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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하늘이 원망스럽구나, 말도 다 잡아먹고 더는 먹을 것이 없구나

이순복 소설가 l 기사입력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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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유요가 유자원의 간언을 물리치고 친히 20만대군을 휘동하여 형양의 경계에 당도한 날 밤이었다. 유요는 오랜 행군으로 지친 몸을 평상 위에 눕히고 잠을 청하는데 홀연 그의 눈앞에 수상한 그림자가 다가왔다. 밤이 깊어 장막 밖에는 바람소리만 요란한데 금면주의 (金面朱衣)의 그림자는 긴 칼을 거꾸로 들고 유요 앞에 다가서더니 한번 정중하게 읍하고 나서 동쪽을 바라보며 달려갔다. 유요는 엉겁결에 ‘누구냐?’ 물었으나 대답이 없으므로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그만 그 흔적을 잃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장수들이 모여들자 유요는 어제 밤 꿈 이야기를 하고 해몽을 물으니 장수들이 대답하기를
 “금면주의란 천신이 틀림없습니다. 그가 동쪽을 바라본 것은 장차 동방에서 일이 벌어질 것을 암시한 것입니다. 이는 폐하가 뜻을 강동에 두고 있음을 현몽한 것으로 사료되옵나이다.”
 그리 해몽하면서 천신의 도움을 받아 폐하의 뜻이 성취될 것이라고 하면서 축하를 해주었다. 그러나 제장이 축하를 올렸건만 오직 태사령 임의만은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유요가 그 이유를 묻자 임의는 한참 만에 입을 열고 말하기를
 “신 역시 그 일을 생각했습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그 꿈은 상서롭지 못한 일 같아서 감히 축하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유요는 임의의 대답을 듣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임의의 대답이 궁금하여서  감추지 말고 아뢰라고 하자 임의가 간신히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그 신인이 동쪽을 바라보고 달려갔다고 하셨는데 동쪽은 곧 진궁묘의 방위이고 금(金)칠을 한 사람이 칼(刀)을 거꾸로 들고 비껴 잡았으니 이것은 묘금도(卯金刀) 즉 劉 자를 형성합니다. 폐하의 성은 유씨이고 평양에서 일어나서 장안에 도읍을 정했습니다. 이 두 곳은 모두 오행으로 보아 금땅에 해당된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인은 붉은 옷(朱衣)을 입었으므로 이 빛깔은 곧 불(火)의 빛깔입니다. 불은 금을 녹이는 성질이 있으므로 상극입니다. 또한 그 신인이 읍한 다음 물을 건너간 것은 ‘공이 이루어진 뒤 일이 끝나는(功成事畢)’괘입니다. 특히 폐하께서 밟으신 이 형양땅은 하남으로써 불에 속하니 금이 성명인 폐하께는 화를 끼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태부 유광원이 아뢴 말씀처럼 군사를 거두시고 백성들의 마음을 평안케 하시고 후조와 우호를 맺어서 유종의 미를 거두시도록 하사이다.”


 그러나 경망스런 황제 유요는 임의가 뚜렷한 조짐을 들어서 간하는 말조차 듣지 않고 군사를 내몰아 석호의 대채를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한편 석호는 유요의 대군이 형양성을 쳐들어온다 하자 크게 놀라며 급히 석홀과 석담에게 1만군을 주어 적의 진격을 막게 하였다. 그러나 이미 유요의 장수 유공과 여백중이 석량과 맹행 두 고을을 점령해버린 뒤였다. 이것을 보자 석호는 석민에게 5만군을 주어 유윤과 평선이 거느린 유요의 전군을 맞아 싸워 보라 명했다. 양군이 형양성 경계에서 진을 치고 나서 먼저 석홀이 칼춤을 추면서 번개같이 달려 나왔다. 그는 넘치는 용기를 믿고 튀어나가 유혹과 맞붙었다. 전조의 유혹은 60근 대추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양장이 싸우기 40여 합에 홀연 석홀의 칼이 허공을 가르며 빗나가자 유혹은 석홀의 머리를 겨누어 대추를 내려쳤다. 이 일격에 석홀은 눈알이 빠지고 머리통이 깨져 죽었다. 이 모양을 보자 유요의 군사들은 일제히 석호군을 향하여 진격했다. 크게 당황한 석호군은 석민 이륭 석량 이농 4장이 앞장서서 노도처럼 밀려드는 유요군을 막으려고 애를 썼으나 마음과 같이 되지 않았다. 유윤과 평선 등 유요의 선봉장이 호연유 장량 신안 마충 유혹 등 많은 장수를 거느리고 달려들자 후조군은 산산이 부셔지고 말았다. 석호의 장수 석장 석정 등은 중상을 입고 말 등에 매달려서 도망쳤고 밟히고 쓰러진 군사가 산더미처럼 쌓여 퇴로를 막고 피는 개울처럼 흘러내려갔다. 석호군은 크게 패하여 형양성 바로 밑에 있는 대채까지 쫓겨 왔다. 그러나 유요군은 그 뒤를 쫓지 않고 마상에서 의논하여 정하기를
 “지금 성중에는 유악과 이구가 굳게 지키고 있으니 우리가 가서 돕지 않아도 성을 지켜낼 것이요. 그러니 이 길로 석생이 농성한 금용성을 쳐서 얻은 후에 석호를 무찔러서 형양일대를 확보합시다.”
 이리하여 유요군은 일제히 금용성을 포위하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석호는 장수들이 모두 중상을 입었으므로 석생이 고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돕지 못했다. 이런 어려움에 처하자 석감이 앞으로 나와 말하기를
 “오늘 이 모양으로 어려움에 빠진 것은 누구의 허물도 아닙니다. 모두 힘껏 싸웠지만 워낙 유요의 장수 유윤이 용맹하기에 때문일 뿐입니다.”
 “허허. 유윤이 용맹하다고? 그놈은 유요의 장자라지만 본래 석회(石灰)가루 장수를 하던 놈인데 무슨 역량이 있겠는가. 나 석호가 기필코 내일은 그놈을 사로잡은 후 금용성을 구하리라.”


