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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시민(국민)의 행복을 위해 존재합니다!

정종암 문학평론가 l 기사입력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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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암 문학평론가.   ©브레이크뉴스

지중해 피레우스(Piraeus) 항구는, 그리스 그들 나라 인구의 2배를 각 섬과 인근 국가에 실어 나르니 분주할 수밖에 없다. 늘 뱃고동 소리가 요란하다. 민주주의가 잉태된 그리스 아테네 중심부에서 12km 남짓한 그곳 항구 서쪽 언덕에, 내 눈이 고정된다.

 

25C 전, 페르시아전쟁 후 쌓은 허름한 성벽과 망루가 있다. 이를 본 배부른 한국 아줌마 여행객들이 깔깔거리며 소곤거린다. “저걸 허물고 아파트를 건축하면 돈 벌겠다”고 말이다. 우리의 대우조선이 건조했단 블루스타(Blue Star) 페리는 아파트 몇 개 동만 한 몸체답게 1,500여 명의 승객을 쏟아낸다.

 

그 속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망중한에 빠진 중후한 한국 신사가 멋쩍어한다. 국내에서의 불공정이란 실타래를 해외에서도 과감하게 풀어댐이 식상하기 때문이다.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플라톤의 『국가론』이 펼쳐졌을 언덕일 수도 있는 곳에까지 와서도 국격 조차 없는가?“ 고 절규에 가까운 외마디를 내뱉는다.

 

오로지 투기만이 살 길인 양, 그녀들은 잘못 보았다. ‘빨리빨리’란 조급증에 취한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엄청난 시간을 두고 조상들이 남긴 유적을 보존 중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세계 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 신전은, 한 세대 전에 갔을 때나 지금이나 원상복구를 위한 공사에는, 정교함을 더하기 위해 느림의 미학에라도 취한 듯 제자리걸음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로 허름해 보이지만, 우리와 달리 어떠한 유물도 마구잡이로 허문 후 투기대상으로 상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계 물동량 3위인 페리우스 항구를 가진 해운국 그리스는 딱 10년 전, 지금은 조금 하락했지만, 현재 우리의 국민소득인 3만 불이었다.

 

서설은 필자가 그곳의 고대 역사와 곁들여 현지에서 겪은 바를 형상화시켰다. 저러한 한국산 아줌마 패거리들의 책장에는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화장대 옆에서 먼지를 둘러쓰고 있을지 모른다. 아마도 있을 것이다. 전국의 서가에서 잠자고 있는 이 책이 120만권이나 팔렸다는 사실이다. 대학의 교양 교재에 불과한 이 책이 이렇게 많이 팔린 연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가 불공정함으로 인한 공정성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다. 부동산투기 등에 따른 양극화와 분배의 악화가 심해진 탓에, 부패의 사슬을 끊고 싶어서 정의론이 힘을 받았다고도 볼 수 있다.

단군이 후손 잘 되길 빌고 빌었건만,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책장사 한 번 잘하게 만든 탓에 감격해 한 사건이 씁쓸함을 더한다. 정의, 정의론에 있어서 소크라테스(Socrates)와 플라톤(Plato), 그리고『정의론』을 설파한 존 롤즈의 제자이자 아류에 지나지 않는 센델의 비싼 책 앞에 한국의 작가들이나, 꽤나 잘났다고 자기도취에 빠진 사회학자들에게 굴욕을 안겼다. 스승 존 롤즈 보다 잘났다고 덤벼든 듯 하지만, 센델에게 청출어람은 없었다. 한 세대 전, 땡크 할배 전두환이 부르짖은‘정의사회 구현’이나, 불도저로 미래세대의 환경의 몫까지 짓밟은 이명박의‘공정사회’나, 또한 문재인의‘국민의 시대’란 슬로건이 그게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도 멀고 먼 길이다.

 

지난해 5월이 마지막 가던 날, 내만의 비망록에서 이렇게 썼다. “대한민국에 정의는 없다. 소위 지도자나 정치인들이 고고한 척 하지만, 세상을 치졸하고 더럽게 살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도 없이 위선자들이 판친다. 내 삶에 있어 인성을 넘어 경미한 전과조차 없는, 도덕적 면에서도 선방이다. 이렇게 선방한 놈은 이 땅에 설 수 없다. 이 땅에서 살려면 도덕과 정의 따위는 버려야 한다.”

 

정의(justice)란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의 원조는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는 20세에 스승 소크라테스를 만났다. 그로부터 8년 후, 그의 스승이 70세에 신성모독과 청년들을 현혹한다는 사유로 사형을 당했겠다. 플라톤이 스승을 통해 설파한 국가론은 이 피레우스에서의 축제 후 아테네 시내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자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정석이다. 반면 칼케돈 출신의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Thrasymachos)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고 짝발을 내민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의 목적은 어떤 한 계급에만 행복이 편중하는 게 아닌, 국가 전체에 행복을 주는데 있다. 다시 말해 국가는 시민(국민)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며, 정의가 따르는 선한 삶을 누리게 할 책무가 있다는 것이다.

 

고로 타인을 해치지 아니하고, 법과 원칙이 통하며, 약자를 배려하며 갑질 없는 긍휼(긍휼, mercy)의 자세를 가지는 게 정의이겠다. 내만이 아닌 우리가 이 땅에 왔음도 동지요, 순차적으로 이승에서 떠나감도 동지임이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자. 우리네 삶이 끝나는 날까지. jja-news@nate.com

 

*필자/정종암,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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