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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이런 일도 있다니... 천변지이로다.’

이순복 소설가 l 기사입력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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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진명제의 심복인 온교 대신의 송별연 때 전봉에게 실수를 한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전봉은 자신의 몫으로 돌아온 벼슬자리를 사양하고 온교를 단양윤으로 추천하여 보내게 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은근히 온교가 다른 뜻을 품고 있지나 않을까 전봉은 의심하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온교는 자기가 일단 임지로 떠나면 틀림없이 전봉이 자기를 왕돈에게 참소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비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술이 몇 순배 돌아서 모두 얼큰해 지자 온교는 술잔을 들고 전봉 앞으로 갔다. 술을 권하려는 작전을 쓴 것이다. 전봉은 온교가 술을 자꾸 권하므로 겸사했다. 그러나 온교는 계속 술을 권하며 전봉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온교는 양손에 바쳐 든 술잔을 전봉의 옷소매에 걸리게 하여 의복에 술이 쏟아지게 했다. 술 벼락을 맞아 크게 기분이 상한 전봉이 뿌리치고 나가려 하자 온교가 옷소매를 꽉 잡고 시비를 걸어 말하기를
 “전사마는 뭣 땜에 이 사람이 권하는 술잔을 물리치려하시오. 나를 모욕하실 셈이 구료.”


 갑자기 시비를 당한 전봉은 대답도 못하고 온교를 노려보기만 했다. 자리가 어색해 지자 왕돈이 급히 손을 들어 두 사람을 말리면서 한 마디 하기를
 “온태진이 크게 취했소이다.” 
 그러나 이것은 온교가 꾸민 연극으로 임지로 떠난 지 2일이 못되어 전봉은 왕돈 앞에 나가서 온교를 참소하기를
 “온교는 동구의 사부로 오래 봉직했던 관계로 황제와 정의(情誼)와 신임이 두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와서 아부를 늘어놓은 것은 우리의 허실을 탐지하려고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주공께서는 부디 이 점을 생각하셔서 감시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왕돈은 전봉의 말에 귀 기우리지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일전에 조그만 실수를 섭섭히 여겨서 서로 투기하면 되느냐고 오히려 전봉을 나무랬다. 전봉은 그 이후로 다시 온교에 대한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
 한편 왕돈의 병이 깊어가자 온교는 잠시 임지에 들린 다음 건강으로 가서 황제에게 왕돈의 역모실상을 낱낱이 고했다. 황제는 온교의 보고를 듣고 왕도를 불러 들여 왕돈을 대적할 계책을 숙의했다. 정확한 적정을 탐지한 온교는 자신이 얻은 정보 일체를 황제에게 고해 받쳐 왕돈을 막을 계책을 수립하게 하였다. 훗날 온교가 행한 첩보행위를 알게 된 왕돈은 혼자말로 중얼대기를
 ‘내가 전봉의 말을 듣지 않다가 속아 넘어갔노라. 찢어 죽여도 속이 편치 못할 놈이 온교란 놈이다.’
 크게 분해하면서 이를 갈았던 것이다.


 한편 진명제는 왕돈의 실체를 훤히 알고 왕도를 불러 왕돈을 어찌할 것인가 그 대책을 묻자 왕도가 진중하게 아뢰기를
 “신은 선제로부터 도독의 대임을 받았으나 그 재주가 역형 왕돈에 미치지 못하여 아직까지 그를 제압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사부 온교의 말씀을 들어보니 우선 적을 막을 준비를 튼튼히 하고 온교 유량 기첨 극감 변돈 등 다섯 총관신하(이하 5총관이라 한다.)를 총관에 임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게 하고 역적을 막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연후에 계략을 써서 적을 무찌르겠나이다.”


