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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나의 오른 팔을 빼앗아 갔으니

이순복 소설가 l 기사입력 2019-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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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복 소설가     ©브레이크뉴스

후조대원수 석호는 쫓겨 달아나는 유요를 추격하여 대승을 거두고 적장 유악을 생포하였다. 기세가 등등하게 대채로 돌아온 석호는 왕화 이륭 석감으로 하여금 형양성을 포위한 석량을 도와서 성을 함락시키라 명했다.
 하늘 같이 믿었던 유악 등 제장을 잃고 진퇴유곡에 빠진 이구는 생각다 못해 성 밖으로 치고 나왔으나 부장 곽원이 석량에게 생포되자 또 다시 성안으로 들어가 굳게 지켰다. 그러나 동진의 구원군은 오지 않고 유요군 마저 대패하여 달아났으니 의지할 것이 없어 절망에 빠졌다.
 이때 밖에서는 석량이 생포한 곽원의 포승을 풀고 양국으로 보냈다. 양국에 간 곽원은 황제와 석호가 명하여 유요군 2만을 생매장한 광경을 목격했다. 그리고 한통의 서장을 받고 형양으로 끌려와 형 곽송과 수장 이구를 설득할 사명이 강제로 부여되었다. 곽원이 가져온 석늑의 서장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짐이 나라의 기초를 처음 잡기는 하북이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원정을 통하여 하남과 산서 하북 유주 기주 연주 땅이 모두 짐의 판도로 들어 왔소. 지난해에는 조억을 평정하여 산동 땅을 모조리 장악했고 북쪽의 탁발씨도 항복 받고 이번에는 유요를 멀리 서쪽으로 패주시켰소. 그런데 아직도 남쪽의 진조는 어찌해서 감히 짐의 나라를 엿보는가. 이제 천하가 넓다고 해도 그 절반 이상을 짐이 얻었으니 경 따위가 지키고 있는 형양 4주 2고을은 그야말로 우지일각(牛之一角)과 같도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경은 짐의 명령을 거역하고 사서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이오. 그러므로 그대에 대한 모든 조처를 대원수 석호에게 맡겼소. 경은 석호의 성질을 알겠지만 아마도 끝내 항복하지 않고 성이 함락되는 날에는 두려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오. 그러하니 좋은 말로 권할 때 더 이상 지체하여 군사와 백성을 괴롭히지 말고 짐의 분부를 따르도록 하오.’
 형식은 조서로 되어 있었으나 인격을 무시한 협박조의 서장이었다. 이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응하지 않자 석늑의 사자는 곽원을 이끌고 나가려 했다. 이것을 본 이구는 크게 당황하며 곽송에게 묻기를
 “곽원이 또 끌려가려하니 내 마음이 편치 않구려. 그대의 뜻은 어떠하오?”
 그러자 곽원의 형 곽송은 입술을 깨물면서 대답하기를
 “옛날 왕릉은 그 모친이 초나라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도 초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본래 충절을 다하려면 효성은 다하기가 어려운 것이니 다른 이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형양성은 전보다 더 강하게 버티면서 항복하지 않자 석량은 1달이 넘도록 공격했으나 공이 없었다. 이 말을 들은 석늑은 이번에는 사람을 시켜 곽원에게 좋은 의복과 관대를 내리고 곽송에게도 사슴의 꼬리로 된 값비싼 말채찍을 하사하여 은근히 귀순하기를 권했으나 곽송은 역시 받지 않고 회답도 하지 않았다. 석늑은 도저히 곽송의 충성된 마음을 빼앗지 못할 것을 알자 재차 석호에게 대군을 주어 공격하라 명하니 밀남에서 부딪쳤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패한 곽묵은 건강으로 도망치자 이구는 심히 괘씸하게 여기며 곽송과 단문수를 보내어 곽묵을 추격해 잡아오게 했다. 밤을 도와 곽묵의 뒤를 쫓은 두 사람은 양성에서 곽묵을 잡자 그가 울면서 말하기를
 “적은 군사로 석호군을 도저히 막지 못해 나는 정말 패해 버렸소이다.”


 단문수와 곽송은 힘써서 그를 형양성으로 데려가려 하였으나 듣지 않고 짐짓 자살을 가장하여 처자와 주하를 버리고 도망쳐 버렸다. 할 수없이 단문수가 곽묵의 처자와 부하만을 거느리고 형양성으로 돌아와서 이구에게 넘겨주자 곽묵이 죽은 줄로만 안 이구는 그 처자를 극진히 위로하고 대우했다.


