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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일진을 무찔러 그 힘을 시험해 보겠습니다

이순복 소설가 l 기사입력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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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후조장군 유응은 임치공략을 명령받고 도표와 같은 날 출발하여 3일 만에 경계에 당도했다. 이곳 임치는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의 도성이다. 성주 노장 기안은 79세 높은 나이로 임치성을 지키고 있었다. 고을에 석호군이 침입했다고 탐마가 알리자 곧 성을 나와서 항전하려하자 참군 구잠이 쫓아와 말리기를
 “고령의 장군께서 왜서 나가십니까? 부디 제가 부탁한대로 싸우지 말고 굳게 지키셨다가 적의 군세가 해이해 질 때 치십시오. 지금은 나가서 싸울 때가 아닙니다.”


 “하하하. 유응은 본래 나의 둘도 없는 친구였네. 비록 내가 늙었다지만 아직은 능히 그의 목을 자를 수 있네.”
 노장 기안은 구잠의 간하는 말을 물리치고 1만군을 거느리고 성 밖으로 나가 진을 쳤다. 유응은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오자마자 손을 흔들며 말하기를
 “노장께선 크게 변하여 빈발(鬢髮)이 완연히 희어지셨소이다.”
 “하하하. 참으로 그렇소이다. 장군의 머리도 반백으로 보이는데 어찌 나만 늙었다 하겠소. 헌데 우리는 예부터 친구요. 오늘 서로 싸운다면 지금까지는 의가 좋았지만 이제 부터는 원수를 맺는 일이 되오. 왜 군사를 돌려서 각기 자기의 봉토나 안전하게 지킬 생각을 하지 않고 싸우는지 답답하오.”
 “내가 황상의 명령을 받고 나왔으니 어찌 싸움을 피하겠습니까. 그리고 보면 노장군도 왜 양국으로 돌아가서 만년을 즐기시며 명절(名節)에 흠가는 일이 없이 좋으실 터인데요.” 


 “유응아, 네놈 말은 내가 네놈을 이기지 못할 말투로구나. 내 손에 익은 강부(剛斧)는 아직 젊더는 것을 알거라.”
 노장 기안은 버럭 화를 내며 도끼를 휘두르고 달려드니 유응도 창을 치켜들고 달려 나왔다. 둘은 20여 합을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같은 노장이지만 덜 늙은 유응이 먼저 도망치자 기안은 도끼를 휘두르며 그 뒤를 쫓았다. 그래서 유응은 달아나다 말고 다시 30여 합을 더 싸우다 보니 날이 저물어 싸우기 어렵자 유응은 십리보에 머물고 기안은 회군했다. 구잠이 성문 밖까지 마중 나와서 기안을 붙잡고 축하의 말을 보내기를
 “노장께서 공적을 세우시고 적의 기세를 크게 꺾으셨습니다. 내일은 출전치 마십시오.”
 “아직도 숨은 쉬는데 어찌 손발을 묶어두고 구경만 할 것인가.”


 기안은 머리를 가로 저으며 말에서 내리는데 완연히 노인 태가 드러나 뼈가 굳어진 것 같아보였다. 그래서 군사들이 부축해 내렸으나 과도한 운동으로 손이 떨려서 물건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러더니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지 못하고 안타깝게 죽어버렸다. 기안이 죽자 구잠은 군사를 단속하여 성을 굳게 지키고 사자를 광고로 보내어 원군을 청했다. 그러나 광고도 여러 날 전부터 포위를 당해서 임치를 구할 여력이 없었다. 이에 구잠은 어찌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가까운 병사가 말하기를
 “참군 영감, 석호의 30만 대군을 무슨 수로 막으시려하십니까? 차라리 몸을 숨기고 피하신다면 죽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구잠은 이 말을 듣고 창고 속에 둔 금은보화를 수습하여 수레에 싣고 식솔 1백여 인을 데리고 바다 가운데 있는 외딴 섬으로 도망쳐 버렸다.
 다음날 임치성내 백성들이 문을 열고 유응의 군사를 맞아들이니 유응은 백성들을 안위하고 승전보를 석호에게 보냈다. 이 때 석정도 창탄을 함락시켰다는 승전보를 영채로 보내자 석호는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여러 성을 어렵지 않게 함락시켰으니 이는 조억의 사지를 끊어버린 것과 같다. 그가 무슨 수로 전과 같이 보전할 수 있겠느냐.”