 이에 명제가 윤허하여 5총관을 임명하고 나서 3일이 지나갔다. 5총관은 각기 자기 자리를 지키며 움직이지 않으니 싸움은 자연 소강상태를 유지하였다. 젊은 패기에 넘친 명제는 너무나도 갑갑해서 견딜 수가 없자 왕도를 불러 싸우기를 종용하기를
 “짐은 경의 충의지심을 잘 알고 있소. 그러기에 선제께서는 경을 도독으로 임명하셨고 짐은 양주자사를 더하였으니 5총관의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서 역적을 치시오.”
 이에 극감이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일전에 조서를 내렸으나 회채(淮蔡)의 원군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신 등이 모두 밖으로 나간다면 도성은 텅 빌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구원병을 재촉하여 안팎으로 접응하면 모르되 도성을 비워두면 어려움이 닥칠지 모릅니다.”
 명제는 그 말을 듣자 또 다시 소중 유하 조약 왕빈 4장에게 속히 입경하여 역적을 쳐서 대공을 세우라고 영을 내렸다.
 이때 온교와 극감은 강가에 진을 치고 있었으나 왕돈의 군세가 강하여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명제는 스스로 단필탄의 아들 단수와 조적의 막하 장수 한잠에게 금군 전부를 거느리고 나오게 하여 남황당에 진을 쳤다. 명제는 군사들이 겁을 먹고 움직이지 않자 왕도를 불러서 물으니 왕도가 계책을 아뢰기를
 “신이 들으니 지금 왕돈은 울화병이 나서 병중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폐하께서는 그의 죄상을 노골적으로 폭로하고 그의 휘하 장병들에게 왕돈의 목을 바치는 자에게 만호후에 봉한다는 조서를 내리십시오. 그리되면 본래 성질이 급한 왕돈은 울화통이 터져 병이 깊어질 것입니다.”


 명제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자 왕도가 기쁜 마음으로 계속 아뢰기를
 “그런 다음 이쪽에서 왕돈이 이미 죽었다고 소문을 내면 적의 사기가 크게 떨어져 갈팡질팡할 때 조서를 각처에 돌려 심충 전봉 위의 세 놈을 친다면 반드시 분열이 크게 일어날 것입니다. 일이 이쯤에 이르면 왕함 같은 늙은 장수가 외로워져서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명제는 원래 담략이 큰 황제라 왕도의 계략을 듣고 무릎을 치며 좋아했다. 그래서 곧 조서를 내려 왕돈의 진영으로 보냈다. 왕돈은 황제의 조서가 왔다는 전갈을 듣자 병색이 짙은 몸으로 조서를 받았다. 첫머리 몇 줄 읽어보던 왕돈은 안색이 파랗게 질리더니 점점 더 읽어 내려 갈수록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드디어 머리카락이 곤두서더니 온몸이 불덩이 같이 열이 나고 이내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마침내 숨통이 꽉 막혀버린 그는 몇 번인가 도리질을 하면서 군침을 삼키더니 그만 벌렁 넘어졌다.  조서에 무엇이 담겼기에 왕돈이 급사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그 내용을 살펴보니 다음과 같았다.


 ‘흉역한 도적 왕돈은 그 형을 죽이고 집안의 대를 스스로 이어받은 후레자식으로서 이제는 그 패륜 완악한 버릇을 임금 앞에서도 부리려 한다. 그러기에 조명을 이유 없이 거역하고 제위마저 엿보니 그런 놈이 어찌 이 하늘 아래서 살기를 바랄까 보냐. 기필코 먼저 죽어 나가자빠질 것임에 틀림없는 역적놈이 왕돈일 것이다. 또한 간적의 수족인 심충과 전봉은 간악한 꾀를 다해서 역적질을 선동하고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금궐로 쳐들어와서 물러갈 줄 모르는 구나. 이에 짐은 대도독 왕도로 하여금 반역자를 다스리려하니 그 누구든지 왕돈 왕함 심충 전봉의 역적놈의 목을 베어 바치는 자에게는 각 수급마다 천금의 상을 내릴 것이요 만호후에 봉할 것이다. 또한 형초의 군사들은 다년간 왕돈 밑에 매였던 관계로 아직 조정의 은혜를 입지 못하였음을 짐은 매우 애달프게 여기고 있다. 이번에 불가피한 사정으로 역적을 따라 종군한 자라도 지난 일의 잘못을 뉘우치고 귀순한다면 지난 일은 일체 불문에 붙일 것이다. 짐이 생각하건대 군사 각자는 모두 오래 동안 집을 떠나서 고초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하니 이 조서의 반포와 동시에 고향으로 돌아가면 3년간의 급가(給暇)를 내린다. 부디 개개인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역적을 무찔러서 공을 세우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몽매에도 그리운 가족과 함께 짐이 허락한 단락을 누리도록 할 지어다.’


 나자빠진 왕돈의 손은 그 때까지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옆에 시립해 있던 여러 명의 군사가 부축해 일으키니 그때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왕돈은 억지로 입을 벌려 욕을 퍼붓기를
 “이 오랑캐 년의 자식 놈이 내게 대드는구나! 내 친히 군사를 이끌고 가서 건강을 쳐 부셔 버리리라! 그리고 황제는 그 자리에서 요절을 내리라.”
 그러나 왕돈은 말도 채 마치기 전에 다시 나가떨어졌다. 한참 만에 정신이 든 왕돈은 도저히 살수 없음을 알고 형 왕함과 심충 전봉 위의를 침상머리에 불러서 분부하기를
 “내 병이 이리 깊어서는 도저히 적을 막아내기 어려울 것 같소. 그러니 주초 여의 두홍 등악 4장은 5만군을 이끌고 가서 먼저 건강을 치라. 나는 며칠 더 요양한 뒤에 따라 가서 도우리라.”


