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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구에 채찍질하여 둔마(鈍馬)의 힘을 다 하겠나이다

이순복 소설가 l 기사입력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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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동진조 대녕 3년에 명제는 왕돈의 난을 평정하자 온 나라에 대사령을 내리고 사도 왕도 이하 여러 공신들을 크게 포상했다. 명제는 왕도를 시흥공에 봉하고 식읍 3천호를 주고 온교는 건영현공에 유량은 영흥현공에 변돈은 장흥현공에 극감은 덕흥현공에 소준은 광릉현공에 유하는 능천현공으로 포상하고 각각 식읍 1천 8백호를 하사했다. 또한 장군 조윤은 호남후 변호는 익양후에 봉하고 식읍 1천5백호를 하사하고 5총관인 단수는 표양백에 한잠은 단양백에 조혼은 기양백에 종인은 동양백에 진숭은 송양백에 봉하고 각각 식록 1천석을 하사했다. 또 우담과 주건은 자작에 봉하고 식읍 8백호를 하사하고 주광 주무 등하 오유 등 항장은 모두 사(邪)를 누르고 정(正)에 귀순하였기 때문에 열후에 봉하고 토역장군에 임명했다. 그리고 초왕 대연 주의 조협 곽박 감탁 주연 주승 초정 등 죽음으로 임금과 나라를 지킨 신하에게는 벼슬을 추증하고 특히 우리를 위해서는 그의 집안에 사당을 지을 돈을 내려서 춘추로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왕돈의 난 때 주찰 부자도 왕돈의 장수 심충과 싸우다 죽음을 당했는데 아직도 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벼슬도 추증되지 않았다. 그래서 주찰의 옛 친구 우담은 명제에게 표를 올려서 주찰을 위해 변호하자 상서 변호가 황제의 명을 받아서 주찰에 대한 것을 회의에 부친 결과 다음과 같이 회답을 주었다.
 ‘주찰은 석두성을 온전하게 지켜내지 못함으로써 적을 대궐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였으니 추증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왕도는 변호의 회답을 듣자 주찰을 위해 명제에게 간청하기를
 “왕돈의 간역이 전모가 희미할 때 신도 그 간악함을 간파하여 방지하지 못하였사온데 이 점은 주찰의 잘못과 같습니다. 말하자면 그 사악함을 깨달은 연후에  군국을 지키고 충성을 다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니 신은 죽은 주찰에게도 주의 대연과 같이 벼슬을 내리시옵기 간청하나이다.”
 명제는 왕도의 간청에 따라 주찰 부자에게 벼슬을 추증하였다. 유사가 또 다시 왕서 왕빈 왕이의 죄를 들어서 탄핵하기를
 “왕서 왕빈 왕이 3인은 대진(大鎭)을 맡아 지키고 있으면서도 혈연의 정에 이끌려 왕돈을 치지 않았고 중립에 서 있었으니 역적을 묵인한 것이오니 제명하시옵소서.”


 그러나 명제는 왕도가 종친을 보전하려고 노력한 심정을 모두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왕서와 왕빈이 왕돈의 역모를 고발하거나 면전에서 탄핵함도 알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에게 조서를 내려 그 죄를 용서했다. 그리고 초왕 승을 죽이고 왕돈의 당에 붙어온 왕이는 잡아들이라 명했다. 왕서와 왕빈은 조서를 받고 큰 은혜에 감사하고 조정의 명에 순종하겠다는 표를 올렸다. 그리고 환선을 형주로 보내어 왕이를 잡아서 조정에 압송하니 명제는 제갈요 임열과 함께 옥에 가두었다.
 그 후 여러 달이 지나가도록 부역자들을 처형하지 않자 온교와 극감이 명제에게 부역자들을 속히 처단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그리하여 그 상소를 받은 명제는 친히 왕돈의 잔당들을 국문하여 죽이니 왕이 고양 주려 임열 제갈요 등이다. 그 외에 서총 반구 감앙은 그 죄상이 가벼워 사면되었다. 이와 같이 상벌을 확실히 하자 조정의 공론은 덕 있는 자를 발탁하여 형주자사를 보낼 일로 의견이 분분하더니 왕빈을 도간이 추천하여 임명했다.
 ‘황제폐하 만세!!’
 형주 백성들은 그 동안 왕돈의 역모로 조정과 유대가 끊겼는데 도간을 자사로 임명하자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도간이 부임하자 백성들은 향기로운 꽃을 들고 거리로 나와 기꺼이 맞으며 만세를 불렀다. 도간 자사는 우선 오랜 병란으로 말미암아 불안해진 인심을 위무하여 생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니 백성들이 모두 기뻐했다.
 