 크게 군사를 호령하여 총공격령을 내리자 군사들은 일제히 청주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날 낮에 석호의 군사는 성 한 귀퉁이를 깨부셨다. 그러자  당황한 청주군이 궁노로 대항하자 석호는 친히 싸움을 독려하여 함성이 청주성을 진동하자 대장 하국성이 조억에게 말하기를
 “사태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군사를 주신다면 적의 일진을 무찔러 그 힘을 시험해 보겠습니다.”


 이에 조억은 하국성에게 정병 2만을 주자 그는 전쟁터로 나가기 전에 형 하국신에게 뒷일을 부탁하기를
 “제가 주공의 은혜로 부귀영화를 누린지 1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내 몸을 던져서 적을 물리치려고 하는 마당에 섰습니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청주의 운명을 점쳐보니 위태롭기가 풍전등화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형님께서는 아우와 함께 속히 이곳을 탈출하시어 종사를 보전하는 것이 옳겠나이다.”
 하국경은 형에게 그리 부탁하고 성이 파괴된 곳을 고치고 군사들로 하여금 굳게 지키게 하고 자신은 방비가 허술한 서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석호가 스스로 독전하는 남쪽으로 말을 달렸다.


 이때 석호는 군사들로 성문 밑으로 통하는 굴착작업을 감독하였다. 그때 하국경이 배후로부터 비호같이 달려들어 칼을 휘두르자 몸을 돌릴 틈조차 없었다. 이 모양을 보고 수하군사가 석호에게 위험경고를 보내어 하국경이 내리친 칼날을 간신히 피했다. 칼날이 날카롭고 빠르게 석호의 목을 향해 파고들자 석호는 재빨리 말 등에 납작 엎드렸다. 다음 순간 다시금 하국경의 칼날이 몸을 찍을 듯 내려쳐서 석호는 몸을 비틀어 피했으나 타고 있던 말이 하국경의 칼을 맞고 석호와 함께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두 번씩이나 석호를 죽이기에 실패한 하국경은 이번에는 말을 천천히 몰며 달려들어 칼을 내려치려하자 석호는 가까스로 다시 일어서서 칼로 막았다.
 “멈춰라! 감히 어디서 함부로 칼을 휘둘러.”
 이때 멀지 않는 곳에 있던 석민이 크게 외치면서 번개같이 달려가서 석호를 구출하려고 했으나 미치지 못하자 다시 큰소리로 외치기를
 “군사들은 들어라! 속히 활로써 적장을 쏘아 우리 대원수를 구해내라!”
 석민이 활을 쏘라고 크게 외치자 이 말을 들은 노궁수들이 급히 활을 쏘니 가엽게도 하국경은 고슴도치 모양이 되어 죽어 버렸다. 위기일발로 죽음을 모면한 석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성안 군사를 향하여 외치기를
 “이미 성벽이 다 부셔졌는데도 아직 나와서 항복하지 않는구나. 내가 내일부터 공격을 개시한다면 씨도 남기지 않고 죽이리라!”


 하국신은 아우가 죽은 것을 보자 더욱 성을 지키는데 힘을 쏟았다. 석호의 노여움이 풀리지 않자 정하가 은근히 걱정이 되어 석호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조용히 말하기를
 “지금 성내의 군사와 백성들이 죽기 살기로 대항한 것은 원수의 살육이 워낙 심했기에 모두 성의 함락과 함께 죽을까 두려워서 그러는 것이외다. 아마 오늘밤 또 힘을 다해서 공격한다면 피아간에 사상자가 수만 명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니 원수는 늙은이가 아뢰는 방책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때서야 석호도 약간 마음이 눅어져서 정하를 쳐다보자 정하가 말하기를
 “내가 생각건대 성내로 사람을 보내서 조억에게 항복을 권하여 군사와 백성의 희생을 막는다면 쉽게 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옳은 말씀이오만 누구를 성안으로 들여보내야 이 일이 성사되겠습니까?”
 “이 일은 노부가 간다면 일이 잘 될 것입니다.”
 이리하여 정하는 곧 말을 타고 성 밑으로 가서 손을 흔들어 싸움을 말리고 나서 성문지기를 불러 말하기를
 “내가 공격하는 것을 말렸으니 그대는 두려워 말고 나의 말을 조공에게 전하여라. 옛 친구 정원지가 찾아와서 면회를 청한다고...”