 이에 전봉이 나서서 묻기를
 “만약 일이 잘 된다면 임금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이 말에 왕돈은 주먹을 불끈 쥐며 몸을 일으켜 세우고 내뱉기를
 “내가 아직 제위에 오르지 않았으니 체면이고 용서고 돌 볼 것이 없다. 동해왕의 아내인 배비 한 사람만 내놓고는 모조리 죽여 없애라.”
 왕돈의 명을 받고 4장이 건강성을 향하여 나가 100리 허에 영채를 세우고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한편 7월에 접어들어 왕함은 5만군을 이끌고 일시에 강녕 남안을 점령했다. 이것을 본 온교는 왕돈군의 월강을 막으려고 주작교를 불태워 버리고 도하 지점을 지켜 왕돈의 진격을 막았다. 명제는 왕돈이 진중에 없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야습을 감행하려다가 주작교가 소실되었다하자 크게 노했다. 명제는 온교를 불러 주작교를 태운 일을 문책하자 온교가 죄송해 하면서도 변명하기를
 “지금 아군은 약하고 원군은 아직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이때 적이 쳐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무엇으로 막으시렵니까? 아마 종묘조차도 보전하지 못할 형편인데 그까짓 다리가 대수라고 그러시나이까.”


 온교의 자상한 설명을 듣고 나서 깨달은 명제는 곧 5총관을 남황당으로 불러서 장차 일을 숙의하기를
 “역장 왕함은 군사를 대안에 주둔시키고 왕돈은 짐이 보낸 조서에도 아직 회답이 없소. 짐이 생각건대 적은 틀림없이 쳐들어 올 심산인가 보오. 경들은 적을 격파할 계책이 없는 것이오?”
 한동안 말이 없더니 한잠이 나서서 아뢰기를
 “왕함 전봉 두 적장의 군사가 우리보다 10배나 우세하므로 이제는 더 싸움을 지체할 수 없을 것 같사옵니다. 더구나 원성은 좁고 허술한데 원군조차 오지 않으니 폐하께서 친히 6군을 이끌고 나가셔서 적을 치신다면 격파할 수 있을 줄로 아나이다.”
 이에 극감이 얼른 손을 내어저으며 아뢰기를
 “신의 생각으로는 아직 일을 급히 서두를 때가 아니옵니다. 지금 역적들의 힘은 매우 왕성하니 싸워서는 승산이 없겠고 오로지 계략을 써야 이길 수 있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적장 왕함은 왕돈만한 능력이 없고 명령도 왕돈만큼 서지않으니  우리가 굳게 지키고 시일을 끈다면 적은 자중지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 뻗치는 혈기로서 일시에 강약을 겨룬다면 결단코 우리에게 불리할 뿐입니다.”
 이리하여 급히 적을 치자는 편과 굳게 지키고 적이 와해되기를 기다리자는 편으로 갈려서 진지한 논의가 거듭되었으나 결국 지키자는 쪽이 우세하여 명제도 이를 따르기로 했다.


