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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가 성 안으로 뚫리면 틀림없이 이기리라

이순복 소설가 l 기사입력 201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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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진조 함화 원년은 후조국의 태화 8년으로 진성제가 비록 유치하지만 새로 즉위하자 나라 안이 태평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나 후조황제 석늑은 진조의 내분을 틈타서 하남을 침범하고 진 위 연 한 노 조의 옛 땅을 모조리 석권하여 그 형세가 아주 강성하게 되었다.
 이때 조억은 겨우 삼제의 몇 군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원수 석호와 석생이 그 땅마저 병합하기를 주장했다. 대주국 조공 우후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조억이 본래 한실의 구신임을 들어서 말렸으나 이제는 조억이 완전히 진조에 붙어버렸기 때문에 더는 말리지 못했다.


 이에 황제 석늑이 문무관원을 모두 다 모아 놓고 숙의하기를
 “지금 짐의 군사는 강하고 천하는 무사하다. 그러나 조억은 제 멋대로 삼제 땅에 의지하고 지낸다. 전번에 역적 근준을 칠 때도 참여하지 않았다. 옛 주인인 유요에게도 신사하지 않으며 짐과도 통호하지 않고 엉뚱하게 동진조의 신하가 되었다. 그 품은 뜻이 매우 수상하니 누가 가서 조억을 치고 문죄하겠는가?”
 석늑의 말이 떨어지자 석호가 앞으로 나서서 조억을 치겠다고 자청했다. 그러나 석늑은 조억이 삼제 땅을 근거로 삼아 지낸지 오래라 군사와 양식이 넉넉하므로 경적할 수 없는 상대라며 대주국 조공 우후에게 조억을 칠 일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이 생각건대 이번에 삼제를 평정한다면 기필코 조억을 생포할 것입니다.”
 우후의 말에 석늑은 다시 한 번 승부를 물으니 우후가 한참 동안 시국을 생각하고 나서 대답하기를
 “조억은 이미 늙고 그 부하들은 보잘 것 없습니다. 또 동진을 등에 업고 있다고 하지만 진조도 자중지란(自中之亂)이 그치지 않으니 조억은 믿고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기병한다면 틀림없이 이긴다고 신은 믿고 있습니다.”


 우후는 석호가 용감하긴 해도 임기응변에 능하지 못하기에 상서령 정하를 추천하여 감군을 삼게 하고 석호를 중군원수 석생과 이농을 좌군 석정과 도표를 우군 석민을 선봉장으로 삼아 30만군을 3로로 나누어서 출전하게 했다.
 조억은 석호가 침입해 온다는 탐마의 보고를 받자 크게 놀라 곧 장수들을 모아 숙의하자 하국신이 나와 말하기를
 “지금 석호가 대군을 휘몰고 쳐들어오는 것은 우리를 정복하여 후환을 없애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각처의 수령들에게 영을 내려서 굳게 지키게 하여 그들의 군사가 피로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강동으로 사람을 보내어 구원을 청하고 적의 식량이 떨어질 때를 기다려 합력해서 친다면 이길 수 있겠지만 함부로 군사를 움직이면 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좌장군 전화는 하국신과 다른 의견을 말하기를
 “지금 후조가 아무 이유 없이 우리 경계를 침범한 것은 괘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키기만 하고 싸우지 않는다면 적에게 얕보일 우려가 있습니다. 저에게 정병 5만을 주신다면 나가서 석호의 머리를 베어다 바치겠습니다.”


 노망기가 있는 조억은 좌장군 전화의 말에 녹아 크게 기뻐했다. 그래서 하국신의 신중한 계략을 저버리고 전화를 원수로 삼고 장군 왕가상과 이무성을 좌우로 삼아 10만군을 이끌고 나가서 석호를 막으라 했다.
 양국 군사가 국경지대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진을 치고 나서 포를 쏘고 북을 울려 사기를 북돋았다. 주장 석호는 머리에 금유의 투구를 쓰고 몸에 번용을 수놓은 전포를 입고 합선대도를 허리에 차고 융마에 높이 앉아 호시탐탐 노려보았다. 반면 조억군의 원수 전화는 명개로 몸을 싸고 장창을 꼬나 잡고 깃발을 펄럭이며 나왔다. 먼저 전화가 석호를 향하여 손을 휘저으며 말하기를
 “우리와 너는 본래 사촌지간인데 뭣 때문에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오는가?”