 다음날 석호는 석량에게 5만군을 주어 계속 형양성을 괴롭혀서 유악과 이구를 잡도리 하라 하고 자신은 5만군을 거느리고 어제 패한 석민 석홀의 원수를 갚으러 나섰다. 유요는 석호가 달려 나와 원수를 갚고자 한다는 말에 제장을 거느리고 앞으로 나와 진을 쳤다. 석호의 진에서 북소리가 세 번 울리자 포성은 땅을 울리고 석호는 좌우에 석민 석감을 거느리고 대도를 높이 쳐들며 달려 나와 외치기를
 “유가의 바보 같은 장수들아! 어찌 기병하여 여기까지 왔는가? 유윤과 유혹은 얼른 나와서 목을 바쳐 죄를 빌고 군사를 쉬게 하라!”


 석호의 우렁찬 목소리가 쩡하고 사방에 메아리치자 유요의 진에서는 일제히 깃발이 나부끼면서 기운찬 기마가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유요는 갈라(褐羅)를 걸치고 용산(龍傘)을 드리우고 오른 쪽에는 황금 부월 왼쪽에는 황금 과족(瓜簇)을 받든 군관 뒤를 따라서 문무제관을 거느리고 나왔다. 유요가 철편을 들어서 석호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말하기를
 “너의 아비 세룡(世龍:석늑)은 본래 우리 한실의 신하였느니라. 짐은 그에게 공 있음을 생각하고 왕에 봉하여 산우 하북 하남 땅을 관할시켰더니 자존 망대하게도 제호(帝號)를 일컬었다. 그러나 짐은 지난날의 의를 생각하고 그 죄를 묻지 않고 진조를 막는 울타리로 삼았는데 무슨 이유로 짐에게 귀부(歸附)한 형양을 침범하여 원수를 맺으려는가!”        


 “하.하.하. 지금 산동 산서와 하동 하북 등 중원 천하는 모두 우리 것이다. 형양과 사주도 그 사이에 끼어 있어서 취하려는 것인데 내 공로를 시샘하여 그대가 유악을 보냈으니 어찌 내가 원수를 맺으려고 한다 하는가?”
 석호의 거침없는 면박에 유요는 불같이 화를 내며 말하기를
 “저 역적 놈의 자식이 짐의 어가가 이곳까지 왔는데 겸손할 줄 모르는구나! 누가 저놈을 잡아 묶어라.”
 유요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유윤이 채찍을 말에게 휘두르며 달려 나갔다. 이에 석호도 쌍도를 휘두르며 맞서 나와 크게 소리치기를
 “너는 바로 석회 장사 어린애가 아니냐! 얼른 말에서 내려 포승을 받아라.”
 석호가 유윤을 향하여 놀리자 유윤은 이를 부드득 갈면서 대답하기를
 “이 국적도 없는 후레자식아! 뉘 앞에서 미친 수작을 벌리느냐.”