그해 여름 사도 왕도는 우연히 병을 얻어 달포가 지나도록 일어나지 못해 근심하고 있는데 종사 이인이 들어와 말하기를
 “지금 숭산에는 대양 도인이 있는데 12세 때 병을 앓아 죽었다가 5일 만에 깨어나 그 부모에게 말하기를 ‘나는 천제의 부름을 받아 천상에 다녀왔습니다.’ 하며 천서 한권을 받아 왔다고 했답니다. 대양은 그 후 천서를 연구한 결과 점성술과 현미술(玄微術)에도 통했으며 그 영험하기가 특출하답니다. 특히 사람의 운수를 예언하는데 귀신같이 영하다니 한번 불러 물어 보십시오.”
 이에 왕도는 이인을 시켜서 대양을 모시게 했다. 하여 이인은 숭산으로 달려가서 대양을 찾자 수도 중인이라 속세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사양했다. 그러나 이인이 왕도의 이름으로 부탁하기를
 “왕 사도는 선생께서 깊이 술수에 밝으시다는 말을 듣고 새삼 소관에게 부탁하여 뵈옵기를 간절히 원하오니 하산하사이다.”
 대양은 이인의 간청에 못 이겨 산을 내려왔다. 두 사람이 석두성에 이르자 왕도는 의관을 정제하고 문전까지 나와 대양을 맞으니 왕도의 공손한 태도에 대양의 마음이 끌렸다. 예를 마치고 왕도는 자신의 병증과 취식 그리고 호악을 자세히 설명하고 병의 원인을 물었다. 이에 대양은 한참을 생각다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하기를
 “승상의 본성은 금의 성질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토를 좋아하고 화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승상께서 지금 계신 석두성은 화지(火地)인지라 금을 싫어한 곳입니다. 금과 화는 본래 상극이니 생명이 위협받아 병이 생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병을 고칠 방도를 선생은 가르쳐 주십시오.”
 “하하하. 그것은 참으로 간단합니다. 화를 피하시기만 하면 되니 거처를 옮기십시오.”


 왕도는 대양의 말을 따라 명제께 주청하여 거처를 건업으로 옮기니 과연 병이 금방 나았다. 왕도는 대양의 높은 식견을 존경하고 조정의 일도 그에게 묻자 대양이 사면을 살피고 나서 조용히 대답하기를
 “지금 금궐 내에 군마가 너무나 많은 듯합니다. 물론 이것은 왕돈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서 들어온 것이지만 이제는 난도 평정되었으니 무장해제를 해야 될 줄 압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에 화를 초래할 것입니다.”
 왕도는 그의 높은 식견에 다시 한 번 놀랬다. 과연 성내에는 너무나도 많은 군사가 우글거리니 하나의 야심 품은 자가 있어 그들을 이용한다면 쉽게 난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대양은 한참 후에 또 다시 말하기를
 “황송하온 말씀이오나 폐하의 용안에 재앙이 깃들어 있사옵니다. 이것은 천수이니 삼가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왕도는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라 수족이 떨리고 마음이 불안했다. 그러나 애써서 진정하고 막을 방도를 물으니 대양은 천명이므로 받아드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왕도는 그가 영험한 선비임을 알고 굳이 붙들어서 관직에 앉히려고 했으나 대양은 한사코 사양했다. 왕도는 할 수 없이 대양에게 중상을 내렸으나 대양은 물건에 손도 대지 아니하고 훌쩍 떠나 버렸다.
 ‘지자는 구름처럼 흘러가고 천수도 곡절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동진의 초대 황제 원제(元帝)는 왕도(王導)와 그의 사촌형 왕돈의 보좌를 받아 가며 나라를 다스렸다. 초기의 정치는 왕도가 맡고 군사는 왕돈이 맡았다. 왕돈은 무제 사마염의 딸을 아내로 맞은 행운아였다. 왕돈은 지략이 뛰어나고 충성스러웠으나 때때로 행동이 거칠어서 원제는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왕돈은 큰일을 저지를 사람이라 조심해야 한다.’
 원제는 왕씨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유외. 조협 등을 심복으로 삼았다.
 AD322년 왕돈은 간신 유외와 조협을 없앤다는 핑계를 내세워 무창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수도를 사수하고 방어하라!”