 석호는 전화의 질문이 가소로워 마상에서 껄껄 웃으며 대답하기를
 “으하하. 뭣 이라?  산동 땅은 본래 우리 경계인데 너희들이 배반하여 옛 동기를 버리고 진조의 개 노릇을 하였다. 내가 여기 온 것은 너희 괴수 조억을 잡아서 죄를 밝히려는 것이다. 만약 대항한다면 조금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전화는 석호의 말을 듣자 크게 성이 났다. 곧 장창을 꼬나 잡고 달려드니 석호는 대도를 휘둘러 맞아 40여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에 석호의 진에서 석민이 뛰어나오자 전화의 진에서는 왕가상이 얼른 막아서면서 싸웠다. 이 틈을 탄 석정은 도표의 도움을 받으면서 질풍같이 쳐들어가 전화의 몸에 창을 내 꽂으니 기습을 당한 전화는 황급히 손을 내밀어 석정의 창을 잡았다. 그러나 재빨리 전화의 뒤로 다가선 석호가 전화에게 칼 내리 그어 몸이 두 동강나서죽어 버렸다. 이 모양을 본 왕가상은 정수리까지 약이 바짝 올라 급히 창을 석정의 왼쪽 어깨에 내리 꽂았다. 이에 부상을 입은 석정은 본진을 향해 줄행랑을 치자 분노한 왕가상은 그 뒤를 바짝 쫓았다. 그러나 왕가상의 추격은 석민이 나오는 바람에 저지되었다. 그리고 뒤에서 석정의 위기를 구하려고 달려드는 석호의 추격을 받자 형세가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왕가상은 석호의 장수들의 용맹이 뛰어난 것을 보고 힘껏 싸우며 달아날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옆에서 불쑥 칼을 내민 석민의 애리한 칼에 몸통을 맞고 죽었다. 조억의 장수 이무성은 석호의 장수  유응과 도표를 물리치고 앞으로 나갔으나 애쓴 보람도 없이 아군이 눈사태처럼 무너져서 뿔뿔이 흩어졌다. 달아나는 졸병이 전화와 왕가상이 죽었다하자 이무성은 간이 콩알만큼 졸아들어 뒤도 돌라보지 않고 청주성을 향하여 도망쳤다. 패전 소식을 들은 조억은 하루 새에 잃어버린 10만군과 두 장수를 생각하며 얼른 하국신을 불러 계책을 물으니 하국신이 아뢰기를
 “일전에도 말씀드린바 있지만 석늑의 군사는 강하고 장수들도 용감하니 대적하면 불리합니다. 전화가 혈기만 믿고 싸우다가 죽었으니 차라리 지금이라도 굳게 지키는 것이 상책입니다.”


 조억은 하국신의 말에 입술을 깨물고 말이 없자 하국신이 다시 계책을 내어 아뢰기를
 “일이 이 지경이니 주공께서는 속히 강동에 구원을 청하시고 각 성마다 군사를 배치하여 단단히 지키도록 명하십시오. 아마 소준 유하 채표 등이 진군을 거느리고 온다면 석호군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억은 곧 진성제에게 표를 올려 구원을 청했으나 왕돈의 난을 평정한 각 진의 군사들이 돌아오지 않아 구원을 하지 못했다.
 한편 석호는 청주성을 10일간 포위했으나 함락하지 못하고 군사만 상해서 속상한데 석생과 이농 군이 달려와서 사면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산동군은 엄폐물을 잘 이용하여 화살을 쏘고 돌과 나무토막을 굴리는 바람에 석호는 7천군이 사상을 당했다. 일이 이 모양으로 꼬이자 석호는 정하에게 계책을 물으니 그가 대답하기를
 “조억이 굳게 지키고 나오지 않은 것은 우리의 무력을 소모시킨 후 인접한 고을의 구원병이 오는 것을 보아서 한꺼번에 쳐부수자는 수작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정하는 한동안 생각하더니 번쩍 고개를 들고 대답하기를
 “원수께서 친히 10만군으로 계속 청주성을 포위하시고 각 장수들에게 군사를 나누어 인접한 고을을 치도록 하십시오. 그런 후에 강동에서 오는 요로를 막는다면 조억의 우익을 모조리 잘라버리는 격이 됩니다. 그리하면 조억군은 귀신 같은 재주를 부려도 결국 우리의 그물에 걸리고 말 것입니다.”