 그렁저렁 다시 10여 일이 흘러갔다. 왕함은 다리가 끊어졌으므로 건너올 수도 없고 일전에 황제가 내린 조서 때문에 마음이 나태해진 군사들은 군무에 게을리 했다. 밤이면 회향의 노래를 부르며 수통 밑에 깔린 몇 모금의 술로 마음을 달래었다. 왕함의 진중에서 회향곡이 들려온다는 말을 전해들은 황제는 5총관에게 명하여 비밀리에 결사대 1천2백 명을 뽑게 했다. 그런데 이 비밀이 새어나가 위졸 2천명이 자원하자 명제는 그들의 충성심에 매료되어 상으로 새 군복을 내렸다. 황제의 은혜를 입은 군사들은 모두 신바람을 내며 임금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다짐하니 사기가 충천했다. 황제는 단수를 대장군에 임명하고 좌군에 조숭 우군에 종인 사마에 조혼을 임명하여 한밤중에 주작항을 건너서 왕함의 영채를 기습하라 명했다. 그리고 한잠에게는 5천군을 주어 단수가 이끄는 결사대와 접응하라 했고 온교와 기첨에게는 병선을 준비하여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라 했다. 단수가 군사를 이끌고 북안을 통과해도 왕함의 군사는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보초병은 창을 낀 채 졸았으며 군사들은 대부분 더위를 피하느라고  흩어져 잠들어 있었다. 단수는 진숭 종인 조혼 3장에게 명하여 결사대를 이끌고 쳐 들어갔다. 이에 왕함은 장사 1천 2백이 울리는 함성을 듣자 급히 영채에서 뛰어 나와 군사들을 독려했으나 오밤중이라 적이 어디서 온 것인지 병력은 얼마나 된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오직 그 함성이 해일이라도 밀려오는 듯 우렁차므로 왕함은 적의 대부대가 쳐 들어온 줄로만 착각했다. 주무 등악은 결사대가 영채 안으로 쳐 들어오자 엉겁결에 칼을 잡고 마구 휘둘러 댔다. 위의는 난군 속을 헤집고 간신히 말에 올라타 누문 밖으로 빠져나가서 두홍 그리고 여의와 함께 결사대를 포위하려 했다. 이때 단수는 누문위에서 금궐의 호위들을 이끌고 도망쳐 나오는 적병을 쳐 죽였다. 그런데 위의가 누문 밖으로 빠져 나오기에 어둠을 이용하여 그의 뒤를 따라갔다. 위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열심히 두홍 여의와 함께 전략을 짜고 있을 때 단수가 칼을 들고 달려들자 도망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그 중 위의가 돌부리에 걸려 몸의 중심을 잃자 뒤를 따라온 단수가 위의의 목이 쳐버렸다. 위의가 목이 잘려 죽자 결사대는 용기백배하여 창칼을 번쩍거리며 왕함의 중군을 치자 반군의 목은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두홍과 여의는 중군에서 함성이 요란하자 급히 달아나려 했으나 어둠 속에서 불쑥 한잠의 5천군이 나타나자 정신을 바로 할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한잠이 사모를 꼬나 잡고 큰소리로 외치기를
 “황제께서 친히 10만 대군을 이끄시어 너희들을 토멸하려고 나오셨다. 삼족의 멸화를 입기 전에 너희들은 무기를 버리고 나오너라!”
 왕함은 그 소리를 들었으나 적의 수를 파악할 수 없었고 황제께서 친히 대군을 이끌고 나왔다는데 오금이 저려 그대로 영채를 버리고 달아났다. 모든 군사들도 장수가 도망치는 것을 보고 따라서 도망치니 넘어지고 밟혀 죽은 자가 부지기 수였다. 이런 패배를 당한 중에도 주무만은 스스로의 용력을 믿고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자 조혼은 대적할 수 없어 뒷걸음질을 쳤다. 옆에서 반군을 시살하던 종인은 조혼의 위기를 보자 얼른 군사들에게 명하기를
 “군사들은 내 말을 들어라! 속히 활을 들어 역적 놈들을 인정사정을 두지 말고 쏘아 죽여라!”


 일제히 활을 쏘게 했다. 갑자기 날아든 화살을 맞은 주무는 그제 서야 도망치니 왕함의 군사는 대패해서 주작교의 대채를 버리고 20 리 후방으로 물러갔다. 이 싸움에서 왕함군은 대장 위의를 잃고 1만군이 더 죽었다. 이에 왕함은 크게 고민한 나머지 사람을 왕돈에게 보내어 후군을 일으켜서 건강을 치자고 했다. 이때 왕돈의 병은 소강상태를 보였는데 위의가 죽고 왕함이 대패했다는 보고를 받고 다시 피가 머리끝까지 올라와서 기절해버렸다. 옆에 시립한 왕응과 제갈요가 쓰러진 왕돈을 부축하여 침상에 눕히자 혼절한 왕돈은 꿈을 꾸었다. 자신이 석두성 밖의 강물 위에서 땅을 갈고 있는데 큰 파도가 밀려와서 애써서 갈아놓은 밭을 온통 진흙구덩이로 만들어 버리므로 깜짝 놀라 잠을 깬 것이다.