 두 청년장수는 서로 생명과 명예를 걸고 재주껏 싸웠다. 말은 게거품을 물고 ‘히힝~’하며 달렸고 온몸에 땀이 배어 번들거렸다. 그러나 두 청년장수가 작은 틈도 주지 않고 기합을 토하면서 달려들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였다. 둘의 무예는 최상승무예로서 용호상박의 혈투를 벌렸다. 이처럼 싸우기를 100여 합을 넘자 말이 지쳐 헐떡거리는데 두 영웅의 힘은 아직 펄펄하게 보였다. 그래서 둘은 말을 바꾸어 타고 싸우자고 합의하여 다시 싸워 40여 합을 넘겼으나 승부를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군사를 거두어 영채로 돌아갔다.       전조태자 유윤이 군사를 거두어 대채로 돌아가자 유요는 좌우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사람들이 석호의 용맹을 말하는 것을 짐은 믿지 않았다. 헌데 오늘 보니 과연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구나!”
 유윤은 아버지가 석호를 칭찬하자 기분이 좋지 않아 유요를 쳐다보며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뭣 때문에 남만 그토록 칭찬하시옵니까? 내일 다시 싸우게 되면 소자가 결단코 그놈을 생포하겠나이다.”
 그러나 유요는 유윤을 보고 경적하지 말고 신중히 싸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다음날 양군이 진을 펼치고 북을 울리자 석호는 말을 몰고 나와 유윤에게 도전했다. 유윤은 석호가 약을 올리는 말을 하자 대꾸하기를
 “오늘 너를 사로잡지 못하면 남자가 아니다.”
 굵게 한 마디 뱉고 달려 나갔다. 이에 두 장수는 진 앞에서 60여 합을 싸웠으나  승부를 내지 못했다. 두 장수는 비지땀이 흘러서 시야가 바로 보이지 않자 잠시 칼을 지팡이 삼아 휴식을 취하고 나서 이번에는 투구를 벗어 던지고 다시 싸웠으나 자웅을 가리지 못했다. 이때 석호는 육중한 몸 때문에 말이 지쳐서 달리지 못한 지라 새 말을 갈아타려고 유윤에게 먼저 말을 걸기를
 “이 보라우. 말이 힘이 빠졌으니 말을 바꾼 다음 다시 싸우는 것이 어떨까?”
 유윤이 칼을 멈추고 대꾸하기를
 “좋다. 그대의 말이 지쳤나 보구나. 바꿔 타려고 시간을 낭비한 것보다 보전(步戰)을 하자.”
 그래서 둘은 말을 버리고 땅으로 뛰어 내려서 한 시간을 싸웠으나 역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이것을 본 양측 군사들은 큰 소리로 외치기를
 “두 장군은 싸움을 멈추시오. 날이 저물었으니 내일 다시 싸우기로 하고 영채로 돌아오시라.”


 그러나 잔뜩 성이 난 두 장수는 만류하는 소리도 아랑곳없이 계속 상대방을 노리고 칼을 휘둘렀다. 이것을 본 양 진영에서 유함과 석감이 나와서 싸움을 뜯어 말리니 그때서야 둘은 숨을 헐떡거리며 상대방을 노려보다 말고 본진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때 영채로 돌아간 석호는 장수들을 모아 놓고 적을 칠 계책을 숙의하기를
 “유윤이란 놈은 비범한 용사요. 나는 아직 그 같은 적수를 만난 적이 없소. 무슨 수를 써야 이길 수 있겠소?”
 이에 석감이 나서서 말하기를
 “그와 같은 자는 힘으로 이기기는 어렵고 오직 지략을 써야 하오. 나에게 한 계책이 있습니다.”
 석감의 계책을 자세히 들은 석호는 크게 칭찬하고 곧 삼군을 배불리 먹인 후 출동 대기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석생에게 급히 사람을 보내어 알리기를
 ‘오늘 저녁 야습을 감행할 터이니 그대도 성을 나와 유요군의 영채를 기습하라.’


 수하 장졸에게 술과 고기를 먹여 사기를 돋우고 이륭 석감과 주보 이농과 지굴륙 석민과 석담 등으로 4로군을 편성하여 유요군의 영채를 쳐들어갔다.
 이때 유요의 장수들은 겹친 피로로 모두 투구와 갑옷을 풀고 단잠에 빠져 있었다. 이런 유요 진을 석호군이 은밀히 쳐들어가니 대든 놈이 보이지 않았다. 일통을 크게 당하자 수문장 여중백은 갑주를 착용하고 제일 먼저 튀어나왔으나 달려든 이륭의 창에 겨드랑이를 찔려 도망치다가 석호의 칼을 맞고 죽었다. 유요군의 맹장 유혹은 여백중이 죽은 걸 보자 알몸으로 튀어나와서 대추를 휘둘러 조신을 격살내고 또 주보의 왼 무릎을 후려쳤으나 등 뒤로부터 달려온 석민의 한칼에 목이 달아나 죽었다. 그런 중에서도 유요의 장수 강평은 중문에 버티고 서서 연방 화살을 쏘아 숱한 석호군을 맞추니 석감과 석민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
 “활 쏜 놈은 피해가자!”
 석감과 석민이 둘이 그리 말하고 강평을 피해 격전지로 달려가는데 금용성에서 달려온 장하가 강평의 등 뒤로 뛰어 들어 창으로 어깨를 후려치니 강평은 피를 흘리며 달아났다. 강평이 달아나자 그 때부터 유요군이 크게 무너지며 서로 밟고 밟히다 보니 달아나는 자 보다 죽는 자가 더 많았다.   