 후조대원수 석호는 형양성을 보름씩이나 공격하여 함락시키지 못하자 엄포를 놓기를
 “성중에 있는 사람들은 들어라! 이대로 버틴다 함락하는 날에는 군사와 백성을 남김없이 생매장을 시키고 말겠노라.”
 이 말을 들은 성안의 군사들 중에는 자기 혼자만이라도 살아나려고 몰래 석호와 내통하는 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태수 이구는 양식도 달리고 인심도 변해 가는 것을 눈치 채자 조용히 곽송과 단문수 참모 곽방 대장 마상 장경 주보 순원을 불러들여 도망칠 계획을 의논하자 곽송이 묻기를
 “석호군의 포위가 철통 같으니 무슨 수로 도망을 치시겠습니까?”


 그러나 이미 결심이 선 이구는 강패 견등 영지 이홍 이환 범승 등과 장졸 3천명을 비밀리에 뽑고 성안의 남은 군사와 백성들에게는 영채를 습격하기 위해 출병한다고 거짓말을 한 다음 야밤중에 성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그러나 계획이 누설 되었는지 이구가 거느린 3천군은 성 밖으로 나가자마자 석호군에게 발각되어 첩첩이 포위되고 말았다. 장수들이 모두 목숨을 내걸고 싸워서 겨우 포위를 뚫고 내달리기는 했으나 이구는 전신에 4군데나 창에 찔리고 10여 개의 화살을 맞아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장수들은 끝까지 이구를 버리지 않고 호송하여 노양까지 도망했으나 갑자기 기력을 잃고 일어나지 못하더니 눈을 감았다.


 형양성주 이구가 죽자 사주 예주 여주 허주 낙주 등 중원의 여러 주가 후조국의 영토가 되었다. 황제 석늑은 승전보를 받자 석호에게 조서를 내려서 회군하게 하고 거기대장군의 벼슬을 더하여 내외제군을 통솔하라 하였다. 그리고 전공을 세운 장졸들도 각각 진급시켜주고 직위를 내렸다. 이 바람에 항장 유악도 용서 받아 산기상시 벼슬을 받고 한단에서 살게 되고 곽원은 경성주부 벼슬을 받았다.


 이때 상서령 정하는 석늑의 처남으로 신임이 두터워 내정 전반을 장악하고 있었다. 정하는 석늑의 장자 석호가 성질이 용맹 잔인하고 세력이 강성하니 그대로 두면 그 힘을 제어하기 힘들 것을 생각하고 은밀히 석늑에게 권하기를
 “하남 땅은 새로 얻었으니 아직 민심이 폐하께 돌아오지 않았나이다. 신의 생각은 석호 석생 석감 석담에게 4만군을 주고 하남땅을 지키게 한다면 민심도 얻고 방위도 안전할 것이며 장차 있을 제위 계승 때 찬탈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평소에 석호의 용맹을 칭찬하였으나 그의 포악한 성질을 싫어한 석늑은 정하의 상주를 듣자 석호를 불러서 분부하기를
 “지금 하남땅은 민심이 안정되지 않아 적의 재침이 두렵구나. 그러니 너는 군사를 이끌고 가서 그곳을 지키되 동진과 유요가 감히 침범하는 일이 없게 하여라.”


 아버지의 말을 들은 석호는 그 계략이 정하로부터 나왔으며 자기를 조정에 받아 드리지 않으려는 것임을 빤히 알았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조정을 물러난 후에는 억울해 하고 슬퍼하고 침울해 했으니 후일에 일어난 후조의 환란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하남 땅 업성에 당도한 석호는 전쟁이 없자 매일 교외에 나가 사냥을 하였다. 업성은 본래 위국 조조의 도성으로 성지가 견고하고 산천이 수려했다. 하루는 석호가 사냥에 열중인데 나그네가 전통을 매고 숲길을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수상하게 여긴 석호는 그자를 불러 묻기를
 “너는 뭘 하는 자인데 무장을 하고 이런 산길을 지나가는가?”


 힐문하자 석호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겁을 집어먹고 얼른 대답하기를
 “소생은 강남에 사는 장사꾼 공기입니다. 장사 차 장안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장사치가 어찌 무장을 그리 중하게 하였는가?”
 “예 소인이 무장을 한 것은 유요황제가 오랑캐 군사 20만 명을 모집해서 관안에 주둔시키고 있는데 그놈들이 지나가는 객상의 물건과 돈을 털기 때문에 부득이 무장을 하고 관을 넘어 오는 길입니다.”
 “그럼 유요가 군사를 왜 모집하는 지 그 이유도 들었느냐?”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금용성의 원수를 갚고 형양성을 다시 빼앗기 위해서라 하옵니다.”