 군사들이 이 말을 조억에게 전하자 성문을 열고 맞아 주어 정하는 성으로 들어가서 조억을 만나 현 정세를 설명하기를
 “지금 우리 황상께서는 백만 군과 상장 천명을 거느리고 있으니 아마 그대의 힘으로는 대적키 어려울 것 같소이다. 장군의 수중에 있던 군현이 모두 우리에게로 넘어 왔고 장군이 구원을 청한 진조는 멀기도 하지만 왕돈의 난으로 남을 도울 여력이 없소. 사정이 이러한데 장군은 무슨 수를 써서 이 성을 지키렵니까? 제가 권하는 대로 우리 황상에게 귀순하여 부귀와 낙을 함께하고 이곳의 백성과 군사를 상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어 쉰 조억은 정하의 항복 권고를 듣자 한참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은 늙고 세력도 약하니 막강한 석호의 대군을 대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침내 정하를 붙잡고 하소연하기를
 “공의 의견을 따르겠소만 석호는 성질이 워낙 광포하니 내가 자기 부친의 연배임을 생각하지 않고 업신여길까 두렵소이다.”
 그러나 정하는 석늑 곁에는 어진 신하 우후가 있으므로 모든 일을 자신의 일처럼 돌봐 줄 것이라고 달랬다. 조억은 정하의 말을 듣고 뜻을 정한 후 정하를 돌려보냈다. 이에 하국신이 조억에게 권하기를
 “제가 들으니 석호는 그 성질이 매우 잔인하다고 합니다. 아마 그에게 항복하신다면 틀림없이 해를 입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주공께서는 저와 같이 강동으로 도망치십시다. 그렇게 되면 비록 나라는 잃었어도 일신의 안전과 조상의 제사는 받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억은 머리를 가로 저으며 대답하기를
 “석늑과 나는 같이 한실을 섬긴 몸이오. 그가 어찌 나를 해하겠는가.”
 이 말을 들은 하국신은 우둔한 조억의 생각에 울화통이 터져서 말하기를
 “지난날 왕미는 석늑을 위해 크고 작은 공을 많이 세웠습니다. 그러나 석늑은 왕미를 속여서 죽였습니다. 그런 석늑이 주공의 목숨인들 살려줄 줄 아십니까!”
 “흐흐흐. 왕미는 석늑을 도모할 야심이 있었기에 목숨을 잃은 것이오. 그러나 지금 내가 항복한 것은 형세가 어려워진 까닭이오. 석호는 30만 대군을 성 밖에 집결해 두고 있으니 성이 떨어지는 날 옥석구분(玉石俱焚)이 될 것이오. 내 뜻은 이미 정해 졌으니 말리지 마오.”


 하국신은 하늘을 쳐다보고 크게 탄식했다. 그리고 조억이 자기 의견을 듣지 않자 죽을 날이 멀지 않음을 알고 곧 아우 하국상과 의논하였다. 그 결과 모든 가족과 함께 귀중품을 수습한 후 한 밤중에 성문을 나가 강동을 향하여 망명길을 떠났다.
 다음날 조억은 사람을 시켜 석호 앞으로 항서를 보냈다. 항서를 받은 석호는 곧 대군을 이끌고 성으로 들어와 백성들을 위무했는데 조억은 선배로서 긍지 때문에 석호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이것을 본 석호는 매우 아니 꼬아 하더니 뒷구멍으로 도부수를 시켜서 조억과 전양민을 죽여 버렸다. 그리고 청주의 호족과 수령과 군사들을 모조리 죽이라는 명을 내리고 유응을 청주목에 임명하였다. 그러자 유응은 석호의 명령에 항의하여 말하기를
 “청주의 인물들은 다 죽여서 씨를 없애버리면 늙은 내가 무슨 얼굴로 청주목이 된단 말이오. 나를 이곳에 두어 지키게 하려면 마음을 바꾸시오. 만약 내 말이 틀렸다면 차라리 청주를 다 파헤쳐서 폐허를 만들어 버리시오!”
 석호는 노장 유응의 이 같은 항의를 받자 할 수 없이 약간 명의 거역자만 죽여서 분풀이를 하였다. 그리고 유응에게 1만군을 주어 청주를 지키게 하고 전군을 이끌고 양국으로 개선했다. 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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