 유윤과 평선은 이때 유요와 함께 난병을 뚫고 영채 밖으로 나가려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불쑥 석호 석담 이농 지굴륙 등 맹장들이 나타나서 빙 둘러싸자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유윤이 용기를 내어 혈로를 내자 유요를 위시한 여러 장수들이 그 곳을 통하여 달려 나갔다. 하지만 유윤은 석감이 쏜 화살을 어깨에 맞고도 화살을 뽑지 못한 채 유요의 신변을 보호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석호의 칼끝에 팔뚝이 찔렸으나 석민과 석생 까지 따돌리고 용력을 다해서 포위망을 빠져 달아났다. 유윤이 아버지를 사지에서 겨우 빼내고 겨우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패잔병을 수습하고 달려온 유아 유공 장랑 장선 신도 등이 합력하여 온몸에 화살을 맞고 전사 직전에 있는 평선을 구출해 냈다. 그러나 유아가 거듭 석호의 포위망에 걸리자 이를 구하려고 달려든 장선과 신도는 애석하게도 창칼에 찔려 죽었다. 다행히도 이때 석종이 유공과 합력하여 막힌 포위진을 뚫었기 때문에 유요는 그길로 서쪽을 바라보고 달아났다. 이것을 본 석호는 유요의 등에다 대고 외치기를
 “하늘의 뜻을 거역하고 진조를 도운 자가 어떤 벌을 받는가 보아라!”


 석량은 형양성을 포위한 채 맹렬히 공격을 퍼붓고 있는데 석호가 유요를 격파한 소식을 듣고 유요를 추격하고자 에움을 풀었다.
 다음날 새벽에 성이 풀린 것을 본 유악은 지름길로 달려가서 유요를 추격하는 석호군의 앞을 가로 막았다. 유악은 유요가 멀리 가지 않고 금곡원에서 둔병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 대가를 호위하여 장안으로 가려고 장수들을 보냈다. 그리고 유악 자신은 부장 양등 왕등을 데리고 골짜기 입구에 진을 쳐서 밀려오는 적군을 가로 막았다. 이와 같이 반나절을 헌신적으로 싸우다 화살을 맞은 유악의 몸은 피가 흘러 갑옷과 전포를 흥건히 적셨다. 그래도 유악은 사력을 다해 석호군을 막아 유요의 대가가 도망치는데 시간을 벌어 주려고 애썼다. 여러 시간이 지나자 유악은 유요가 멀리 달아났을 것으로 계산하고 골짜기의 방어진을 풀고 도망쳤다. 이에 석호는 유악 때문에 유요를 놓치자 이를 갈면서 유악의 뒤를 추격했다. 이에 유악은 피로에 지친 나머지 석량보 요새를 발견하고 그곳에 들어가 숨었다. 이에  화가 난 석호는 석량보 둘레에 구덩이를 파고 목책을 세워서 괴롭혔다. 유악은 먹을 것이 없는 보안에서 굶주리다가 말을 잡아 배를 채웠다. 그러나 여러 날 동안 견디다 보니 말을 모두 잡아 먹어버렸다.
 “아아! 하늘이 원망스럽구나. 말도 다 잡아먹고 더는 먹을 것이 없구나.”


 유악은 이제 먹을 것이란 인육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굶주리다 못해 눈물을 삼키며 부상당한 동료를 잡아먹었으니 갈 때까지 간 것이다. 이 모양을 알아낸 석호가 우악스레 쳐들어가 유악과 양등을 사로잡고 보니 왕등은 이미 목을 질러 자살했다.
 이때 석호는 관서 땅의 용맹한 8천군과 저강의 정병 3천군을 양국으로 압송하여 석늑에게 바쳤다. 그리고 남은 2만군은 모두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해 버렸다. 이것을 본 석호의 대장들도 참혹한 잔학행위에 눈길을 피했으나 오로지 석호만은 쾌재를 부르며 기뻐했다. 유요는 석호에게 패한 결과 상장인 여백중 호연모 왕등 유혹이 죽었고 편장은 장선 신도 양등을 잃었으며 10만 정병을 모두 잃었으니 이는 어진 신하들의 간언을 물리친 결과였다. 함양성 밖에 당도한 유요는 소복을 입고 교외에서 7일 동안 슬피 울었다. 유자원은 사람을 보내어 유요를 마중하니 그제 서야 조정으로 들어왔다. wwqq1020@naver.com


*필자/이순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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