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왜 시골 교회에 돌을 던지나 ?

이승철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19-06-12

본문듣기

가 -가 +

▲ 이승철     ©브레이크뉴스

딸 사위 본촌 교회 출석 문제를 놓고 목사와 진지하게 이야기했으나 진심인지 겸양인지 무거운 말만 오갔다. 


 비 갠 후 날씨야 좋지만 나사연 장로 시무룩한 얼굴로 집에 돌아와 부인에게 말을 하니 이러쿵저러쿵 대꾸가 없고, 토요일 딸 내외가 왔다. 자초지종 장인 이야기를 듣고 난 사위 “천 목사 그 점이 좋아 신앙생활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 어떨까요?” 연락이 잘 되어 붕어찜 전문식당 화산 산수장에 갔다.

 

계산을 마치고 바깥 나무그늘에 앉아 차를 나누며, 현재덕은 전주 시내 몇 군데를 둘러 본 이야기를 꺼낸다.

 

“5월 12일(일)입니다. 시내 모 교회를 찾아 가는 도중 간소복 차림으로 쓰레기를 줍는 50대 중년을 만났습니다. ‘아! 이 교회서 나오셨습니까? 장로이시지요?’ 인사하니 여기가 아니라 저 건물 2층 작은 교회 집사입니다.’ 이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공원 옆 수십억 5층짜리 건물에 3,000 성도를 외치는 예배당 ‘장로-집사’가 아니랍니다.” “2층 너른 자리에 앉아 담임 목사 설교를 듣는데 웬일인지 마음에 꽂히는 게 없고 오다 만난 집사의 ‘공원에 담배꽁초 버리지 않게 기도해주시지요’ 이 소리만이 귓전에서 맴돌았습니다.” “마치고 나와 화단-마당-주차장을 보니 뽑을 풀이 많고 쓰레기가 내뒹굴어 ‘여가는 아니다’며 본촌교회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동석한 장모‧장인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장로 권사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네 분께서 저녁 대접 이 뜻을 잘 압니다. 고마운 답례 어찌 해야 할 지 걱정입니다.”

 

“현 박사님! 차라리 5년 뒤에 나오시지요, 저 5년 임기 마치고 말입니다.” 이어지는 말이 없을 때 시원한 바람이 사르르 스쳐지나간다.

 

천 목사가 “저 1년이면 예배 인도 100여 번, 5년이면 500번인데 현 박사님!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여쭙는 말씀입니다. 사모 포함 다섯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고성산 그늘이 다가서며 점점 어두워질 무렵 현 박사 내외가 땅바닥에 무릎을 바싹 꿇고 목사 손을 꼭 잡으며 “저 30 전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저 잘난 맛에 살았습니다. 그러다 본촌 이 마을 나 씨네 사위 되어 훌륭하신 분을 뵙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저의 조건 하나만 들어주시지요. 날마다 수술 합니다. 이 시간 뒤에서 기도만 해주세요. 제 손으로 수술하는 게 아니라 목사님 기도 중에 제가 손을 놀린다는 이 생각을 갖게 말입니다.”

 

천 목사 내외도 의자에서 내려앉아 넷이 부둥켜안고 기도한다. ‘아멘’ 후에 보니 여섯 사람 얼굴이 저져있다. 이 때 자동차 경적소리가 나며 박달재 조합장이 차에서 내려 다가선다.

 

일어나 인사하니 박 조합장 “오늘 이 자리가 우리 고장 ‘천세 전할’ 자리입니다.” 천세전(千世傳) 목사 성명에 빗대어 하는 재담이다. “‘놓기 아까워’ 그러시지요? 현 박사! 우리 본촌 교회 시험보고 합격해야 나올 수 있는 교회입니다. 하하하∼” 천 목사 턱 끝을 아래로 잡아당기며 부인에게 묻는다. “여보! 보따리 싸야 할 이 문제 어찌 생각하오?” 부인의 말 “부창부수(夫唱婦隨)이니 지구 끝까지라고 동행 하리다". 시골 목사 부인도 이처럼 착한데 왜 서울 교계 지도자들은 이리도 시끄럽게 하나.


*필자: 이 승 철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Copyright ⓒ 브레이크뉴스. All rights reserved.