을 말하라고 하면은 5․16도 10월유신도 범법이 아니라면 자연히 10․26혁명도 범법이 아니다. 이렇게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투쟁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이것을 하지 않으면 10․26혁명은 의미 없는 혁명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국가여야 합니다. 이것은 건국이념이고 우리의 국시입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국민이 희생을 치르고, 전체국민이 수난당하고 지켜온 자유민주주의입니다. 무슨 이유로도 말살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10월 유신으로 까닭 없이 말살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유신체제는 국민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 박정희대통령각하의 종신 대통령자리를 보장하기 위한 체제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나는 이 민주주의국가에서는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그러한 의무와 책임은 있어도, 말살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로부터도 받을 수도 없고 절대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에는 모순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특히 체제에 대한 반대가 높아지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라는 소리가 높아지자 긴급조치9호가 75년에 발동되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이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러나 이 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고 계속 탔고 번져나갔습니다. 전국에 지금 팽배한 상태까지 번졌습니다. 제가 정보부장으로서 파악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앞으로 이 유신체제를 두고 정부와 국민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집니다. 이 공방전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됩니다.

 
이승만대통령과 우리 박정희대통령 각하를 비교하면 이승만은 그만둘 때 그만둘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박대통령각하는 절대로그만두시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방어를 해냅니다. 많은 희생자가 나도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본인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유신체제를 지탱하는 한 지주의 역할을 했던 저이지만 더 이상 국민들이 당하는 불행을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모순된, 사회의 모순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뒤돌아서 가지고 그 원천을 두드린 것입니다.

 

저의 10․26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1)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2) 이 나라 국민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3) 우리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4)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가장 나쁜 상태입니다.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혈맹의 우방으로서의 관계를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던 것입니다.

5) 국제적으로 독재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목적은 10․26혁명 결행성공과 더불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보장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한마디 확실히 말씀해 둘 것은 결코 저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혁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군인이었고, 혁명가입니다. 군인이나 혁명가가 정치를 하게 되면 독재를 하기 마련입니다. 독재를 마다고 혁명한 제가, 독재의 요인을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또 제가 대통령각하와의 개인의 의리를 청산하고 혁명을 했습니다만, 대통령각하의 무덤 위에 올라설 정도로 아직까지 내 도덕관은 타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혁명의 결행은 성공했으나, 혁명과업은 손대지도 못한 채 어언 50여일이 흘렀습니다. 혁명결의에 못지않게 혁명과업수행이 중요합니다. 장장 19년 동안 이 나라에는 많은 쓰레기가 꽉 들어차 있습니다. 이것을 설거지 안하고 어떻게 하시렵니까? 여러분 보십시오. 증권파동이나 4대 의혹사건은 곧 6․3사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사단장으로써 서울에 나와서 사태를 진압하는 지휘관이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그때 상황을 역력하게 기억하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 사건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입니다. 수없이 많은 돈을 치부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때 치부한 돈 한 푼도 정부에서 환수한 일이 없습니다. 이래가지고도 이 사회에 정의가 살아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것을 설거지 않고 자유민주주의를 출범시켜가지고 이 자유민주주의가 순조롭게 가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생각합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 핵심이 없습니다. 대통령각하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 핵심이 빠져버렸습니다. 중심세력이 없습니다. 이런 상태가 가장 위험한 상태입니다. 이것은 4․19혁명이후의 상태나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자유민주주의가 출범하게 되면 힘센 놈이 와서 다시 밀면 다시 또 넘어갑니다. 악순환은 또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막는 것은, 저는 오로지 민주회복을 주도한 저만이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군의 중요 지휘관들과 같이 협력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출발시켜 놓고, 이것을 보호해 내는데 내 역할이 있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는 건국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대통령이나 정권이 순리적인 방법으로 오고갔던 일이 없었습니다. 이번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만, 지금까지의 경우가 4․19혁명, 5․16혁명 이런 악순환을 거듭하는 이러한 상태를 언제까지 가져가야 되겠습니까? 나는 군 수뇌들과 손을 잡고 이 나라의 정권이 앞으로는 국민의 뜻에 따라 순리적으로 오고가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토착화시켜야 하겠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다음부터는 대통령이 바뀌던지, 정권이 바뀌던지 국민의 뜻을 따라가지고 순리적인 방법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최대통령각하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자유민주주의가 지금 대문 앞에 와 있는데 문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유민주주의가 들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빨리 회복시키는데 절대로 혼란이 올 리가 만무합니다. 자유당 때에 자유민주주의를 해서 혼란이 온 게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아니하고 부정선거를 해서 혼란이 온 것입니다. 공화당정권 되고 난 이후에 국민들을 우롱하는 의혹사건을 만들어 내니까 혼란이 왔지, 자유민주주의해서 혼란이 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나치게 급격하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문제는 있겠지만, 3~4이나 5~6개월이면 충분하지, 이것이 일 년이고 일 년 반씩 끌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빨리 자유민주주의회복을 아니하고, 인위적으로 자꾸 끊다가는 내년 3,4월이면 틀림없이 민주회복운동이 크게 일어납니다. 그때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아까 말씀드렸습니다만, 지금 핵이 없습니다. 정부가 통제력이 없고 국민들은 자제력이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큰 일 당하면 뭐가 될는지 모릅니다. 나는 그래서 이러한 문제가 될 만한 요인을 미리미리 없애라. 이렇게 권고를 드리고 싶습니다.