 원제는 유외와 조협에게 명령했다. 방어군은 왕돈군에게 크게 패해 중간에서 붙잡힌 조협은 죽음을 당했다. 유외는 도망쳐서 후조(後趙)의 석호(石虎)에게 몸을 의탁했으나 석호가 장안성을 공격할 때 종군하다가 죽었다. 원제는 왕돈의 포악한 행동에 울분을 참지 못해 끝내 병을 얻어 죽고 그 뒤를 태자 사마소(紹)가 이어 명제(明帝)가되었다. 명제는 태자시절에 매우 총명하여 장안에서 사신이 왔을 때 원제가 어린 태자에게 장난스럽게 묻기를
 “장안이 여기서 가깝더냐? 태양이 가까우냐?”
 이에 태자는 주저치 않고 대답하기를
 “장안이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어찌 그리 생각하느냐?”
 “장안에서 사신이 왔단 말은 들어도 태양에서 사신이 왔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 후 원제는 또 신하들 앞에서 그와 같은 질문을 다시 어린 태자에게 하였다. 그러자 태자가 대답하기를
 “태양이 가까운 것 같습니다.”
 “태자야, 왜서 지난번과 대답이 다르냐?”
 이에 태자가 신중을 기하여 대답하기를
 “고개를 쳐들어 보니 태양이 보입니다. 그러나 장안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총명하고 임기응변이 뛰어난 태자는 지혜와 덕과 학문과 무예를 고루 갖추며 자라나 황제가 되었다.
 ‘내가 황제가 되어야지...’
 왕돈은 군진(軍陣)을 고숙으로 옮긴 후 제멋대로 양주목이 되었다.
 “무례한 왕돈을 토벌하시오.”


 명제는 왕도에게 군사를 맡겨 왕돈을 토벌토록 하였지만 왕돈은 명제의 어머니 순(荀)氏가 선비족 출신이라 하여 가벼이 여겼다. 어느 날 새벽 명제가 왕돈의 진영을 엿 본 말을 듣고 왕돈은 군사들에게 명제를 추격토록 하였으나 명제의 순발력을 당하지 못하여 붙잡지 못했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 반역을 도모한 왕돈은 병을 앓고 있었다. 왕돈은 형 왕함이 명제의 군사들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곧 명제에게도 찾아들었다.
 동진 대녕 3년 7월은 뜨거웠다. 대양의 예언대로 명제는 병석에 눕게 되었다. 고열에 시달리다 보니 두 눈에 붉은 핏발이 서서 천낭성(天狼星)과 같았다. 명제는 기동하지 못할 줄 알자 우위장군 우윤과 좌위장군 변령 그리고 남돈왕 사마종을 궐내로 불러들여서 금궐을 지키게 하고 자신이 병든 사실을 숨기게 했다. 이것은 모두 황제의 우환을 틈타 변란이 일어날까 두려워서 행한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급히 명제에게 상주할 일이 생긴 유량이 대궐로 들어왔다. 그는 외문이 잠겨 있기에 사람을 시켜 열어주기를 부탁하자 남돈왕 종은 심부름 온 유량의 종자를 크게 꾸짖기를
 “여기가 너희 집 대문인 줄 아느냐! 뭣 때문에 밤이 깊은데 찾아왔느냐.”