 상인의 말을 들은 석호는 그를 대접해 보내고 곧 말을 타고 도성으로 들어왔다. 이때 석늑은 중신들과 연회를 즐기는데 석호가 급한 면회를 신청하자 그 자리로 불렀다. 석호의 말을 다 들은 석늑은 여러 중신들에게 유요를 어찌할 것인가 가부를 물었다. 이에 석호는 속전론을 주장했고 중신들은 신중론으로 갈리었다. 이에 석늑은 사람을 우후에게 보냈다.
 이때 우후는 병이 위독하여 자리 보존을 하고 누웠는데 사자는 아무 말도 전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와 석늑에게 보고하기를
 “장대국주 조공 우후께서는 이미 입안에 설태가 끼고 눈곱도 끼어 정신이 몽롱하셨습니다. 그래서 물어도 목소리를 만들지 못하시어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사자의 말에 석늑은 크게 놀라 곧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 우후의 부중으로 달려갔다. 그리도 팔팔하고 정신이 고아하던 우후는 이미 실어증에 걸려 석늑을 보고도 발음을 만들지 못하고 멀건이 바라보며 눈물만 흘렸다. 크게 상심한 석늑은 마른 가지처럼 여윈 우후의 손을 잡고 울음을 터뜨리자 황제를 따라온 공장 정하 장광 도표와 늙은 신하들이 모두 다 애통해 했다. 그날 밤 궁으로 돌아온 석늑은 우후의 부음이 전해지자 침상을 치면서 통곡했다.
 “하늘이 나의 오른 팔을 빼앗아 갔으니 내가 무슨 재주로 기업을 넓힐 수 있으리오!”


 하늘이 무너지게 탄식하며 침통해 하는 석늑을 보고 중신들은 우후의 죽음이 황제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며 좋은 말로 상주하기를
 “장빈 조공께서는 90수를 하시었으니 장수를 누리셨고 벼슬도 극품에 이르렀고 부귀도 적지 않았나이다. 폐하께서는 지나치게 조공의 죽음을 슬퍼하셔서 옥체에 해가 미치지 않도록 하옵소서.”


 한참 만에 눈물을 거둔 석늑은 여러 중신들을 돌아보면서 대답하기를
 “짐이 서러워하는 것이 조공의 천수를 누리지 못한 일이 아니오. 조공은 짐과 같이 기업을 일으켰고 짐은 항상 그의 뛰어난 식견과 책모로써 오늘의 공업을 이루었는데 태평한 세월을 다 향락하기도 전에 짐을 버리고 떠났으니 그것이 마음을 아프게 할 따름이오.”
 석늑의 두 눈에서는 또 다시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자 모였든 조신들도 모두 비감에 젖었다. 석늑은 그 후 중신들과 함께 조공 장빈을 봉왕(封王)대우로 장사 지내게 하고 장자방에 해당하는 보필의 공로를 생각하여 장빈의 후손들에게도 모두 높은 벼슬을 내렸다. 그리고 정하를 장빈의 뒤를 이어 우장리(右長吏) 벼슬을 주어 승상직을 겸직시켰다. 석늑은 장빈이 죽은 뒤에 마음이 산란하여 기병할 생각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석호는 부왕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상주하기를
 “지난날 유요가 25만대군으로 소자를 일전에 격파하였나이다. 지금 소자가 지키고 있는 업땅에는 수만의 정병이 있사옵니다. 이 정병이면 능히 적을 쳐 부실 수 있사오니 마땅히 이 군사로 적을 쳐부수어 폐하의 심려를 덜어드리겠나이다.”
 말을 마친 석호는 황제의 윤허가 내리기도 전에 어전을 물러가 버렸다. 석늑은 석호의 만용과 횡포를 혐오하여 그만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것은 전쟁의 승패의 책임을 석호 스스로 지게 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업성으로 돌아온 석호는 황제의 명을 사칭하고 기병하여 석생을 금용성에 머물러 있게 하고 조용에게는 업성을 지키게 하고 석호 자신은 장군 석담 석감 부장 지연 사공 유술 장박 등과 4만군을 이끌고 장안을 향하여 출진했다.


wwqq10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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