또 나는 대한민국 입법부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진정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라면, 국민들이 어느 정도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는가를 파악한다면, 나는 국회에서 10․26혁명을 지지 결의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빨리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가 회복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가 회복되었을 때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뭐라고 말을 하겠느냐, 나는 자유민주주의회복을 위해 무엇을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 동안에 긴급조치9호를 해제 결의했지만, 지엽적인 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더 원천적인 일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결의가 더 원천적인 일입니다. 나는 지금 모든 것을 체념하고, 내 앞일을 모든 것을 총 청산하고 가만히 눈감고 있을 때, 가장 염려스러운 것이 내가 한 혁명이 원인이 되어 이 나라에 혼란이 오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기마저 흔들릴, 이러한 요인이 생길까봐 몹시 겁이 나는 것입니다.

 
나는 최대통령각하께 지금이라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감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정치라는 것은 현실이고 냉혹한 것이니, 내가 아무리 밉더라도 나를 밉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를 끌어내어 나와 같이 혁명과업을 수행합시다. 그렇게 해서 핵을 만들고 중심세력을 만듭시다. 그렇게 해서 국가의 모든 장래를 반석 위에 갖다놓읍시다. 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얘기가 지금 현재 분위기로 봐서 받아들여 질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진정 나라장래를 생각한다고 하면 우리는 감정을 초월해서 이성으로 돌아가서 정치현실을 냉혹하게 보고 정치의 전망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일시적인 감상이나 감정에 사로잡혀 가지고 국사를 그르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심판장님, 심판관님, 여러 날 계속되는 재판에 매우 피곤하시겠습니다. 또 오늘 제가 장황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경청해 주시니 마지막 이 세상을 하직하고 가더라도 여러분에 대한 고마움은 간직하고 가겠습니다. 나는 오늘 마지막으로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 놓았다. 20~25년 앞당겨 놓았다는 자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가 만만세가 되도록 기원하고, 또 10․26민주회복 국민혁명이 만만세가 되도록 기원합니다. 다만 내가 이 세상을 빨리 하직하게 됨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만발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그 여한이 한량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이 기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못 보았단 뿐이지, 틀림없이 오기 때문에 나는 웃으면서 갈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심판장님께서는 소신껏 심판을 해서 저에게 알맞은 형벌을 내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제가 심판장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아까 모두 여기 나와서 최후진술을 했습니다만 양과 같이 착하고 순합니다. 너무 착하고 순하기 때문에 저와 같은 사람의 명령에 이렇게 철두철미 복종해서 그 사람들 입장에선 확실히 죄를 저질렀습니다. 저 입장에서 보면 혁명을 했습니다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아까 최후진술에서도 나왔습니다만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원천이 저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다고 해서 반드시 법의 효과를 얻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하나가, 이 나라에 중앙정보부장까지 지낸 사람이, 이 사람 하나가 총책임지고 희생됨으로써 충분히 그 값어치를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에게는 극형을 내려주시고, 나머지 사람들은 극형만은 면해주도록 말씀드립니다. 특히 박대령의 경우는 현역이기 때문에 단심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판장님의 판결이 박대령에 대한 마지막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매우 착실한 사람이었고, 가정적으로도 그렇고 매우 모범적이고 결백했던 사람입니다. 청운의 꿈을 가지고 사관학교에 지망했던, 지금 일선발로 올라오는 대령입니다. 물론 군에서 더 봉사할 수 없겠지만 여생을 사회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극형만은 면해주시기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두서없는 얘기를 장황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것으로 끝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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