 종자로부터 이 말을 들은 유량은 분통이 터졌으나 그날 밤은 아무 말 없이 돌아가서 생각하니 생각할수록 분하고 괘씸했다. 더구나 유량은 우윤과 남돈왕 종이 대궐의 외문을 지키는 것을 기화로 변란을 꾸미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이 생기자 더 참지 못하고 조정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여러 조신들 앞에서 남돈왕 종을 비난하고 명제에게 그들을 쫓아내도록 상주했다.
 그러나 이때 병이 깊은 명제는 서양왕 남돈왕 승상 왕변 상서령 변호와 유량 극감 온교 시중 육화를 가까이 불러들여서 부탁하기를
 “짐은 경들의 도움으로 국난을 극복하고 사직을 바로 잡았으나 불행히도 단명한 것 같소. 이 일을 어찌 하리오. 아직 태자가 어리니 오직 경들만 믿고 위탁하니 뒤를 잘 보살펴 주오.”
 말을 마친 명제의 용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든 신하들도 이 모양을 보고 울며 아뢰기를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용수 만년을 누리시고 창생을 도탄에서 건지시고 중원을 회복하사이다. 신들은 견마의 힘을 다 바치겠나이다.”
 그러나 명제는 오히려 울먹이는 신하들을 위로하고 태자의 손을 이끌어 왕도에게 잡혀 주면서 고명을 내리기를
 “경은 조부 삼대의 옛 친구를 생각하고 어린 내 아들을 보필해 주오. 형 왕돈을 본받지 말고 충의지심을 태자에게 다해주면 죽어서라도 짐은 감사할 것이오.”


 왕도는 명제의 고명을 받자 온몸에 땀이 흐르고 수족을 제대로 간수하기 어려워서 머리를 땅에 부딪치며 통곡하고 아뢰기를
 “신은 선제의 지우와 폐하의 은혜를 돈독히 입었사오니 어찌 초심이 변할 리 있겠습니까. 다만 재주가 없는 것이 걱정이오나 노구에 채찍질하여 둔마(鈍馬)의 힘을 다 하겠나이다.”
 명제는 좌우에 명하여 노신 왕도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온교 유량 변호 등 중신을 향하여 분부하기를
 “짐이 죽더라도 경들은 서로 반목하지 말고 국사에 힘써 주오. 그리고 벼슬길에 나가고 물러가는 것은 다 공사에 해당되니 짐을 생각해서라도 재직 시에는 특히 충실하게 일해 주오.” 
 말을 마치고 운명하니 명제의 나이 27세이고 재위 3년이었다. 명제는 워낙 성질이 기민하고 쾌활하여 능히 약한 것으로 강함을 제압하고 흉역을 숙청하여 대업을 온전하게 하였으니 모든 관리들이 다 같이 슬퍼했다.
 이때 태자 사마연은 불과 5세였다. 군신들은 그를 받들어 대위에 올리고 태후 유황후를 수렴청정을 하게 했다. 어린황제(幼帝:이하 유제)는 왕도로 하여금 상서부사를 거느리게 하고 변호와 유량을 발탁하여 좌우를 보필케 하였다. 그리고 연호를 함화 원년으로 개원하여 온 나라에 대사령을 내렸다. 왕도는 유제로부터 대임을 위임받자 우선 유제에게 현종성황제란 존호를 올리고 문무관원의 임기를 3년 동안 연장시키자 백관들은 모두 기뻐했다. 이로부터 국가의 중한 일은 모두 왕도와 변호 유량 세 사람에게 맡겨졌는데 왕도는 늙어서 힘이 든다는 이유로 크고 급한 국사는 모두 유태후의 오라비인 국구 유량이 결재하였다.


 그래서 유량은 악관의 아들 악모를 천거하여 군중정으로 하고 유민의 아들 유이를 천거하여 정위평사를 삼았다. 그 후에도 초야의 현인을 발굴하여 자주 천거하니 그들도 충실하고 정직하게 국사를 보살펴서 나라가 평안해 졌다. 이에 유태후는 황제의 명으로 하여 어진 선비를 천거한 유량에게 공을 포상하고 그 공적이 드러나게 해주었다. 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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