 “ 아아! 이럴 수가 꿈이었구나!”
 꿈에서 깨어난 왕돈은 곧 곽박을 불러서 자세히 해몽하라 명하자 곽박이 이에 대답하기를
 “강물 위에서 땅을 가니 이것은 힘만 드는 헛된 일인 것입니다. 또 파도가 밀려와서 모처럼 갈아 놓은 밭을 진흙 구덩이로 만들었으니 그런 밭에는 씨앗이 서지 못합니다. 이 꿈은 곧 근거가 없는데 발을 붙이고 서려는 것이니 쓰러질 징조인 것입니다.”
 왕돈은 이때 마음속으로 건강을 꼭 쳐부술 생각이었는데 곽박의 해몽을 듣자 기분이 몹시 무거워 다시 곽박에게 묻기를
 “내 몸이 지금 병이 깊으오. 그대는 선견지명이 있으니 내가 언제쯤 나을 수 있을지 말해 보오.”
 곽박이 한참 만에 대답하기를
 “주공의 명은 아직 한도에 다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당장 무창으로 회군한다면 그 복과 수명을 오래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러나 만약 어찌 된단 말이오?”
 왕돈이 희망과 기대에 차지 않는 표정으로 곽박을 바라보며 재촉하자
 “그러나 만약 마음을 거칠게 잡수시고 멋대로 행동하신다면 필연코 정신의 균형을 잃을 것이니 병이 차도를 보기 어려울 것이옵니다.”


 기대를 가졌던 왕돈의 표정은 당장 절망적으로 변하여 크게 소리 지르기를
 “생사가 천명에 달린 것인데 너는 왜 애써서 낫는 것을 말하지 않고 죽는 것만 말하느냐. 그렇다면 너는 능히 네 명을 알겠느냐!”
 곽박이 조용히 입을 떼기를
 “신의 명은 금일 오시에 그 명이 그칩니다.”
 왕돈은 곽박의 말을 듣고 나서
 ‘어디 시험해 보자’


 하며 중얼거리자 곽박이 다시 말하기를
 “천상의 선적(仙籍)은 이미 나를 위해 자리를 비워 놓고 있으니 신의 명은 시험해 보셔도 오시에 그치고 시험해 보시지 않더라도 오시면 명이 그칩니다.”
 왕돈은 그 말을 듣자 아마 곽박이 도술을 써서 도망치려는 줄 알고 곧 밖으로 끌어내다가 목을 베라 했다. 이때 시간이 아직 오시 이전인데 집행자는 곽박이 이름 높은 선비이므로 구명을 위하여 탄원하는 자가 나선다면 이름 높은 선비를 죽였다는 누명을 면할 요량으로 죽이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나 시각이 오시가 되어도 왕돈의 노여움을 간하는 자가 없자 집행자는 오백을 불러서 손을 쓰라고 조용히 말했다.


 이에 오백이 곽박 앞에 나가서 말하기를
 “선생께서는 너무 고지식하셨소. 그러니 대접 받지 못하고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명령을 받들어 형을 집행하는 이 사람을 원망치 마시오.”
 곽박이 눈을 들어 그를 보니 오백이라 지난날 그에게 베푼 한 가지 일이 생각나서 말하기를
 “그대가 옛날 곤궁할 때 내가 책당(柵塘)가에서 옷 한 벌을 준 것을 잊었는가?”
 오백은 그 말을 듣자 지난날에 입은 은혜를 생각하고 울며 말하기를
 “너무나 오래된 일이라서 선생님의 큰 은혜를 잊었습니다. 하지만 선생을 살릴 길이 없으니 이를 어찌 하오리까!”
 곽박은 그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자 좋은 말로 달래면서 기구한 상봉을 한탄하고 나서 부탁하기를
 “그대가 나를 그토록 생각한다면 내 허리에 찬 목검으로 내 목을 쳐 주오.”


 오백은 그 말을 듣자 곽박이 자기를 희롱한 줄 알고 머뭇거리자 곽박이 다시 말하기를
 “나는 희롱하는 것이 아닐세. 시험 삼아 한번 써 보게나. 아마 날카롭기가 무쇠 칼 보다 더 나을 걸세.”
 이에 오백은 그 목검으로 곽박의 목을 치자 칼날이 닿자마자 곽박의 머리가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목에서는 한 되 가량의 흰 피가 쏟아져 나왔다. 오백은 얼른 목을 주어들고 집행자 앞으로 가서 보였다. 이때 일진광풍이 몰아쳐 앞 강물을 곤두세우더니 곽박의 시체와 목이 강물로 실려 떠나가 버렸다.
 수급과 시체를 잃어버린 집행자는 강물에 실려 떠내려가는 곽박의 시체를 바라보다가 할 수 없이 왕돈에게 급히 가서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때 폭포수 같은 장대비가 한동안 떨어지더니 영채까지 물이 차 올라왔다. 대단히 큰 홍수가 진 것이다. 왕돈은 시뻘건 황토수를 바라보면서 입을 꾹 다물고 말을 하지 못했다.
‘어허 이런 일도 있다니... 천변지이로다.’ 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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