 이 말을 듣자 비로소 석호의 얼굴에 수심이 사라지고 정하에게 치하하기를
 “상서의 높으신 계책은 과연 적을 제압하기에 족할 것 같습니다. 비록 성을 함락시키지 못해도 적을 죽도록 괴롭힐 수 있으니 상책이라 할 것입니다.”
 석호는 도표에게 3만군을 주어 역성을 공략하라 하고 석생에게 3만군을 주어 제음을 이농에게는 동래를 석정에게는 임치를 유응에게는 창탄을 각각 공략하라는 영을 내렸다.
 ‘석호는 산동 땅을 통째로 먹으려고 기병했다.’
 석호가 보낸 장수 이농이 먼저 동래성에 당도하여 군사를 천주산 밑에 집결시켰다. 이것을 본 동래의 수장 유계고는 용기와 담력이 있는 장수라 석호군이 성을 치려고 대들자 인마를 꼼꼼히 점검하여 천주산 동쪽에 진을 쳤다. 유계고가 마음먹은 대로 진을 치고 나와서 이농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너희와 우리는 본래 한나라의 신하였다. 무도한 유찬이 죽자 각기 자립했다. 옛 정리를 생각해서라도 어쩌면 이같이 쳐들어 올 수가 있단 말이냐.” 
 “잔소리 말아라. 우리 임금께서는 이미 산동 땅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계시다. 어찌 한 귀퉁이를 남겨 두어 너 같은 도적을 놔둘까보냐.”
 말을 하자마자 둘은 말에 순발력을 발휘하여 말을 몰고 나와 맞붙었다. 그러나 난형난제의 실력을 가진 2장은 서로 창을 살벌하게 휘둘러 싸우기 40여 합에 이르렀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유계고는 이농이 만만치 않은 장수임을 알자 그대로 그냥 싸워서는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도망치는 척하다가 홱 말을 돌리면서 찌를까 생각했다. 마침내 유계고가 말머리를 돌려 도망을 쳤다. 그 속셈을 모르는 이농은 바짝 뒤를 쫓았다. 둘의 거리가 불과 몇 발자국 사이로 좁혀지자 유계고는 생각대로 번개같이 몸을 돌려 이농의 목을 노리고 창을 밀어 찔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유계고가 그만 말과 함께 앞으로 공중 잡이를 하며 나가 떨어졌다. 말이 앞다리를 헛디뎌서 고꾸라진 것이다. 땅에 떨어진 유계고는 벌떡 일어나 이농에게 달려들려고 했으나 이때는 이미 이농의 날랜 창이 유계고의 머리통을 향해 휘두르는 순간이었다. 허망하게 유계고가 머리통이 깨져죽자 군사들은 꽁지가 빠져라 성을 향해 달아났다. 그러나 워낙 추격이 빨랐던 이농은 한발 먼저 성문 안으로 뛰어 들어 동래성을 빼앗았다. 그리고 백성들을 안무하고 곧 청주성 아래 있는 석호에게 승전보를 보냈다.


 제음의 수장 전양민은 옛 제나라의 왕족으로 석호군이 청주성을 친다하자 군사를 일으켜 구하러 가던 참에 석생이 쳐들어온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는 곧 군사를 점호하여 청주로 통하는 요로를 지키며 백성을 보호하고자 하는데 신속하게 달려온 석생의 군사와 마주쳤다. 양군이 각기 진을 벌리고 나자 전양민이 말을 달려 나와 묻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남의 영토를 탐내어 여기까지 군사를 몰고 왔는가?”
 “지금 우리나라는 국력이 강하므로 장차 천하를 통일하려고 한다. 그런데 자네가 이곳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을 어찌 버려둘 수 있겠는가.”   
 석생의 말에 전양민이 화를 벌컥 내며 말하기를
 “이 도적놈아, 같은 한실의 덕을 입고 자란 몸으로 가진 땅도 넉넉한데 우리 청주까지 욕심을 내느냐!”
 전양민이 칼춤을 추면서 내달으니 석생은 철편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이에 양민이 말고삐를 한손에 움켜쥐고 석생과 30여 합을 싸웠으나 승패가 나지 않자 석생의 부장 신경이 달려 나왔다. 둘이 양민 하나를 두고 달라붙자 양민은 그만 힘이 달려 제음성을 바라보고 줄 행낭을 쳤다. 성으로 돌아온 전양민은 성문을 굳게 닫고 방어에 힘쓰자 석생은 10여 일을 포위하고 공격했으나 도리어 5천군을 잃고 말았다. 이에 석생은 판자에 글을 써서 각 성문 앞에 내걸고 삼군에게 보였다. 군사들과 성 안 백성들이 그 글을 보니 다음과 같았다.


 ‘오늘부터 3일 안으로 성을 공략하여 성문을 깨뜨리지 못한다면 그 성문을 담당한 모든 군사를 참형에 처할 것이다. 또한 성안의 군민들도 목숨을 내놓고 우리에게 대항하고 있으니 성이 함락되는 날에는 노유는 물론 풀 한포기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없애버리겠노라.’
 이 고시를 본 석생의 군사들은 물론 성안에서 농성하는 전양민의 군민들도 모두 놀라서 한숨을 내쉬며 수군거리기를
 ‘이 성이 보전된다면 다행이지만 함락된다면 모조리 죽고 폐허가 되겠구나!”
 이때 성내에 진씨 호족이 사는데 장정만도 수만 명이었다. 장정들로부터 석생의 포고문을 들은 족장 진세창은 성이 함락되는 날 가문이 멸족을 당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집안 장정 1천여 명을 규합하여 몰래 한쪽 성문을 열고 나가서 석생에게 항복을 청하고 죄를 면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소식을 탐지한 전양민은 진세창이 석생과 내응하여 자기를 칠까 두려워서 가병 수십 명을 데리고 동문 밖으로 도망쳤으나 추격한 석생에게 생포되었다. 석생은 다시 방을 붙여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진씨의 청을 받아들여 모두 용서한다고 포고했다.


 이때 노장 도표는 역성 밑에서 대단히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역성의 수장 여피와 심수는 진조에서 파견한 장수로 도표의 군사가 막강한 것을 알고 굳게 지키며 세월을 낚고 있었다. 둘은 도표군이 피로해 지치기를 기다리며 밤에도 순찰을 도니 허술한 틈도 보이지 않았다. 도표는 역성을 20일 간 포위했지만 격파할 방도가 보이지 않아 전선은 소강상태로 빠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군기가 문란해진 군사들은 인근 마을로 가서 노략질을 일삼고 근무도 태만하여 노골적으로 이를 잡는 병사도 나타났다. 이와 같이 군기가 쑥 빠진 도표군을 본 여피와 심수는 일제히 성문을 열고 나태에 빠진 도표군을 들이쳤다. 날벼락과 같은 기습을 당한 도표는 급히 대적했으나 군사들은 좆이 빠져라 달아나 버려 수습할 길이 없었다. 5리까지 쫓겨 간 도표군은 죽고 상한 자가 5천 명이 넘었다. 이에 크게 상심한 도표에게 한 부장이 와서 아뢰기를
 “진조의 장수들은 모두 조적의 밑에서 잔뼈가 굵은 자들이므로 계략에 능하고 싸움도 잘 합니다. 생각건대 장군 혼자서는 이기기 어려우실 것이니 본부병력을 동원하여 치심이 좋을 듯합니다.”
 “너는 무슨 말을 그리 하느냐. 이농은 이미 동래성을 취했고 석생은 제음을 함락시켰다. 나는 개국창업의 노장으로 어찌 후배에게 질까보냐!”         
 부장을 꾸짖고 나서 마음을 다잡아 창을 꼬나 잡고 말을 달려 성을 공격했으나 역시 여피와 심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도표가 늦도록 싸움을 돋우다 못해 지쳐 돌아오자 여러 장수들이 말리기를
 “전날에는 우리에게 양초가 있어서 적을 괴롭혔지만 이제는 도리어 우리가 곤란을 받게 되었습니다. 양초를 다 빼앗기고 그들은 지키기만 하니 무슨 수를 써서 이기겠습니까.”


 도표는 이 말에 가만히 생각하더니 여러 장수들을 불러 숙의하기를
 “지금 적장은 양식을 믿고 성을 지키는데 아마 나에게 계략이 있는 줄 모를 것이다. 오늘 밤에 그대들은 지하도를 파라. 조심해서 4곳을 파되 지하도가 성 안으로 뚫리면 틀림없이 이기리라.”
 이리하여 도표의 군사 중 반은 그날 밤 굴착작업에 동원되었다. 드디어 새벽이 되자 성안으로 4길이 뚫렸건만 여피와 심수의 군사들은 아무런 방비 없이 잠 들어 있었다. 도표의 전군이 일제히 쳐들어가자 성안은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먼저 들어간 군사들이 성문을 활짝 열고 대군을 맞아들이자 여피와 심수는 문루를 의지하여 완강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석호의 부장이 활을 쏘아 심수의 말을 맞추자 심수가 그만 낙마하고 말았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석호의 병졸들이 달려가 심수를 결박해 버렸다. 심수가 생포되자 그 부하들은 갈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죽거나 항복해 버렸다. 홀로 남은 여피는 느닷없이 다가선 도표에게 사로잡혀 항복하니 역성도 무난히 평정되었다.  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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